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4)
떨어지는 나무 부스러기에 눈가를 찌푸리면서도 다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똑똑히 바라보려는 듯이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의문이 가득한 눈길로 투란을 바라봤다.
―뭐냐, 저런 걸 어떻게 알았어?
드라고니아조차도 의아한 듯 묻고 있었다.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주섬주섬 배낭 안에 분해한 활을 쟁여 넣으면서 떨떠름한 말투로 대답을 한다.
“어릴 때, 나 살던 곳에 오러클 워리어인가 하는 아저씨가 며칠 살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이상한 얘기를 많이 해 줬는데…… 성스러운 신의 힘을 감당 못 해서 회까닥하는 신도(信徒)의 경우에는 항상 제례용 꼬챙이 칼을 하나씩 갖고 다닌다고요. 성스러운 힘이 미쳐 날뛰는 것 같으면 그걸로 가슴팍을…… 심장을 겨냥해서 찔러 주면 곧바로 신전의 안식처로 귀환한다고 했어요. 알고 나면 가끔 그걸 악용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악용은 아니겠죠? 아, 밖에 팔라딘 아저씨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투란이 배낭을 다시 등에 메고, 차림새를 점검하면서 말을 마칠 때까지 다들 귀를 쫑긋하며 듣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을 사람 몇이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팔라딘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사이에 슬리피가, 라펜과 마켈이 맹한 표정으로 투란을 보다가 한마디씩 중얼거린다.
“오러클……?”
“……이라면?”
“신전 두목님?”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에 짧게 답한다.
“진짜 될지 어떨지는 몰랐죠. 본 적은 없으니까. 아, 이제 한 번 본 셈이네?”
슬리피가 조금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한 가지 더 묻는다.
“혹시…… 너도 신전에서……?”
“아무 상관 없어요. 맨날 성기사니 사제니 두들겨 패는 오러클 아저씨 말이 맞을 줄도 몰랐다고요. 다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니까, 혹시나 해서 말해 본 것뿐이에요.”
투란은 투덜거리는 표정으로 이상한 곳에 자신을 연관 짓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대답했다. 이에 몬스터 헌터들은 ‘음, 그렇긴 하지.’라는 듯이 미묘하게 받아들이는데,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의심을 품은 듯이 은근히 묻는다.
―진짜?
‘그 아저씨가 말 잘 안 듣는 사제 자빠뜨리고 품을 뒤지고 장화를 뒤져서 강제로 귀환하는 꼴을 몇 번 보기는 했다, 왜!’
―흐흥, 역시 그랬군.
‘쳇.’
마음속의 투덜거림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투란은 베즐 일행을 흘깃거리는 시늉을 하며 낮게 묻는 소리를 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라펜과 마켈도 ‘글쎄?’라며 베즐을 바라봤다.
슬리피는 씁쓸한 한숨을 쉬며 베즐에게 묻는다.
“베즐, 계속할 거냐?”
늙은 융카를 사지(四肢) 없는 작자로 만든 베즐이 냉큼 대답한다.
“넌 여기 사람들이나 챙기고 있어. 이 녀석들은…… 수배서도 아주 특별하거든. 야, 밖에 그리핀 피가 잘 고인 곳으로 갖다 쌓아 놔. 테란, 수배서 꺼내고.”
“어, 그런데 이게 전부인가? 수가 많이 모자라는데? 이 융카 일가는 대충 서른 넘는다 하지 않았어?”
테란이 휘둘러 대던 배낭을 뒤적이면서 갸웃거렸다.
그 앞에서, 팔라딘과 호응해 그리핀을 잡느라고 몸이 피투성이인 마을 사람이 바로 대답한다.
“오다가 죽었다더군. 몬스터 떼에게 쫓겨서 마을로 도망쳐 왔으니까. 눈 돌아간 들개 떼였어. 마을 방책을 넘지 못하게 막고 냄새나는 약초를 이용해서 쫓아 버렸지만…… 오면서 보지 못했나? 마을 주변에서 맴도는 것 같았는데…….”
“들개는 못 봤지. 자세한 이야기는 이것들 얼른 처리하고 나중에 하지.”
베즐이 늙은 융카를 질질 끌면서, 팀 멤버들과 함께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슬리피는 그 광경을 보다가 마을 사람들을 다시 둘러봤다.
라펜과 마켈은 서로를 흘깃거리면서 잠시 애매해진 입장을 어찌할까 눈치를 보는데, 투란이 냉큼 묻는다.
“이제 어쩌죠?”
“너, 자꾸 어쩌냐고 묻는다?”
라펜이 삐딱한 말투로 답했다.
“좋지 않은 버릇이야, 스스로 판단해야지.”
마켈도 슬쩍 얹듯이 말하는데, 눈길은 딴 데로 돌린 채였다.
투란은 둘을 향해 살짝 흘기는 눈빛을 뿌린 다음에 슬리피 쪽으로 크게 묻는다.
“나가 있을게요. 뭐 도울 일 있으면 불러요.”
이쪽보다는 저쪽이 더 흥미로워서 한 선택이었고, 슬쩍 라펜과 마켈에게서 거리를 두는 시늉을 하며 노골적으로 뒷걸음치는 자세로 한 말이었다. 마치 ‘따라오지 말아요!’라고 핀잔을 주듯!
한데 라펜과 마켈은 ‘오?’ ‘어!’ 하고는, 슬리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투란의 뒤를 밟듯이 따라오잖는가!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시죠!”
냉큼 투란이 투덜거렸다.
마켈이 단호한 표정으로 답한다.
“스스로 판단하니, 여긴 지붕이랑 울타리 때문에 답답해서 말이지.”
라펜도 키득거리는 낯짝으로 중얼거린다.
“슬리피가 여기 잘 아는 모양이니까.”
입술을 삐죽이면서 울타리 틈새로 넘어가며 투란은 볼 수 있었다.
슬리피에게 들러붙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처럼 울지 않는 대신에 울분을 머금은 채로 격분한 어른들…….
라펜과 마켈이 재빠르게 그런 광경을 외면하려 하는 까닭이 분명했다.
몬스터 헌터가 가장 싫어하고 짜증 내는 상황, 그게 바로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살아남은 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경우라 하잖나.
투란에게는 아직 낯선 상황이기는 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 일단 더 관심 있는 쪽으로 도망치는 셈이기도 했다. 다만 그러면서 살짝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이 마을에서 얼마나 죽고 얼마나 살아남았는가?
―응? 세 줄까?
‘필요 없어!’
냉큼 묻는 드라고니아를 바로 뿌리치듯 하며 투란은 베즐 팀이 뭘 하는가 구경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래서 본 것이…….
베즐 팀은 일단 그리핀 몇 마리를 한곳으로 끌어모으고 그 피가 한곳에 고이게 했다. 그리고 거기에 쇠망치에 맞거나 화살에 맞아 마비된 융카 일가를 한 명씩 올려놓으면서 테란이 수배서를 그 얼굴에 대고 꽉꽉 눌러 대는데…… 수배서의 어설픈 초상화에 꿈틀거리는 사람 가죽이 들러붙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수배서가 얼굴 가죽을 뜯어내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게 저 수배서를 보여 주면 얼굴 가죽을 뜯어내 붙여 놨다고…… 그 얼굴 가죽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중이라고 비명을 지를 만한 광경이었다!
그 와중에 베즐은 여전히 무딘 칼을 휘둘러 사지절단을 반복했으니, 곧 그리핀의 피 웅덩이에 쌓인 융카 일가는 팔다리 없이 몸으로 탑을 쌓은 꼴이 되었다.
어떻게 봐도 상당히 끔찍하다 싶었고, 라펜이 바로 투란과 마켈을 향해 그 감상을 소곤거린다.
“좀 심하지 않냐?”
마켈은 대꾸하지 않았다.
투란은 냉큼 목소리를 높여 대꾸한다!
“무슨 까닭이 있잖겠어요? 그러니 저럴 것 같잖아요, 라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설마 다들 흉악해서 그런다고 생각해요?”
라펜의 표정이 구겨졌다.
베즐 팀이 듣기에는 라펜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굉장히 불만스럽게 투덜거린다고 착각하기 딱 좋은 소리잖은가!
“야, 난…….”
베즐 팀 쪽으로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라펜은 뭐라 변명하려 했다.
저쪽에서 베즐이 살짝 눈을 흘기면서 ‘너, 두고 보자!’란 표정을 꾸미는데 수배서를 뒤적이며 뭔가 확인하던 테란이 큰 소리로 말한다.
“상금이 더 나와. 얘네한테 평소 얘네 하던 짓 그대로 해 주면서 죽여 잡으면 말이야. 이것들, 이런 짓 하면서 두 왕국을 오가다가 들켜서 토벌당해 도망쳐 온 놈들이란 말이지. 설마 여기까지 도망쳐 왔을 줄은 몰랐네. 아, 근데 이것들 못해도 칠팔십 명은 되는 줄 알았는데 여기 있는 놈들은 열서넛인가?”
투란과 라펜, 마켈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팔다리 끊어진 융카 일가가 피 웅덩이에 쌓인 꼴을 다시 바라봤다. 입술은 ‘평소 하던 짓?’이라고 동시에 웅얼거리는 모양으로 움직이면서.
베즐이 칼잡이 카엘에게 무딘 칼의 칼자루를 내밀어 돌려주면서 말한다.
“오죽하면 도적 일가에게 몬스터보다 더 높은 상금이 걸렸겠냐고.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그러고 다녔는지…… 처음 이것들 얘기 들었을 때는 뭐에 씌어 미친 경우인가 의심했다고.”
라펜은 이 소리에 조금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멀쩡한 놈들이 그러고…… 저러고 다녔다고?”
마켈이 바로 고개를 젓는다.
“절대로 멀쩡한 놈일 리가 없어 보이는데? 그냥 미친 거잖아.”
잠깐 융카 일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신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던 투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가는 이야기에 보태듯이 말한다.
“그렇군요. 그리핀 떼랑 싸우고 나자마자 욕먹었다고 화풀이해 보자는 기분으로 그런 게 아니었어요. 과연!”
라펜과 마켈이 ‘어?’ 하며 동시에 투란을 봤다.
베즐 팀 멤버들은 ‘음?’ 하며 슬쩍 팀 리더, 베즐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왜?’ 하고 갸웃하며 베즐을 바라봤다.
어째서인가 살짝 얼굴이 붉어진 베즐이 헛기침부터 한다!
“큼! 어흠! 그럼, 당연하지.”
“그랬네, 우리 리더.”
테란이 고개를 홱 돌려 팀 리더를 외면하는 시늉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테란 흉내를 내듯, 베즐 팀 멤버들이 슬쩍슬쩍 팀 리더를 쳐다보지 못한다는 모습을 비췄다.
베즐이 이에 울컥한 듯 으르렁거린다.
“야, 이……! 너네도 짜증 나서 거들어 놓고!”
“잘해 줬어. 우린 자네에게 감사하네.”
돌연 베즐에게 건네진 말은 울타리에서 막 나온 마을 사람, 팔라딘을 앞세우고 그리핀 떼를 곡괭이로 찍다가 늙은 융카에게 인질이 되었던 이였다. 그 곁에 슬리피가 뭔가 곤혹스러운 표정인 채로 서 있는 것이 꽤 시무룩한 분위기였다.
베즐은 잠깐 숨을 골라 기분을 바꾸면서 슬리피 쪽을 보며 묻는다.
“이제 어쩔 거지?”
슬리피의 표정이 구겨지고 있을 때, 베즐에게 감사했던 이가 바로 그 곁에서 담담한 말투를 꾸며 대답한다.
“이웃 마을로 옮겨 가기로 했네. 여기는…… 저 그리핀이 남쪽에서 올라온 독부리 종자라며? 그러니까 이 마을은 적어도 삼 년가량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니, 이웃 마을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합류할 수밖에 없지.”
베즐의 표정이 곧 슬리피랑 비슷해졌다.
베즐 팀 멤버들도, 라펜이나 마켈도 인상을 구기면서 마을 사람을…… 울타리 너머에서 옹기종기 뭉쳐 슬슬 나오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을 둘러봤다.
투란은 ‘뭐지?’ 하는 생각으로 갸웃거리면서 이 상황을 한 걸음 떨어진 채로 지켜보기로 했다. 뭔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을 한 듯싶은데, 그 내막을 잘 알 수가 없었으므로.
베즐이 잠시 숨을 고르면서 자신을 진정시키는 듯하고는 말한다.
“그 이웃 마을, 알드바인보다 멀잖아요? 알드바인까지는…… 늦어도 나흘이지만 거긴 빨라도 닷새 정도 거리 아닙니까? 거의 엘데인 근처일 텐데?”
곧 마을 사람의 대표가 된 듯한 이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혀 들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슬리피도 흘깃하며 대답한다.
“우리는…… 이 마을은 알드바인을 떠나 일군 곳이야. 사정이 생겼다고 다시 알드바인의 성벽 안으로 냉큼 쫓아 들어가진 못하지. 이제 와서 우리가 알드바인으로 간다 한들…… 해자(垓字) 거리의 무능력한 빈민밖에 더 되겠나? 차라리…… 이웃 마을에서 우릴 거부한다면 엘데인의 밑바닥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게 더 낫지.”
“엘데인은 안쪽 경계도시라고요. 그런 곳에서 무슨 새 출발을 한다고!”
베즐이 짜증을 숨기지 않은 채로 낮게 말했다.
이를 부정하지 못하는 듯,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어두운 표정이 오갔다.
하지만 피투성이로 대표가 된 이가 다시 말한다.
“적어도 거기서는…… 한 가지 약초에 대해서만 잘 알아도 약초쟁이 노릇을 할 수 있잖나. 알드바인에서는 연금술사 문가에서 노는 애들 취급을 받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번에는 슬리피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베즐은 알아차렸다.
슬리피 역시 마을 생존자들의 결정에 반대하지만, 이 사람들이 전혀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
이를 확인해 주는 듯, 피투성이인 채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이가 말한다.
“슬리피, 오늘 고마웠고 자네 일행에게도 감사하네. 하지만 이건 우리 결정이야. 우린 알드바인으로 갈 수 없어. 자네들…… 순찰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그럼, 더 시간 끌고 있을 수는 없잖나? 어서 가 보게. 우리 일은…… 이제부터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투란은 베즐 일행이, 라펜과 마켈이 다 같이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봤다.
드라고니아도 어이없는 듯이 투란의 뇌리에 속삭인다.
―독에 물든 채로 대체 뭘 알아서 한다는 거지? 마법의 소양도 보이지 않고 체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아. 저 몰골로 이동하다가는 사흘도 못 버티고 한 명씩 탈진해 죽을 것 같다만. 저래도 뭔가 해낼 수 있는 거냐, 인간은?
‘없어. 뭔 일인지 몰라도, 목숨 걸고 고집부리는 바보일 뿐이야.’
투란은 쌓여 있는 융카 일가를 흘깃하며, 그들과는 다르지만 역시 이상한 선택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훑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