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68)
캬아!
날개가 부러지고 몸통이 반쯤 으스러진 꼴이었지만, 하피는 발톱에 짓눌린 머리를 들려 하며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 밟고 있는 하피의 몬스터 로드가 그 형상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려 하는 중이라 저 몸부림에 튕겨 나갈지도 모를 듯이 보였다.
그 순간 베즐이 그 앞으로 뛰어 하피의 머리를 빛의 칼날로 찔렀고, 베었다.
하피의 몬스터 로드가 거침 숨결을 토해 내며 말한다.
“아, 고마워.”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투란은 상처투성이로 바지만 입고 발목부터는 아예 맨발인 몬스터 로드를 재빨리 훑어봤다. 목걸이나 팔찌는 없는 듯했지만 바지 허리 언저리에 꽤 여러 가지 장신구가 매달려 있었다. 팔이 날개가 되고, 머리 쪽도 상당히 변형되는 것을 생각해서 부적을 여럿 허리에 꿰고 다니는 모습인 듯했다.
베즐은 지체 없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성문, 열 수 있나?”
“무리. 열어 줄 사람이 없어.”
“혹시……?”
“나 혼자로는 안 돼.”
하피의 몬스터 로드는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도 베즐의 물음에 곧장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하고 다리를 건너는 일행을 봤고, 거친 한숨과 함께 말을 보탠다.
“성격 좋구먼. 저쪽으로 가 봐. 죽은 몬스터가 끼어 있기는 하지만, 저 친구 몽둥이라면 뚫을 수 있을 거야. 어? 아, 옛날에 구멍 났는데 아직 안 고친 성벽 틈새가 있어. 가파르니까, 조심해서 가야 할 거야. 한 3, 40미터 가면 돼. 조심하라고.”
말을 맺고 나서 하피의 몬스터 로드는 한쪽을 향해 피가 섞인 외침을 토해 냈다.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허공을 출렁이며 울렸고, 멀리서 날아들던 하피 한 마리의 머리가 반쯤 부서져 나갔다.
하피의 몬스터 로드는 입에서 한 움큼의 피를 토했고, 다시 팔을 들어 올렸다.
팔은 길고 넓은 날개가 되었고, 하피의 몬스터 로드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로 바닥을 차며 다시 날아올랐다.
펄럭대는 와중에 핏방울이 맺힌 깃털이 떨어져 내렸고, 베즐은 그가 알려 준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칼잡이 카엘이 그 뒤를 따르며 투란에게 외친다.
“투란! 내 뒤로, 졸탄네 좀 끌고 와!”
“예엡!”
투란은 재빨리,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피의 몬스터 로드를 눈으로 좇지 않았던 척하며.
―흐흠, 덕분에 네 입으로 알려 주지 않아도 되기는 했군. 근데, 저 칼잡이의 드릴 소드라면 이 성문에 구멍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만…… 그냥 뚫린 쪽으로 가냐?
‘야! 몬스터 막고 있는 성문이라고! 성문 열고 닫을 사람도 없다잖아! 구멍 내면 막을 사람은 당연히 없을 테고! 그런 상황인데 밖에서 구멍을 내버리면 어쩌라고!’
―그런 문제인가…… 인원 배분이 제대로 안 된 상황이라 그런가 보군.
‘어? 아으! 시끄러워! 뭐 튀어나오는 거 아니면 나중에 얘기해!’
투란은 베즐과 카엘이 앞장서 가는 길을 보고 뒤를 돌아봤다.
엉거주춤하면서, 잔뜩 겁에 질린 켈타 마을 사람들이 오그라든 자세로 다가와 있었다. 졸탄 일행도 그 사이에서 비슷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뭐든 하나씩 들고 여차하면 싸울 자세를 갖추고는 있었다.
투란이 그들을 향해 목청껏 소리친다.
“가파른 길이에요! 손잡아요! 묶을 줄이 있으면 허리를 감아서 서로 잇고! 몬스터는 없어요! 베즐이랑 카엘이 정리할 거예요! 뭐가 나오면 카엘이 활로 쏴 버릴 테니까, 손잡고 줄로 묶어서 미끄러지지 않게 따라와요! 미끄러지면 몬스터가 숨어 있는 강이니까, 절대로 미끄러지면 안 돼요!”
―안심시키려는 거냐, 겁을 주려는 거냐.
투란의 뒤죽박죽인 말에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했다.
투란은 잔소리를 무시하고 광장에서 벗어난 길로 뛰었다.
성벽에서 강을 향해 가파르게 흘러내려 가는 비탈길은 성채의 모양을 따르듯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원형 광장의 반대쪽으로는 성벽이 바로 강물에 꽂혀 들어가는 듯해서 이런 비탈진 언덕 모양이 아예 없었으니 그보다는 낫다고 해야겠지만, 조금만 잘못해서 미끄러지면 강물에 빠져 사라질 듯한 위험한 풍경이었다.
덕분에 머드 퍼피티어도 기어오르려다가 미끄러져서 포기한 듯해서 조금 다행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가파른 길을 베즐과 카엘은 거침없이 내달렸고, 투란은 뒤에 따르는 일행이 제대로 밟고 올 수 있을 듯한 자리를 꽉꽉 다져 발자국을 남기면서 따라갔다. 곧이어 일행이 투란의 말대로 손을 잡고, 줄로 몸을 감기도 한 모습으로 뒤따르니…… 저 아래편 강물 쪽에서 바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들이 보였다.
뒤틀린 게가 몇 마리 있었고, 머드 퍼피티어도 등짝에 납작 달라붙은 하피를 짊어진 채로 몇 마리 보였다. 이제까지는 올라가려 해도 가팔라서 미끄러지기만 했고 다 올라와도 만나는 것이 성벽이었던 비탈진 풍경 속에 갑자기 먹잇감이 등장했다고 여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강물에서 한발 걸치며 기어 나오려는 것들을 향해 빛의 화살이 바로 쏘아져 나갔다.
쉬익, 씨이잉! 터엉, 퍽! 키아앙!
뒤틀린 게의 껍질이 크게 울리며 패었고 그 충격에 다시 강물로 굴러떨어졌다. 머드 퍼피티어는 몸통에 처박히는 화살에 괴성을 지르며 다시 강물 속으로 숨어들었다.
투란은 걸음을 서둘렀고, 앞장선 베즐과 칼잡이 카엘 쪽으로 어기적거리며 기어 나오는 머드 퍼피티어 몇 마리를 봤다. 활잡이 카엘이 일행 쪽을 엄호하는 데 집중하는 탓에 앞의 둘은 알아서 싸워야 할 듯싶었다.
물론 이제 와서 베즐이나 칼잡이 카엘이 머드 퍼피티어 몇 마리에 당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투란은 일단 그 둘 쪽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그러는 사이에 칼잡이 카엘이 성벽 틈새로 움직였고, 베즐은 달려드는 몬스터 쪽으로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와, 진짜 마구 끼어 있구먼!’
머드 퍼피티어도 있었고, 뒤틀린 게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된 듯한 이상한 덩치도 있는데, 드러난 발의 발가락이 사람이랑 닮은 것만 알 수 있을 뿐이고 나머지 몸은 깔린 채로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보면 저렇게 깔린 채로 덩치가 제법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놈인 셈이었다.
칼잡이 카엘은 그렇게 쌓여 끼어 있는 몬스터 더미를 향해 솔리드 포톤의 드릴 소드를 쑤셔 넣고 있었다. 갈아 내듯이 뚫어서 사람이 지나갈 길을 만들려 하는 짓이었다. 등 뒤는 베즐에게 완전히 떠맡긴 채로!
그래서 투란은 칼잡이 카엘과 베즐, 둘 사이로 끼어들 듯이 자리를 잡았다.
베즐의 머리 위를 너머 쉬운 먹이를 노리려는 하피를 견제하고, 베즐의 칼날에 베이면서 그냥 지나쳐 올 수 있는 퍼피티어를 막는 자리였다. 그다음에 투란은 졸탄네를 향해 외친다.
“뚫리면, 바로 들어가요!”
켈타 마을 사람들 틈에 섞여 손잡고 줄을 감고 있던 졸탄이 바로 대답한다.
“알았어! 조심해!”
투란은 머리 위에서 덮쳐 오는 발톱을 피하며 그 발목을 칼로 후려쳤다.
발목이 반쯤 끊겨 너덜거리는 채로 하피가 비명과 함께 날개를 퍼덕대면서 멀어져 갔다.
‘와, 진짜 재빠르네?’
하피가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광경에 투란은 감탄했다.
발목에서 몸통까지 베려 했는데, 한순간에 날개를 꿈틀하더니 전혀 다른 궤적을 남기며 움직인 것이다.
팔이 없이 날개란 점이 꽤 거슬리기는 하지만, 저 날갯짓은 투란에게 꽤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빠르다고? 저게?
드라고니아는 심드렁하니 중얼거렸다!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엘데인 전체 상황을 좀 둘러봐. 여기 들어가자마자 뻥뻥 뚫려서 안에서 또 허우적거리며 싸워야 하는지 아닌지!’
투덜거림으로 대꾸하며 투란은 다시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졸탄은 투란에게 짧은 경고를 한 다음, 켈타 마을 사람들과 동료 헌터들을 안으로 밀어 넣는 중이었다. 한 명씩, 갈려 버린 몬스터의 흔적을 밟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부추기고 토닥이고 재촉해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동료 헌터들도 먼저 들어간 이가 안에서 끌어당기고 밖에서 밀며 졸탄을 돕는 중이었다.
투란이 새삼 그 구멍을 살피니, 아래로는 널찍하게 4미터 폭이었고 위로는 대강 3미터까지 갈라진 틈새였다. 칼잡이 카엘이 꽤 열심히 갈아 내고 뚫은 구멍은 몬스터로 처발린 듯한 모양으로 1미터가 조금 넘는 폭이었다. 덕분에 짓이겨진 몬스터의 유체가 끈적하고 물컹거리면서 밟힐 수밖에 없다!
‘무섭지 않더라도 싫어할 만하네.’
몬스터의 피가 독이란 것을 제대로 경험했으니 켈타 마을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어느 정도 당연해 보였다.
그래도 어쨌든 그쪽은 그리 정리되고 있었고, 활잡이 카엘을 중심으로 한 일행의 끄트머리도 이제 도착해 있었다. 가룬이 이 비탈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데 집중한 듯, 투란의 배낭과 칼집, 활을 모조리 짊어진 채로 네발짐승처럼 지나온 것처럼 손발이 몽땅 흙투성이라는 것만 빼면, 별일 없어 보였다.
“들어가요!”
투란은 활잡이 카엘 쪽을 향해 외치고 베즐과 칼잡이 카엘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 투란의 등 뒤로 라펜의 목소리가 울린다.
“들어가라잖아! 자빠져 쉴 때냐! 어이, 졸탄! 얘 좀 끌고 가!”
가룬이 가쁜 숨을 쉬다가 졸탄에게 뒷덜미를 잡혀 끌리면서 성벽 틈새를 넘어갔다.
뒤이어 테란을 비롯한 베즐 팀 멤버들이 틈새를 넘었다.
라펜이 다시 외친다.
“투란, 우리 먼저 간다! 마켈, 들어가!”
조금 새삼스러운 느낌이었지만 투란은 빈손을 들어 흔들며 알았다는 시늉을 해 줬다. 곧이어 마켈이 ‘좁아! 크억, 내 방패가 피투성이가 되다니!’라고 이상하게 투덜대는 소리가 울렸고, 라펜이 ‘이미 피투성이였는데 뭔 소리야!’라고 마켈에게 핀잔을 주며 뒤따르는 기척이 느껴졌다.
“칼잡이! 이 구멍 더 넓혀! 안에서 쏘기에 너무 좁다! 투란, 베즐 뒤를 맡아 줘!”
활잡이 카엘은 틈새 너머와 이쪽을 가늠하며 말하고 있었다.
칼잡이 카엘이 베즐 뒤에서 돕다가 투란과 교차하며 물러섰고…….
“준비됐어? 좀 더 넓혀도 되겠냐?”
틈새 너머를 향해 외쳤다.
테란이 성벽 안에서 대답한다.
“어, 그럭저럭!”
이 소리는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칼잡이 카엘이 일부러 틈새를 넓게 뚫지 않았다는 듯하잖나?
때문에 활잡이 카엘은 안에 들어가면 틈새 너머로 밖을 향해 활쏘기가 쉽지 않다는 듯했고, 그 넓어진 틈새를 테란이 어찌하려 하는 것인가?
―야영 도구를 이용해 일단 막을 셈이야. 막고 쌓고 처바를 준비를 하고 있어. 이 팀, 성채를 끼고 싸우는 것도 꽤 해 본 모양인데?
‘그래? 진짜 경험이 많구먼!’
감탄하면서 투란은 베즐에게 외쳐야 했다.
“베즐! 다 건너갔어요! 어서 와요!”
베즐은 머드 퍼피티어는 잔뜩 동강 냈고, 날아드는 하피 떼를 향해 칼질하는 중이었다. 애써 베어 떨구려 하기보다는 관심을 끌고 적당히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가끔 돌까지 던져서 하피 떼가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유도하면서.
투란은 활잡이 카엘이 하피 몇 마리를 쏴 맞히고 틈새를 건너는 뒤를 따라 성벽 틈새에 발을 디뎠다. 칼잡이 카엘은 이미 구멍을 더 넓히면서 건너간 다음이었다.
‘어, 넓네?’
막상 발을 디디니 성벽의 두께가 거의 4미터는 되어 보였다.
비탈진 아래쪽에서 볼 때는 한 2, 3미터 정도로 보였는데…….
그 폭을 메운 몬스터가 살과 뼈로 통로를 열고 있는 듯했고, 그 너머 성벽 안쪽의 풍경은 왠지 내려다보이는 느낌이었다.
투란은 성벽 틈새에서 위를 흘깃하며 베즐을 기다렸다.
베즐이 달라붙으려는 하피 몇 마리를 향해 길어진 칼날을 대충 휘두르고 틈새 안에 발을 디뎠는데, 그 순간에 더 높은 곳에서 가늠하고 있던 두어 마리의 하피가 벼락처럼 덮쳐들었다.
투란이 칼을 들며 뛰어나갈까 하며 움찔하는 순간, 베즐이 현란하게 몸을 돌리면서 솔리드 포톤 블레이드를 화려하게 휘둘렀다. 등짝을 노리고 하피가 달려들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싸아!
칼날이 바람을 갈랐고, 하피는 그 바람결에 베인 것처럼 동강 나서 나뒹굴며 틈새에 격돌해 버렸다.
베즐이 아직 떠 있는 발로 하피를 걷어차며 더 깊이 틈새 안으로 펄쩍 뛰듯이 물러섰고, 투란은 느닷없이 귓가에 들려오는 화살이 나는 소리에 바로 뒤돌아 뛰며 빈손을 사납게 움직여야 했다.
타, 탁!
화살 두 자루가 투란의 손에 잡혔다.
“누구야!”
투란이 냉큼 성벽 안쪽으로 몸을 반쯤 내밀면서 버럭 소리쳤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이 화살 둘은 분명히 베즐을 노리고 쏜 것이었다.
제대로, 아주 한껏 시위를 당겨서 저격(狙擊)했다!
투란의 외침은 베즐 팀 멤버들을 자극했고, 틈새를 대충 때울 가늠을 하던 눈길을 일제히 돌려서 둘러보게 했다.
투란은 저쪽에서 누군가 ‘뭐야!’ ‘잡았어?’라고 놀란 소리를 낮게 토하는 것을 들었고, 베즐이 어깨를 잡으며 속삭이는 소리도 들었다.
“이름 써졌네, 화살에 말이야. 투란, 일단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