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60)
“인간으로서 그러면 안 되지! 몬스터의 독을 가득 품은 채로 사람 사는 곳에 그렇게 기어들어 오려 하다니! 혼자 죽기 싫어? 아, 혼자도 아니군! 그래서 자기네만 그렇게 당한 게 억울해? 그래서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 오염을 나눠 주고 싶나? 다 같이 오염되면 어느새 오염이란 생각을 못 하게 될 테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가? 그래서 그렇게 땅을 오염시키고 초목(草木)을 죽게 하는 독을 뿌리러 왔는가? 다 같이 불행하면 불행이 당연해져서 괜찮을 것 같고 마음에 위로라도 끼얹은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그런가? 그래서 그렇게 뻔뻔하게 목책을 넘으려고 그러고 늘어서 있어?”
목책 위에서 사제는 확대된 목소리로, 침방울을 눈에 띌 정도로 튕겨 내면서 얼굴까지 벌게진 채로 외치고 있었다. 켈타 마을 사람들을 향한 꾸짖음이었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저 얘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켈타 마을 사람들이 무슨 몬스터의 사도(使徒)가 되어 세상을 망가뜨리기 위해 나돌아다닌다는 듯했다.
“대체 뭐라는 거야.”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커다란 음성이 귓속을 뚫고 들어왔기에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 지친다는 듯, 라펜이 중얼거렸다. 우렁찬 저편의 음성에 몽땅 눌려서 가까이 있는 몇 명도 겨우 들을 수 있는 투덜거림이었다.
투란도 라펜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는 건지, 설명 좀!’이란 눈길을 보냈다. 물론 라펜은 ‘나도 모르겠다고!’라고 대답하는 눈빛으로 ‘너는 알겠냐?’라고 마켈을 바라봤다. 덩달아 투란의 눈동자도 바로 데굴거리며 주변을 훑다가 마켈을 향했다.
마켈은 불편한 표정으로 ‘왜 나한테 물어? 내가 알 게 뭐야!’라는 단호한 침묵을 저지른 다음에 앞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멍텅구리처럼 서 있는 칼잡이 카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칼잡이 카엘은 갑작스러운 자극에 움찔해서 칼자루를 쥐며 마켈을 돌아봤고…….
“요새는…… 저런 신전 아저씨가 하이랜드에 많이 있냐?”
오랫동안 떠나 있다고 돌아온 사람의 티를 팍팍 흘렸다!
결국 뒤편에서는 뒤숭숭한 분위기 사이로 ‘몰라!’ ‘왜 저래?’ ‘뭔지 무섭잖아!’라는 기묘한 공감대가 이뤄지고 말았다.
그리고 앞에서는 켈타 마을의 누군가가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자, 잠깐! 지금 그 말씀은…… 우릴 목책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겁니까?”
목책 위의 사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한다.
“당연하지! 인간이라면 당연히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들어오라 해도 거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에? 그런 겁니까!”
사제의 말에 누가 놀라기도 전에 엄청 큰 목소리로 되물은 이는 사제 바로 곁에 선 자였다. 일행이 도착했을 때 목책 틈새로 경고의 화살을 날리고, 조금 아까도 사제가 성스러운 힘을 뿜어냈을 때 들러붙으며 말리려던 이가 목책 밖의 일행보다 더 놀라서 묻고 있는 셈이었다.
덕분에 베즐 일행부터, 목책 밖의 일행 모두가 ‘한패잖아! 왜 너도 놀라!’라는 눈길을 그에게 지긋이 쏘아 댈 수 있었다.
사제 또한 ‘왜 이 당연한 일에 놀라?’라고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한층 더 허둥지둥하는 모습으로 그가 변명하듯이 말하는데…….
“엘데인에서는 몸에 몬스터 독이 좀 묻었어도 상관한 적이 없거든요. 아, 예…… 제가 엘디인에서만 살다 보니까 말이죠. 그러면…… 저 사람들은……?”
말끝을 흐리면서 얼버무리는 채로 사제부터 목책 안의 누군가를 둘러보고도 있었다. 어쩐지 이 사제의 외침에 대해 목책 안에서는 딱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서 눈치라도 보는 듯한 태도였다.
“엘데인! 그런 사악한 곳의 풍속을 퍼뜨리지 말게나! 사악한 마법사와 사람을 몬스터를 꾀는 미끼로 쓰는 악랄한 자들이 넘쳐나는 곳이잖은가!”
“예?”
너무 큰 목소리로 주고받는 말이라서 듣지 않기가 더 어려웠다.
그리고 그 의미는 꽤 분명하게 목책 밖에 선 일행에게도 전해졌다.
저 사제, 아무래도 좀 이상한 작자로 보인다!
알드바인이든 엘데인이든…… 도저히 이 칠왕국에서 통하는 상식을 지닌 작자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춤추는 산맥을 다 뒤진다고 해도 저런 발상을 하는 이는…… 있더라도 다섯 손가락으로 다 세고 손가락이 남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마을, 뭐 하는 마을이야?”
라펜이 넌지시 앞을 향해 턱짓하면서 칼잡이 카엘에게 말했다.
당장 칼잡이 카엘이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면서 저쪽에 넋 놓고 있는 켈타 마을 사람의 어깨를 살짝 짚으며 묻는다.
“이 마을에…… 저런 사제가 원래 있었어요?”
켈타 마을에서도 성기사인지 성전사인지 있었고, 날려 보낼 때까지 정신 못 차린 사제가 있었다. 그들도 저 목책 위의 이상한 사제랑 같은 신전 소속이었을까? 새삼 묻는 쪽에서 이모저모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답은 금방 나오는데…….
“없었어. 여기는…… 데람 마을이라고 하는데…… 몇 년 전에 죽은 데람 촌장이 기반을 닦았어. 헌터였다고, 데람 촌장은…… 엘데인에서 활약하던 헌터였고 이 마을은 엘데인과 그레이우드, 갈기산맥 기슭을 오가는 중간 거점인데…… 잠깐, 자네들도 이곳 헌터니까 아는 곳이잖아.”
당황해서 엉겁결에 나오던 이야기가 끝자락에서 묻는 말로 맺어졌다.
칼잡이 카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꾸한다.
“알았죠. 몇 년 동안 하이랜드를 떠나 있다가 와 보니, 저런 신전 아저씨가 저러고 있잖아요. 솔직히 데람 할배네 마을에서 저딴 소리 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상상도 못 했다고요.”
“어, 그건…… 그렇긴 하지…….”
칼잡이 카엘은 뒤로 물러서면서 이번에는 마켈과 라펜을 향해 묻는다.
“야, 이거 생각보다 귀찮아졌나 본데…… 데람 할배 죽고 나서 들른 적 있어? 저런 소리 하는데 가만히 있잖아. 요즘 저런 분위기가 유행이야?”
라펜이 입술을 달싹거리려다가 다물었고, 마켈이 조금 더 신중하게 속삭인다.
“우리 파티도 엘데인에는 몇 년 들르지 않았어. 우리가 자주 다니는 사냥 루트는 엘데인이 아니라 루바인 쪽이니까. 그래서 이쪽으로 순찰 보낸다는 말에 눈치 보다 너네한테 빌붙은 거라고.”
“젠장…… 이거 어쩐다.”
칼잡이 카엘은 팀 리더인 베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베즐과 앞쪽의 팀 멤버들은 켈타 마을 사람들, 슬리피와 함께 나란히 선 채로 오염과 인간의 도리에 대해서 열변하는 목책 위의 사제를 보며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해서 구경꾼이 된 듯한 분위기에 어우러진 채였다.
이런 광경을 맹하니 바라보는 듯한 투란은 뇌리로 바쁘게 드라고니아를 보채고 있었다. 우선 저 목책 너머에서는 저 소리에 대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저 엘데인의 헌터는 사제를 말리려는 중인가, 부추기는 중인가!
프로브를 땅속 깊이 움직이게 해서 드라고니아는 바로 저쪽 상황을 알려 주는데…….
“사제님 말씀이 옳아!”
“오염된 주제에 대체 왜 우리 마을에 들어오겠다는 거야!”
“이봐요, 엘데인 헌터 씨! 사제님 훼방 좀 놓지 말아요!”
“우릴 도와준 거는 고맙지만, 저 오염된 작자들을 들여놓자는 말은 하지 말라고요!”
“여긴 데람 마을이지, 엘데인이 아니야!”
목책 위의 헌터와 함께 데람 마을에 들렀다가 함께 싸운 듯한 파티도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들으면서 꽤 당황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상황에 꽤 어이없는 기분을 내색하지 않고 드라고니아에게 그대로 쏟아부어야 했다.
‘와! 독부리 그리핀이 여기 한번 덮치는 꼴을 보고 싶구먼! 그 피를 뒤집어쓰고도 저딴 소리를 하려는지 궁금하네!’
―저 망나니 사제는 그렇다 치고…… 투란, 원래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너네 헌터들 말이야. 이럴 것 같아서 이 마을을 거치지 않고 엘데인으로 바로 가자는 것 아니었어?
‘음? 그건 아니지.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잖아. 그러니까 슬리피를 통해서 상금이라든가, 이런저런 거 조금이라도 장만해 준 다음에 이 마을로 정착지를 옮기라는 거였지. 경계도시라면 그리핀의 피에 중독된 것도 어느 정도 완화해 줄 약을 구하기도 쉬울 테고…… 암튼 엘데인으로 먼저 가는 게 이모저모로 좋았다고. 뭐, 좀 예민한 마을이라면…… 저런 이상한 사제 없어도 비슷한 소리는 했겠지만, 저렇게 심하게는 못 하지. 자기네 처지가 앞으로 어떻게 될 줄 알고……. 근데 저 사제는 대체 왜 저렇게 뻔뻔해? 자기가 몬스터 독에 당하기라도 하면 알아서 외딴곳에 가서 자살이라도 할 거야? 너무하잖아!’
―……할걸.
‘뭐?’
―자살한다고. 저놈들이 괜히 망나니라고 불리는 게 아냐. 자기 멱을 자기가 딸 수도 있는 사형집행자, 그래서 망나니라고.
‘뭔 미친! 사제가 그렇게 미친 경우가 있어? 나 이제까지 그런 사제는 본 적이…… 있네?’
―뭐?
투란은 여전히 오염되었다면 인간답게 멀리 가서 죽을 준비를 하라 외치는 사제를 보며, 거의 잊었던…… 눈탱이가 퍼렇게 되고 팔다리도 매우 복잡하게 부러졌던 어떤 사제를 기억해 내며 입가에 헛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아폴루드 사제를 만난 적이 있다고?
‘응? 아냐. 무슨 신전인지 몰라…… 그냥 오러클 아저씨네랑 조금 다른 신전의 신관인가 뭔가 그랬다고 그랬어. 근데…… 이래저래 저 사제랑 비슷한 소리를 하다가 오러클 아저씨한테 죽도록 처맞았지. 무슨 교단 간의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오러클 아저씨네 성기사, 사제들이 하얗게 질려서 뜯어말리기는 했는데…… 뭐, 이미 팔다리 다 부러뜨리고 칼질해서 패 놓은 다음이라…….’
새삼 투란은 오러클 워리어의 과격함, 앞뒤 가리지 않는 듯했던…… 폭력을 주저하지 않는 그 태도를 떠올리면서 더 짙은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흣.’ 하는 짧은 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한데 이 낮고 희미한 소리를 칼잡이 카엘이 바로 들은 모양이었다.
“투란, 무슨 생각이 있냐?”
“에? 생각이 아니라…… 그냥 옛날에 오러클 아저씨가…….”
투란이 민망해서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는데, 칼잡이 카엘은 바로 눈을 번뜩하더니 입으로 따닥 하는 소리를 내고 저쪽에 손짓해서 아예 베즐을 부르고 있었다. 베즐은 저쪽의 답답한 상황을 더 보기 싫다는 듯이 바로 칼잡이 카엘의 부름에 응했고!
“왜?”
“신전 두목님, 그 오러클 아저씨가 이런 경우를 어떻게 하는 걸 본 모양이야. 투란이 말이야, 나 말고!”
칼잡이 카엘은 베즐이 ‘뭣? 알면 얼른 말하지!’라고 낮은 소리로 성질내는 꼴을 보이려 하자 투란에게 바로 떠넘기는 소리로 말을 맺었다. 베즐은 곧바로 눈을 부릅뜨고 투란을 보며…… 다분히 저쪽 보기 싫다는 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묻는다.
“오러클 두목이 이럴 때는 어떻게 했어? 그냥 얘기해 봐! 그냥 가긴 너무 찝찝하단 말이야!”
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뭔가 부글거리는 그 속을 어떻게든 풀고 싶다는 베즐의 의도를 투란은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달래기 위해서라도 뭐라 말해 줄 수밖에 없다.
“카니페…… 지렁이랑 꼭 닮은 몬스터, 혹시 알아요?”
가까이에서 귀를 쫑긋하던 칼잡이 카엘, 라펜이 바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지만 베즐과 마켈은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서로를 보더니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한다.
“살갗에 들러붙어 기생한다는 거잖아?”
“몬스터라서 그런다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어.”
투란은 칼잡이 카엘과 라펜을 흘깃하며…….
“본 적은 없어도, 신전 사람이랑 다니다 보면 들은 적이 있을 텐데…… 없어요? 흠, 그럴 만하긴 해요. 신성력을 끌어쓸 수 있는 신전 사람이 아니면, 그거 그냥 지렁이거든요. 카니페, 그 지렁이랑 똑같이 생긴 몬스터는 딱 신성한 힘을 끌어내는 사람 살갗에만 파고들거든요. 몬스터인 주제에 신성한 힘에 기대서 기생하는 경우라…….”
“헐, 별게 다 있구먼.”
“그래서, 그걸 어쨌다고?”
라펜과 칼잡이 카엘이 갸웃하며 베즐과 마켈을 보고 확인한 다음에 중얼거렸다.
같은 파티, 팀이라도 그 이전에 각자 다른 경험을 쌓아 온 탓에 아는 바도 조금씩 차이가 났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투란은 잠시 망설였다.
베즐이 이를 눈치챈 듯 잽싸게 말한다.
“일단 얘기나 들려줘. 저 사제 덕분에…… 다들 정신 나가게 생겼다고. 오러클 두목님이 뭘 어떻게 했지?”
먼저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서 볼로 흐르듯 스쳐 갔다.
어째서 그 기억이 그토록 희미했던가…….
오러클 워리어가 샤오콴 마을에 온 지 닷새가 되기 전에 터진 일이라서 그랬다.
그 뒤로 2년여 동안 그보다 더 격렬하고 황당한 일이 많았으니까…… 그냥 사제 하나 쥐어 패고 난도질 좀 쳐 놓은 일 따위는 투란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 전쟁? 하면 하는 거지! 지금 오해를 받을지 모른다 해도, 그 때문에 신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해도! 어찌 몬스터에게 살이 파먹히다가 말라 죽는 꼴을 그냥 두고 본단 말이냐!”
‘그렇게 터무니없는 허풍을 치고 시작했지.’
점차 또렷해져 가는 기억을 정리하면서, 투란은 저쪽의 사제가 결코 듣지 못할 이야기를 슬그머니 늘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