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9)
“사람 잡아먹는 놈인데, 사람을 미끼로 쓰는 게 당연하잖아?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미끼 역을 강요했냐고? 웃기지 마, 본인이 미끼 노릇하겠다고 했거든! 그놈 잡아 죽이기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놨다고!”
그 처절했던 목소리가 이 일행의 말에 살살 묻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산만해진 듯한 투란의 기분을 느낀 듯이 중얼거렸다.
‘응? 아, 나중에…… 집중하자!’
투란은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일행의 움직임에 어우러지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지금은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은 물론 자기 목숨까지 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망가진 헌터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아니므로!
푸드득!
날개치는 소리가 옆쪽에서, 조금 뒤로 처지는 것처럼 울렸다.
투란이 재빨리 화살 끝을 그쪽으로 돌렸고, 라펜이 투척용 단도 두 자리를 양손에 하나씩 쥐며 몸을 돌렸다. 투란은 시위를 당기지 않고 긴장만 하는 사이, 라펜은 팔을 들어올리면서 던질 자세를 갖췄다.
그쪽에는 독부리 그리핀, 시커먼 색으로 부리부터 발톱, 살랑대는 꼬리와 접은 날개까지 완전히 물든 녀석이 어슬렁거리면서 땅을 디딘 채로 일행을 훑어보고 있었다. 날면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호기심 가득한 그리핀처럼 보였다.
“신경 쓰지 마! 처지면 안 돼!”
마켈이 투란에게펜에게 살짝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 소리에 베즐 팀이 조금 걸음을 늦추는 모습이 투란에게 보였다.
베즐 팀은 땅에 내려온 그리핀, 대강 7, 8미터 거리를 둔 녀석 따위는 당연히 무시한다는 듯이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가 마켈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날개소리가 울렸고, 몇 마리가 일행 주변에 제멋대로 내려앉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지붕 위에, 어떤 녀석은 가까운 나무 위에…… 어떤 녀석은 저쪽 앞의 길목을 가로막듯이!
베즐이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대가리 주제에 분담도 할 줄 아나본데…… 다들 긴장해! 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투란에게는 명백하게 전투 개시를 알리는 말이었다.
머뭇거리지 않고 투란은 시위를 당겨 그리핀을 일단 겨눴다.
곧바로 그리핀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몇 미터 저편에서 어슬렁대던 걸음을 딱 멈춘 채로 투란과 눈길을 마주쳤다. 그 날개가 움찔거리는 모습, 발톱으로 땅을 꽈악 움켜쥐는 미묘한 움직임…….
“그리핀 중에서 오래 살아남은 경우에 가끔 겨냥을 읽는 녀석이 있어. 무리 중에 한 놈이 그렇게 되면 다른 놈들도 금방 따라 배우지. 그러니까 한 놈이 내 겨냥을 읽는 꼴을 봤다면 전부 읽는다고 생각하고 대처해야 해. 괜히 날개 달린 놈이니까 대충 쏘면 맞겠지 하고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설마.’
불쑥 뇌리에 떠오른 이야기에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랑 조금 아까 베즐이 휘두른 칼날을 피해낸 그리핀의 동작, 지금 투란과 눈길을 딱 마주친 채로 은근히 경계하는 저 모습!
투란은 한 걸음 옆으로 디디면서, 시위를 당겨 겨냥하는 손짓과 반대방향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우악!’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질러봤다.
투란과 눈길이 마주쳤던 그리핀은 곧바로 여기에 반응했으니, 투란이 보는 쪽에 뭔가 있는가 싶다는 듯이 반대 방향으로 기우뚱 옆걸음질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럴 것을 적당히 예측한 채로 투란이 쏘아낸 화살이 날개를 맞힐 듯하자 얼른 날개를 들어 피하기까지 했다!
‘젠장, 통하는 줄 알았는데…….’
투란은 자신이 곁눈질하며 쏜 화살이 날개 아래를 스쳐가는 광경에 살짝 실망했다.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렸으니 대충 맞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리핀은 투란의 놀란 표정과 눈길에 걸렸으면서도 날아드는 화살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리핀의 몸통을 향해, 투란의 화살보다 조금 늦게 쇠뇌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동시에 투란은 라펜이 투덜대는 소리도 들었다.
“깜짝 놀랐잖아! 왜 소릴……!”
투란은 라펜 쪽을 보며, 그 어깨 너머로 칼잡이 카엘이 한 손잡이 쇠뇌를 쏘아낸 모습을 봤다. 투란의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바로 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리핀은 투란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 날개를 든 채로 네 발을 접어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바로 위로 튀어올라 쇠뇌살도 피해냈고…… 그 몸통에 빛의 화살 한발이 꽂혀 들어갔다.
끼이에!
라펜의 투덜거림 위로 그리핀의 비명이 섞였다.
그리핀이 몸통에서 빛의 꼬챙이가 한 무더기의 가시밭을 만들겠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그 몸 안에 깊이 박힌 씨앗이 지금 막 움텄다는 듯한 광경이었고, 그리핀은 날아오른 채로 뒤로 기우뚱하다가 떨어져 내렸다.
빛의 꼬챙이가 사그라들었고, 그 구멍으로 피가 줄줄 흘렀다.
칼잡이 카엘이 그 광경을 보다 외친다.
“이놈들, 겨냥을 읽는다! 퍼브 할배가 떠들던 최악의 그리핀이야!”
“상급 지정이 괜히 된 게 아니구만! 다들, 주의 좀 끌어! 그냥 쏘면 보고 피한다고! 내 화살이 대단하기는 해도 번개처럼 빠르지 않은 거 알잖아! 베즐, 맞힐 생각 말고 맞히는 척하고 그냥 막 쏴! 어차피 그 슬링샷으로는 얘네 성질만 건드리잖아!”
활잡이 카엘도 성난 듯, 짜증 난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베즐 팀이, 그 속에 섞인 슬리피가 조금씩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라펜은 어이없어 하면서 투란을 향해 입술만 움직여 소리 없이 묻는다.
‘알았냐?’
‘조금 이상해서……!’
투란도 입술만 움직여 대답하고 얼른 화살 하나를 더 시위에 걸었다.
그렇게 몸으로는 일행과 호응하면서도 투란은 조금 전에 빛의 화살에 맞아 죽은 그리핀을 흘깃거리며 마음 한구석을 향해, 드리고니아에게 묻고 있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솔리드 포톤이 뭐야? 화살로 뭔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저번에 랩티드 때랑 또 다르잖아!’
쓴웃음을 짓는 듯한 기척과 함께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바로 나온다.
―아크메이지의 꿈과 망상 속에서 시작된 소재다. 어떤 식으로 가공되든 그건 순전히 만드는 자의 상상과 솜씨에 달려 있다고 해야겠지.
‘뭔 소리야? 꿈과 망상이라니!’
투란은 시위를 살짝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마켈 쪽으로 돌아섰다.
한데 마켈이 앞에 다가온 그리핀 한 마리랑 뭔가 춤이라도 추는 듯한 모습이다?
방패로 부리를 막으려 하면, 방패가 가리지 않은 부분을 부리로 찍으려 하고 그걸 방패로 치려하면 그리핀의 머리가 뒤로 쏙 빠지고…… 마켈은 그 움직임에 재빠르게 방패를 다시 거두고…… 그러다 보니 그리핀과 마켈은 서로 닿지 않으면서 머리와 방패를 허우적대는 묘한 짓을 하면서 마주 보는 상황이었다.
“야, 구경하지 말고 뭐라도 던지든가 좀 쏘라고!”
투란이 낮게 ‘헐?’ 하고 내뱉은 소리를 들은 듯, 마켈이 으르렁거렸다.
해서 투란은 시위를 한껏 당기고, 가까이 붙었으니 설마 이것까지 피하겠어 하는 표정으로 그리핀의 몸통 중에 가장 넓게 드러난 부분을 향해 냅다 쏴버렸다.
씨잉! 파다닥!
화살이 그리핀의 가슴 언저리를 스쳐 나무 위로 날아가버렸다.
그리핀이 순간적인 날갯짓으로 몸을 뒤로 확 젖히며 기울여 피한 것이다.
“헐?”
이번에는 아까처럼 어이없다기보다는 감탄하는 소리를 내는 투란이었다.
그러나 그리핀의 몸통, 펼쳐진 날개에는 두 자루 단도와 가느다란 꼬챙이가 꽂히고 있었다. 마켈이 꼬챙이를, 라펜이 단도를 투란의 화살이 쏘아진 다음에 날갯짓을 보며 내던진 것이다.
끼아아!
상처입은 그리핀이 성난 소리를 냈다.
퍼억!
슬링샷이 꽂혔고, 그리핀의 머리가 으깨지며 엎어졌다.
튀는 핏방울을 피해서 투란이 잰 걸음으로 움직였고, 마켈은 방패를 들어 막으면서 움직였다. 라펜은 이미 냅다 뛰어서 잠깐 사이에 느슨하게 벌어진 베즐 팀과의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투란은 흘깃 슬링샷이 쏘아진 쪽을 봤고, 슬리피가 다시 슬링샷을 당기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채로 틈을 찾는 모습을 봤다.
슬리피는 처음 슬링샷이 그리핀의 가슴에 상처만 남긴 것을 생각해서, 그리핀의 머리를 노린 듯했다. 그리핀의 시야에서 벗어난 자신의 위치까지 활용한 모습인데, 다가오지 않고 거리를 둔 그리핀에게는 맞지 않을 듯하니까 아예 쏠 듯 말 듯한 자세로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런 슬리피의 동작에 반응한 녀석들을 향해 베즐 팀에서 이것저것 쏘아 날리고…….
활잡이 카엘은 빛의 화살을 자주 쏘아내지 않았다.
쏠 때는 반드시 그리핀을 맞혔고, 빛의 화살에 맞은 그리핀은 몸 안에서 치솟은 빛의 꼬챙이에 꿰여 죽었다.
그렇게 몇 마리가 떨어져도, 그리핀 떼는 잔뜩 마을 상공(上空)을 맴돌아 줄어든 낌새가 없었다.
일행은 그렇게 다가오는 그리핀을 잡거나 쫓아내는 모습으로 움직였고,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심드렁하니 하는 이야기를 마음 한편으로 들어야 했다.
―솔리드 포톤의 기초이론을 만들었어도 아크메이지 카엘이 솔리드 포톤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저 환상에 불과한 연금술 이론 정도로 취급되었지. 연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법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손댈 방법이 없는 이론이라, 잠깐 둘러보는 것 말고는 다들 관심을 갖질 않았다. 아무리 카엘 디아크가 굉장한 아크메이지라 해도, 꿈은 꿈일 뿐인가 했어. 그런데 룬디아크가 나타났다. 뭔가 아크메이지 카엘 디아크의 후손이 아닌가 싶은 이름이지만, 그 이름은 그가 솔리드 포톤을 제조해낸 다음에 붙었어. 아크메이지 카엘 디아크의 꿈과 망상을 실현해냈다고, 룬 각인만으로 그걸 해냈다고 해서 룬의 마도사, 디아크의 꿈을 이룬 자라고 해서 룬디아크가 된 거야.
‘무슨 꿈을 꿨길래 저런 걸?’
―별들이 빛의 무구(武具)를 걸치고, 전쟁을 하는 광경이었다더군. 별마다 이상한 세계를 만들고, 자신의 사도에게 빛의 무구를 부여해서 천공(天空)의 패권(覇權)을 놓고 싸우는 꿈이라는데…… 누가 들어도 이 세상 이야기는 아니었어. 우리 장로들은 그게 다른 세계, 이곳과 전혀 다른 세상의 모습을 아크메이지가 꿈이라는 핑계로 누설한 것이 아닌가 여기더군. 꿈이라기에는 굉장히 색다르면서도 정교한 전쟁 이야기였거든. 어쨌든, 그 꿈속에서 봤던 빛의 무구 중에서 검과 방패에 관한 부분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려다가 나온 것이 솔리드 포톤의 기초이론이었다. 꿈 이야기 하던 중이라 아크메이지가 그저 기초적인 부분만 누설했다고도 하고…… 어쨌든, 룬디아크가 그 이론을 바탕으로 인힐트 블레이드 형태의 광하검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응?
주변 상황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주절거리던 드라고니아가 말을 멈췄다.
투란도 그 까닭을 느끼고 있었다.
한쪽에서, 거의 도달한 듯한 마을 중심에서 아주 이상한 힘이 뭉클거리며 뭉쳐들고 있었다. 오러를 자극하고, 마력을 건드리면서…….
“팔라딘?”
뭔가 보인 듯, 테란이 앞에서 외치고 있었다.
곧 일행의 앞에 그 광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급하게 쌓아둔 듯한 문짝과 울타리…… 커다랗고 넓은 지붕 아래를 지키려는 듯한 그 어설픈 방책 한쪽이 훤히 뚫린 채였고 그 앞을 막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자극적인 힘을 모으고 있었다. 온몸에 발톱과 부리를 박은 그리핀 몇 마리를 두 팔로 끌어안은 모습으로, 심지어 발로 밟은 그리핀도 있었다.
“홀리 가드!”
어딘가를 향해 호소하는 듯한 외침이 터졌다.
하얀 광채가 모여들었고, 그리핀과 사람을 한꺼번에 덮어 씌웠다.
소리도 없이 광채가 흩어졌고 그리핀 몇 마리가 나뒹굴었다.
몸이 터지거나 으깨진 흔적 따위는 없이, 그리핀 몇 마리는 그저 작은 경련과 함께 축 늘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외친 이의 몸에서 검은 색채의 파편이 떨쳐졌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는 핏방울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가 제대로 보이는데, 무릎과 팔꿈치가 사슬로 짜였고 어깨에는 두툼한 방패 형태가 들러붙은…… 완전무장을 절반쯤 하다가 만 듯한 묘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부리와 발톱에 갑옷 부위만 긁힌 것이 아니고 어깨와 가슴, 배 부분이 노출된 채로 찢어진 채였다.
다만 거기에 여전히 맴도는 하얀 빛이 상처를 들쑤시면서 봉합이라도 하는 듯하기는 한데…….
“죽여!”
“빨리!”
몇 사람이 지붕 아래에서 뛰쳐나와 곡괭이, 몽둥이, 낫과 망치로 경련을 하는 그리핀을 내리찍고 있었다. 머리를 치고 목을 베고, 가능한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었다. 늘어진 그리핀 몇 마리는 그 서투른 공격을 전혀 피하지 못했고, 모두 끝장났다.
하지만 그 끝장을 낸 쪽도 기우뚱거리면서 힘겹게 다시 지붕 아래로 허우적대며 돌아가는 모습이 오래가지 않아 끝장날 것처럼 보이잖는가.
베즐이 그 광경을 보며 일행을 향해 말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거냐?”
테란이 가장 먼저 답한다.
“저 팔라딘, 눈 돌아갔는데?”
활잡이 카엘도 동의하는 듯…….
“말 걸면 싸우자고 할지도 몰라! 베즐, 어쩔 거야?”
리더로서 판단해야 하는 베즐이 짜증 난 소리를 낸다.
“미친 팔라딘이랑 그리핀 떼라니…… 둘 다 말이 안 통하잖아! 활카, 대체 그리핀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그리하여 일행은 일단 멈췄고, 그리핀 떼는 다시 거리를 두는 것처럼 마을 중심의 상공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