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5)
들소와 들개 떼의 잔해에서 식량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을 잘라내서 챙기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예 너덜거리는 부분, 먹기 난감해 보이는 부분을 가차 없이 잘라 버리고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부위만 대강 골랐기 때문이었다. 보다 세심하게 고르면 몇 끼니 몫은 나올 듯했지만 일행은 일단 몬스터의 추격을 서두르는데 더 집중하느라 거저 얻은 고기, 식량에 대해서는 조금 부주의한 듯했다.
어쨌든 두툼한 고깃덩이를 각자 배낭에 나눠 챙긴 다음에 일행은 다시 베즐을 선두로 해서 보다 빠르게 걸어 나갔다.
말없이 가능한 힘을 축적하면서, 뛰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뛰는 듯한 걸음이 이어지는 와중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소리 없이 속삭인다.
―너만 날름날름 몬스터가 먹다만 걸 챙기는 게 아니었구나. 다른 인간도 다들 저럴 줄이야…… 아니, 몬스터 헌터라서 그런 거냐?
‘굶어 죽는다는 소리 못 들어봤냐? 굶어 죽는 것보다 몬스터에게 물려 죽는 게 차라리 더 낫다는 소리 몰라? 여유가 있을 때라고 방심하는 거 아냐. 근데 정말로 방심을 하지 않는 팀이네…… 진짜 상급 헌터라서 그러나?’
―호오?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비정상이란 거구나? 과연! 인간이 다 이럴 리가 없지! 역시 너랑 같이 있다가 이상해진 경우인가!
‘뭔 소리여? 그냥 닥치고 있어라! 도움이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도움? 프로브로 광역 정찰이라도 하면…….
‘하지 말라고! 이 팀에게 맡긴다고 했잖아. 심심해도 참아!’
투란은 윌 라이트를 꽉 억누르면서, 이제 슬슬 드라고니아가 왜 이러는가에 대해 감을 잡은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다른 때랑 다르게, 성벽을 나서면서부터 윌 라이트의 힘을 억누르고 프로브를 모조리 해제해서 드라고니아의 지각범위가 줄어든 탓에 굉장히 심심해 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심심풀이로 지켜보고 싶어도 지금은 오직 투란이 보고 듣는 범위 안에 한정된 채로 있자니 답답해 하는 것이다!
―흐흥, 방심하는 거냐? 그러다 갑자기 습격당해서 누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냐! 너, 누가 죽는 꼴 보려던 거였어?
‘제발 닥쳐라, 좀!’
투란은 결국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무슨 날벌레처럼 떨쳐내기 위해서 고개를 휘휘 젓고 소리 없이 외쳤다. 한데 그러면서 고개를 젓는 와중에 저쪽 편에서 뭔가 눈에 얼핏 보이는 것이 있었으니…….
“응? 저거……?”
달리면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작게 투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바로 앞에, 좌우로 펼쳐진 듯이 투란 앞을 달리던 라펜과 마켈이 그런 투란을 빠르게 돌아봤고 투란의 눈길이 향한 곳을 재빠르게 확인했다. 곧바로 마켈이 손짓하고 라펜이 큰 소리로 외친다.
“오른쪽! 나무 위!”
이 소리에 베즐 팀도 바로 반응했다.
“거뭇한데?”
“거미야!”
“한 마리?”
“저 크기면 무리 짓는다!”
“멈춰!”
베즐이 팀 멤버들의 말을 듣다가 주먹을 올리면서 멈춰 섰다.
즉각 그 주변으로 펼쳐지면서 베즐 팀이 멈췄고, 라펜과 마켈은 물론 슬리피도 그 뒤편에 각자의 자리를 잡듯이 섰다.
투란은 그런 일행 뒤에 슬쩍 붙으면서 눈을 깜박이는 표정을 짓고 지켜봤다.
―저거, 자카라 산림에서 봤던 독성(毒性) 거미 아니냐?
드라고니아는 가만히 있는 것이 싫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베즐네는 전부 아는 것 같은데?’
투란은 쟈카라 산림의 일을 떠올리면서 일행이 어떻게 대응하려는가를 살폈다.
저 거미는 이빨과 거미줄에 독성을 품고 있는 마수였다.
지금은 한 마리가 나뭇가지 꼭대기에 대롱거리면서 죽은 것처럼 매달려 광경이지만, 3, 40 센티 정도 되는 몸 크기를 지닌 저 마수는 늘 떼로 몰려다녔다. 거미 군단장의 지배하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그 몰려다니는 습성은 몬스터 거미 군단장의 지배와 상관없이 유지되는 모양이었다.
몬스터인 거미군단장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나서 여기저기로 흩어졌던 무리 중에 이쪽으로 온 경우인 듯한데…….
“젠장, 발자국만 보고 뛰었더니!”
“아직 우리를 모르는 건가?”
“응? 우리한테 관심이 없나?”
“이 거리에서? 무리를 부르고 기다리는 거 아냐?”
아직 나무 꼭대기에서 대롱거리는 거미 한 마리와 거리는 수십 미터의 간격을 유지한 채였다. 베즐 팀은 그 간격을 위험하다고 여기면서 경계하는 중이고, 슬리피나 라펜, 마켈은 그 팀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금 거리를 둔 채로…… 여차하면 베즐 팀을 방벽 삼겠다는 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
투란은 그 맨 뒤에서 멀뚱거리며 보는 중이었다.
과연 저 거미 무리가 나타나면 어떤 모습들을 보일까?
궁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야, 우리 두 발 도마뱀 쫓아온 거잖아?”
베즐이 심각하게 말했다.
“그래, 그 발자국만 보고 뛰다가 저놈이 저렇게 째려보는 영역까지 들어왔잖아!”
“왜 아무도 위를 안 본 거야!”
“오랜만에 갈기 산맥 맛을 제대로 보는구만.”
베즐 팀 멤버들이 반쯤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거미에게 대응할 자세를 갖춘 채였다.
투란에게는 그 모습이 아주 숙련된 것으로 보였다.
독성 거미가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거미줄을 걸고, 거의 날듯이 움직이며 튀어 다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십 미터 간격을 뒀음에도 방어태세를 갖춘 것이니까.
“발자국, 저 거미 아래쪽으로 이어지는가 본데?”
활잡이 카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멈추게 했다.
다들 눈동자를 굴려 이제까지 쫓아왔던 랩티드 무리의 발자국을 더듬어봤고, 정말로 수십 미터의 큰 간격을 두고 푹푹 찍힌 무리의 발자국이 거미가 대롱거리는 아래쪽으로 흘러간 것을 확인했다.
베즐이 이 상황을 정리하겠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마을 쪽이 아니라 산맥 안으로 꺾어 들어갔나? 그러면…… 마을은 무사하겠는데? 대신 갈기 산맥을 떠도는 랩티드 무리가 생긴 건가? 천천히 숲에서 멀어진 다음에 저쪽으로 쭈욱 돌아서 가면 저 거미도…….”
“잠깐, 뭐가 나온다!”
렌즈를 낀 활잡이 카엘의 목소리가 베즐의 말을 끊었다.
순식간에 긴장감이 퍼졌고, 주시하는 와중에 숲에서 뭐가 튀어나왔다.
와르르, 와글와글하듯이 한꺼번에!
“랩티드!”
“엥? 도망치는……?”
“거미 뭉치가 달리잖어!”
“아냐! 우두머리다!”
“우두머리가 거미 패를 몸에 달고 있어!”
“몸부림치잖아!”
짧게, 베즐 팀은 각자가 본 광경을 입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베즐은 입을 다문 채로 주시하면서 손짓했다.
여차해서 저 내달리는 랩티드 무리가 이쪽으로 경로를 잡는 경우를 생각한 듯, 베즐 팀은 각자 무기를 빼어들면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데 이렇게 더욱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위로, 슬리피의 한껏 졸린 듯한 목소리가 무겁게 뚝 떨어진다.
“우두머리부터 잡으면 안 된다며? 쟤네, 우두머리부터 노리고 달려든 거 아냐? 아, 저대로면 우두머리는…….”
“이런 씨!”
베즐이 다 듣지도 않고 욕을 했다.
베즐 팀 멤버들도 뒤이어 한마디씩, ‘아?’라든가 ‘어?’라든가 혹은 ‘망했나?’ 같은 소리를 웅얼거렸다.
라펜과 마켈이 서로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확인하고는 급히 말한다.
“거미를…….”
“랩티드 도와?”
베즐부터, 그 팀 멤버들이 확 고개를 돌리면서 ‘미쳤냐?’라는 눈길을 뿜어냈다.
아무리 상황이 지랄맞게 흘러가도, 몬스터를 도와 마수를 물리칠 수는 없다는 것은 꽤 명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렇게 한편에서 구경할 때, 랩티드의 우두머리가 쓰러지고 있었다. 허연 거미줄에 둘둘 감긴 채로, 거미 이빨에 잔뜩 깨물린 자리에서 녹색의 타액(唾液)을 질질 흘리는 듯한 몰골로!
달아나는 듯했던 랩티드 무리가 태도를 급변한 것은 순간적이었다.
이제까지 거미가 달라붙을까 봐 몸서리치며 움직이던 랩티드 무리는 우두머리가 쓰러지는 순간에 바로 입을 벌린 채로 달려들고 있었다. 굵고 긴 꼬리로 허공을 치면서, 우악스럽게 뾰족한 이빨이 잔뜩 돋은 입을 활짝 열고 우두머리를 물어뜯기 위해서!
우두머리의 몸통에는 아직 거미가 십수 마리 달라붙어 있었지만, 달려드는 랩티드 무리는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몸서리치며 피하던 것은 전부 잊었다는 듯이 거미와 우두머리를 한꺼번에 깨물고 있었다.
콰직! 팍! 으적!
마수 거미 또한 얌전히 물려서 으깨지고 있지는 않았다.
커다랗게 열린 랩티드의 입이 수십 센티인 거미의 몸통을 단번에 물고 짓이겨 가는 순간에 발을 움직여 치고 찌르고…… 몸을 돌리며 랩티드의 살에 이빨을 박아 녹색의 타액을 거침없이 뿜어내며 싸우고 있었다.
체격이나 숫자에 있어서 완전히 랩티드가 압도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두머리를 제압한 거미 패는 위축되거나 숨고 피하는 대신에 그 몸을 내던지면서 격렬하게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이 중얼거린다.
“랩티드 우두머리도 자빠뜨렸는데…… 저 거미한테 물린 놈들, 다 죽는 거 아니에요?”
쓰러진 우두머리는 얼마 전에 들었던 그대로, 다른 랩티드에 비해서 큰 체격이었고 아래턱이 훨씬 더 우람해서 거대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몸으로도 거미의 독에 결국 제압당했으니, 보다 작은 녀석들이 과연 저 이빨에 물리고 무사할 것인가?
투란의 말은 굉장히 당연한 부분을 짚는 셈이었다.
하지만 베즐이 여전히 화나서 욕설하는 말투로 대답을 하니…….
“우두머리를 씹으면 독이 안 통할 거야. 저놈들…… 우두머리를 씹고 변이하면서 체질이 확 바뀌니까. 망할!”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입을 다물었다.
물론 뇌리 한구석으로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바로 묻는 말이 새어 나가는 중이었다.
‘진짜야? 랩티드가 그런 몬스터야?’
―항체(抗體) 전승(傳承)이란 거다. 포식(捕食)이란 형태이기는 하지만 랩티드 우두머리가 그 몸으로 겪고 키운…… 독극물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 피를 형성해서 무리에게 나눠주는 거지. 우두머리를 먹어치운 랩티드를 아예 그 전과 다른 세대로 분류하는 것도, 저렇게 몸만 싹 바뀌는 게 아니라 그 체질적인 특성까지 달라지는 덕분이지.
‘헐? 저게 뭐야!’
투란은 설명을 듣고, 랩티드 무리의 변화를 보다가 놀라서 입을 꽉 다물면서도 외쳤다. 이런 경악에 동감이라도 한 듯, 라펜이 소리치고 있기도 했다.
“어이! 저것들, 잡아먹은 거미 껍데기도 몸에 두르는 거 아냐? 우두머리 잡아먹었는데 왜 거미 껍데기가 치솟냐고!”
이에 대해 베즐이 더욱 짜증 난다는 듯이 큰소리로 대답한다.
“젠장, 저 큰턱 랩티드! 포식 변이하는 놈이었나 보다! 다른 동물을 씹고 삼키면 몸에 그 동물의 특성이 나타나는 그런 놈이야! 성질 더러운 놈인데 여기까지 왔다니!”
“야! 지금 몸이고 턱이고 전부 커지고 있잖어! 어쩔 거냐고! 이대로 구경하냐?”
라펜은 몬스터의 특성에 대한 설명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이제부터 어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지시를 험악하게 묻고 있었다. 그 곁에서 마켈은 등에 멘 방패를 꺼내 팔에 채우고, 접혀져 있던 검을 펼쳐드는 중이었다. 라펜 역시 말을 하면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즐이 그런 둘을 흘깃 돌아보고, 슬리피도 흘깃하면서 말한다.
“랩티드 다리가 얼마나 빠른지 알지? 몬스터 로드 중에서 저것들 다리 삼키고 전령 노릇 하는 놈들도 있잖아. 수백 킬로미터를 놀고 한눈팔면서도 반나절이면 뛰는 놈들이라고, 저거…… 살던 곳에서만 사는 놈들이라 이렇게 수백 킬로 밖으로 나다니질 않을 뿐인데…… 이런 거리에서 구경하는 먹잇감을 그냥 놔줄 놈들이 아니거든.”
“우리가 먹잇감이네?”
슬리피가 주섬주섬 소매 안에서 뭔가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우두머리에게 들러붙어 나왔던 거미 패는 모두 짓이겨졌고, 거미와 우두머리를 씹어먹은 랩티드 무리는 변이를 마치고 있었다.
몇십 센티가 더 커지고, 더 튼튼해진 턱의 높이가 대강 2미터에 다다르는…… 길고 굵은 꼬리와 두 발로 우뚝 선 포악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모습이었다. 앞발이 없이 하체가 굵고 크면서도 큰 머리가 균형을 잡아 상하가 어우러진 듯한 도마뱀 몬스터, 랩티드의 눈길은 예상한 대로 곧 일행을 향해 돌려지고 있었다.
침이 뚝뚝 떨어지고, 혀가 삐죽한 이빨 사이를 날름거린다.
“어, 무지 배고픈가 봐요.”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면서, 정화의 힘이 담긴 검인가 아니면 그냥 강철검을 골라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끼에에에!
랩티드 무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