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69)
투란은 베즐의 손이 살짝 어깨를 미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이 틈새에 서서 이러쿵저러쿵할 상황이 아니란 뜻이었다.
“여기 막고 따지자고.”
베즐이 투란이 흘깃 사나운 눈길을 번뜩이는 것을 보고 쓴웃음과 함께 다시 다독이는 말을 했다. 뭔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한 태도였다.
그런 베즐의 모습에 문득 투란은 노련한 헌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럴 때는 일단 당사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베즐이 그냥 넘어가려 한다면…….
“알았어요.”
짧게 대꾸하면서 투란은 낚아챈 화살을 베즐에게 넘겼고, 성벽 안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베즐이 그런 투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짙게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베즐은 저쪽 건너에서 자신을 보면서 수군거리고 투란을 향해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 패거리를 향해 사납고 섬뜩한 눈빛을 번뜩이며 틈새에서 뛰어내렸다.
테란을 비롯한 베즐 팀 멤버들은 곧바로 야영 준비를 하는 때랑 비슷하게 움직이며 성벽 틈새를 메워 갔다. 먼저 성벽이 부서질 때 흩어져 내린 돌덩이들을 틈새에 쑤셔 넣어 메우고 성벽 안쪽에 천을 덧대듯이 붙인 다음, 주변에서 닥치는 대로 가져온 나무판을 한번 더 덧대 두들겨서 바깥쪽에서 안쪽을 엿보지 못하게 가리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뚫린 구멍은 대강 막힌 꼴이 되어 갔다.
그런 베즐 팀의 행동은 과감하고 신속해서 구멍을 지키던 성채 안쪽의 누구도 뭐라 말할 틈도, 끼어들어 도울 틈도 없는 것처럼 구경만 해야 했다.
투란도 한구석에서 라펜, 마켈과 함께 구경했다.
원래는 누가 저 작업을 방해하거나, 날아든 하피가 있으면 막아 줄 생각이었지만 어째서인가 서서히 싸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었고, 덕분에 마냥 구경하는 꼴이 된 셈이었다.
그렇게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성벽의 틈새는 두툼하고 볼록하게 뭔가 쌓여 엉겨 붙은 꼴로 변해 완전히 막혔다. 그런 사이에 하늘에서 괴성을 지르던 하피 떼가 사라졌고, 엘데인 성채 곳곳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거의 끝난 듯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투란은 이 분위기가 의아했다.
‘뭐야, 왜 갑자기 조용해지는 거야?’
―몬스터가 물러섰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거는 아니지만, 성벽에 달라붙어 있던 것들이 거리를 두고 물러섰어. 하피 떼도 머드 퍼피티어를 따라 물러섰고…… 묘하군. 저렇게 무리가 함께 움직이다니…….
드라고니아 또한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살짝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라펜과 마켈 쪽으로 슬쩍 한마디 던져 본다.
“조용해졌네요?”
라펜과 마켈이 낯을 바로 찌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어떻게 된 거지?”
“무슨 군단처럼 움직이는 건가? 머드 퍼피티어가?”
투란은 둘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아해할 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는 없다는 것인데…….
“자아, 대충 조용해진 것 같으니까! 잠깐 좀 보자고, 이 화살 주인님들? 이름 새겨진 화살을 쏴 놓고 몰라라 도망가지는 않았을 듯한데 말이야, 어디 계시나?”
베즐이 화살을 든 손을 높이 치켜올리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 외침에 투란은 쓰윽 돌아봤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 있던 몇몇의 얼굴은 잘 봐 뒀다.
그 얼굴들이 아직 어디 안 가고 그냥 멀뚱거리면서 거기 있기는 했다.
그리고 베즐의 소리에 둘이 쭈뼛거리면서 그 얼굴들 사이에서 나서며 멋쩍고 민망한 표정을 한 채로 말하는데…….
“어, 그거 미안하긴 한데 말이야…….”
“자네를 노리고 날아가긴 했지만, 자네를 노리고 쏜 거는 아니거든.”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베즐 팀 멤버들의 표정이 사납게 뒤틀렸다.
투란은 느릿하니 팔짱을 끼고, 곁에서 라펜과 마켈이 코웃음 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지켜봤다.
베즐이 화살을 올려놓은 손바닥을 내밀면서 빙긋 웃음과 함께 그 둘 앞으로 서면서 말한다.
“좋은 화살인데, 가져가야지?”
쭈뼛거리는 태도로 둘이 조심스럽게 베즐의 손에서 화살을 집어 올렸다.
그리고 손이 비는 순간, 베즐의 주먹이 꽉 쥐어졌고 번개처럼 움직였다.
빠악! 빡!
연이어 찰진 소리가 사람 얼굴에서 터져 나왔는데, 얼굴에 주먹 자국이 그대로 새겨진 것이 뼈까지 가라앉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다음 베즐의 두 손이 두 목줄을 쥐었고 그대로 들어 올려 땅에 등짝을 내리찍듯이 꽂았다.
쿠쿵!
“이거 미안한데…… 알지? 내 주먹이 자네들 노리지 않았다는 거 말이야. 그럼, 자네들이라면 너그럽게 이해해 줄 일이잖아! 아, 포션도 갖고 있었군?”
베즐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앉은 자세로 둘의 허리춤을 뒤졌고, 작고 단단해 보이는 병을 하나씩 둘에게서 뜯어냈다. 그리고 바로 병을 따서 둘의 깨진 얼굴에 들이부으면서 계속 말한다.
“혹시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도 내가 살아 있으면 내 칼이 자네들을 노리지 않은 채로 자네들 목을 물어뜯거나 심장을 후빌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그때도 이해해 주길 바라. 그래 줄 거지?”
톡톡, 병을 아예 둘의 얼굴에 떨구고 그 뺨을 가볍게 손끝으로 건드려 주고 나서 베즐은 일어나 물러섰다. 그다음에 베즐이 주변을 주욱 둘러보니, 성벽 틈새를 지키려고 모여 있는 듯했던 이들이 슬그머니 그 눈길을 피하듯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맞고 쓰러졌던 화살의 주인 둘은 엉거주춤하니 얼굴에 부어진 표션을 문지르면서, 얼굴 뼈를 자기 손으로 주물러 제자리에 맞춰 놓는 모습으로 끙끙대는 신음을 감추지 않는 채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바로 쿨럭거리며 숨이 가쁜 채로 베즐에게 말하는데…….
“젠장, 정말로 노리고 쏜 거 아니라니까!”
“어쨌든…… 이걸로 이번 일은 잊기로 하는 거지?”
얌전히 맞아 준 것으로 비긴 셈 치고 넘어가자 하고 있었다.
베즐이 피식 웃었고…….
“다음은 없어.”
한마디 하니, 둘이 한숨 쉬듯이 대답한다.
“알아!”
“다음엔 아예 안 쏴!”
둘의 그런 모습에 투란은 조금 어이없었다.
분명히 노리고 쐈을 텐데, 전혀 그런 일 없다고 시침 팍팍 떼는 모습 아닌가!
―으흠, 정말로 노리고 쏜 게 아닐 수 있잖아? 그때 베즐의 몸놀림이 꽤 격렬했으니까 말이야. 냉정하게 상황을 되짚어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않았나?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기도 하고…….
‘아예 안 쏴. 몬스터랑 뒤엉겨 있는 헌터가 있는데 쏘는 거는, 맞아 죽든 말든 상관없이 쏘는 거야. 겨냥을 하지 않았네 어쩌네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리고 분명히 노리고 쐈어!’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는 소리에 투란은 단호하게, 소리 없이 대꾸해 줬다.
그리고 다시 투란이 주변을 둘러볼까 하는데, 한쪽에서 마력으로 키운 듯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와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뭐야, 누가 저린 착한 짓을 한 거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투란은 그 말을 한 마법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봤는데?’
―라비엔에서 알드바인으로 가는 길에 봤잖아.
‘응?’
문득 투란은 시알라 남매가 드레드 울프를 사냥했던 여행길을 떠올렸다.
분명히 알드바인으로 가는 길에 루케인이 아는 마법사를, 알드바인의 마법사를 스쳐 간 적이 있었다.
그 마법사가 지금 엘데인에서, 베즐 일행이 메워 놓은 성벽을 보며 저리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데…….
“에? 세마인! 아저씨, 여기서 뭐 해요?”
베즐이 바로 마법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놀라고 있잖은가.
마법사 세마인 역시 베즐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다시 묻는다.
“베즐? 너야말로 여기서 뭘…… 알드바인으로 돌아온 거냐? 언제? 아니, 엘데인에는 대체 무슨 일이야? 너 이쪽으로는 관심 없는 녀석이었잖아?”
“아, 그…… 하나씩 물어요, 하나씩!”
베즐은 허둥지둥한 표정으로, 조금 전에 보였던 사납던 헌터의 분위기가 싹 사라진 채로 뒷걸음까지 치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런 리더를 보는 베즐 팀도 마법사 세마인을 보며 놀라고 어이없는 듯이 슬슬 한구석으로 숨으려는 듯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세마인은 그런 팀을 보고, 다시 베즐을 보며 잠깐 눈을 가늘게 하면서 주변을 다시 주욱 둘러보더니 혀를 차더니…….
“공역으로 온 거냐? 하지만 여기까지 보낼 임무는 아닐 테고…… 저 사람들, 너네가 데려온 거야?”
켈타 마을 사람들을 눈짓하며 상황 파악을 끝낸 듯이 묻는 말이었다.
딱히 베즐의 대답이나 자세한 설명 없어도 아는 듯한 그 말투에 베즐이 조금 울컥한 듯이 낮은 소리로 되묻는다.
“저 마을 사람들, 잘 아시나 봐요?”
“알지. 약초꾼 켈타가 저 마을을 세운 게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니까. 뭐가 덮친 거냐? 웬만해서는 방책 믿고 마을 떠날 생각은 전혀 안 할 사람들인데…….”
세마인이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베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 또한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조금 있으면 알아낼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베즐은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말한다.
“독부리 그리핀이요. 피가 좀 배어 있어요, 다들…….”
“그렇군.”
세마인은 더 묻지 않고 대강 상황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세마인의 눈길이 라펜과 마켈 쪽을 휙 둘러보며 화제가 바뀐다.
“너네, 아직 공역 복무였냐? 호오…… 대충 경비로 때우고 끝낼 거라더니?”
라펜은 끄응 하고 입을 꽉 다물며 대답하기 싫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였고, 마켈은 ‘음?’ 하고 대놓고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말로 답한다.
“헌터 있는 대로 전부 동원한 거, 상아탑에서 시작한 일 아니었어요? 큰일 났다면서 몽땅 다 나서라고 해서 공역 다 끝냈는데 끌려 나온 거라고요, 우리는…….”
“역시 그렇게 되었나. 몇 달 알드바인 쪽 소식을 듣질 못했어. 고블린 꽁무니 쫓느라 바빴거든. 어쨌든 아는 얼굴이 많아져서 좋군! 좋아, 여기 마무리부터 하고…… 나 좀 따라와. 레쓰 대장이라고 알지? 아, 얘기 나중에 하고 잠깐 비켜 봐.”
세마인은 성큼 베즐 팀을 지나쳐서 메워 놓고 대충 때운 성벽 틈새를 노려보듯 서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자극적인 마력이 곧바로 세마인의 두 손에서 회색 안개와 함께 치솟는 것을 다들 느낄 수 있었고, 주문은 금세 세마인의 입에서 해방되었다.
“세멘티움!”
다들 나직하니 놀란 소리를 낼 때, 투란은 퍼뜩 홀시딘이 임시 거처를 만들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홀시딘이 사용했던 마법, 목적과 용도가 이모저모로 다르지만 세마인은 그 마법을 쓰고 있었다.
성벽의 틈새에 회색 안개가 덮쳐들었고, 울퉁불퉁하던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성벽은 언제 틈새가 있었냐는 듯이 정돈되고 정리된 형태가 되었다.
베즐이 그 광경을 보고 투덜거린다.
“하려면 진작 좀 해 놓을 것이지…….”
세마인이 두 손을 내리고 길게 숨을 몰아 내쉬다가 이 소리에 코웃음으로 답하며 대꾸한다.
“뒷마무리만 한 거다. 어느 정도 치우고 때워 놓지 않았으면 내 마법으로 메울 수 있는 구멍이 아냐. 근데, 저 구멍 없었으면 너네 아직 밖에서 허우적거릴 상황 아니었냐? 짜증은 내가 내고 너는 엘데인의 게으름뱅이들한테 감사를 해야지!”
“쳇.”
베즐은 혀를 날름하고 입을 다물었다.
베즐 팀은 그런 리더에게서, 마법사 세마인에게서 아예 멀리 거리를 두겠다는 듯이 슬금슬금 움직여서 라펜과 마켈의 뒤로 숨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전혀 숨는 꼴은 되지 않아서 투란이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어이없는 모습일 뿐이었지만!
그런 와중에 세마인이 잠시 숨을 고르다가 갸웃하면서 갑자기 투란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니…….
“자네…… 잠깐 스쳐 가며 본 것 같은데…… 그렇군, 알드바인으로 가는 마차에 타고 있었지. 알드바인에 정착하기로 했나?”
투란은 세마인이 자신을 훑어보는 눈길에 조금 당황했다.
그렇게 훑어보는 눈길이 하클의 장비를 제대로 더듬은 데다가 루케인과 함께 있을 때 스쳐 만난 일까지 기억해 낸 듯하잖나.
과연 세마인은 투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어, 예…… 뭐…….”
투란이 말을 얼버무리면서 느슨하게 대답하니, 세마인은 고개를 끄덕하고는 다시 베즐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한다.
“어디로 튈 생각 말고, 공역 중이라며? 여기 지금 꽤 뒤죽박죽이니까, 레쓰 대장을 좀 도와줘. 어이, 자네들도! 내가 보증해서 공역은 여기 정리되면 다 끝낸 걸로 해 줄 테니까. 딴 데로 튈 생각 말고, 남아서 상황 정리되는 것 좀 도와!”
베즐 팀을 비롯해서 라펜, 마켈과 투란까지 주욱 둘러서 하는 이야기였다.
라펜과 마켈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그래도 되나?’라고 의아해하니, 베즐이 세마인 곁에 바싹 붙어 무겁고 낮은 소리로 묻는다.
“얼마나 심각한 거예요?”
“몰라, 그래서 심각하지.”
세마인도 낮게 목소리를 깔고 대답했다.
투란은 뭔가 뒷골이 당기는 기분이었다.
모른다면서 뭐가 심각하다는 것인가!
―마법사에게는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없다. 눈앞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그게 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까.
‘어, 그래?’
드라고니아는 납득한 모양이지만 투란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