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3)
“잠깐, 베즐!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고!”
늙은 융카보다 먼저 슬리피가 베즐의 앞에 몸을 내밀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런 슬리피의 태도는 베즐 일행이 마을 사람들의 상태 따위는 정말 신경도 쓰지 않고, 늙은 융카와 그 일당을 곱든 험악하든 진짜로 죽일 작정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늙은 융카가 흠칫하면서 인질의 목에 칼날을 더 바싹 붙이며 살갗에서 피가 나게 하는데, 베즐의 퉁명스러운 대꾸가 나온다.
“난 모르는 사람들이지. 저 일가는 수배서에 죽든 살든 상관없는 놈들이라고 했거든. 가족이 대물림으로 더러운 도적질을 하는, 아주 특이한 경우라고 말이야. 여기서 살려 둬 봐야 다른 곳에서 또 저럴 거라고. 그러니까…….”
“잠깐만! 이봐, 이쪽 장난 아니거든! 허튼짓 그만하고…….”
슬리피가 조금 더 단호하고 베즐 앞을 막아서면서, 늙은 융카와 그 가족이란 이들을 향해 말하려 했다. 베즐을 설득하기란 아예 포기한 채로 마을 사람을 인질로 잡는 융카 쪽을 설득하려는 모습이 더 분명해진 모습이었다.
그사이에 늙은 융카를 중심으로, 그 일가로 보이는 이들이 늘어섰다.
슬리피와 베즐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일행이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에 마을 사람들을 당겨 앞에 놓으면서 아예 사람으로 방벽을 쌓고 싸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베즐이 슬리피 너머로 그들을 보면서 입가를 뒤틀었고, 슬리피는 낯을 찌푸리면서 늙은 융카를 향해 날선 목소리를 흘린다.
“정말 곱게 죽기 싫은 거야? 그만하라고 했잖아.”
나직하지만, 섬뜩한 말이었다.
늙은 융카가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날선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 웃기고 있군! 이러나저러나 죽이겠다면서 얌전히 죽으라고? 별 미친 소리를…….”
투란은 이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드라고니아도 겨우 눈치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음, 그러고 보니…… 살고 싶으면 저항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뭔 경우지?
‘나도 깜박했어. 상급이나…… 상급에 가까운 베테랑 중급 헌터가 몬스터랑 싸우고 난 다음에 시비 거는 걸면 엄청나게 위험하거든.’
―그건 또 뭔 소리냐?
‘몬스터랑 막 싸움을 끝낸 몬스터 헌터에게 헛소리하다가는 몬스터보다 더 무서운 꼴을 보게 된단 말이지. 헌터 길드에서도 그런 경우에는 무조건 몬스터 헌터 편을 든다니까…… 아, 테란!’
베즐과 슬리피의 뒤에서, 앞에서 떠드는 소리를 얌전히 듣고만 있는 듯했던 테란이 어깨에 쇠망치 자루를 걸치는 자세를 취했고 그 주변을 베즐 팀 멤버들이 나란히 서고 있었다. 활잡이와 칼잡이, 두 카엘도 거기 섞인 채로 팀 리더인 베즐이 슬리피에게 막혀 있든 말든 뭔가 하려는 분위기였다. 라펜과 마켈은 그런 베즐 팀을 흘깃하면서 투란의 앞쪽에 나름대로 자세를 갖추는 중이었다.
그리고 곧 테란은 투란이 눈치챌 움직임을 보였으니…….
손에 힘이 들어가고, 팔뚝이 불끈하는 순간에 테란은 팔을 펼치며 어깨에 걸쳤던 쇠망치 자루를 앞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커다란 쇳덩이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이 순전히 자루만 휘두르는 듯한 광경이다.
뻐엉, 와지근.
그러나 늙은 융카가 붙들고 있던 마을 사람과 함께 쇳덩이에 깔려 바닥에 처박혔고, 바닥에 널려 있던 그릇 따위가 으깨졌다.
“야! 내가 아는……!”
슬리피가 화난 소리를 내려는데, 베즐이 슬리피를 옆으로 밀어내며 말하고 있었다.
“죽지도 않았고, 아직 다치지도 않았다.”
그 순간에 융카 일가라는 이들이 당황하면서도 칼을 든 채로 싸움을 시작하려 하는데, 빛의 화살이 골고루 그 팔다리에 꽂혀 들어 나뒹구는 꼴이 되고 말았다. 활잡이 카엘이 팀 멤버 속에 팔을 감춘 채로 한꺼번에 쏘아 낸 솔리드 포톤의 화살이었다. 팔을 접어 가슴에 얹듯이 올리고 몸은 살짝 낮춘 자세로 검은 날개가 파닥이자, 그리핀을 상대할 때의 반 토막만 한 화살이 흐릿한 광채로 날아가는 광경이었다.
‘와, 대단한데! 저렇게도 쏘는구나!’
―음, 저 망치…… 맞고도 일어서네?
‘어?’
드라고니아가 테란의 망치에 대해 새삼 뭔가 알아차린 듯하다가 늙은 융카가 옆으로 구르면서 일어나는 광경을 짚었고 투란은 놀랐다.
테란도 놀란 모양이었다.
“어라? 저 늙은이, 방호(防護) 부적이라도 끼고 있나? 베즐!”
베즐이 늙은 융카를 향해 냉큼 다가갔다.
일어서기는 했지만 늙은 융카는 아직 비틀거리는 중이었다.
때문에 베즐은 아주 간단하게 잡겠다는 듯이 늙은이의 뒷덜미를 잡겠다고 손을 내미는데, 늙은 융카가 맹수처럼 움직였다.
퍽, 퍽, 퍽!
손바닥을 내미는 듯한 늙은이의 팔뚝 아래에서 투란에게 왠지 낯익은 칼날, 팜 블레이드가 돌출된 채였다. 하클의 팜 블레이드랑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암살(暗殺) 도구로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 이게 뭐야!”
하지만 늙은 목소리는 연거푸 베즐의 가슴, 옆구리를 두들긴 다음에야 나왔다.
열심히 찌르다가 베즐의 가슴, 옆구리에서는 피 한 방울 샐 낌새가 없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외침이었다.
투란은 그 원인이 된 것을 바로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저것도 솔리드 포톤?’
―블레이드와 실드, 두 가지 기능이 늘 한 쌍으로 부여된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기는 하군. 그 소문대로 솔리드 포톤의 베일을 기본적으로 몸에 걸쳐 둔 모양이야. 저 정도면 랩티드의 이빨이나 그리폰의 발톱도 웬만큼 막아 냈을 것 같은데? 애초에 저 인간이 다 피하기는 했지만.
‘우와…… 저 정도면 하클 영감이 만든 거랑도 비교할 수가 없잖아!’
이렇게 투란이 감탄해서 바라보는 사이, 라펜과 마켈도 나지막하게 놀란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썩을…….”
“소문보다 더하구먼.”
부러움이 가득해서, 어딘가 질투라도 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사이에 베즐은 늙은 융카의 뒷덜미를 잡아당겼고, 칼잡이 카엘에게서 뜯어내듯 했던 무딘 칼날로 그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찍고 있었다.
퍽! 퍼퍽!
허름했던 헝겊 옷 속에 감춰진 견갑(肩甲)이 짓이겨졌고, 곧 갈라지면서 핏방울이 억세게 튀어 올랐다. 베고 자르는 대신에 거의 두들겨 패는 듯한 칼질이었지만 늙은 융카가 열심히 움직이던 한쪽 팔은 완전히 늘어지게 했다. 그대로 몇 번 더 내리찍으면 무딘 칼로도 팔을 어깨에서 끊어 낼 수 있어 보이는데…….
“베즐! 애들 본다! 작작 좀 하라고!”
슬리피가 마을 사람들 쪽으로 내디디면서 성난 소리를 냈다.
베즐이 잠깐 손을 멈췄고 그쪽을 봤다.
마을 사람들, 이십여 명 정도가 멍하니 뭉쳐 있는데 거기에는 열 살 어림의 아이들도 서넛 섞여 있었다.
베즐은 마을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아이들과 눈길을 마주치면서 불쑥 묻는다.
“보기 무섭냐? 안 보이는 데서 할까?”
이 소리에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새어 나가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웃을 때가 아닌데, 베즐의 물음은 어딘가 뒤틀린 웃음을 짓게 만들잖나!
―멀쩡한 줄 알았더니, 저것도 미친놈이었나?
드라고니아도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베즐과 눈길이 마주친 아이 중 한 명이 바로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아뇨! 볼래요! 전부 볼래요! 우리 아빠랑 우리 엄마랑…… 해친 나쁜 사람들이에요! 죽는 거 볼래요!”
슬리피가 움찔해서 아이 쪽을 봤고, 베즐은 고개를 끄덕하더니 다시 칼질을 한다!
퍼퍽, 퍼억! 투둑.
늙은이의 팔이 결국 끊어져 떨궈졌다.
그동안 정신을 잃지 않은 듯, 맨정신을 놀 틈도 없었던 듯했던 늙은 융카가 신음처럼 말한다.
“이 악독하고 더러운…….”
“곱게 죽여 달라고 하지 않은 거는 너네야. 수배서에 특별 첨부된 말이 뭔지 몰라? 가능한 한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죽여 달래.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여기 와서 알았거든. 그러니, 사양 말라고.”
퍼억, 퍽퍽!
베즐은 손을 바꿔서 늙은 융카의 다른 어깨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와, 오러도 절제하고 있었잖아! 순전히 아프게 할 작정이었어!’
―음? 과연! 그래서 이 빠진 걸로 달라느니 했군!
드라고니아도 새삼 베즐이 지금 휘두르는 무딘 칼이 칼잡이 카엘에게서 받은 이 빠진 칼이란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오러를 담으면, 비록 오러 사인이 아닌 오러 마크에 의한 오러라도 무딘 칼을 꽤 날카롭게 할 수 있었다. 한데 베즐은 그런 오러를 절제하고 이 빠진 무딘 칼로 가능한 여러 번 후려쳐서 고통스럽게 팔을 절단하는 중이다!
그러다가 꽤 힘들다는 듯, 베즐이 쓰윽 이마의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쳐 내면서 마을 사람들 쪽을 보며 묻는다.
“혹시 여기 일당 중에서 그나마 곱게 죽어도 괜찮은 놈 있었나? 있으면…….”
“없어! 그런 놈 없어! 있다고 나불거리는 떠벌이는 내 손으로 반 죽여 놓을 거야!”
대답은 팔뚝이 나뒹구는 땅바닥 가까이에서 나왔다.
늙은 융카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이였다.
테란이 그 옆에 앉아 쇠망치에 의해 걸린 마비를 풀어 주자마자 한 말이었다. 때문에 테란이 곁에서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로 슬리피를 흘깃하며 ‘이 사람, 원래 이래?’라는 눈길을 보낼 지경이었다.
하지만 슬리피도 이런 상황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듯, 마을 사람들 쪽을 보면서 갈라진 목소리를 낸다.
“어, 음, 뭐 필요한 거는 없어요?”
다들 베즐의 칼질을 보면서 섬뜩한 눈빛으로, 눈 깜박임조차 없이 집중하던 중에 이 말이 들리자 갑자기 누군가 외친다.
“아! 프리스트! 팔라딘님이랑 프리스트님! 두 분은……!”
“그쪽은 여러분이 맡아 줘요. 아무래도 우린 신전분들이랑 서먹해서.”
베즐이 냉큼 그 말을 자르듯이 외치고는 다시 핏방울이 자욱하게 번진 무딘 칼을 들어 올려 늙은이의 다리 쪽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베즐 팀 멤버들 역시 고개를 끄덕대는 꼴이 어쩐지 팔라딘이니 프리스트니, 신전 쪽과는 이래저래 엮이기 싫다는 태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호소라도 하는 듯했다.
그 꼴에 투란이 어이없어 입꼬리에서 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라펜과 마켈에게 낮게 억누른 목소리로 묻는다.
“어쩔래요?”
한데 라펜과 마켈이 어리둥절하며 투란을 쳐다보잖는가.
뭘 어쩌냐는 듯한 그 눈길에 투란이 한숨처럼 말한다.
“프리스트나 팔라딘에 대해 뭐 몰라요? 저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어? 어, 음…… 뭐 아냐, 마켈?”
“알 리가 있냐. 난 신전에서 만든 성수는 사 본 적도 없어!”
둘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하는 대답이었다.
투란은 한층 더 어처구니없는 기분으로 마을 사람들 쪽을 흘깃했다.
그쪽에서는 헌터들의 대답을 벌써 예상했다는 듯, 뭔 사정인가 오래전부터 안다는 듯이 주섬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바깥에서 멀리 튕겨 간 팔라딘을 찾으러 몇 명이 나갔고, 안에서 굴러다니는 몰골인 사제를 조금 부드러운 땅바닥 쪽으로 옮겨 놓는 와중에 당황한 소리가 나온다.
“어쩌지?”
“이분 지팡이……!”
“안 돼. 팔라딘님이랑 호응하는 것 말고는 쓸모없다고 했어!”
“우리 약물을…….”
“여기서 더 약물을 쓰자고! 정신 나간 꼴이 된 원인이 그거잖아!”
이런저런 말이 오가지만, 결국 신전의 사제나 성기사에게 뭘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분위기만 짙어지고 있었다.
마켈이 그 광경을 보다 넌지시 투란에게 묻는다.
“너 혹시 뭐 알아?”
아까 뭘 어떻게 할 것처럼 물어 온 이유라도 따지는 듯한 말이었다.
픽, 입가에 작게 새는 웃음부터 매달고 투란이 목청을 높여 말한다.
“거기요, 혹시 그 버선이나 장화 속에 날카롭고 뾰족한 꼬챙이 하나 없어요? 손바닥 길이만 한 걸로…… 있어요?”
마을 사람 몇몇이 누군지 쳐다보지도 바로 사제의 발 언저리를 더듬고는 대답한다.
“어, 있어!”
“진짜 있네?”
“이걸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투란은 활을 분해하면서, 슬쩍 다른 곳을 쳐다보는 시늉으로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눈길을 외면하는 채로 대답해 준다.
“심장을 찔러 줘요. 그거…… 신전의 응급처방일 테니까.”
“뭐? 심장?”
라펜이 곁에서 놀란 소리를 냈고, 마켈은 ‘야, 진짜야?’라고 낮게 소곤거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뭐든 해야 하는데, 겨우 뭔가 나온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이 이미 찾아낸 은빛 꼬챙이로 사제의 가슴팍을 푹 쑤시고 있었다!
그 광경에 칼질하던 베즐이 손을 멈췄고, 땅바닥에 구르는 꼴이 된 융카 일가를 모으던 베즐 팀이 모두 눈을 껌벅이며 바라보는 자세가 되는데…….
환하고 하얀 빛이 은빛 꼬챙이에서 터져 나오며 축 늘어진 사제를 휘감으며 지붕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콰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