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7)
“아, 이 시키! 작작 좀 하라고!”
버럭 터져 나온 성난 소리가 어쩐지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슬리피는 활카엘의 그런 화난 태도에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거, 여섯 개나 있는데…… 내가 가진 거 전부거든…… 여섯 개 다 줄까? 그렇게 해서 이 토시랑 그 토시랑 바꾸면 안 될까?”
활카엘은 다음은 말보다 주먹으로 답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듯, 그 생각을 그대로 몸짓으로 드러내려 했다. 하지만 칼카엘이 바로 활카엘의 몸을 끌어안고 들어 올려 슬리피에게 들러붙지 못하게 하니…….
“이거 놔! 저건 진짜 제대로 맞아야 한다고! 어서 되도 않는 소리를……!”
“야, 한두 번 보냐? 몇 년 전에도 자주 봤잖아.”
칼카엘이 다독인다기보다는 포기했다는 듯이 활카엘을 질질 끌면서 슬리피에게서 더 멀어지려 했다. 한데 슬리피가 그런 두 카엘을 향해 슬슬 다가서면서 중얼중얼하니…….
“맞아줄 테니까, 바꿔줄래? 응, 내가 그게 꼭 필요해서 그러는데…….”
“슬리피, 슬링스톤이 왜 여섯 개가 전부야? 너, 설마 여섯 개만 달랑 사 온 거냐?”
두 카엘과 슬리피 사이로 베즐이 끼어들면서 묻고 있었다.
나름 팀 리더답게 팀 멤버와 슬리피 사이를 중재하는 태도였지만, 지금 물음은 슬리피에게 분명히 따지고 드는 말이었다.
슬리피는 조금 어정쩡하니, 살짝 베즐의 눈길을 피하며 답한다.
“사 온 거 아냐. 빌렸어.”
이 말에는 베즐도 결국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슬리피의 멱살을 잡으면서 으르렁거린다.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너 대체 어떻게 사는 거냐고! 슬링샷에 쓸 슬링스톤을 누가 빌려줘! 한번 쓰면 터져서 끝나는 거잖아! 정신 좀 차려! 네가 그런다고……!”
“베즐! 그만해!”
갑자기 터져 나온 큰 목소리에 투란은 곁을 봤다.
마켈이 갑자기 정신 차린 것처럼 버럭 소리를 친 것이다.
동시에 두 카엘이 베즐의 어깨를 잡아당기고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슬리피를 팰 듯했던 활카엘도, 이를 말리던 칼카엘도 베즐을 잡으면서 말리는 모습이었다.
“베즐, 됐어.”
“슬리피, 너도 그만해.”
그 사이로 베즐의 낮아진 목소리가 희미한 몇 마디를 울린다.
“죽은 새끼들이 돌아오냐고.”
너무 희미해진 몇 마디였지만 투란은 분명히 들었다.
아무래도 베즐 팀도, 마켈이나 라펜도 슬리피에 대해 뭔가 좀 아는 듯해서 나온 말 같은데…… 투란이 슬쩍 라펜에게 갸웃하는 표정을 보이니 라펜이 슬그머니 고개를 저으면서 지금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나중에.’라고 입술을 달싹여 보였다.
곧 슬리피를 향한 기묘한 짜증, 울분과 울화를 터뜨리는 모습을 자제한 듯한 베즐이 멱살을 놓고 돌아서면서 테란 쪽을 향해 외친다.
“다 끝났냐?”
“거의. 응, 잠깐만…… 이제 다 챙겨 넣었어. 어이, 다들 끝났지?”
몬스터 랩티드 무리의 잔해를 챙기던 베즐 팀 멤버들도 이 물음에 손짓으로 대꾸하며 갈무리 작업을 끝난 것을 알렸다.
베즐이 곧장 큰 걸음을 디뎌가면서 일행 모두에게 손짓했다.
“가자. 일단 가까운 마을 한곳까지는 가보자고.”
곧 이동이 시작되었다.
반쯤 뛰는 듯한 빠른 걸음이었고, 베즐 팀을 쫓듯이 따라가는 탓에 슬리피도 더 뭐라 할 틈이 없어 보였다. 마켈이나 라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투란은 가만히 라펜의 뒤편에 붙듯이 따라갔다.
베즐은 빠른 이동 중에도 주변에 조금 이상한 흔적이 보이거나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멈췄고, 활카엘은 그때마다 렌즈를 끼고 사방을 둘러봤다.
그렇게 움직이다보니 마수 거미와 싸운 랩티드 무리가 한꺼번에 우두머리처럼 변했고 일행이 그와 맞닥뜨려 싸웠다는…… 실제로 뭔가 한 것은 달랑 둘뿐이었지만, 그 몬스터 무리를 격파했다는 것이 슬슬 아련해지면서 전혀 상관없는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더 지나면 아예 뭔 일인가 까먹을 듯한 기분까지 되었을 때, 베즐이 또 다시 뭔가 찾은 것처럼 멈춰 살필 때를 틈타 투란이 슬그머니 라펜에게 묻는다.
“라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라펜은 바로 슬리피를 흘깃하면서, 아직 다투는 모습을 봤을 때의 여운이 짙게 남은 표정으로 나직하니 대꾸한다.
“나중에, 투란. 나중에…….”
“슬링스톤을 빌려도 줘요?”
투란이 나중이고 뭐고 모른다는 듯이 던진 물음이었다.
라펜이 슬리피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는 듯이 한걸음 딛다가 몸을 휘청하는 시늉을 하며 투란을 바라봤다. 설마 이런 물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듯!
“에, 그게…… 시, 신용 대여던가?”
말을 더듬으며 라펜도 뭔가 애매하고 아리송하다는 듯이 갸웃거리는데, 가까이 있다가 들었다는 듯이 마켈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빚이야, 빚!”
“아, 빚이군요.”
투란은 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펜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몇 마디 보탠다.
“그러니까, 신용할 수 없는 놈한테는 빌려주는 것 없잖아! 길드에서는 몰라라 하고 공방 애들이 무슨 대여라고 했다니까!”
“좋은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모르는 게 나아.”
마켈은 더 확고하게 투란에게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더 묻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라펜도 투덜대는 표정만 짓고 입은 다물었다.
그사이에 베즐이 다시 움직였고, 일행은 그 뒤를 쫓았다.
그 와중에 투란은 슬리피를 흘깃했고, 갸웃했다.
어째서 슬리피는 저리 졸음이 가득한 모습일까?
이제는 슬리피가 잠이 부족해서 저런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으니 더 궁금했다.
‘슬리피, 몸 상태를 조사할 수 있을까? 그걸로…… 그 반향(反響) 조사인가 하는 거면 전혀 모르게 알아낼 수 있잖을까?’
―흠? 룬디아크 공방의 신기한 물건보다 사람이 더 궁금하다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소리 없는 물음에 방향이 틀리다는 듯이 대꾸했다.
투란은 간격을 유지하며 빠르게 걸으면서 입술 끝을 살짝 삐죽이며 드라고니아를 향해 다시 소리 없이 말한다.
‘룬디아크 공방 물건, 조사한다고 알겠냐? 마법으로 파악할 수 있어?’
―없지.
드라고니아는 순순히 항복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미 역병의 수해를 지나오면서 달루스 팀의 물품을 여러 차례 마법으로 더듬어 본 다음에 나온 결과였으니, 이제 와서 딴소리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너의 감각을, 아라크녹스 왕의 감각을 기반으로 한 프로브라면 또 모르지만 말이야.
‘그건 됐고! 괜히 이상한 낌새라고 들킬 일은 하지 말자니까. 그냥 슬리피가 어떤 상태인가만 살펴달라고!’
투란은 베즐과 활카엘이 보였던 솜씨를 되새기면서, 그 팀 멤버들이 보였던 숙련된 자세와 태도를 떠올리면서 단호하게 드라고니아의 심심한 호기심에 호응하는 것을 거부했다.
―잔뜩 궁금하면서…….
투란의 호기심을 지적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슬리피의 조사를 마다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거 재밌는 인간이네?
새로운 호기심이 생긴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뭐? 재밌다니?’
조금 뜻밖의 말이라 투란의 의아해 하면서, 베즐 팀 사이에 섞인 슬리피를 흘깃했다. 라펜과 마켈, 투란이 조금 뒤편이라면 슬리피는 베즐 팀 멤버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왜 그런가, 투란은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슬리피의 특기가 슬링샷이니, 뭐가 접근할 때 쏘아낼 틈을 잡아주기 위한 자리에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활잡이 카엘과 나란한 탓에 활잡이 카엘이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동 중에는 슬리피도 바꿔달란 소리 따위는 하지 않아 참을 만한 모양이었다.
―체내에 상당한 약물을 축적하고 있다. 복용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주사(注射)로 투여(投與)한 거야.
‘응? 주사? 약물……! 약쟁이 헌터라고?’
투란은 당황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당황스러운 기분은 저절로 투란의 눈길이 슬리피를 한 번 더 훑게 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부주의함을 반성하면서 투란은 조금 마음을 가다듬으며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그거 무슨 효과인지 알 수 있어? 몸을 강화시키는 건지, 통증을 아예 마비시켜놓는 건지…….’
―몸을 강하게 만드는 쪽이랑은 전혀 상관없다. 미리 진통 효과를 얻으려고 복용한 것도 아니고, 이완(弛緩)을 목적으로 한 약물이다. 간단히 말해서, 늘어져 자게 하는 약이다. 알드바인을 떠난 이후로는 투여를 멈춘 모양인데, 몸에서 그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 걸보면 진짜 오래 투여한 듯하군.
‘이완? 자는 약이라고? 그럼, 약쟁이 헌터는 아니란 건데.’
투란은 기분이 복잡해졌다.
드라고니아가 말한 약물의 효과는 연초를 통해 간단히 얻을 수 있었다.
나이 들고 힘들다면서 연초를 늘상 태워대던 늙은이, 샤오 할배가 진짜 그 효과를 보려 한 건지는 애매하지만 샤오 마을 한편에는 연초를 키우는 밭이 있었다. 덕분에 연초의 다양한 효과, 위험한 부작용에 대해서 샤오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 연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헌터들이 수군거리는 약물을 사용한 헌터, 약쟁이 헌터에 대해서도 들었던 것인데…….
―그게 뭐냐? 약쟁이 헌터라니?
드라고니아에게는 낯선 말인 모양이었다.
‘응? 강화제라고…… 정체가 애매한 약물을 비약이라고 복용해서 몸을 강화시켜 몬스터랑 싸우는 헌터 말이야. 몬스터랑 싸우기도 전에 죽는 경우가 많을 정도라기는 한데, 자기 죽든 살든 상관없이 쓰는 헌터야. 어떻게 죽지 않고 사냥을 하기는 하지만, 이미 미쳐 있다던걸. 어쨌든 슬리피는 이상하지만 완전히 미친 거는 아닌 거잖아?’
―왠지 실패한 용전사 같은 느낌이군. 아무튼 슬리피의 몸에 축적된 약물은 그런 계통이 아니야. 그저 정신을 이완시키고 느슨하게 하면서 몸은 거의 잠든 상태로 몰아넣는 그런 약물일 뿐이야. 주사로 투여했으니 훨씬 빠르고 독하게 효과를 봤겠지만.
‘아, 그건 좀 미친 것 같네. 몸에 구멍 내는 거라…… 사냥 중에는 옷에도 구멍 내는 거라 이래저래 다들 싫어하는 건데 말이야.’
투란은 헌터 중에서 조금 과격하고 거친 몇 명이 벨트에 차고 있던 손가락만 한 원통형 주사기를 떠올리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몬스터와 난투 중에 입으로 뭘 삼킬 틈새가 없을 경우에 주사기를 몸에 대고 찔러 바늘구멍을 뚫어 직접 약물을 핏줄 속에, 몸속에 박아 넣는 것이니 안전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주사를 사용한 투여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가야 하는 것이니…….
알드바인의 안전한 성벽 안에서 몸에 주사를 꽂았다는 것은 슬리피가 정말 이상하다는, 반쯤은 미쳐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미쳤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헌터로서의 기량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몸이 좋아서 버티는 건지, 정신적으로 강인해서 버티는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야.
드라고니아는 베즐 팀 사이에 섞여, 빠른 이동에 전혀 쳐지는 낌새 없이 움직이는 슬리피를 다시 가늠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슬리피에 대해 투란이 더 뭔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당장 터진 베즐의 외침에 멀리 저편의 공중부터 봐야 했으니까.
“정지! 저거 뭐야, 네발 달린 새가 날고 있는 거냐?”
투란은 눈을 가늘게 떴고, 누군가 베즐에게 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핀이야!”
“마을 방책 위를 날고 있어!”
“한두 마리가 아니야, 제대로 떼를 지어 습격하는 중이야!”
연이은 말은 곧 일행을 긴장시켰다.
이동 중의 지루함, 심심함이 순식간에 사라진 기분 속에서 투란은 그리핀이 떼로 나는 광경 아래에 2, 3미터 높이의 목책이 세워진 것을 확인했다. 맨땅에 그냥 박아 세운 목책이 아니었고, 원래 늘어선 나무 틈새를 채워 잇고 목책의 일부로 삼아버린 탓에 얼핏 보면 숲의 한 귀퉁이처럼 보였다.
‘갈기 산맥에 정말 그리핀이 있네?’
투란은 문득 기억해냈다.
알드바인의 북쪽 성벽 너머, 마수가 설치는 갈기 산맥에서 마수처럼 적응한 몬스터가 있다고 했다. 그리핀도 그중 한 가지…… 하지만 알드바인 근처에서 눈에 띄면 가차 없이 처리되기 일쑤라서 보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로 투란도 알드바인의 북쪽 성벽을 들락거리면서 그리핀 따위는 본 적 없었다.
“저거, 남쪽에서 올라온 떼 같은데?”
돌연 슬리피가 졸린 소리를 뱉어냈다.
크고 분명하게,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서 졸리지만 생각은 선명하다는 듯한 말이었다.
이에 활카엘이 바로 보태니…….
“맞아. 검은 날개, 독부리 그리핀이다. 랩티드처럼 남쪽에서 여기까지 떼로 몰려온 모양이야.”
“마을, 어쩌지?”
라펜이 베즐 팀을 향해 바로 묻는 소리를 질렀다.
베즐은 날고 있는 검은 그리핀 떼를 보며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