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0)
헌터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켈타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세마인은 그런 켈타 마을 사람들에게 엘데인의 헌터 길드 지부가 준비해 놓은 쉼터가 있다고 알려 줬다. 그리고 가는 길이라고 아예 함께 데려갔다.
빌려 준 것을 돌려받으며 투란은 일행의 뒤를 따라, 일단 세마인이 이끄는 대로 길드의 쉼터로 따라갔다.
가는 길에 세마인과 베즐, 마켈이 떠드는 이야기는 일행의 귀를 기울이게 했다.
몬스터가 엘데인을 습격해 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조용해졌잖아요, 쉬었다 덤비는 거예요?”
베즐이 물었고, 마켈이 보탠다.
“하피 떼야 그렇다 쳐도, 저 퍼피티어가 모여서 행동하는 몬스터가 아니잖아요?”
세마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데인의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준다.
“이제까지 자주 보던 일은 아니야. 머드 퍼피티어가 늪지대를 벗어나 강물 따라 여기까지 온 것도 그렇고…… 성채를 두들기다가 쉬고 다음 날 다시 달려드는 것도 예상이 안 되는 상황이지. 쉬지 않았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말이야. 덕분에 보급하러 들렀던 우리 일행도 여기 발이 묶였어. 이게 벌써 보름 정도 된 일인가? 대충 그 정도겠군.”
“날짜도 대충 셀 정도예요? 아저씨가?”
베즐이 놀라 물었고, 마켈은 인상을 확 구겼다.
세마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둘을 향해 낮게 툴툴거린다.
“나도 편하게 대강대강 할 때도 있는 거지, 뭘…….”
“기억산판(記憶算板)이란 마법사 아저씨가 그러면 우리가 무섭잖아요!”
베즐은 어깨를 떨구는 태도로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세마인이 머리를 쓸어넘기듯이 긁적이면서 대답한다.
“잠이 좀 모자란 것뿐이야, 오늘은 잘 거야. 성벽 틈새로 뭐가 들어왔다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그냥 잤을 거라고.”
“그럼, 지금 마력도 바닥 치고 있단 소리예요?”
베즐이 한층 더 기막혀했고, 마켈은 아예 짜증을 낸다.
“아, 진짜!”
여기까지 듣다가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산판? 셈하는 데 쓰는 산판이랑 다른 건가? 그게 뭐지?’
―조각난 그림 맞추기 놀이는 해 봤냐?
‘응? 그건…… 들어는 봤네.’
―그거랑 비슷한 거야. 단지 조각에 숫자를 넣어서, 순서대로 다시 짜 맞추는 놀이지. 원래 드라코눔에서 아이들에게 기억술을 가르칠 때 쓰던 도구다만…… 이 지역에도 전해진 모양이야. 어쨌든, 그걸로 기억을 훈련한 마법사라면 날짜 셈이라든가, 사람 수 세는 것을 아주 빠르고 쉽게 해내지.
‘흐흠? 드라코눔의 장난감이라고? 흐흐흠!’
―뭐냐, 그 의심스럽다는 수작은?
‘뭐, 좋은 거겠지. 그래, 드라코눔의 좋은 장난감이라 치고…….’
―그렇다 치고? 알지도 못하면서 뭔!
‘프로브, 탐색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 왜 머드 퍼피티어가 물러선 거야? 하피 떼는 전부 머드 퍼피티어가 하자는 대로 하는 중이야? 여기 버틸 것 같아? 어때?’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리려는 말을 싹둑 자르면서 투란은 질문을 쏟아부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엘데인의 상황이라고 힘주어 묻는 탓에 드라고니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단 대답을 한다.
―정확한 상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어. 혼란스러운 탓에 프로브 숫자를 늘려서 일단 뿌려 뒀다만, 우선은 성벽과 성 안팎의 가까운 곳을 둘러보고 있었거든. 아, 그러고 보니…… 네가 아는 이들도 와 있더군.
‘뭐? 내가 아는? 시알라가? 삼 형제 중에 누가 와 있어? 아니, 어떻……?’
―아냐! 알드바인에 남아 있는 남매 말고! 마탄의 소녀, 그 소녀의 파티랑 여관 주인 말이다.
‘어?’
―라비엔에서 봤잖아.
‘에?’
―들어온 구멍에서 꽤 먼 반대편이라서 전혀 보고 듣는 범위 밖이었다만, 프로브로 성채 전부를 돌아보니 있더군. 아, 거기 프로브로 엿봤던 도적 길드의 여자도 있다.
‘헐?’
투란은 목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당황했다.
어깨 너머로 삐죽 튀어나온 칼자루 둘, 라펜과 가룬에게서 빌려 줬던 것을 돌려받아 다시 메고 진 검과 배낭이 왠지 묵직하니 늘어지면서 어디로 도망치고 싶다는 듯한 기분이 바로 투란의 가슴 속에서 맴돌았다.
도적 길드 쪽이야 그렇다 쳐도, 벨과 쟌의 파티…… 여관 주인 루비는 로열 클래스의 조건을 마치기 전에 만났던 이들이었다. 로열 클래스로 등록이 끝난 지금 다시 만난다면 과연 그들은 투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투란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홀시딘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고 넘겨준 정보로는 가능한 전에 알던 이들에게는 전에 보여 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데…… 지금 투란은 쟌에게 보였던 모습과 꽤 다른 위장을 하고 있잖은가!
물론 로열 클래스의 마법을 작정하고 활용한다면 이전에 자신을 알던 이들이 전혀 알아보지 못하도록 신분을 위조하고 외모를 위장해서 완벽하게 속일 수도 있다고 하기는 했는데, 설마 라비엔에서 만났던 이들과 여기 엘데인 성채 안에 함께 머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와서 하자니 알드바인부터 여기까지 함께 온 일행에게 보인 모습과 다를 테니 완전히 꼬인 상태가 예상될 뿐이고…….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불만스러운 기분 속에서 투란은 일단 물었다.
―수성전에 참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쪽 성벽 위에서 하피를 저격하고 기어올라 오는 머드 퍼피티어를 공격해 떨구고…… 뭐, 그런 정도로 말이야.
‘으음…….’
투란은 눈길을 돌려 드라고니아가 알려 준 방향을 살짝 봤다.
엘데인의 넓은 거리, 그 너머로 멀리 치솟은 성벽이 보였다.
‘당장 마주칠 일은 없겠지?’
―아마 그렇겠지. 숙소도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따로 잡아 둔 모양이니 말이야. 길드 쉼터로 오지 않는 한 너랑 부딪힐 일은 거의 없을 것 같군.
‘그래? 그럼, 살살 피하기로 하고…… 이 성, 버틸 수 있는 거야? 그것부터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는데, 어때? 이제 알 수 있어?’
―아직 완전히 몬스터 쪽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만, 여기 못 버틴다는 정도는 분명한 것 같다.
‘뭐?’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서서히 헌터 길드의 쉼터라고 하는 숙소가 보였고, 마법사 세마인을 선두로 해서 일행은 쉼터에 깃들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쌓인 피로를 내려놓고 잠시나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밝아진 표정을 한 채로…….
잠시 드라고니아의 말을 되새기다가 투란이 입을 꽉 다물고 소리 없이 묻는다.
‘몬스터 쪽이랑 상관없이 버틸 수 없다는 거야?’
―거의 그렇다고 봐야 해. 저 마법사가 마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열흘가량 활동했다고 했잖아. 그게 이 엘데인의 전체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피로해진 상태라서, 같은 규모의 공세가 두어 번 반복되면…… 그 공세가 적당히 유지되기만 해도 지쳐 나가떨어질 지경이지.
‘수를 줄여 버리면, 성벽에 처박아 오는 녀석들을 반쯤 정리하면 버틸 수 있는 거야?’
―음? 으흠…… 이런, 투란 느꼈나?
잠깐 깊이 생각하는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불쑥 물었다.
투란은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귓가에 희미하게 소리가 울린 듯한 느낌, 작은 그릇이 깨지는 듯한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프로브 깨진 거야?’
―그래, 엘데인 바깥쪽 멀리…… 몬스터의 동향을 살피던 것이 저격(狙擊)당했다.
‘저격? 프로브를 노리고 쏴서 깼다고?’
볼을 긁적이면서 주변과 어우러지는 피곤한 표정으로 투란은 다시 확인하겠다는 듯이 소리 없이 물어야 했다.
이모저모로 프로브를 깰 수 있는 것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은폐 상태로 탐색 중인 프로브를 노리고 쳐서 깰 수 있는 것은 꽤 드물다…… 그게 드라고니아가 자랑스럽게 말하던 바였고, 실제로 그랬다.
한데 어떤 몬스터가 프로브를 감지하고 바로 저격해서 깼다면…….
‘하피?’
깨지기 전에 프로브가 마지막으로 비친 희미한 시야를 뒤늦게 더듬으면서 투란이 갸웃했다.
―기본적으로는 하피로군.
‘야, 똑바로 말해 줘!’
―퀸이다. 하피 퀸…….
‘어? 그게 뭔…… 하피가 여왕이 있었나?’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하피에 대해 들어왔던 이야기 속에서 하피는 험한 산악의 절벽이나 깊은 계곡의 암벽에 둥지를 틀고 무리를 지어 산다 했다. 인간 여성의 상반신을 닮은 몸이 특징적이기는 하지만 그 서식 행태는 거의 새와 비슷했고, 무리를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대충 알아서 어울리지만 특별히 어떤 하피 한 마리가 완벽하게 무리를 장악하고 통솔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여왕이라니…….
―다시 말하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하피다. 하지만 유니크야. 그 한 마리가 하피를 비롯한 몬스터 떼를 통솔해서 여기를 공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설혹 열흘간 시달려 지친 상태가 아니라 해도, 단숨에 함락될 수 있다는 거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여태 버틴 것도 버틴 게 아니고 그냥 노리개 취급을 받고 있었을 뿐인 거야.
‘.’
잠시 투란은 뭐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 생각이 멎은 듯했고, 그사이에 일행은 길드의 쉼터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짐을 풀고 있었다.
투란이 둘러보니 길드의 쉼터는 그저 커다란 울타리를 쳐 놓고 중앙에 건물 한 채를 둔 다음, 주변에 기둥을 세워 대충 지붕을 올린 모양이었다. 일행은 그 지붕 아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대충 가지고 있는 침낭을 펴든가 해서 쉴 자리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베즐 일행은 반듯한 야영 도구를 이용해서 제대로 간이 숙소를 짓는 중이고…….
투란은 라펜과 마켈이 베즐 일행을 잠깐 부러운 듯이 바라보다가 대충 침낭 까는 곁으로 가서 배낭과 검 두 자루를 풀어놓으며 말한다.
“이거 잠깐 맡겨 놓을게요. 화살 좀 구할 수 있나 돌아봐야겠어요.”
“응? 어, 그래.”
라펜이 벌러덩 누우면서 대답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마켈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그대로 누웠다.
투란은 돌아서서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베즐 일행도 거의 바로 곁에서 자리 잡고 있었고, 켈타 마을 사람들은 엉거주춤하니 어영부영 가까운 곳에 주저앉는 모습이었다. 얼렁뚱땅 따라온 졸탄 일행은 자신들의 순찰 결과를 보고하려고 중앙의 길드 건물로 움직이는 듯했고…… 그 밖에도 모르는 이들이 잔뜩 와글거리면서 오가거나 자리를 잡으며 지친 와중에도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 광경을 가만히 둘러보고 투란은 일단 길드의 쉼터에서 떠났다.
엘데인의 풍경을 조금 더 둘러보기 위해서…….
‘뒤죽박죽이군.’
투란의 감상은 빠르고 간단했다.
엘데인의 어떤 곳은 나무판자로 대충 벽만 세워 놓은 꼴이었고, 어떤 곳은 튼튼한 벽돌을 쌓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아무 돌이나 마구 쌓고 진흙을 발라 놓은 채였다. 그런 건물이 올망졸망 성벽 안을 가득 채웠는데, 몇 층씩 쌓아 올린 높은 건물이 있는가 하면 파인 구멍에 판자를 얹어 지붕 삼은 거처도 있었다. 그야말로 통일성(統一性)이라고는 전혀 없는 엉망진창인 도시…….
다만 성벽만큼은 오르내릴 계단, 안팎을 가르는 높이, 너비를 적절하게 계산해서 꽤 정밀하게 쌓아 올린 모양이었다. 오직 성벽에만 정신을 쏟았다 해도 맞는 말이 될 정도로!
그 와중에 우물도 여러 곳 있었고, 단장해 놓은 거리도 있기는 했다.
그 거리의 한구석을 걸으면서 투란은 검과 방패, 갑옷, 화살을 취급하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값을 올려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는 상인들을 봤다. 살고 싶다면 장비를 일단 빌려 달라는 헌터들 앞에서, 상인들은 정말 필사적으로 버티며 돈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말다툼을 지나면서 투란은 조금 높은 건물을 찾아봤다.
보다 높은 곳에서 이 엘데인의 성채 안쪽을 둘러보기 위해.
드라고니아가 바로 한 곳을 표시해 줬고, 덕분에 투란은 곧장 엘데인의 한구석에서 첨탑을 높이 세운 건물을 찾아갈 수 있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첨탑의 끝에 망루가 갖춰진 꼴로 봐서는 성벽을 안쪽에서 감시할 수도 있는 듯했고, 원래는 성벽 너머까지 볼 수 있는가 싶기도 했다.
그곳에 서서 투란이 다시 조용히 경계도시 엘데인의 풍경을 둘러보는데…….
―마음은 정했나? 확실히 말해 두겠는데, 지금 이 도시는 네가 나서지 않으면 괴멸(壞滅)한다. 몬스터 무리…… 저건 거의 군단이라고 봐도 될 정도고, 여기를 괴멸시키는 데 절반 정도가 소모될 수는 있어도 여전히 유지된 채로 진격할 거다. 가다가 걸리는 곳은 모두 짓밟겠지.
드라고니아가 엄격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생각 좀 하자고. 야, 근데 쟌네가 어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