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6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8)
‘와아…… 역병 들린 숲이랑은 전혀 다르네.’
―같을 리가 없잖아!
숲을 지나면서 투란이 품은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격하게 반발했다.
잔나비 무리가 나무 위 높은 곳에서 수십 명의 인간이 숲을 지나는 광경을 구경하며 나무 열매를 씹는 중이었고, 나무 꼭대기 위에서 지나가는 새들 뒤로 사나운 맹금이 언제 덮칠까를 궁리하며 쫓고도 있었다.
몇 그루의 나무 너머로는 땅을 파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멧돼지 가족의 킁킁거리는 소리가 보이지도 않는 멧돼지의 모습을 눈으로 보듯이 느끼게도 해 줬다. 정작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것은 저 먼 곳에서 가지 친 사슴의 뿔이 오락가락하는 광경인데…….
이런 숲의 풍경 속에서 누락된 것이 바로 몬스터의 기척이었다.
무쇠뿔 오우거와 마마 트롤…… 그 이후로는 그레이우드에 몬스터가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숲에 들어서기 전에 봤던 매드독이 혹여나 숲 속을 헤매일 수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그 또한 없었다. 가까운 쟈카라 산림에서 흩어져 나온 마수 거미라면 있을 듯싶었는데, 일행 근처에서는 그 흔적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넝쿨 딸기의 다양한 품종, 그린 베리를 시작으로 색상에 따라 구분되는 레드, 블루, 블랙의 다양한 맛을 지닌 넝쿨 딸기와 함께 투란이 이름을 모르는 온갖 나무 열매…… 실로 그레이우드에는 풍요로움만이 가득한 듯했다.
그래서 투란은 잔나비가 우걱거리고 있는 나무 열매, 굳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바닥에 떨어져 쉽게 주울 수 있는 것을 골라 집으며 그 풍요로움을 함께 즐기기로 했는데…….
“단단해!”
잔나비가 이빨로 꽉꽉 깨물어 먹는 광경과 다르게 웬만한 사람 이빨로는 껍질에 자국만 남을 정도였다.
라펜과 마켈이 투란의 투덜거림에 돌아서 보더니, 한숨을 쉬고 그냥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조금 더 앞의 칼잡이 카엘은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애쓰는 듯이 보였다. 그보다 더 앞의 마을 사람들은 또 투란이 뭘 주워 먹나 흘깃거리며 살짝 돌아보는 듯했고!
투란은 주머니칼을 꺼내 열매를 쪼개고 껍질을 벗겨서 다시 맛보기를 시도했고…….
“음, 달잖아! 껍질은 단단하고 썼는데…… 냠!”
이 소리에 저 앞의 마을 꼬마가 돌아보더니 바로 옆의 어른을 잡아당기며 외친다.
“머룬! 머룬이에요!”
꼬마에게 당겨진 어른이 당황한 듯…….
“머룬이라니, 그건…… 응? 머룬이잖아!”
달래는 말을 하려고 투란을 보다가 껍질이 벗겨진 채로 깨물리고 있는 열매를 보며 놀란 소리를 냈다.
라펜과 마켈, 칼잡이 카엘도 ‘어라?’ 하면서 다시 투란을 돌아봤다.
“어? 아니, 머룬 열매를 어디서?”
“잠깐, 그거 바닥에서 주운 거잖아?”
“이 큰 나무가 머룬 나무라고!”
제각각 떠드는데 투란에게는 다들 이 열매의 정체를 아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알아요? 알면서 왜……?”
그냥 다 밟고 가며 머리 위의 잔나비가 먹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있었잖은가.
투란이 갸웃하며 묻는 말에 대해 바로 대답하는 이는 없었지만, 작게 시작된 소란이 앞으로 번지면서 대강 사정을 알 수 있는 말들이 터져 나온다.
“뭐야, 머룬 나무가 이렇게 자랄 수가 있어!”
“머룬 열매가 이렇게 크다니!”
“저 잔나비가 머룬을 먹고 있었던 거야?”
“껍질째 먹으면 엄청 쓸 텐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이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듯이 떠든다.
―흐흠,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머룬 열매가 더 작은 나무에서 더 조그맣게 맺히는 모양이군. 이 숲에서는 정령의 가호가 있으니 꽤 크고 굵게 맺혀 놀라는 모양이다. 근데, 투란 너…… 머룬 본 적 없는 거냐?
‘없어. 비슷한 거는…… 멜론? 떠밀려온 숲에서 멜론이 우르르 쏟아진 적이 있는데, 그게 이거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뭐, 그쪽 껍질이 훨씬 부드럽기는 했지. 손톱으로 찔러도 자국이 남았으니까. 아, 그거 껍질도 씹으면 조금 썼지만 이렇게 쓴맛은 아니었는데?’
투란은 대답하며 머룬 열매를 하나 더 주워 껍질을 깎아 내고 입에 물었다.
차분하게 다시 씹으니 넝쿨 딸기와 다른 단맛, 아삭거리면서 풍성하게 입안을 채우는 즙이 투란의 마음에 들었다. 이런 것을 껍질째, 강한 이빨과 입을 지녔다고 날로 씹어 먹는 잔나비가 살짝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뭔가 한번 올려다보며 웃어 주고 싶기도 해서 투란이 고개를 들어 보니…….
팍팍, 퉤퉤. 으적으적.
조금 전까지 머룬을 껍질과 함께 물고 으깨 먹던 잔나비 녀석이 이빨과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 내며 속알맹이만 먹고 있잖은가!
“뭐여!”
투란이 어이없어 한 소리 내자…….
“너 보고 배웠군. 과연 짐승이랑 소통하는 능력이 있었던 거로군! 소통하다가 닮아 버렸어! 그러니까 먹을 것을 그렇게 짐승처럼 골라 집는 거였어!”
칼잡이 카엘이 뭔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악악거리는 소리로 대꾸하잖나.
마켈이 그 삐딱함에 한숨을 쉬고 투란을 보며 말한다.
“잔나비, 나름대로 똑똑하잖아. 사람이 하는 짓을 곧잘 흉내 낸다고.”
하지만 라펜은 삐딱함에 보태듯이 말하니…….
“잔나비가 먹을 것을 알려 줬고, 투란은 먹는 법을 알려 주고…… 좋은 파트너가 되잖겠어? 투란, 쪼그만 놈 하나 잡아서 데려가지그래? 데려가 가르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투란은 다시 잔나비 쪽을 올려다봤다.
한 마리가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껍질 벗겨 먹는 재주가 주변 잔나비 모두에게 번져 간 듯, 이제는 원래 잔나비가 머룬 껍질을 벗겨 먹을 줄 아는 걸로 보일 지경이었다.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된 듯한 기분에 투란이 잔나비 쳐다보기를 관두고 앞을 보니…….
“이게 다 머룬이라니!”
“주워! 빈 주머니에 담아 둬!”
“누구 보자기 큰 거 없나?”
“배낭 빈틈에 끼워 넣으라고!”
“껍질 단단하니까, 막 쑤셔 넣어!”
켈타 마을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끌어모아 담고 있었다.
덕분에 선두에서 길을 열던 테란이 멈췄고, 베즐 팀은 리더인 베즐부터 맹한 표정을 한 채로 이 사태가 대체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를 고찰하는 듯하더니…… 결국 다들 투란을 향해 한 번씩 눈을 흘겨 댔다!
투란으로서는 뭔가 괜히 억울한 기분이 무럭무럭 피어났지만, 베즐 팀은 그냥 잠깐 흘겨본 다음에 바로 숨을 돌리고는 마을 사람들이 열매 줍기 하는 주변으로 느슨하게 흩어지면서 제대로 쉬는 모습이었다. 투란 가까이 있던 칼잡이 카엘은 아예 열매 줍기에 섞여서 몇 개 주워 담고 있었다.
라펜이 그런 광경을 보다가 넌지시 마켈에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머룬 맛있잖아, 혹시 배낭에 빈 자리 없냐? 오면서 좀 먹었으니까 몇 개 담을 수 있지 않아?”
“눈치 보지 말고 담고 싶으면 담아.”
마켈은 조금 매정하게 대꾸했다.
라펜은 살짝 헛기침을 하면서 슬슬 허리를 굽히며 투란을 향해 방긋 웃고는 재빨리 열매 몇 개를 주워 담았다.
투란은 어이없어하다가 라펜 너머로 막 몸을 일으키는 칼잡이 카엘과 눈이 마주쳤고, 참을 수 없어 한마디 해야 했다.
“줍는 모습이 짐승 같았어요.”
“네 덕이지!”
팍, 엄지를 치켜올리면서 칼잡이 카엘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크윽! 두, 두고 보자!”
투란은 분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마켈이 한숨을 쉬었고, 라펜은 킬킬거렸다.
그렇게 해서 때아닌 열매 수확이 잠시 이어졌고, 일행은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매를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그레이우드를 바라보게 된 일행은 자신들이 아는 것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이것저것 줍고 따 보고 있었으니, 새삼 그레이우드가 이전에 자신들이 알던 곳이 아니란 사실을 깊이 느끼는 분위기가 짙게 퍼지고 있었다.
딱.
테란이 나침반을 닫아 주머니 속에 넣으면서 긴 한숨을 쉬었다.
그다음에 부쳐스 엣지도 배낭에 담으며, 테란은 돌아서서 크게 외친다.
“숲이 끝났어! 어이, 내 말 듣냐아!”
“어, 보고 듣고 있잖아…… 우걱우걱.”
입에 가득 먹을 것을 문 채로 베즐이 느슨하게 대답했다.
그런 베즐의 뒤편으로 부푼 주머니, 배낭을 가득 멘 켈타 마을 사람들과 베즐 팀 멤버들이 보였다. 그 속에 슬리피가, 그 뒤편에는 라펜과 마켈이 보이는데 역시 뭔가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중이었다.
테란은 그 광경에 한숨을 쉬었다.
길을 열기 위해 부쳐스 엣지로 큰 나무를 베고 잔가지를 치며 맨 앞에 선 탓에 테란만은 저 풍요로운 수확에 한몫하지 못했다. 하지만 테란이 열고 나온 길을 따르며 일행은 아주 신나게 수확했다!
“망할! 대신 좀 칼질해 달라니까…….”
투덜거림이 테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가까이 다가오며 베즐이 대꾸한다.
“간 밤에 배 불리 먹었잖아.”
“이미 어제잖아! 오늘은…….”
테란의 투덜거림에 베즐은 고개를 싹 돌렸다.
숲을 가로질러 건너는 데 하루가 걸렸다.
밤에는 이동을 멈췄고, 무성한 나무를 몇 그루 토막 내서 간이 오두막을 꾸며 머물렀다. 그사이에 테란에게 이것저것 주워 담은 것을 맛보게 해 줬는데, 테란은 자기 배낭이 크니 선두에 다른 녀석이 서고 자신은 좀 더 많이 주워 담겠노라 했다. 다들 그건 싫다고 고개를 저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테란이 계속 선두를 맡았는데…… 뒤따르는 이들은 그레이우드의 풍요를 즐기며 잔뜩 집어 오는 사이에 테란은 부지런히 칼질만 하는 꼴이었다.
그 억울함을 베즐이 저리 외면하다니, 테란은 심통 난 표정으로 뚱한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간 못됐어! 그래서, 이 못된 리더야. 어쩔 거야, 여기서부터 방향이 틀어진다고…… 엘데인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고…… 중간 마을에 들르는 길이 있지. 주워 처먹느라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결정할 때라고.”
“쳇.”
베즐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면서 팀 멤버들에게 눈짓했다.
슬그머니 베즐 팀 멤버들이 모였고, 그사이에 슬리피도 살짝 끼어 있었다.
베즐이 저쪽을 다시 한번 보며 라펜과 마켈, 투란에게도 눈짓을 해 보는데…… 눈이 마주쳤음에도 셋은 마지막까지 그레이우드의 풍요를 수확하겠다는 듯이 이쪽으로 아예 올 생각이 없다고 고개까지 젓고 있잖은가!
슬리피가 찌푸린 베즐의 표정을 보고 말한다.
“결정하면 따라올 거래.”
“편리하구먼! 나중에 저놈들 파티 만나면 꼭 갚아 주지! 슬리피, 마을 아저씨 한 명 데려와야 하는 거 아냐?”
베즐이 투덜거리면서도 슬쩍 곁눈질하며 슬리피가 켈타 마을 일행을 대표할 수 있는가 확인했다. 슬리피는 잠이 보자라 지치고 피곤한 얼굴부터 보이며 대답한다.
“이웃 마을에 꼭 들러야겠단다. 의논이고 뭐고…… 설득할 수가 없어. 여기서부터 여차하면 자기네끼리라도 간다고 할걸.”
활잡이 카엘이 여기에 보태 말한다.
“숲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봐. 어지간하면 그냥 눌러살고 싶다던걸. 어젯밤에 지어 놓은 오두막, 그런 거 두어 채면 조그마한 켈타 마을이 될 거라고도 했어.”
베즐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몰살당한다고. 아직은 괜찮겠지만…… 얼마 안 가서 갈기산맥의 마수가 찾아들 테고, 남쪽에서 오는 놈들 중에 느린 것들도 결국은 이 숲에 들어설 거야. 겨우 이십여 명으로는…… 애까지 낀 채로는 버티질 못해.”
“응, 그런데 말 들을 생각이 없어.”
활잡이 카엘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슬리피를 보며 말했다.
슬리피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그냥 내팽개치고 가도 되긴 하겠는데…… 베즐, 너네 생각은?”
“헛지랄할 때냐? 그럴 거면 융카네 포개 놓은 마을에 그냥 두고 오자고 했어야지! 이제 와서 무슨…….”
낮게 낮춘 목소리였지만 베즐은 울컥한 기분을 감추지 않고 토해 냈다.
슬리피는 애매하게 쓴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다물었다.
테란이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 선택할 여지가 없구먼? 일단…… 엘데인으로는 돌아가는 길이라도 마을로 들러가야지. 그래도 가는 길에 잔뜩 맛있는 거 먹고 챙겼으니 기분 나쁜 하루는 아니겠지. 베즐, 기분 풀라고.”
베즐은 팀 멤버를 둘러봤고, 다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꼴을 봤다. 그래도 치솟은 짜증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베즐이 저쪽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면서 외친다.
“야! 작작 좀 하고 나오라고! 거기서 살 거냐! 앙! 그만 좀…… 야, 입이 창고냐! 처물고 나오지 말란 말이야!”
이미 켈타 마을 사람들이 다 벗어난 숲의 끝자락에서, 투란과 라펜, 마켈이 아직 부스럭거리며 꾸물대는 광경을 향한 소리였다.
물론 이런다고 저 셋이 날렵하게 나올 리가 없단 것을 베즐도 알고는 있었다. 그저 답답해진 기분을 어떻게든 토해 내고 싶어서 지른 큰소리였는데…….
“아니, 우리 리더 말을 뭘로 듣고 꼼짝도 안 해!”
테란이 셋이 꾸물대는 숲 끝자락을 향해 냅다 달려가잖는가!
남은 베즐 팀 멤버들이 어이없어 보니, 테란은 달리면서 배낭 주둥이를 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두에서 못 한 일을 이 틈에 좀 해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저편에서 그 모습을 보며 투란은 히죽 웃었다.
‘착하구먼, 다들…… 상냥하고 마음 여린 헌터 팀이라…….’
―착하기도 하고 상냥하기도 하겠지만, 그 여리다는 말의 기준은 대체 뭐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생각에 냉큼 딴지를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