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6)
Chapter 12. 은빛 달이 타오를 때
“시체 줍기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게 안전하다고? 웃기고 있네!”
투란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냉소적인 말투는 이 상황에 대한 경고처럼, 기억 너머에서 저절로 굴러 나왔다. 지금 투란에게는 딱 알맞은 충고처럼 느껴졌다.
‘없지? 아무것도 없지!’
조급함 속에서 투란은 숨을 가다듬으며,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주변의 풍경을,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조심해야 했다. 너무 놀라서 그리고 너무 욕심이 나서 저 그늘 속에 숨어 있다가 훤한 달빛 아래로 튀어나온 탓도 컸다.
막상 늑대의 찢긴 팔뚝을 내려다보는 꼴이 되고 나니, 뒤늦게 이 자리가 공격당하기 좋은 자리이고 또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이 투란을 찾아온 셈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뒷걸음질 쳐서 그늘 속으로 돌아기에는 늦었다.
투란은 어정쩡한 태도로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면서, 경계심과 욕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결국 욕심이 이겼다.
몬스터 로드, 시체 줍는 자에게 가장 위험한 요소 중의 하나를 제외해도 좋다는 점이 투란을 납득하게 한 부분이 컸다. 그의 문장은 다른 몬스터 로드와 다른 특성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투란은 달빛 아래에서 붉은 빛을 일렁이는 털을 내려다보다가, 그랑츄에게 물리고 씹혀 끊어진 자리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늑대의 피를 봤다. 그리고 가만히 내민 연한 녹색의 손바닥을 모아 그 피를 받았다.
‘침착하게!’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고 굉장한 몬스터를 손에 넣는다며 좋아서 바로 문장의 각인을 쓰면 안 돼. 그 전에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봐야지. 그런 욕심나는 굉장한 몬스터가 왜 쓰러졌는가부터 이해하는 게 먼저야.”
기억 속의 잘난 체하던 목소리를 되새기며, 투란은 주변을 향해 좀 더 예리하고 섬세하게 감각의 날을 세웠다.
멀리서 괴성으로 포효하는 그랑츄와 멀어져 가는 늑대의 아련한 울부짖음이 들려왔지만, 둘 다 멀어져 갈 뿐이고 다가오지 않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늪 속에서는 널브러진 그랑츄의 몸뚱이를 탐내서 뭔가 기어 나올 듯한 낌새 따위가 없었다. 아까 한 마리 제대로 담가 준 덕분인지, 아니면 이 늪은 그냥 얌전한 것이라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바닥에 깔린, 달빛에 희고 노란 빛을 살짝 튕겨 주는 자갈과 흙도 뭔가 토막 내거나 뚫거나 할 느낌은 없었다. 그랑츄와 늑대의 팔에서 질질 새는 핏물 역시 그냥 흐르고 고일 뿐, 딱히 뭔가 핥아 대는 꼴은 아니었다.
‘좋아.’
나름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확인했다 여기고, 투란은 욕심에 따라 움직였다. 우선, 손에 고인 괴물 늑대의 피를 가슴에 처발랐다.
핏빛 방울이 투란의 가슴에 묻자, 검은 톱니 고리가 불쑥 튀어나와 돌았다.
투란이 숨을 고르며 보다 냉정해지는 사이, 검은 톱니 고리가 늑대의 피를 쑥쑥 끌어당기며 볼록하니 부풀어 핏빛을 머금었고 가까이 붙은 손바닥 위로 핏빛의 톱니 고리를 뿜어냈다.
가만히 손바닥의 감각을 음미하듯 잠시 손을 오므리고 내려다보면서 투란은 한 번 더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달빛을 받아 이글거리는 듯한 늑대의 팔뚝, 그 찢긴 곳에 핏빛 고리가 맺힌 손바닥을 들이댔다.
파르르…….
늑대의 손가락이 꿈지럭거리며 손톱을 세웠고, 손목이 꺾이며 튕겨 나갈 듯했다.
팔뚝만 남은 꼴인데도 성질을 부리면서 저항하잖는가!
투란은 이에 바로 대응했다.
힘을 돋운 그랑츄의 손, 왼손으로 손목과 팔뚝을 바닥에 내리박아 누르면서 잘려 나가 피가 고이는 쪽에 과감하게 핏빛 고리가 맺힌 손바닥을 꽉 눌러 붙였다. 덤으로 몸무게를 실어 쪼그린 자세에서 팔뚝을 내리누르듯이 몸을 기울이기도 했다.
온전한 웨어울프였다면 모를까, 팔꿈치에서부터 찢어진 팔뚝 하나가 저항할 수 없는 꼴을 만든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투란의 선택은 옳은 듯했다.
뿌득, 뚜득.
손가락 마디, 손목이 거친 소리를 내며 꿈지럭거렸고 움직이며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팔뚝이 아직 살아 있다는 확실한 주장을 하듯이!
‘진짜 이거 웨어울프 맞아?’
이쯤 되니, 투란은 엉뚱한 생각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랑츄, 잿빛바위 일족을 힘으로 찢어발기고 이빨로 물어뜯고…… 혼자서 세 마리를 어렵지 않게 상대한 놈이었다. 말로만 듣던 웨어울프라고 생각한 것은 오직 그 생김새 탓인데, 전혀 다른 놈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저절로 들잖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아, 착각했다.’라며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핏빛의 톱니 고리가 손바닥에 더 센 압력을 뿜어내며 팔뚝 속에 거칠게 파고드는 느낌이 아주 선명했다.
‘이긴다! 이깟 팔뚝 하나에 질 수는 없어!’
오기와 함께 투란은 독기도 품었다.
머리통만 뜯겨 나간 그랑츄 한 마리를 온전히 몸에 품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벼락 맞아 홀랑 타 버릴 뻔도 했다. 그리고 이런 잔해를 남긴 싸움 구경도 했다. 그 와중에 투란은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하는 대신 싸우려 했다.
결코 이런 팔뚝 하나에 지고 싶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서 큰 손에 눌려 겨우 손톱이 돋은 손가락 끝만 보이면서도 세차게 꿈틀대려던 팔뚝의 저항이 돌연 약해졌다. 투란은 조심스럽게 두툼한 그랑츄의 손가락을 벌리며 지켜봤고, 붉은 빛깔 털이 거뭇하게 변하는 것을 알았다.
늑대의 팔뚝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톱도, 손가락도, 심지어 그 뼛속까지 비쳐 보일 정도로 투명해지더니 으스러지며 사라졌다. 늑대의 팔뚝은 바닥에 흘린 핏자국만 남긴 채로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투란은 연한 새싹빛의 손바닥 위에서 핏빛의 톱니 고리가 격동하며 맴도는 꼴을 봤다. ‘이상한 심장’이 차분하게 악마의 심장과 조율된 채로 뛰었다.
‘해낸 거…… 아, 아직이구나.’
투란은 천천히 바닥에 엉덩이를 뭉개듯이 앉으며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이상한 심장’의 손이 가슴에 닿았고, 그 위로 그랑츄의 손이 덮였다.
가슴에서 기다리던 검은 톱니 고리가 핏빛과 겹쳐지며 맴돌았다.
왼쪽 그랑츄의 손이 변하기 시작했다.
‘으…… 또!’
투란의 표정이 구겨졌다.
삼키자마자, 또 에센스가 자기 자리를 찾겠다는 듯이 형태를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이상한 심장’ 때처럼!
아니,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과격하고, 더 지독했다.
이미 자리 잡은 그랑츄의 팔, 늑대의 왼쪽 팔뚝이 그 왼팔의 자리가 제 것이라는 듯이 드러나고 있었다.
두툼하고 굵었던 팔뚝이 저절로 가늘어지고, 거친 회색의 살갗이 어느새 붉은 털이 촘촘하고 길게, 부드럽게 휘날리는 날렵하면서도 강인한 팔뚝으로 변해 갔다.
한데 그렇게 외형만 변화하고 끝나지도 않았다.
‘뜨거워!’
투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왼쪽 팔뚝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인가?
그 불길은 은빛이었고, 손끝에서 손목, 팔뚝까지 거세게 휘감으며 투란의 어깨를 향해 스며들었다!
‘이거……?’
돌연 알 수 없는 충동에 따라 투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에 이를 꽉 깨물며 버티지 않았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투란의 입에서 포효가 터질 뻔했다.
어두운 하늘에 은빛으로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분명히 밤일 텐데, 깊은 숲과 늪의 안개와 그림자 틈새를 열고 나온 이곳에는 달빛이 내리쪼이고 있었을 텐데, 어느새 투란의 눈에는 휘황한 은빛 불꽃이 일렁이는 창백한 하늘이 보였다.
저게 대체 뭔가, 투란이 딱히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달! 저게 달이라고?’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바라보는 투란의 시각에 달라진 것뿐이다.
이렇게 시각에 영향을 끼치는 힘은 이미 투란의 왼쪽 어깨, 그랑츄의 튼튼한 회색 살갗을 잡아먹으면서 붉은 털을 뿜어내려고도 했다.
‘이런!’
투란의 가슴에서 두 개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타오르는 달의 힘은 어느새 투란의 가슴으로도 옮겨 가려 했고, 그 열기는 심장마저도 통으로 구울 듯이 거세지고 있었다.
“웨어울프…… 웨어비스트란 것들이 좀 희한하지. 어떨 때는 그 괴물의 형상을 삼킨 것이 아니라 저주를 통으로 삼킨 것이 아닌가 싶거든. 아, 그래. 웨어울프의 한 조각만 얻은 놈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웨어울프가 되어 날뛰더라니까! 밤이었지, 달이 꽉 찬…….”
‘만월도 아닌데!’
점점 목과 가슴이 은빛 불꽃에 달궈지는 느낌이 심해졌지만, 투란이 먼저 생각한 것은 이랬다.
웨어울프가 광기에 젖어 날뛰는 것은 딱 하룻밤, 달이 꽉 차서 완전히 둥글게 되는 밤이었다. 그나마도 달이 구름에 가리면 그 광기도 반으로 꺾인다 했다. 그리고 완전히 차오르지 않은 달은 구름 끼거나 말거나 광기를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했다.
이야기꾼이 누군가의 눈물을 짜내려고 떠든 헛소리였을까?
늑대로 변해 연인을 물어 버렸다는 불행한 사나이 혹은 숙녀의 이야기는 지금 투란이 겪는 상황을 전혀 설명해 주지 못했다.
이 늑대의 팔은 달빛이면 무조건 괜찮은 모양이었다.
겨우 팔뚝 하나인데 투란을 완전히 늑대의 모습으로 물들이겠다는 듯, 은빛의 열기를 마구 끌어당겨 퍼붓고 있었다!
‘어쩌지?’
투란은 뒤바뀐 시각과 머리가 후끈거리는 느낌 속에서, 차갑게 생각하는 자신을 깨달았다. 뭔가 달빛 아래 격렬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다는 느낌도 좀 있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이상했다.
쿠쿵, 쿠웅!
연이어 울리는 심장의 고동, 두 개의 심장이 울어 대는 힘이 투란을 두들겼다.
‘그냥 밀려날 수는 없다? 아…… 그러네.’
투란은 깨달았다.
이 과정은 필요한 것이었다.
삼켜 버린 몬스터끼리 균형을 맞춰야 했다.
모두 함께, 투란의 몸 하나에 의지해야 하므로!
‘뜨거! 아파!’
타는 고통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거기에 덤으로 ‘이상한 심장’과 악마의 심장이 은빛 불꽃으로 보이는 달빛이 스며드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점차 그 박동을 높이며 강렬하게 울어 댔다.
고동칠 때마다 온몸으로 퍼지며 질주하는 피의 격류, 몸은 제각각의 자극을 모두 격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끙끙거리며 숨 쉬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어서 이 과정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짜증 나! 이렇게 아프단 소리는 못 들었다고!’
이를 악물며, 투란은 화를 냈다.
딱히 누군가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해 보면 알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지.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좋은 부적을 사면 될지도……. 근데 좋은 부적은 비싸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작자가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말이 생각나서 덜 아픈 일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지?’
결국 투란이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하는데, 어느새 하늘에서 은빛 불꽃이 사라지고 없었다. 끝없이 파고들던 열기도 사그라들었다. 버티다가 투덜거리다가 하던 투란으로서는 돌연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손을 보니, ‘이상한 심장’의 오른손이 웨어울프의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그렇게 눌러서 은빛의 불꽃이 스며드는 것을 막겠다는 듯했지만, 사실 쓸모없는 짓이었다.
‘왜……?’
한데 하늘에 둥실대던 은빛 불꽃은 어디 갔을까?
눈을 깜박대던 투란은 문득 주변이 훨씬 밝아진 것을 깨달았다.
달빛보다 더 훤한 햇빛이 늪가를 물들이고 있었다.
“어?”
맹한 소리를 내다가 투란은 서늘하게 바닥에 깔린 안개를 보고 깨달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온 것이었다.
달은 낮이 되어 저물어 버렸고!
“어!”
당혹스러운 외침이 터졌다.
왼손은 여전히 늑대 손이었다.
이제는 뜨겁지 않았다.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머리에 쑤욱 밀어 넣는 듯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기절……했어?’
너무 아프다가, 조금씩 덜 아픈 듯했던 순간들…… 그때 투란의 머리는 허옇게 비워져서 의식이 거의 날아간 채였다.
악마의 심장이 그때마다 빈자리를 채웠고, 투란은 그렇게 정신 줄 놓은 상태로 밤을 새우고 버텼다. 그 때문에 밤이 기울어 아침이 된 것도 아주 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잠도 자고, 기절도 하고…….’
투란은 자신이 아주 기묘한 상태인 것도 알게 되었다.
잠들거나 기절하면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의 힘을 쓰지 못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