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
투란은 일어서려다가 엉거주춤하니 기우뚱거렸다.
두 무릎을 펴려 하자, 머리 한구석이 핑 돌면서 온몸에 시큰한 느낌이 쫘악 퍼진 탓이었다.
‘아오오오! 뭐야, 이거 온몸이 쑤시잖아!’
화가 나기는 하는데, 원망할 것이라고는 왼쪽 팔뿐이었다.
때문에 눈길이 어쨌든 간에 왼팔을 향했는데, 붉은 털이 햇살 아래에서 살랑거리는 꼴이 보였다. 손등, 손목에서 팔뚝을 거쳐 거의 어깨 아래쪽에 이르기까지 가지런하고 촘촘하게 채워져서 바탕이 되는 검은 가죽은 손바닥에서나 제대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은빛 불꽃도, 바람 없이 제멋대로 휘휘 날리던 꼴도 전혀 없었다.
‘끝난 건가?’
햇빛 아래에서 살살 너무 덥지 않냐는 느낌을 주는 그런 붉은 털가죽으로 된 팔이 지금 투란의 왼팔이 되어 있었다. 손끝에 힘을 주자 불쑥 휘어진 갈고리 같은 손톱이 툭 튀어나왔다. 손이 크니 손톱도 얼핏 거의 10센티는 넘을 듯한 길이였다.
투란은 잠시 하늘을 쳐다봤고, 노릇하니 구름 너머로 보이는 태양이 붉은 바탕처럼 자리 잡은 꼴이 잘 보였다. 은빛으로 하늘을 태우던 달과는 다르게, 태양은 그냥 늘 보던 해님인 모양이었다.
‘흠…… 그래, 이제 해가 보인단 말이지?’
한편으로는 투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하늘의 광경이었다.
아직은 기울어진 숲의 그늘과 어둠이 짙기는 했지만, 정말 얼마 만에 안개와 그늘 속에서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온 것일까. 여러 개의 태양이 둥실거리다가 내리꽂히면서 땅에 불을 지르는 일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그런 햇빛이라니!
투란은 잠시 늪을 바라봤고, 그 위에 찰랑이는 햇빛을 봤다.
그리고 다시 주변의 숲을 둘러보니, 할 수 있다면 정말 나무 위로 뛰어올라 누구처럼 달려가 버리고 싶었다.
‘까맣다, 까매!’
하지만 그랑츄의 두꺼운 발은 나무를 밟으면 부러뜨리려 할 뿐이다!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잠깐 한숨을 쉬며, 투란은 쓰러진 그랑츄의 시체 두 구를 노려봤다.
‘왜 벌써 저렇게 삭았지?’
그랑츄, 그것도 잿빛바위 일족의 놈들이 쓰러지고 겨우 아침이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몸의 반이 썩어 녹은 것처럼 뭉개져 있었다.
그랑츄 시체의 몸통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두 마리의 시체는 바닥으로 깔린 부분은 삭아 뭉개지고, 반대 방향으로는 아직 생기가 맴돌며 생생한 꼴이었다. 바닥에는 그저 잔돌이 깔려 있을 뿐인데.
‘이거 혹시?’
투란은 하얗고 노르스름한 돌 하나를 집어 올려서 연한 새싹빛 손바닥 위에 굴려 봤다. 돌의 느낌은 그저 아침 햇살에 조금 달아올랐다는 듯이 따뜻할 뿐이었다. 이는 투란에게 자신의 생각을 좀 더 확인하게 했다.
늑대의 손을 늪에 담가 잠시 젓다가 손바닥으로 늪을 살짝 떠올려, 오른손 위에 굴러다니는 돌 위에 떨궜다. 곧 소리 없이 거품이 일어났고, 돌이 거품과 함께 녹는 것이 바로 보였다. 연한 새싹빛 손바닥 위에서 순식간에 늪의 작은 색채만 남고, 습기는 싹 말라 버렸다.
‘썩힘돌, 맞구나.’
투란은 이 돌의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색이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이건 마석(魔石) 중에서 ‘썩힘돌’이라고 하는 부류였다. 마법 혹은 마력이 깃들여 이상한 작용을 하는 돌인 마석, 정체가 밝혀진 것들의 쓰임새가 꽤 넓고 나름 좋은 거래 물품이기도 했다.
잠깐 투란은 바닥의 돌을 몇 개 주워 갈까 생각했지만, 곧 포기했다.
썩힘돌은 물이나 늪에 닿으면 순식간에 거품이 되어 녹아 버렸다. 제대로 가져가려면 그에 걸맞은 그릇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
‘파란빛 돌이랑은 다르지, 뭐.’
그리고 가져가는 도중에 딱히 쓸 일도 없었다.
썩힘돌은 살아 있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죽은 것 중에서도 특히나 동물 같은 것에만 반응하는 마석이었다.
지금 그런 애매한 물건에 탐내거나 힘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나름대로 냉정하게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문득 주변을 둘러본 투란은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게 없구나.’
나무, 숲, 돌, 늪…….
썩힘돌처럼 뭔가 있을 듯하지만, 아는 게 없다. 몬스터가 아닌 귀한 것일 수도 있는데…….
투란은 그쯤에서 고개를 저으며 늪으로 발을 디뎠다.
햇볕이 내리쪼이는 늪을 따라갈 작정을 한 것이다.
그늘지고 발바닥을 걱정해야 하며, 나무에 긁히는 것을 은근히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숲 대신에 햇살을 따라가기로.
그랑츄의 발이 오그라들었고, 악마의 심장 넝쿨 껍질에 곱게 싸인 발이 곧 늪에 담겼다.
‘역시 되는구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랑츄 한 마리를 날름 삼킨 늪이었지만, 투란은 그 위로 둥실 머리만 내놓은 채로 흘러가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라앉을 일 따위는 없는 모습이었다. 그랑츄의 몸이거나 혹은 짐승이나 사람의 모습이라도 날름 삼키는 늪에서 악마의 심장은 흐느적거리며 헤엄칠 수 있었다. 그 껍질로 살갗을 대신하며, 잔넝쿨을 미묘하게 몸에서 뿜어내는 꼴을 하니 투란도 가라앉지 않았다.
게다가 악마의 심장은 모처럼 몸에 닿은 늪의 촉감을 꽤나 즐기는 듯했다.
팔다리에 활기가 채워지고, 촉촉하게 몸이 젖는 것이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오른쪽에 박힌 ‘이상한 심장’은 악마의 심장이 강해지는 만큼 잠잠해지면서 아주 작아진 채로 거의 멈춘 듯했고, 투란의 두 팔은 손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사람의 것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몸집을 줄여 무게를 가볍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아귀보다 센 두 손을 대비시킨 셈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투란은 늪을 부유해 갔다.
햇살 아래 떠내려가면서, 가끔 요동치는 촉수 같은 것이 닿으면 바로 손톱으로 할퀴고 두 손으로 끊어 버리며, 매우 평온하게 낮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었을 때…….
‘실수했어!’
타오르는 은빛 불꽃이 밝히는 하늘을 보며, 늪의 중간 정도에 튀어 올라온 바위에 몸을 싣고 끙끙거리며 투란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낮에는 정말 얌전했던 왼손이다.
붉은 털이 곱게 손등을 덮은 채로, 손톱을 원할 때만 착착 펼치게 했고 어떤 반항의 낌새도 없이 오로지 투란의 손이었을 뿐이다.
오른쪽의 ‘이상한 심장’ 손이 오히려 간혹 긁히거나 해서 자극을 받으면 세차게 심장을 뛰게 하며 뭔가 제멋대로 꿈틀댈 기세를 보였다. 어딘가 아직은 투란의 손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처럼!
한데 밤이 되어 달이 뜨니 낮의 상황은 온데간데없었다.
먼저 붉은 털이 작은 빛의 실 가닥처럼 꿈틀거리며 은빛 불꽃을 한껏 휘감은 채로 쑥쑥 팔뚝을 타고 번졌다. 그리고 뼛속 깊이 차오르는 열기가 투란을 집어삼키기 위해 어깨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해 저항하듯이 악마의 심장이 격하게 뛰었고, 호응한 ‘이상한 심장’도 낮과 다르게 한껏 부풀어 오르며 격렬하게 고동쳤다. 오른팔도 힘차게 짙고 거뭇한 녹색의 바깥쪽과 연한 새싹빛의 안쪽 살갗을 한껏 드러냈다!
이래서야 그야말로 지난밤의 되풀이였다.
그래도 좀 다른 상황이란 것을, 은빛 불꽃이 하늘의 정점을 찍었을 때 투란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어제는 본 적 없는 스쳐 가는 유령 같은 것을 오늘은 보고 있었으니까!
‘나무 유령……? 아니, 바위는 또 왜 저래!’
눈에 보이는 것이 몽땅 유령처럼 흐느적흐느적 그 윤곽을 흐리며 번져 가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훅 하고 그 유령처럼 된 형상이 눈앞으로, 등 뒤로 스쳐 가다가 흩어져 사라지기까지 했다.
‘나, 등 뒤에 눈이 달렸나? 뒤통수로 보는 거야!’
몸을 두들기는 피의 격류, 그 뼛속까지 스며드는 통증 속에서 투란은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었다. 어제처럼 정신 줄이 나가지 않은 탓에 생긴 여유인 듯도 했지만, 이 갑작스러운 시각의 교란은 투란에게 그냥 정신 줄 놓아 버리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뿐이다!
어째서 갑자기 등 뒤로 유령이 스쳐 가는, 그 윤곽이 흐릿한 색의 광채가 보인단 말인가?
‘아니다.’
고요한 답이 가슴속에서 울려 나왔다.
도저히 이 착각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듯, 악마의 심장이 격류 속에서 냉정하게 전하는 사념이었다. 모든 감각이 걸러지고 분류되며 또렷하게 의식으로 투영되는 그 사념이 알려 주고 있었다.
지금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냄새라는 것을.
투란에게는 너무 낯선 생각이었다.
‘냄새를 봐?’
그러다가 곧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옳게 판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늑대의 감각이었다.
팔뚝을 타고 전해지는 은빛 불꽃의 열기, 그 힘이 투란의 감각에 끼치는 영향력이었다. 이는 지난밤에도 있었던 일이다.
‘기절하고 정신 나가서 몰랐구나.’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맴돌았다.
확실히 지난밤과 다르게, 투란은 더 깊이 느끼고 버텨 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강인해진 것은 투란의 마음만이 아니었다.
은빛 불꽃도 훨씬 강해져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고, 투란을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차오르는 달이었어, 이지러지는 달이 아니라! 젠장.’
저 달은 만월을 향해 차오르고 있었다.
만월에서 깎여 나가는 중이 아니었다!
즉, 오늘 밤을 버텨 내면 내일은 더 강한 달빛을 뿜어낸다는 것!
비라도 쏟아져 내리거나 흐린 날이 아니면 내일 밤은 이보다 더 심할 것이라는 것!
‘그냥 그랑츄 손으로 헤집을 걸 그랬어!’
결국은 후회스러운 생각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가 저물고 나서까지 굳이 늑대의 손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카악, 카카칵.
몸부림 탓에 바위를 늑대 손톱이 긁자, 은빛 불꽃이 세차게 손톱을 달아오르게 하며 바위게 푹푹 파이고 깎여나갔다. 이대로라면 이 바위를 그냥 토막 내고 늪 속으로 뒹굴 듯도 했다.
‘어라? 그게 낫겠다!’
돌연 투란은 오른손을 확 당기며 몸을 늪으로 내던졌다!
그냥 저 하늘에서 은빛으로 불타는 달을 구경하느니 차라리 몸을 늪 바닥에 가라앉히는 것이 악마의 심장에 더 좋은 상황이고, 투란에게도 더 좋지 않겠는가?
파아앙!
결과는 투란의 발상과 완전히 달랐다.
은빛 불꽃이 불타는 광경이 사라졌다 싶은 순간, 왼손이 불길이 되는가 싶은 지독한 열기를 느꼈다. 그다음에 바로 확 뭔가를 긁는 듯한 왼손의 본능적인 움직임, 투란은 그다음에 온몸이 솟구치며 높이 뜬 것을 알아야 했다.
‘뭘 긁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늪이란 것이 긁는다고 담가 버린 사람을 토해 내는 것도 아닐 텐데.
왼팔은 어깨까지 활활 타오르듯이 은빛의 불꽃을 휘감은 것처럼 보였고, 왼손의 격렬한 움직임이 늪을 칠 때마다 몸은 계속 격하게 솟구치려 했다. 그러면서 은빛 불꽃이 가슴으로 진하게 번져 오는 느낌!
어쩔 수 없이 투란은 다시 바위에 달라붙어야 했다.
안정적으로 달빛을 쪼인다는 것을 왼팔에 느끼게 해야 했다.
멋대로 날뛰면서 더 강해지는 왼팔이 위기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뭔 꼴이냐, 대체!’
격렬한 두 심장이 겨우 가슴으로 스며드는 은빛의 열기를 물리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꼴이 되어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이했다. 자연스러운 피로가 온몸을 휘감았고, 본능적으로 손톱자국이 남은 바위 위로 올라가 드러누운 그는 아침을 보며 눈을 감았다.
찌릿.
“음?”
눈을 뜨니 어느새 해가 정상에서 반쯤 기울어진 꼴이 보였다.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따듯한 느낌이었다.
멍하니 몸을 일으킨 투란은 자신을 깨운 찌릿한 느낌이 어디서 왔나 쳐다봤다.
발목을 감고 허벅지에 달라붙어, 박히지도 않는 이빨을 박으려 하는 도마뱀 같은 것이 보였다. 눈알이 넷인가 보니, 아예 없다. 다리는 무슨 지네처럼 몸통 앞뒤의 큼직한 네발 사이로 촘촘히 여러 개가 짧고 가늘게 막 돋아 있다!
투란이 듣도 보도 못한 놈이었다.
그리고 이빨도 꽤 약한지, 악마의 심장이 씌워 놓은 껍질을 뚫지 못하고 그냥 꽉꽉 열심히 깨물어 찌릿한 느낌만 주고 있었다.
잠깐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목덜미를 덕덕 긁다가 투란은 손톱이 살갗을 찢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멈췄다. 급히 손을 보니, 늑대 손이 아닌 오른손이었다. 날카로운 타원의 끝에 슬쩍 넝쿨의 껍질 조각이 보였다.
‘아니, 이 손톱도 이리 셌나?’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이 괴상한 도마뱀 닮은 놈이 한층 더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투란은 오른쪽 손톱으로 바로 녀석의 몸을 그어 버렸다.
손톱으로 갈라진 틈새에서 걸쭉한 반죽 같은 알이 튀어나오는 광경이 바로 투란의 눈을 휘둥그렇게 뜨게 했다.
‘아,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