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1)
Chapter 115. 로드 오브 몬스터
“아우, 씨! 투란만 앞에 세워 놨어도!”
“쟌, 닥쳐.”
분홍색의 긴 머리카락을 꼬리처럼 흔들거리며 떠드는 소녀를 향해, 검은 머리카락 아래에서 검은 눈동자가 사납게 번뜩대며 하얀 뺨 아래에서 잔뜩 핏기가 어린 붉은 입술 사이로 짧고 억센 소리가 튀어나왔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축 늘어지며 얌전해지는 듯했지만 쟌의 입에서 투덜거림이 바로 멈추지는 않았다.
“방패 노릇을 하다가 다치지 않았을 거라구, 투란이라면.”
벨라딘은 더욱 눈을 흘겼지만 더 잔소리하지 않았다.
성벽 위, 제법 널찍하지만 좁게 짜인 포석이 난간을 따라 길을 만들며 길게 이어져 나간 곳에는 상처 입고 널브러진 채로 숨을 헐떡이는 이들이 있었다. 방패와 투구, 멀쩡해 보이는 것은 거의 없는 방어구를 옆에 내팽개친 채로 겨우 찾아온 쉴 틈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죽었거나 더 버틸 수 없는 이들은 이미 아래쪽으로 실려 가고 남은 이들이지만, 한번 더 거센 하피의 공세를 맞이한다면 저들이 바로 다음에 실려 내려갈 거라고 쉽게 알 수 있었다.
덤벼든 하피 떼를 쟌의 마탄이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쏴 맞췄지만, 수십 마리를 쏴 맞혀도 머리통이 뚫린 몇 마리만 떨어졌을 뿐이고 다음에는 더 많은 수의 하피가 덤벼들 뿐이었다.
이런 일을 며칠간 겪고 나니, 정말로 쟌의 말처럼 보다 강력한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밖에 없기는 했다.
“거참, 얼마나 대단하길래 쟌이 저렇게 간절하게 찾는 거래?”
곁에서 들려온 소리에 벨라딘은 고개를 돌리면서 묻는 이를 노려봤다.
환한 금발, 반짝이는 녹색 눈동자…… 어깨부터 흘러내리는 긴 망토가 발목에 닿을 듯한 차림새라 목 아래를 완전히 덮은 듯하지만, 그 망토가 가린 곳은 완전히 덮은 등 쪽뿐이고 가슴 쪽으로는 몸에 찰싹 달라붙은 가죽옷이 몸매를 훤히 드러내는 채라 오히려 자극적인 모습으로 이자닌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벨라딘의 눈길에 다시 말을 한다.
“왜? 궁금하잖아!”
“이자닌…… 닥쳐. 지금 관심 둘 일이 아니잖아!”
벨라딘의 사나운 말에 이자닌이 살짝 귀밑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주변에 미소를 뿌리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웃어, 좀. 아무리 벨이 미녀라도 성질내는 얼굴이면 다들 불안해한다고. 일단 이겼잖아. 웃어 주라고, 미녀의 웃음은 아픔을 덜어 준다니까!”
낮게 새는 말에 벨라딘은 곧 어이없다는 표정부터 지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자닌은 지금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이렇게 처웃는다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 이런 이자닌의 말에 따르듯, 연한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 둘이 주변을 향해 방실방실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올리거나 손을 흔들며 살짝 높인 목소리로 떠들고 있으니…….
“이겼어요!”
“지지 않아요!”
문득 이 소녀들이랑 눈이 마주친 이들은 쓴웃음을 짓는 듯하면서도 같이 엄지를 치켜올리거나 손을 흔들면서 ‘그럼!’ ‘물론이지!’라고 호응하는 모습이 보였다.
벨라딘은 결국 한숨을 쉬면서, 테리와 테루를 향해서는 말릴 생각도 잔소리도 못 꺼내고 말았다.
털썩, 벨라딘의 곁으로 큰 덩치가 내려앉으면서 투덜거린다.
“하여간, 사내새끼들은 이쁜 여자애가 뭐라 하면 마냥 좋다지!”
이자닌이 바로 이에 어울리듯 투덜거리는데…….
“하여간, 못생긴 여자가 예쁜 여자만 보면 마냥 불평…….”
“뒈질래, 이자닌? 이 루비 아줌마 손에 목을 졸려야 닥칠 거냐?”
“대체 왜 그렇게 폭력적이냐고요! 좋게 말로 하라고, 말로!”
“좋게 말로 하게끔 해 봐!”
벨라딘은 툭탁거리는 둘에게서 아예 고개를 돌린 채로 성벽 난간에 다가서면서 엘데인 성채 밖의 상황을 둘러봤다. 곧바로 쟌과 테리, 테루가 벨라딘의 곁으로 나란히 서면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며칠째지, 우리 여기 발 묶인 거?”
“쟌, 맨날 세도 맨날 잊어먹잖아. 그치, 테루?”
“맞아, 테리. 쟌은 맨날 수를 세다 까먹어!”
“이년들이!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
“어머? 모를 리가! 테루, 알지?”
“어, 테리도 알지?”
“까먹었구먼!”
쟌이 테리, 테루를 향해 코웃음을 날렸고, 테리와 테루는 성채 밖을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벨라딘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얼마나 몰려오는 거냐고. 처박혀서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쟌이 재빨리 이에 대꾸한다.
“수색하러 나갈 거야?”
벨라딘이 바로 발끈한 표정으로 엄격하게 쟌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쟌, 절대로 안 돼! 꿈도 꾸지 마!”
“칫. 그치만…….”
“그치만이고 저치만이고, 안 돼!”
“알았어.”
쟌이 돌난간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턱을 괴면서 시무룩하니 대답했다. 곧 그런 쟌의 머리 위로 이자닌의 손이 올려져 쓰다듬었고 다독이는 소리가 흐른다.
“착하지, 쟌. 이건 벨의 말이 맞아.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몰려왔는지, 매일 덤벼드는 놈들의 수가 줄지를 않고 있어. 이럴 때는 나가서 알아보려 하는 거는 정말로 위험하거든. 그러니까 참아.”
“참고 있거든! 내가 어린애야? 손 치워!”
쟌이 꾹꾹 눌려 오며 점점 힘이 들어가는 이자닌의 손길에 투덜거렸다.
‘탐색은 어때?’
―프로브를 감지할 수 있는 하피는 여왕뿐인 모양이야. 여왕 근처를 제외하고는 거의 둘러봤다.
‘그거 정말로 여왕 맞아? 유니크라고 했잖아, 그러면 이전에는 없던 거 아니야? 그러니까 여왕인지 뭔지…….’
―파괴된 프로브가 파괴되기 직전까지 보내온 광경이야, 직접 보고 느껴 봐라.
첨탑 망루에 선 채로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비치는 광경을 마음속에 펼쳐 놓으면서 살펴봤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했고, 아래편에 활짝 펼쳐진 들판과 언덕에는…….
‘저게 다 뭐야!’
잠깐 느낀 것만으로도 놀라게 할 정도로 몬스터가 가득했다.
하피를 등짝에 붙이고 있는 머드 퍼피티어의 무리만이 아니었다.
커다란 덩치가 어깨 위에 새를 얹은 듯한 모습도 있었고, 허우적거리면서 진흙탕 같은 땅 위를 버벅대며 딛고 있는 랩티드도 있었다. 간간이 물컹거리는 틈새로 눈알이 붉은 개가 짓이겨지는 중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깨갱 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있었다. 거기에 작은 잔나비 무리처럼 보이지만 흉포한 이빨과 손톱, 발톱을 노출해서 비비나비의 작은 품종인 것을 드러내는 것들도 섞여 있었고…… 뒤틀린 게 몇 마리가 닮았지만 조금 다른 모양의 커다란 집게발을 지닌 것들이랑 어울려서 함께 뒹굴고 있었다.
―저렇게 다른 품종의 몬스터를 모집해서 휘하에 부리는 것, 그리고 생김새. 대강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여왕이라고 부른 거야.
‘그렇게 부를 만하네. 그럼, 대체 저건 하피인 거야, 아닌 거야?’
―글쎄, 하피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하피이면서 하피 이상인 뭔가가 되었다고 해야겠지. 그러니까 퀸 하피? 하피 퀸? 뭐라 부르든 그쯤이면 적당할 것 같잖아?
‘적당하긴 하네…… 근데 거의 보이는 곳이 전부 몬스터로 가득했다고. 저걸 며칠 동안 계속 조금씩 나눠서 이리로…… 엘데인으로 보내고 있었던 거야? 대체 뭔 짓이지?’
―단지 보내기만 한 게 아니야. 주변을 뒤져서 새로운 휘하를 찾아 끌어들이고 있기도 했던 모양이다. 뒤틀린 게랑 대형 갑각 가재도 있군. 이제 보니 강가 쪽으로는 어제오늘 사이에 접근했던 모양이다. 여왕에게 끌려가는 중이라고 해야 하나.
투란은 잠시 목덜미를 잡고 긁적였다.
뭐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모호하고 답답했다.
주변을 다시 둘러보니, 성채 안 몇 곳에 지금 서 있는 곳과 거의 같은 모양의 첨탑 망루가 더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안을 둘러보고, 밖의 상황을 살핀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라비엔에서 온 일행이 어쩌다 이 소동에 휘말렸는지, 어째서 저런 묘한 파티가 되어 여기까지 왔는지를 짐작도 못 하겠는 것처럼…….
그래서 투란은 일단 묻기로 했다.
‘이런 거랑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 있어?’
드라고니아는 잠깐 침묵했다.
그 잠시 동안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 드라코눔의 아칸은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지는 않았지만 평소 말하던 기록을 통해 알고는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말은 드라코눔의 아칸조차도 전혀 달갑게 여기지 못한다는 것.
―얕보고 어설프게 이런 일을 처리했다가 몇 년 동안의 몬스터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신속하게 빠르게, 여왕을 처리해야 해야 한다고 권해야겠지만…… 그렇게 해서 끝난다는 보장도 할 수 없어.
‘에? 여왕을 처리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고, 처리해도 안 끝나? 왜!’
―과거 드라코눔의 아칸 몇이 그렇게 일을 처리한 적이 있다. 과격하고 신속하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그때는 비비나비가 왕 노릇을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왕을 처리했을 때, 왕의 권한이 상속이 되었다. 다른 몬스터…… 비비나비의 뒤를 이어서 웨어울프가 왕 노릇을 시작한 거야. 문제는 그 웨어울프는 그 이전에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는 거지. 즉, 저 무리는…….
‘몰살시켜야 한다는 거네? 일단 저 여왕의 휘하는 모조리! 그런 얘기야?’
―그런 얘기가 되는군.
드라고니아가 어쩔 수 없어 답답해하는 듯한 한숨 섞인 말투로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소리가 뇌리를 울리는 것을 느꼈고,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드라고니아의 기분을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옛날 드라코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가, 문득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일을 묻는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상아탑에서는 뭐라 할까?’
―뭐?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상아탑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건…… 드라코눔에서, 춤추는 산맥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고, 그 시기에 상아탑은 대범람 때문에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이 전혀 없었던 것 같군.
‘헤에? 그러니까 저런 거는 춤추는 산맥 밖에서도 생길 수 있는 일이란 거네. 흐흠, 그렇다면…… 정말 물어봐야겠네! 우리에겐 그랜드 마스터 메이지가 있잖아!’
―음? 흠! 흐흠, 당장 물어볼 방법은 생각해 둔 거냐?
‘어이, 뭘 시침 떼? 그건…….’
―잠깐, 누가 망루에 올라온다. 조금 더 조용하고 한적해서 방해받지 않을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어?’
투란은 곧바로 망루 아래에서 타닥거리는 발소리를 들었다. 높이 세워진 첨탑의 내부에 길고 가파르게 박힌 계단을 밟고 누가 올라오는 소리였다. 누군가랑 마주치는 것이 그리 반갑지 않은 때이니, 투란은 바로 망루 난간을 넘어 첨탑 외벽을 따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손끝과 발끝으로 첨탑의 외벽을 간간이 짚으면서 몇 미터씩 주르륵 미끄러지면서 속도를 줄이는 채로, 투란은 첨탑을 내려갔고 누군가 첨탑 망루에 서는 것을 봤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엘데인의 안팎을 살피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건물 벽과 벽 사이의 빈틈으로 떨어져 바닥을 딛으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묻는다.
‘홀시딘이랑 조용히 얘기하기 적당한 곳, 방해받지 않을 만한 곳 좀…….’
―성벽 위, 남쪽 방향의 성벽 위 망루가 보이지? 그 옆의 방벽 틈새에 사수를 위한 자리가 있다. 밖으로 돌출된 곳이야. 밖을 내려다볼 수 있고, 안에서는 그 자리가 잘 안 보이지.
말을 들으면서 투란은 바로 움직였다.
망가진 거리의 한 곳을 밟으면서 힘겨워하는 엘데인의 풍경을 스쳐 가며…….
쏴 떨어뜨린 하피의 시체 틈새로 인간의 시체가 보였고, 부상을 입은 채로 그 주변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쇠붙이가 번뜩였다. 혹시나 안으로 떨어져 살아 있는 몬스터가 있는가 대비한 듯한데, 그런 모습이면서도 눈가에는 두려움이 깊이 맴돌며 다음에는 자신이 시체가 될 차례인가를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 표정이었다.
다시 언제 싸움이 시작될까를 기다리는 듯하면서도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가 선명했다.
그런 풍경을 가로질러 투란은 걸었다.
이윽고 드라고니아가 알려 준 자리에 올라서면서 투란은 성채 너머의 푸경을 둘러봤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자리였다. 덕분에 지나치며 봐야 했던 엘데인의 풍경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듯한 것이 조금 괜찮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성채 안에서 누가 올라오면 바로 볼 수 있는 자세를 갖춘 다음, 투란은 손을 들어 올리면서 소리 없이 속삭였다.
‘좋아, 방해받지 않게 로열클래스 반지로 홀시딘을 부르자고. 자, 이 마법 좀 어떻게 해 봐!’
―바보냐, 네가 해야지! 난 주변을 지켜볼 테니, 어서 해!
‘쳇.’
입술을 살짝 삐죽인 다음, 투란은 로열 가든의 징표에 마음을 기울였다.
머나먼 어딘가에 있는 홀시딘, 알드바인의 마스터이면서 그랜드 마스터가 된 마법사를 향해 마음의 가닥을 날려 뻗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