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65)
사악!
하피의 목이 잘렸고, 머리통은 투란 앞으로 굴러왔다.
그 등짝을 밟아 누르면서 빛의 칼날을 거둔 베즐이 주변을 둘러보는 채로 투란 앞에 섰다.
“그럭저럭 정리된 거지?”
활잡이 카엘이 이에 바로 답한다.
“아, 그럭저럭. 딱 여기 이 근처만…….”
투란은 데굴거리며 굴러와 발끝에 닿은 하피의 머리통을 보고, 쓰윽 뒤로 몸을 빼면서 숨을 골랐다. 이 하피는 저 멀리서 파닥거리다가 쉬운 상대를 노린 것처럼 가만히 몸을 낮춘 투란을 향해 날아왔다가 활잡이 카엘이 화살에 맞고 뒹굴었고 다시 일어나 날개를 끌며 뛰다가, 베즐에게 등을 밟히며 목이 잘렸다. 이 한 마리를 끝으로 일행을 노리며 달려드는 근처의 몬스터는 정리된 셈이었다.
곧이어 베즐 팀과 마켈, 라펜이 피와 땀, 검은 얼룩에 물든 채로 돌아왔다.
투란은 그들 몸의 검은 얼룩이 미묘하게 하얀 김을 피어올리면서 스러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땀에 젖은 얼굴, 여기저기 튀어 묻는 피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머드 퍼피티어에게서 묻어나온 검은 얼룩은 증발하듯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저주가 해제되고 있어. 이제 보니 정화력을 지닌 도구를 하나씩 지녔던 모양이다. 어느 신전의 부적인가?
드라고니아가 그 내막을 파악한 듯이 중얼거렸다.
‘저주면, 퍼피티어?’
―그래, 저 머드 퍼피티어의 능력이 저주 계통이야. 그리 세다고는 할 없고, 어느 정도 정화력을 지닌 도구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퍼피티어 개체 간에 힘의 격차는 있겠지만…… 뭐, 이 근처의 녀석들이라면 지금 네 손에 든 정화의 검 정도로도 대응할 수 있겠는걸.
‘흐흠, 라펜의 사슬도 그런가 보네?’
투란은 라펜이 빌려 간 검의 칼날에 묻은 검은 얼룩이 빠르게 증발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저 검정색 칼자루의 검에는 정화하는 기능 따위는 없었다. 그저 단단하고 예리한 검이었다. 라펜의 손에 들려 달라진 점이라고는 손목에서부터 감아 흘러내려 칼자루와 칼날 밑동을 감고 있는 은색 사슬이 걸린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정화의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니…… 은색 사슬이 바로 라핀이 저주 따위에 대항하기 위해 갖고 있는 도구일 터였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라펜은 팔뚝에 저 사슬을 감았던 듯하니, 아무래도 머드 퍼피티어의 저주 능력에 대해 알기 때문에 한 짓인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설명은 전혀 해 주지 않았고!
―확실히 그런 용도로군. 여기서 정화의 도구가 없는 이는…… 저 켈타 마을 사람들과 데람에서 합류한 헌터들이 없다. 아, 저 졸탄의 경우에는 하나 가진 모양이기는 하다만.
다시 일행의 장비를 관측한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는 사이, 투란은 라펜이 곁에 와서 검으로 땅을 짚고 서는 모습을 봤다. 냉큼 손을 내밀어 빌려 준 검을 받으려 하니…….
“아직…… 좀 더 휘둘러야 할 것 같다고.”
라펜이 피곤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은 갸웃하면서 손을 거뒀다.
어차피 아직 검에 묻은 검은 얼룩이 좀 남은 채이니, 다 지워진 다음에 받는 것이 좀 더 좋지 않은가? 그래서 투란이 다시 베즐 쪽을 보니…….
“무, 무슨 말이오! 도, 돌파라니!”
베즐에게 낮게 몇 마디 들은 켈타 마을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 졸탄 일행도 많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라펜이 ‘그렇지…….’라고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고, 투란은 귀를 쫑긋하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어 보려 했다. 이렇게 투란처럼 다들 눈길을 주는 와중에 베즐은 꾹 눌러 참는 목소리로 말하는데…….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몬스터를 못 본 거라고요. 지금 되돌아가려 한다면…… 하피 떼와 저 진흙 덩어리 괴물이 우릴 쫓을 겁니다. 엘데인의 성채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니, 주변을 헤매면서 쉬운 먹잇감을 찾는 중이라고요. 덤불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말이죠. 게다가 오는 길에 멀리서 봤던 매드독 따위도 되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면 명백하게 우리를 먹잇감으로 알고 덤빕니다. 알드바인까지 돌아가려고 한다면, 많이 죽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그치만…… 자네들 강하잖아! 자네들이 우릴 지켜 준다면 매드독 따위는…….”
짜악!
켈타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베즐의 말에 뭐라 하려다가 갑자기 귓가에 터진 손뼉 소리에 움찔해서 말을 멈췄다. 누군가 하고 보니 슬리피가 바로 그 곁에서 손을 내리면서 말한다.
“아저씨, 매드독 수백 마리가 데람 근처에서 돌아다니다가 우리 냄새를 쫓고 있다고요. 켈타에서 바로 알드바인으로 향했다면 몰라도, 지금 알드바인으로 간다고 돌아서는 거는…… 아저씨네 전부 죽이겠다고 작정하는 거랑 똑같아요!”
“매, 매드독? 우, 우린 그런 거 오면서 못 봤…….”
말을 더듬으며 다시 켈타 마을 사람이 떠들려 할 때, 헛기침을 하면서 졸탄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그거 때문에 우리가 빌붙었거든요. 오면서 매드독 무리가 밟고 간 흔적을 꽤 많이 봤어요. 매드독은 사냥로를 정하면 계속 왔다 갔다 해요. 한번 지나가면서 남긴 냄새가 다시 나타나면 반드시 쫓아온다고요. 여기서 살길은…… 정말로 엘데인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에요.”
켈타 마을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베즐이 말했고, 마을과 친분이 있는 슬리피가 말한 데다가 분명히 빌붙어 온 졸탄까지도…… 그리고 졸탄의 일행도 미미하게 ‘돌아가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물려 죽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몬스터 헌터가 이렇게 확신을 품은 상황에 의심을 품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방금 전에 몬스터와 사투(死鬪)를 벌이던 이들이었고…… 그 때문인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압박을 느끼게 해 줄 지경인데 힘줘서 말하니 더욱 따지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투란은 그런 광경을 보면서 조금 의아해하고 있었다.
‘매드독이 수백 마리…… 있었냐?’
―백 단위는 아니지만 십 단위라면 분명히 주변에서 맴돌았지. 뭐, 굳이 매드독만 세자면 그렇고, 그보다 멀리 보이던 그리핀 떼도 있었고 랩티드 패거리도 좀 보였고…… 음, 또 뭐 있더라? 그냥 멀리 스쳐 가느라 접점이 없던 몬스터나 짐승까지 세 보자면…….
‘됐어! 알았어!’
드라고니아의 친절한 되새김에 투란은 일단 검을 다시 꽂아 넣고, 배낭을 당기면서 활을 분해하려고 했다. 화살이 떨어졌으니 다시 분해해서 담고 등에 멘 다음에 검을 위주로 움직이려는 생각이었다. 한데…….
“어, 잠깐! 투란, 그거 좀 빌려 줘야 해.”
갑자기 베즐이 홱 고개를 돌리며 말하잖는가.
“에? 빌려…… 왜요?”
사람 괴롭히려고 무딘 칼을 빌려 쓰기도 했고, 그리핀 팔락대며 나는 꼴을 두 다리로 따라잡을 수 없어서 작은 쇠뇌를 빌리기도 했던 베즐이기는 한데…… 지금 투란의 활을 갖다 어디다 쓰려고 빌리려 하는가?
베즐은 엄청나게 의아해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무슨 생각이냣? 불어!’라고 캐묻는 투란의 눈길에 한숨부터 쉬면서 한곁을 향해 주먹에서 내민 엄지로 가리며 말한다.
“내가 쓸 거 아니고, 저 녀석한테 빌려 주라고. 켈타 마을에서 나름대로 짐승을 사냥하던 친구라는데…… 어이, 자네 이름이 뭐였지?”
“가룬.”
앙상한 몸집으로 조금 힘겨운 듯 서 있던 한 명이 바로 앞으로 나서면서, 왠지 핏줄이 번진 듯한 눈길로 사납게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꽤 뜬금없는 상황이었는데, 투란만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장 슬리피부터 입을 여니…….
“가룬, 도망치는 짐승 쏘는 거랑 달려드는 몬스터 쏘는 거는 전혀 다른 일이야.”
말리는 소리가 무겁게 흘러나오잖는가.
투란은 뭔 일인가 애매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대신 곁에서 라펜이 피식 하는 작은 웃음과 함께 건들대는 소리를 대놓고 풀어놓고 있으니…….
“빗맞혀도 깨물리고, 쏴 맞혀도 깨물리지. 몬스터한테 활질은 참…….”
“시끄러워! 맞히란 소리 안 했거든! 우리 활잡이 옆에서, 투란이 하던 것처럼 대충 쏘면 돼! 맞히려 하지 말고, 견제만 하는 거야.”
베즐이 바로 라펜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다시 가룬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켈타 마을 사람들은 라펜의 말에 흠칫하면서 부르르 떠는 모습으로 가룬을 바라보는데, 뭔가 말리고 싶지만 말릴 말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을 등 뒤에 놓은 채로 가룬이 말한다.
“할 수 있어요. 맡겨 줘요.”
투란은 말과 함께 가룬이 조금 험악하게, 어딘가 무시무시하게 자신을 노려본다는 것을 눈치챘다. 과연 이런 이상한 녀석에게 활을 넘겨야 하는가?
베즐이 곁에서 보채는 소리를 낸다.
“투란, 빌린다고! 아예 주란 소리가 아니라고!”
“에, 그치만…… 화살이 없는데…….”
배낭의 활 주머니가 빈 꼴을 보이며 투란이 슬슬 내빼는 소리를 냈다.
베즐은 냉큼 한쪽을 보며 외친다.
“테란! 화살!”
“꽉 채워 주지!”
테란이 바로 다가와 한 움큼의 화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들이밀었다.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이 중얼거린다.
“대체…… 얼마나 갖고 다니는 거예요?”
뭔가 테란이 일행의 소모품을 챙겨 갖고 있는 양이 슬슬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많아 보이기 시작할 지경이었다.
“비밀!”
테란은 짓궂게 대답하며 혀를 날름했다.
베즐이 그 꼴을 보며 다시 입을 연다.
“테란, 슬리피에게도…… 그거 꺼내 줘.”
“응? 슬리피……? 휠(Wheel)?”
“그래, 원래 잘 쓰던 거잖아.”
“으흠…… 뭐, 어쩔 수 없나.”
테란이 베즐과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자기 배낭을 뒤적였고, 손바닥 위에 꽉 쥐여 줄 듯한 두툼한 원반 둘을 꺼내 슬리피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슬리피는 바로 받지 않고 다소 굳은 표정을 짓는데…….
“뺄 때냐? 까불지 말고 할 수 있는 짓은 전부 다 해 보라고. 널 앞에 세울 생각은 없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서든, 그 앞에 서든…… 알아서 서서 보조 맞춰 움직여. 그러면…… 졸탄! 당신은…….”
베즐이 냉큼 테란의 손에서 원반 둘을 집어 들고 슬리피 두 손에 꽉꽉 눌러 쥐어진 다음에 졸탄 쪽으로 돌아서니, 슬리피는 조금 찌푸린 표정으로 멍하니 자기 손에 쥐어진 원반을 내려다봤다.
투란은 무슨 사연인가 궁금했지만, 그보다 먼저 라펜 쪽으로 묻는다.
“저거 혹시…… 블레이드 휠?”
“어. 원래 슬리피의 특기였을걸? 몇 년 전에 말이야.”
라펜이 툭 하니 대답하면서 슬리피랑 눈길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싹 돌렸다.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내던지면 칼날이 튀어나온다는 바퀴형 무기를 바라보는데…….
“저기…… 활이랑 그 활 주머니…….”
가룬이 쓰윽 다가오면서 두 손을 내밀잖는가.
투란이 움찔하며 대꾸한다.
“아, 이거 좋은 배낭이거든요! 그러니까…….”
“칼집도 떼서 같이 맡겨라! 걱정 마라, 가룬이 떼먹으면…… 우리가 쫓아가서 되찾아 줄 테니까!”
이러쿵저러쿵 일행에게 이뤄야 할 진형에 대해서 떠들던 베즐이 어느새 돌아서서 투란의 두 손에서 활과 배낭을 싹 낚아채 가룬에게 넘기며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투란이 ‘엥? 칼집?’이라고 하는 사이, 마켈이 투란의 어깨를 짚으며 보태듯이 말한다.
“저 성채 안에 들어서기 전에는 칼날 치울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제 제대로 칼질 좀 할 때라고!”
베즐이 으르렁거리듯이 투란의 눈가에 낯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투란이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징징대는 소리를 낸다.
“칼질이라니…… 나한테 왜!”
“누가 앞장서래? 내 뒤에 바싹 붙어서 뒷정리만 하라고! 그러면 그 뒤처리는 칼카가 할 거야. 그렇게 길을 뚫고 가야 하니까. 마켈, 라펜이랑 너네는 활카랑 같이 맨 뒤에서 서. 가룬, 너도 뒤야. 졸탄, 아까 말한 대로 하고!”
베즐은 휙휙 고개를 돌리면서 빠르게 명령했다.
투란으로서는 툴툴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베즐이 까닥대는 손끝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칼집과 배낭은 활과 함께 가룬에게 넘기듯이 맡기고…….
그렇게 앞쪽으로 가는 투란을 향해, 투란이 넘긴 활과 배낭을 꽉 쥔 채로 가룬은 날카롭고 섬뜩한 눈길을 보내는데…….
“헌터에게 나이는 장식이지. 어리든, 늙었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중요한 거는 몬스터와 맞서 봤느냐, 맞서서 싸웠느냐…… 도망치고 구경만 했느냐. 도망치고 구경만 한 녀석이 맞서 싸운 녀석을 질투하는 꼴은 그냥 추하기만 하거든? 그러니, 관둬라.”
라펜이 가룬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잠시 가룬은 눈을 꽉 감았다가 뜨며 대꾸한다.
“헌터가 될 겁니다…… 나도…… 나보다 어린 헌터가 있을 줄은 몰랐을 뿐이에요.”
“그래? 언젠가 헌터가 되려면, 우선 말 잘 들어. 딱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오늘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야 내일 헌터가 되든, 헌터 되는 걸 때려치우든 하지!”
라펜이 한 손으로 가룬의 어깨를 잡아 활잡이 카엘 쪽으로 밀면서 중얼거렸다.
곁에서 마켈이 혀를 차는 소리를 냈지만 가죽 투구를 쓰고 장비를 다시 점검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 움직일 뿐이었다.
이리하여 일행은 엘데인 성채를 바라보며…… 그 난투(亂鬪)의 현장(現場)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