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7)
“일단 출발하자. 오늘 안에 숲을 가로질러야 하니까.”
머리를 휘저으면서, 당장 필요 없는 일은 뇌리에서 지운다는 표정으로 베즐이 외쳤다. 매드독과의 기묘한 만남 이후, 막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마친 다음이었다. 매드독이 붉게 물들인 물웅덩이를 아쉽게 바라보면서 각자 물통의 물을 몇 모금 겨우 입에 품었을 때이기도 했다.
켈타 마을 사람들의 대표인 이가 바로 갸웃하면서 묻는다.
“잠깐, 숲을 가로지르다니? 설마…… 오우거의 고요한 숲을 가로지르겠다는 건가?”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생각에 무척이나 놀라는 듯했고, 이 놀라는 분위기가 곧바로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번졌다. 켈타 마을의 생존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베즐이 꺼낸 듯한 상황이었다.
베즐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짧게 대답한다.
“가 보면 알아요. 얘기는 그다음에 하죠.”
마을 사람들은 의아해했고, 헌터 일행은 어딘가 태평하게 길 떠날 준비를 하며 일어섰다. 너무 당당한 헌터 일행의 태도에 마을 사람들은 엉거주춤하면서도 결국 일어서 걷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투란은 베즐이 저쪽에서 자신을 흘깃하는 꼴을 봤고, 곁에서 함께 그 꼴을 본 라펜이 중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아, 잘못되면 탓할 준비 하네. 투란, 조심해.”
“에…… 엥? 뭔 소리예요?”
투란이 어이없어하자 라펜은 혀를 날름하면서 흐흣 했고, 마켈이 라펜을 쏘아보며 말한다.
“헛소리야. 그냥 가.”
“흐흥, 두고 보자고.”
라펜은 다시 음흉한 척 흐흣 하면서 말했다.
때문에 투란은 대체 베즐이 뭐가 잘못되면 탓할 준비를 한다는 것인지 갸웃하면서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웅장한 숲의 풍경이 일행 앞에 도도하게 그 자태를 드러냈다.
켈타 마을 사람들은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러나 갈기산맥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처럼 펼쳐진 숲의 자태에 묘하게 감동도 하면서 그레이우드를 바라봤다. 어느새 멈춰진 걸음은 마치 숲이 도도함에 취해서인 듯했다.
헌터 일행은, 특히나 베즐 팀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놀란 듯했다.
“정말이네…….”
“하하, 어떻게 한 거지?”
“야, 저기 멧돼지도 보이잖아?”
“허어…… 저게 나무뿌리를 파는 거야? 허헛.”
투란은 마을 사람들이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라펜이나 마켈을 비롯한 헌터 일행이 이미 알아본 것을 느긋하게 지켜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는 것처럼 중얼거리는데…….
―빠르군. 과연 짐승들이야. 공포고 뭐고 일단 들어가서 안 죽으니까 마구 쳐들어간 모양이네.
투란에게는 욕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애매한 낌새가 가득한 말이었다.
‘잘하고 있다는 거야, 멍청하다는 거야.’
―짐승답다는 거다. 과연 인간들은 어떨지 궁금하군.
‘어?’
투란은 의아해하면서, 드라고니아가 주의하는 인간들…… 일행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투란과 슬쩍 눈이 마주친 이는 베즐이었는데, 살그머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만족한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아무래도 라펜이 말한 바를 떠올리게 한다!
아직 오우거가 날뛰는 것 같았으면 바로 투란을 손가락질하면서 ‘쟤가 괜찮다고 했어!’라고 발뺌했을 듯한 낌새가 솔솔 피어나잖나…….
물론 그러다가 팀 멤버들에게 바로 외면당할 듯도 하지만, 베즐은 어째서인가 일단 투란을 탓하고 볼 듯했다.
라펜이 곁에서 이런 투란의 생각을 듣지도 않고 공감이라도 한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으니…….
“베즐이 남 탓하며 발뺌하는 모습은 못 보겠구먼…….”
“팀 리더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팀이 덤터기 쓰지 않으려는 것뿐이잖아. 그걸 꼭 그렇게 놀려 먹고 싶냐? 너는 팀 리더도 아니면서 비슷한 짓 자주 하잖아.”
마켈이 다시 라펜에게 핀잔했다.
투란은 바로 둘을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시늉을 해 보였다.
라펜은 히죽 웃으며 슬쩍 투란의 눈길을 외면하는 척했고, 마켈은 쓴웃음과 함께 투란을 다독이듯 말을 보탠다.
“괜한 일에 책임감 느끼고 나섰다가 덤터기 쓴 적이 있어 봐서 그래. 능력도 안 되는데 엉뚱한 일에 휩쓸려 죽기 싫으니까.”
“흐흠…….”
투란이 괜찮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애매한 표정을 짓는데…….
“수, 숲이 고요하지 않아!”
“새가, 새가 날고 있잖아!”
“저기, 저기 봐!”
“잔나비가 있어!”
“숲이…… 숲이야!”
켈타 마을 사람들이 그레이우드의 변화를 겨우 알아차린 듯, 놀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겨우 오우거의 공포가 지배하는 숲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모습이었다.
베즐이 그 놀란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바로 외친다.
“자, 여기서 잠깐 준비하죠. 숲을 가로지를 테니까, 다들 각오하고 준비해요. 괜히 옆에서 튀어나오는 멧돼지에게 처박히고 잔나비가 머리 위에서 던지는 나무 열매에 맞지 않을 준비를 해요. 한눈팔다가 새똥 맞고 재수가 있네 없네 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도 하고 말이에요!”
베즐 팀 멤버들은 이런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주섬주섬 장비를 다시 점검하면서, 숲의 상황에 맞게 다시 단단히 묶거나 꺼내 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새삼 자신이 다시 그레이우드를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고, 달라진 숲의 풍경을 조금 느긋한 기분으로 둘러봤다.
무쇠뿔 오우거에 의해…… 마마 트롤과 그 자식인 트롤과 대립하던 숲을 수호하는 폭군에 의해 고요함이 가득했던 그레이우드는 더 이상 없었다. 산뜻한 바람은 변함없지만, 거기에 더해진 숲 위를 오가는 새와 잔잔한 듯하면서도 쉬임 없이 바스락거리며 숲을 휘젓는 기척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제법 가까워 눈에 띄는 멧돼지, 잔나비는 숲의 우거진 틈새로 숨은 척하면서 인간 일당이 뭘 하러 왔는가 경계하는 듯했다.
문득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린 소리가 가슴을 쿡 찌르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날짐승, 들짐승…… 벌레까지 갈기산맥을 타고 오거나 고원(高原)을 건너와 그레이우드에 보금자리를 틀고 눌러앉은 것이다. 오우거의 공포 따위는 넘쳐나는 숲의 풍요로움에 취해 완벽하게 잊어버린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홀시딘이 헌터 길드에도 제대로 통보한다고 했는데…….’
그레이우드를 찾아든 인간은 아직 없는 것일까?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이제 반쯤 기대하는 채로, 그나마 반쯤은 아직 불안해하면서 숲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레이우드가, 그 안을 누비는 것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듯한데…….
‘이상해…….’
투란은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느꼈다.
여린 바람이 부드럽게 온몸을 덧씌우는 듯했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발 아래쪽의 풀잎이 살랑거리면서 더듬어오는 듯했다.
마치 숲이 투란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이에 호응해서 몸 안에서 갑작스럽게 정령수 휘드라곤의 기척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숲이 불러내니 나가 놀고 싶다는 것처럼!
숨을 크게 쉬면서 드러나지 않게 재빨리 억눌렀지만, 그 느낌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상쾌해서 투란은 더 이상하다 여길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레이우드에서 왜 이런 느낌을 받는가?
투란이 슬쩍 앞서가는 일행을 훑어봤지만, 누구도 투란처럼 느끼는 이는 없는 모양이었다. 다들 낯선 숲의 풍경에 조심하면서, 선두에 선 테란이 열고 정리하는 길을 따라 나아갈 뿐이었다.
뭔가를 느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숲에 들어서면서 테란은 부쳐스 엣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시험 삼아 쳐 낸 다음부터, 숲에서 뭔가 무서운 것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방향을 정하고 앞을 완전히 가로막는 듯한 나무만을 베어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베즐 팀 멤버 둘이 그 좌우로 따라가며 길을 정리했고, 베즐이 그 뒤에 서서 길을 정리하는 선두를 지켜보고 돌발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켈타 마을 사람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가고, 활잡이 카엘과 슬리피는 그 사이에 섞인 채인데 뭔가 갑자기 일행 사이로 뛰어들면 바로 저격(狙擊)할 듯했다. 칼잡이 카엘이 그런 마을 사람의 맨 뒤에서 라펜, 마켈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투란이 뒤처지지 않는가를 간혹 흘깃거리고 있었다.
다들 그레이우드에 대한 그동안의 소문과 악명, 나름대로 겪은 바를 통해 조금 불안해하면서도 그 전과 전혀 다른 숲의 분위기에 놀라면서 길을 재촉할 뿐이지 투란처럼 이상한 두근거림, 설렘을 느끼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내가 미쳤나!’
문득 투란은 자신을 향해 헛소리라고 외치고 싶을 듯한 생각까지 하는데…….
―갑자기 뭔 생각이냐? 정령의 궁전이랑 호응하고 있는 거잖아.
드라고니아가 가만히 투란의 복잡한 심경을 엿본 듯이 말하고 있었다.
‘어? 그건…….’
―잊었냐? 홀시딘이 그 마법을 펼칠 때, 너를 이용했잖아. 게다가 정령의 궁전은 당연히 너를 기억하고…… 쉽게 말해서 이 숲의 마음이 담긴 심장 같은 것이 너랑 호응하는 거잖아.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은 투란이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
다만 들어가지도 못하고 퉁퉁 튕겨 내서 억울하게 했던 금전 이만 닢짜리, 그 정령의 궁전이 이제 와서 뭔가 아는 척한다는 이야기 정도로 납득이 되는데…….
‘나쁜……!’
새삼 금전 이만 닢이 허공에서 날개 달고 파닥대는 꼴을 보는 듯한 기분이 굉장히 구겨지고 있잖은가!
하지만 그 기분을 지금 누구에게 내색할 수도 없기에 투란은 어딘가 다른 곳에다 분풀이를 하고 싶었고, 마침 눈에 띈 넝쿨 줄기의 자잘한 열매는 그런 기분을 달래 주는데 딱 좋은 대상이었다.
툭, 투둑…… 냠냠냠.
투란이 줄기를 휙 잡아채서 바로 입에 넣고 우걱거리는 순간…….
“야?”
“투란?”
“먹냐!”
앞에서 칼잡이 카엘이 번개처럼 몸을 반쯤 돌리다가 황당한 표정부터 지었고, 마켈도 방패로 몸을 가리는 자세로 돌아서다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으며, 라펜은 단도를 내던질 것처럼 손목을 꺾은 채로 투란이 하는 짓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런 뒤쪽이 소란은 금세 앞쪽의 움직임도 잠깐 멈춰 세웠는데…….
“왜요? 이거, 넝쿨 딸기잖아요. 먹을 수 있는 건데?”
투란은 우물우물하는 입으로 갸웃하는 고갯짓과 함께, 보 사람들에게는 아주 심하게 뻔뻔해 보이는 태도로 말했다.
잠시 라펜과 마켈이 맹한 표정을 지었고, 칼잡이 카엘은 눈을 껌벅거리다가 ‘어? 먹을 수 있기는 있지.’라고 웅얼거렸다. 그사이에 앞쪽 일행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조금 크게 들려오기도 했는데…….
“넝쿨 딸기 중에서 독 있는 것도 있는데…….”
투란을 걱정하는 것인지, 확인하지도 않은 부주의함을 탓하는 것인지 애매한 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시원하게 한번 더, 아주 분명하게 이 분위기에 대답을 한다.
“이거 독 없어요. 저기 잔나비랑, 새들…… 저 나무 뒤에서 멧돼지도 먹고 있잖아요. 먹어도 된다고요.”
이 말에 칼잡이 카엘이 긴장이 부서진 듯, 한숨을 쉬면서 살짝 쥐었던 칼자루를 놓으면서 말한다.
“먹어도 되는 거 확인했으면…… 말을 해서 같이 좀 먹자고.”
라펜과 마켈의 눈길이 이번에는 칼잡이 카엘을 봤고, ‘뭔 소리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칼잡이 카엘은 앞을 보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으니…….
“그냥 군것질이야. 짐승들이 먹는 걸 보고 입이 심심했나 봐.”
“그린 베리잖아. 독 있는 거 아니었어?”
앞에서 누군가 이상하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칼잡이 카엘이 그 소리에 ‘어라?’ 하며 투란을 돌아봤고, 투란은 다시 넝쿨 줄기 한 자락을 뜯어내 초록빛의 자잘한 열매를 우걱우걱 입에 담으면서 우물거리는 채로 대답을 한다.
“잘 모르겠는데, 계속 먹어 볼 테니까…… 탈 나면 다들 알겠죠, 뭐.”
맛있게, 입가를 녹색 즙으로 물들이면서 ‘아, 달다.’란 말까지 슬쩍 덧붙이며 한 대답은 결국 일행의 긴장을 흩어 버린 모양이었다.
“넝쿨 딸기 중에 초록색으로 독 있는 거는 반점이 있고 잔털이 있어. 저건 껍질이 깨끗하고 잔털이 없잖아. 독 없는 거고…… 단맛이 진할걸.”
독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다시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먹어도 되는 거면…….”
꿀꺽.
긴장이 풀린 사이로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해서…… 일행은 숲이 내주는 풍요 속에서 군것질을 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잔나비와 새들이 내려다보고, 저편에서는 멧돼지가 나무뿌리를 파내며 땅속에 숨겨진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그레이우드에 일행이 동참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