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5)
결국 마을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행은 따로 의논을 해야 했다.
“슬리피, 설득할 수 없어?”
베즐은 그나마 마을과 친분이 있는 슬리피에게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슬리피가 고개를 젓는다.
“말을 듣질 않아.”
테란이 갸웃하면서 묻는다.
“알드바인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 그 일을 어떻게 해 주면 말 듣지 않을까?”
베즐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펜과 마켈도 ‘어, 그런 수가 있네?’라며 끄덕거렸다.
하지만 슬리피의 표정은 어두웠고, 칼잡이 카엘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어떻게 해 줄 일은 아닐걸. 얘가 졸면서 왔다 갔다 하는 꼴을 보면서도 알드바인보다 여기가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아까 얼핏 해자 거리가 어쩌구 하는 걸 보니, 그 아랫동네 불량한 녀석들한테 굉장히 시달린 모양이구먼.”
“젠장, 그것들이 불량해 봐야 갈기산맥의 마수보다 위험하겠냐!”
베즐이 바로 짜증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슬리피가 이에 대꾸한다.
“죽으면 죽었지 다시 보기 싫다는 거라고. 사람 같잖은 것들이 사람처럼 사는 꼴을 보느니 그냥 몬스터나 마수의 위협이 더 낫다는 거야.”
마켈이 바로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낫긴 뭐가 나아! 애들까지 끌고 와서 저렇게 죽어 나가는 꼴을 보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잖아. 미친 걸로밖에 안 보인다고!”
라펜은 바로 그 곁에서 뜨악한 표정으로 손짓하며 서둘러 보태 말한다.
“아하핫, 그냥 얘가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얘가 이런 일에 좀 민감하잖아. 알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투란에게는 뭔가 평소 둘이 보여 준 모습이 뒤집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물론 라펜과 마켈에 대해서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욕을 먹는 것은 아니란 듯…… 다만 슬리피가 조금 낯을 찌푸리면서 나름대로 대꾸를 한다.
“미쳤다고 해도…… 그렇게 살겠다잖아. 그러다 죽겠다니까 설득이고 뭐고 안 되는 거라고. 베즐, 어쩔 거야? 이대로 길드 순찰을 계속하려면…….”
“할 수가 없잖아! 젠장!”
베즐이 머리를 벅벅 긁적이면서 성난 소리를 뱉었다.
슬리피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테란이 팀 리더를 향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중얼거린다.
“하여간…… 여려 가지고는.”
투란은 이 소리에 다소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무딘 칼로 퍽퍽 사람 팔다리를 끊어 놓는 꼴을 본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여리다는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얘네, 기준이 너만큼이나 엉망인 것 같구먼.
‘시끄러워!’
소리 없이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반발할 때, 활잡이 카엘이 넌지시 말한다.
“슬리피, 융카 일가 현상금도 분배받을 거지?”
슬리피가 ‘음?’ 하며 잠깐 어리둥절해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눠 주기로 했잖아…….”
베즐이 조금 전의 성난 표정 위로 뚱한 표정을 바로 덧씌웠다. 하지만 뭐라 투덜거리지는 않았고, 그사이에 활잡이 카엘이 다시 말한다.
“그거면 그럭저럭 엘데인에서 얼마 동안 지낼 몫은 되지 않겠어? 슬리피, 네가 받아서 함께 지낼 경우겠지만…….”
“내가?”
잠깐 당황한 듯, 슬리피는 느리게 대꾸했다.
베즐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 이야기야? 슬리피가 왜 이 마을 녀석들이랑 엘데인에서…… 응? 아!”
중얼거리다가 깨달았다는 듯, 베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활잡이 카엘이 팀 리더를 향해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잇는다.
“엘데인에도 길드 창구는 있으니까. 거기서 네 계정을 이용하면 분배받는 상금을 바로 찾아 쓸 수 있다고. 제대로 상금 지급을 받으려면 알드바인에서 처리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너만 엘데인에 남으면 되잖아. 그리고 우리가 맡은 일은…….”
테란이 이어지는 소리를 듣다가 얼른 지도를 꺼내 펼쳤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숙이며 지도에 시선을 모았다.
“약간 경로 수정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그럭저럭 될 것 같은데?”
펼쳐진 지도를 땅에 좍 깔면서, 테란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지도 위를 짚어 가면서 나온 말이었다.
베즐이 몸을 낮춰 지도를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경로 잘 잡아야 해. 봐야 할 곳을 안 보고 왔다고 나중에 뭐라 하면…… 괜히 한 바퀴 더 돌아야 한다고.”
슬리피도 쪼그리고 앉으면서 지도 위에 손가락을 대며 말한다.
“이쯤에서 반나절 정도 캠프를 꾸미면, 이 언저리는 모두 둘러봤다고 할 수 있을 거야. 망원경도 있고…… 눈 좋잖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순찰 경로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
라펜과 마켈도 앉아서 지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린다.
“오우거의 숲도 안전하다고 하던데…….”
“음, 얼마 전에 마스터 홀시딘이 직접 처리했다는 소문이 있드만…….”
베즐이 이 중얼거림에 귀를 쫑긋하면서 다시 지도를 손으로 짚으며 말한다.
“그러면, 이쪽으로 해서 이렇게 따라가면 엘데인까지 거리를 좁힐 수 있어. 숲을 살짝 걸쳐 가는 길이지만…… 정말로 오우거의 숲, 그레이우드가 괜찮아졌다면 말이야.”
물끄러미 허리만 굽힌 채로 지도에 찍히는 손가락을 구경하다가 투란이 불쑥 입을 열어 보탠다.
“오우거도 트롤도 없어졌다고 했어요. 그다음에 뭐가 숲에 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오우거랑 트롤은 없는 숲이라던데…… 다른 마수나 몬스터가 이 기회에 자리 잡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라펜과 마켈부터, 베즐 팀과 슬리피까지 투란을 바라봤다.
마치 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었냐는 듯…….
조금 전에 자신들이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단지 소문을 입에 담은 것과 다르게 투란의 말에는 명백한 사실이 담긴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한 눈길이었다.
투란이 입술을 삐죽하면서 그 말 없는 물음에 답한다.
“황금매…… 아니, 금빛매의 쉼터에서, 내가 그루터기에 새로 생긴 그 여관에서 살잖아요. 마스터 홀시딘이 거기 들러 한 말이에요. 알드바인이랑 저쪽 세트반 왕국이랑 이제 좀 편안해질 거라면서…… 그러니까 고블린이 땅밑에서 기어 나오는 것만 잘 막으면 당분간 큰일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음.”
“고블린 슬레이어 쪽에서 확인해 준 이야기란 말이지…….”
마켈이 중얼거렸다.
베즐 일행이 고개를 갸웃했다.
라펜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해 준다.
“한 두어 달 동안 거기 자리 잡고 미친 듯이 고블린을 사냥한 파티…… 남매로 이뤄진 파티가 있어. 고블린한테 뭔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스터 홀시딘이 거기 감동했는지 아예 거주지로 만들어 줬다더군. 얼마 안 된 일이라…….”
베즐이 ‘그래?’ 하면서 다시 지도 위를 손끝으로 짚었다.
“확실한 일이라면 조금 더 깊이 가로지를 수도 있어. 몬스터의 영역이 비워졌다면…… 오우거의 공포가 아직 유효하다고 봐야지. 어차피 저 인원을 끌고 가는 길이라면 차라리 숲이 더 안전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가면, 최소한 반나절은 더 줄여서 갈 수 있을 거야. 운이 좋으면 하루나 이틀 더 당길 수 있겠고.”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는 곤란해.”
슬리피가 불쑥 한 말은 일행을 갸웃하게 했다.
슬리피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말에 설명을 보태야 했다.
“약초쟁이 마을이라서, 가끔 그레이우드에 도전해 봤다더라고. 그러니까 오우거의 공포는 여기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단 거지.”
“살아오기는 했어?”
마켈이 불쾌하다는 듯이 물었다.
슬리피의 고개가 저어졌다.
투란은 이 소리에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숲의 약초를 노리고 오우거와 트롤이 팔팔한 숲에 들어갔다니…… 무쇠뿔 오우거의 성향과 능력을 다시 되새겨 보니, 들어가자마자 잡혀 죽었을 것이다!
베즐이 갑자기 빠득 하는 이를 가는 소리를 내고 말한다.
“헌터도 피하는 곳에 들락거리는 약초쟁이였냐? 죽어도 좋은 작자들이라면, 죽을 작정으로 발 딛는 경험을 할 차례가 온 거지! 좋아, 이렇게 해서 간다! 슬리피, 설득하지 말고 협박을 해! 살기 싫으면 따로 가고, 살고 싶으면 우리랑 같이 엘데인까지 동행하는 거야! 따로 가겠다는 것들은 떼 놓고 갈 거야!”
지도를 탁탁 짚는 베즐의 손끝은 노골적으로 그레이우드를 깊이 가로지르겠다는 경로를 그려 내고 있었다.
슬리피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슬리피는 못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주섬주섬 일어서고 있었다.
“너무 험한 몰골은 보이지 마. 인간이 지긋지긋하다는 거니까…… 거기 보태지 말라고. 아무튼…… 말해 둘게.”
그러면서 몸을 돌리는 슬리피를 보다가 칼잡이 카엘이 불쑥 말한다.
“너, 여기서 약물 구하고 있었던 거야?”
갑작스러운 물음은 슬리피를 잠깐 멈칫하게 했다.
베즐을 비롯한 모두가 ‘약물?’ ‘여기서?’라고 중얼거려보는 듯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하나 조금 거북한 그 분위기에도 대답은 머뭇거림 없이 슬리피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알드바인에서는 아무도 내게 약을 안 파니까.”
“지랄! 아무 때나 처먹으려 하니까 그러지!”
베즐이 잔뜩 못마땅하다는 듯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슬리피가 돌아선 채 걸으면서 중얼거림을 남긴다.
“난 그저…… 잠을 자고 싶을 뿐이라고.”
투란에게는 황당한 대답이었다.
늘 자고 있는 듯한 몰골을 한 채로 저게 뭔 소리란 말인가!
―말했잖아. 저 녀석, 약물에 취한 잠꾸러기라고.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묘하게 거북한 분위기는 슬리피의 빈자리에서 계속 맴도는 듯했고, 이를 바꾸려는 듯 조금 명랑하게 라펜이 목소리를 살짝 높여 말한다.
“아, 그런데 저 융카 일가는 뭐야. 대체 왜 저런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 저렇게 일 저지르고 다녔을 리는 없을 텐데?”
“약탈.”
베즐이 짧게 대답했다.
라펜과 마켈, 투란이 어리둥절한 채로 베즐을 바라봤다.
베즐 대신 테란이 이 눈길에 답하면서 지도를 다시 챙겨 넣는다.
“이 마을처럼 산골 깊은 곳의 외진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이고 물품을 빼앗는 놈들이었어. 왕국의 경계 안팎을 넘나들면서, 왕국 군단과 마주치지 않게…… 왕국의 병사들이 보호하지 않는 곳을 노리며 약탈하는 도적 집안이지. 주로 세금을 피하거나 공역을 피해 외진 곳으로 숨은 이들이 모인 곳을 노렸는데, 한 십여 년 전부터 대담해져서 경계가 느슨하고 제법 사람이 많은 곳까지 약탈했어. 일가의 수가 늘어나서 작은 곳으로는 성이 차지 않게 되었다는 모양인데…… 덕분에 몬스터보다 더한 상금이 걸렸지. 수배서까지 특별 제작되고 말이야.”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 질린 표정을 한 라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너네…… 진짜로 인간 사냥꾼 노릇을 한 거냐?”
“바운티 헌터라고 해! 뭔 인간 사냥꾼이야, 인간을 노리는 게 아니고 상금을 노렸을 뿐이라고!”
베즐이 울컥해서 외쳤다.
활잡이 카엘이 그런 베즐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대며 작게 말한다.
“그거나 그거나…….”
테란이 피식 웃음과 함께, 베즐 팀 멤버가 아닌 라펜, 마켈과 투란을 쓰윽 둘러보면서 말한다.
“몬스터는 본능으로 움직이지. 짐승도 그렇겠지만…… 무슨 끔찍한 일을 하더라도 순전히 그렇게 생겨 먹고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하지만 인간은…… 저 융카 일가 같은 녀석들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해. 저런 작자들을 보다 보면, 가끔 몬스터 헌터는 때려치우고 바운티 헌터 쪽이 훨씬 착하고 좋은 일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라고.”
“차, 착해?”
“좋은 일 하며 살았구나.”
라펜과 마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할 말이 없지만 억지로 짜낸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활잡이 카엘과 칼잡이 카엘이 쓴웃음을 지었고, 테란은 혀를 날름하면서 말을 더한다.
“인간을 약탈하는 인간은…… 몬스터보다 더 사냥할 맛이 난다 이거지, 뭐. 착한 일이잖아? 음, 그래…… 살짝 중독된 건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제대로 된 몬스터를 사냥해서 지난 일을 잊으려 한다, 이거야. 우리가 말이지.”
베즐이 몸을 일으키면서 슬리피 쪽을 보며 말한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라펜, 마켈 너네…… 그래, 투란 너에게도 조금 미안한데…… 저 멍청한 슬리피 탓이라고 해 두고, 엘데인까지 좀 어울려 주라. 부탁할게. 아, 물론…… 상금은 분배할 테니까 말이야.”
라펜이 픽 새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이제 와서 뭔 소리야? 우리 셋이 랩티드 떼나 그리핀 떼랑 따로 만나서 뭘 어쩌라고? 알드바인까지 책임지라고, 우리 목숨!”
“노력하지.”
베즐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마켈과 투란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편안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융카 일당은 그리핀의 피 웅덩이에 젖은 채로 신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