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9)
먼 곳을 향해 내려가는 느슨한 굴곡(屈曲)이 보이는 평원, 거기에 우뚝 선 목책이 둘둘 말려 똬리를 튼 것처럼 자리 잡은 광경이었다. 목책 주변으로는 쓰러진 짐승의 모습이 간혹 보였고, 그 짐승과 엉긴 듯한 사람 시체도 보였다.
고요한 듯하지만 얼마 전까지 굉장히 치열했을 듯한 상황의 증거는 목책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할퀸 자국, 핏자국 같은 흔적으로…….
때문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마을을 눈에 담으면서도 일행은 멈춘 채로 주변을 경계하면서 의논할 수밖에 없었다.
“매드독이지?”
“랩티드도 몇 마리 섞여 있어.”
“두 종류가 서로 싸우면서 마을을 노렸던 모양인데…….”
“설마 저 마을 사람들, 나와서 싸운 거야?”
“아니, 끌어내려진 모양이다. 목책 높이가 3, 4미터 언저리잖아. 랩티드가 발이 둘 뿐이라도 저 정도는 바로 밟고 달려 올라갈 수 있잖아.”
“안으로 뛰어든 놈도 있을 테지.”
“한 마리만 뛰어들었어도 피해가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
“목책에서 떨어졌다가 매드독에게 물려 미친 채로 싸우다 죽기도 했나 봐. 눈 뜨고 죽어 있는데 눈알이 벌겋구먼.”
활잡이 카엘이 렌즈 낀 눈만 뜬 채로, 자세히 보이는 어떤 시체의 상태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중얼거렸다.
멀리 보이는 풍경에 대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관측하던 일행이 조용해졌다.
마을 가까이 다가가면, 지금 활잡이 카엘이 선명하게 보는 광경을 다들 맨눈으로 봐야 할 상황이었다.
“안은…… 어떤지 모르나?”
조심스럽게, 켈타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물었다.
활잡이 카엘이 살짝 고개를 치켜들면서 렌즈를 손끝으로 문지르다가 대답한다.
“쉬는 중인가 보네요. 경계도 구멍으로만 내다보는 수준이고, 목책 위로는 아예 올라올 생각이 없어 보여요. 목책 위에 선 채로 방어하다가…… 거의 다 피해를 입은 모양이네. 목책 문 너머로 울타리를 하나 더 쳐 놓고 있어.”
이 소리에 한구석에서 라펜이 중얼거린다.
“목책 너머가 대체 어떻게 보이는 거냐고.”
마켈이 인상을 쓰면서 라펜을 흘깃했다.
신기한 마도구를 지녔고, 굉장한 그 효과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의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 꺼낼 말은 아니잖은가!
베즐은 그런 라펜의 말도, 마켈의 눈길도 외면하듯이 켈타 마을 사람들을 보며…… 긴장해서 다 같이 자세를 낮춘 채로 목책 쪽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묻고 있었다.
“저쪽 상황도 그리 좋지 않군요. 어쩌실 겁니까?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들러는 보겠지만…….”
대답은 금방 나왔다.
“어쩌면 우리가 도울 수도 있잖은가? 우리가 아는 약초 몇 가지가 도움이 될 수 있잖겠나?”
켈타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 꺼낸 이를 바라봤다.
적절하게 좋은 말을 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듯…….
하지만 베즐의 표정은 전혀 좋지 않은 쪽으로 구겨졌다.
베즐 팀 멤버들도 어두운 낯빛을 띠고 있었다.
슬리피가 가만히 입을 연다.
“마을에 들러 돕겠다는 헌터 일행에게 그렇게 친절할 수 있겠어요? 저 마을도 알드바인이 싫고, 엘데인이 싫은 사람들이라고요. 몬스터보다 몬스터 헌터가 더 싫고 귀찮다는 사람들 기분, 알잖아요?”
켈타 마을 사람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중 누군가가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한다.
“분명히 우리는 헌터를 그리 좋아하지 않네. 하지만 모든 헌터가 다 싫다는 거는 아니지. 그리고…… 우리는 켈타 마을의 생존자가 아닌가. 우리 사정까지 외면하고 모르는 척할 리는 없잖겠나?”
베즐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끝에 매단 듯한 단호한 말이 베즐 입에서 흘러나온다.
“여유가 없을 수도 있어요. 저렇게 험한 일을 겪은 다음이니 말이죠. 아무튼,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 문은 두드려 봐야겠죠. 음, 어쩌실래요? 우리가 먼저 가서 말을 걸어 보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아니, 저런 상황에서 찾아온 사람이 헌터라면 오히려 경계할 수도 있잖은가. 사냥감을 이리 몰아왔다고 여길 수도 있고 말이야. 우리가 먼저 모습을 보이고 말을 거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자네들에 대해서도 미리 말을 해 둘 수 있으니까.”
재빠르게 나온 켈타 마을 쪽의 이야기에 베즐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일행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순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켈타 마을 사람들이 일단 앞장서고, 그 틈과 주변으로 슬리피와 베즐 팀이 흩어져 호위하는 진형을 짜고…… 라펜과 마켈, 투란은 맨 뒤쪽으로 조금 더 느슨하게 처진 채로 상황을 둘러보면서 따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목책 가까이 다다랐을 때…….
팍!
“누구냐!”
경고를 위한 화살 한 대가 목책 틈새에서 쏘아져 나와 켈타 마을 사람들 앞쪽에 꽂혔다.
“이봐! 우린 켈타 마을에서 왔어! 보라고, 우리 얼굴 아는 사람 있잖나! 우리야, 이웃이라고!”
“켈타? 거긴…… 엘데인 말고 제일 가까운 마을? 흠…….”
목책 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있었고, 유난히 크게 확대된 듯한 소리는 켈타 마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채로 설명을 듣는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는 켈타 일행의 분위기를 조금 어둡게 했다.
이웃 마을이라 했지만 며칠 거리를 둔 채였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서로 이웃이라 부르며 민망해하는 수준이란 것이 새삼 마음에 와 닿은 듯했다.
“알아?”
하지만 곧 누군가 뭐라 떠들고, 큰 목소리가 확인하려는 듯이 되묻는 말은 켈타 마을 사람들 표정을 조금 밝게 했다. 목책 너머 누군가 자신들을 알아보고 확인해 줬으니 이제 제대로 대화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여긴 무슨 일이지? 그 꼴은 뭐야? 어이, 저 뒤는 헌터잖아? 저 헌터들도 그 마을 소속인가?”
큰 목소리가 다시 날이 선 듯한, 잔뜩 경계한 말투로 묻고 있었다.
목책 너머에서 떠드는 소리 중에 유난히 크게 울려 나오는 것이 신기한데, 켈타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신기함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는 말이었다.
물론 맨 뒤에서 거리를 둔 채로 구경하는 투란은 그게 뭔가 굉장히 신기해하며 드라고니아랑 의논할 여유가 넘쳐났다.
‘야, 저게 뭐야?’
―뭐긴, 목소리를 확대한 거잖아.
‘와, 저런 마법도 있다니……!’
―응? 저게 신기해? 군단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마법이잖아?
‘어? 아, 여러 사람에게 말할 때 편리하긴 하겠다!’
―군단 구경은 못 해 봤냐?
‘목소리 크면 일찍 죽는 헌터 구경만 많이 해 봤지.’
―끄응! 그런데…… 저건 좀 느낌이 묘하군.
‘어? 묘하다니?’
―마법이라기보다는…….
드라고니아가 뭔가 짚으려 할 때, 목책 너머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투란이 단박에 거기 집중해야 할 정도로 크고 강렬한, 거의 포효라 할 지경의 외침이었다.
“누가 왔다고? 기다려라! 내가 확인해 보겠다!”
목책 너머에서 화살을 날리고 경계하는 이랑은 말투부터 완연히 달랐다.
게다가 여태 떠들던 이를 당황시킨 듯도 했다.
“예? 사, 사제님! 잠시……!”
목책 너머의 기척이 조금 부산스러웠다.
목책 멀리 있다가 다가오는 듯한 것이 꽤 분명했다.
투란은 조금 전의 목소리 큰 상황에 대해서 홀랑 잊었다.
“우와, 무슨 사제길래…….”
라펜과 마켈도 놀란 소리를 곁에서 함께 내고 있었다.
“벼락치는 것 같잖아?”
“천둥이라도 섬기는 사제인가?”
베즐 팀도 꽤 어리둥절한 채로 가까이 있는 켈타 마을 사람들에게 슬쩍 묻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켈타 마을 사람들도 완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이 마을에 무슨 사제가 있는가 전혀 모르는 듯한데…….
화아앗!
노란 빛이 목책을 물들이다가 번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빛의 출현은 켈타 마을 사람들부터 베즐 팀을, 슬리피조차 ‘뭐야!’라고 잠이 확 깬 소리를 내게 했다.
노란 빛은 누르스름하게 흙을 물들이면서 느릿하게 목책 밖의 사람들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었다.
투란이 라펜과 마켈을 향해 중얼거린다.
“엄청 성질 급한데요? 뭔데 대뜸 마법부터 날리는 거죠?”
라펜이 고개를 팍팍 저었다.
“투란, 사제한테 마법 쓴다고 하면 쇠뭉치 날아든다고! 신앙술이라고 하든가, 성마법이라고…… 아, 이것도 마법 소리 들어가네?”
마켈은 둘에게 바로 핀잔을 준다.
“구경꾼이냐? 경계해! 괜히 사람 기절시키는…….”
느릿하게 번져 나온 빛이 마켈의 발아래 도달했고, 마켈은 하던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라펜도 자기 볼을 꽉 잡으면서 눈을 부라리며 노란 빛이 더듬는 것에 저항하는 듯한 태도였다.
투란은 그 광경을 곁눈질하면서 차분하게…… 헌터스 배너의 오러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가만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다렸다. 한데 그 순간…….
―흐음, 이거 귀찮아지겠군.
드라고니아가 불쑥 이상한 소리를 하잖는가!
‘뭐? 왜!’
설마 이 오러의 장막을 관통해서 몬스터 엠블럼을 관측할 수 있는 사제의 마법이었단 말인가? 그런 거라면 미리 경고를 해 주고 대책을 마련해 줘야지, 이미 더듬고 지나간 다음에 뭔 소리란 말인가!
―왜 나한테 짜증을 내? 저 사제한테 짜증을 내라고! 저거, 아폴루드…… 아폴리아 태양교단의 분파 사제다. 흔히 망나니 사제라고 하면, 딱 저 분파 사제를 가리키는 말이지. 아, 여기서는 망나니 사제라고 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 아무튼 드라코눔에서 가장 편협한 신전을 꼽으라면 바로 저 작자들이야. 몬스터 엠블럼은 들킬 일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저 분파의 신성력은 오러를 찢어발기고 뚫을 수는 있어도 그 장막 속에 감춰진 진실을 꿰뚫어 보는 거는 불가능하니까.
‘그게 위로냐!’
가만히 설명을 듣던 투란이 울컥했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태양교단이고 뭔 분파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숨기고 있던 것이 들통나지 않는다는 부분은 그럭저럭 다행이라 여겨지지만…… 찢어발기고 꿰뚫는 힘이라면 제대로 위험하잖은가!
하지만 투란은 다시 곁을 흘깃했고, 앞을 바라보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뭐 한 거야?’
―스캐닝.
‘응? 그건…….’
투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스캔, 옵저브…… 모두 관측과 정찰을 위한 마법이었다.
때로는 사물의 안쪽까지 더듬을 수도 있는 마법이기는 한데, 저렇게 목책 너머에서 처음 본 사람들을 향해 마구 날려도 되는 마법은 분명히 아니었다. 특히나 사제가 성스러운 힘을 뿜어내면서 저러는 것은…….
“이게 뭔 짓이야!”
마법 물품, 마도구를 지닌 이들에게는 단순한 실례(失禮)가 아니라, 위협을 가하는 짓이니 베즐처럼 화낼 수 있었다.
팀 리더의 성난 소리에 호응하듯, 베즐 팀 멤버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사, 사제님! 그건……!”
이 상황을 목책 너머에서도 아는 듯, 뒤늦게 말리는 듯한 큰 목소리가 울렸지만, 이미 저질러진 다음이었다.
한데 뒤이은 사제의 목소리는 그보다 더 크게 울리고 있으니…….
“대체 어디서 온 일당인가! 오염(汚染)된 자들이잖아!”
말리는 듯했던 큰 목소리가 바로 사라졌고, 목책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뚜렷하게 피어올랐다. 그 분위기는 확실하게 켈타 마을 사람들을 포함한 이쪽 일행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오염……?”
투란이 중얼거리고 보니, 다들 같은 소리를 입에 담고 있었다.
이쪽에서 저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가 없는 듯한데…….
―아, 시작이구먼. 망나니짓이.
‘어? 야, 대체 뭐냐고!’
―지켜봐라, 태양교단에서 분파임에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잡아떼는 망나니 사제 일당이 뭔지 말이야.
‘야, 무서워! 뭔지 말 좀…….’
투란이 눈을 깜박이며 목책을 바라보는데, 목책 위로 머리가 불쑥 치솟았다.
이어서 사람의 상체가 툭 튀어오르듯이 목책 위에 자리 잡았다.
그 사람이 바로 말을 시작하니…….
“너희들! 그 몸에 잔뜩 배어 있는 몬스터의 체취를 부정할 셈이더냐!”
분명히 사제의 목소리였다.
슬리피가 가장 먼저, 잠이 다 깼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몬스터 헌터인걸요. 깨끗이 박박 씻어도 체취가 남는 거는…… 당연한 것 같군요. 딱히 부정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그리고 사제 곁에 또 한 사람이 머리부터 어깨를 드러내면서 말하니…….
“몬스터 헌터에게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도……!”
딱 슬리피랑 같은 얘기를 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사제는 바로 고개를 팍팍 저으며 켈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채로 외치고 있었으니…….
“헌터 말고! 저자들! 몸에 검은 그리핀의 피가 잔뜩 배어 있다고!”
상황이 조금 묘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