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2)
‘뭐지?’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바탕 위로 금색의 광채가 형상을 이루는 광경이 보였다.
홀시딘을 중심으로 둔 채 펼쳐지는 그 광경은 길고 넓은 테이블 위에 온갖 요리가 채워지는 듯했고, 테이블을 둘러앉은 여러 사람의 모습이 금색의 안개처럼 엉긴 듯이 드러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이게 대체 무슨 풍경인가 의아했고, 홀시딘을 부른 마법이 어째서 이런 것을 보여 주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대강 알아차린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음, 연회인가? 아니면 그저 만찬일 수도 있겠군. 아무튼 홀시딘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의 풍경이다.
‘아, 그래? 그러면…….’
―말을 걸어 봐야겠지. 그다음은 홀시딘이 알아서 할 테니…….
투란은 숨을 고르고, 자신의 주변이 고요해진 것을 확인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 흠! 아, 아! 홀시딘, 나 투란인데요!”
순간, 홀시딘의 형상이 한 겹 더 윤곽을 덧씌운 듯이 변했다.
새로 덧씌워진 윤곽이 빙글 돌면서 저쪽의 만찬인가 연회인가 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투란을 바라보는 듯한 자세가 되며 홀시딘의 응답이 일단 아련하게, 그래도 또렷하게 투란에게 들려온다.
“잠깐, 이쪽에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까, 잠깐만. 됐다. 무슨 일이냐? 뭔데 로열 가든의 반지까지 동원해서 연락을 한 거야?”
홀시딘의 새로운 형상이 투란 쪽의 풍경에 금빛의 안개처럼 엮이면서, 또렷하게 이쪽과 대화하는 모습으로 이뤄졌다. 저쪽의 연회인가 만찬에 참석하는 또 하나의 형상도 제대로 움직이고 이쪽도 따로 이야기할 수 있는 듯했다. 온전한 온몸이 아니라 말하는 데 필요한 상반신만 갖춘 모습이기는 했지만…….
투란은 그 모습에 ‘과연 마법사.’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말문을 열었다.
“아, 여기 이상한 몬스터가 성벽 너머에 있는데 말이죠. 이게 쉽게 그냥 해치워도 되는 건가 좀 애매해 보여서 말이에요. 몬스터 떼가 벌써 열흘 동안 성벽을 두드리는데…….”
“뭐? 알드바인에 몬스터가 몰려왔단 말이야?”
홀시딘의 놀란 듯한 되물음이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니, 알드바인 말고 엘데인인데요.”
“엘데인? 투란, 너 엘데인에 가 있어? 왜?”
홀시딘이 어리둥절하면서 의아해하며 다시 묻고 있었다.
이 엇갈리는 대화의 시작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바로 잔소리를 쏟아붓는다.
―제대로 설명해, 제대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 기본도 모르냐?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상황을 명확하게 말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느닷없이 불러서 밖에 몬스터 떼가 있어요, 라면 홀시딘이 알 게 뭐야! 여기가 엘데인인지 알드바인인지! 널 계속 지켜보고 감시하는 게 아니잖아!
‘알았다고!’
투란은 잠시 숨을 고르며, 자기가 두서없는 말머리를 잡았다는 것을 반성하면서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얘기할 테니까, 일단 좀 들어 보세요. 음, 그러니까 알드바인에서 헌터들을 소집해서 말이죠…….”
홀시딘의 금색 형상이 조금 더 선명해지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되었다. 느닷없는 투란의 말이 나름대로 앞뒤를 갖추고 나오니 다 듣고 묻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엘데인에 들어왔어요.”
잠깐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한 투란이 일단 숨을 돌리듯이 말을 멈췄다.
그사이에 홀시딘이 묻는다.
“그러니까 짧게 말하면…… 하급 헌터인 척하고 소집에 응해서 파티에 끼어 엘데인까지 갔다, 가 보니 엘데인이 몬스터 떼에게 며칠 동안 공격당하고 있더라, 이런 얘기지?”
“에? 예. 그렇게 이야기했잖아요.”
다시 확인하는 홀시딘을 향해 투란이 어리둥절해서 중얼거렸다.
금색의 홀시딘이 쓴웃음을 짓는 표정으로 말한다.
“잘못 들은 부분이 있는가, 내가 잘못 파악한 게 있나 확인한 거야. 원거리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이야기가 누락된 채로 전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어쨌든…… 엘데인은 함락되지 않고 버티고 있잖아, 뭘 봤기에 내게 이렇게 연락한 거지? 처음에 이야기한 이상한 몬스터라는 거, 자세히 말해 봐.”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숨을 골랐고, 드라고니아는 신중하게 경고한다.
―프로브에 대해서 노출하지 않으려면 잘 말해야 할 거야.
‘이미 준비해 뒀잖아. 걱정 마.’
다짐을 하고 투란은 가볍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면서, 그 손에 에어로가 가만히 맺혀 맴돌게 하는 채로 말한다.
“정령수를 이용해서 엿봤어요. 뭘 봤냐 하면…… 이미징.”
손에 맺힌 에어로가 맴돌던 궤적을 바꿨고, 주변의 금빛 가닥을 끌어당기듯이 허공을 주무르듯이 투명하면서 금색이 엉긴 모양을 그려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투영된 형상을 보면서 홀시딘은 짧은 감탄부터 토해 내는데…….
“허어…… 과연 황금매로군. 그런데…… 저게 뭐야?”
마법에 대한 감탄 이후로 투란이 정찰했다고 말하는 몬스터 떼의 풍경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 홀시딘에게 투란은 재빨리 보태듯 말한다.
“역시 이상하죠? 하피가 저렇게 큰 머드 퍼피티어를 밟고서 저런 몬스터 떼를 주변에 가득 채운 것 같잖아요. 저런 걸…….”
“제엔자앙! 로드 오브 몬스터(Lord of Monster)잖아!”
“뭐예요, 그게? 몬스터 로드라는 거예요? 저거 몬스터가 아니라?”
투란은 순수한 무지(無知)를 담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얼른 물었다.
홀시딘이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쥐면서 머리에서 턱까지 밀어 올렸다가 끌어내렸다가 하면서 넘쳐나는 격정(激情), 주로 참을 수 없는 울화(鬱火)를 아낌없이 뿜어내는 모습을 자극하며 감상하겠다는 태도의 투란이었다.
그리고 홀시딘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나름대로 이해한 듯이 중얼거린다.
―상아탑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나…… 로드 오브 몬스터…… 몬스터즈(Monsters)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인가 싶은데…….
잠깐 몸부림치는 듯했던 홀시딘이 금색 안개 가지 같은 두 팔을 축 늘어뜨리면서 투란의 물음에 대답한다.
“몬스터 로드가 아냐! 저건 특이점(特異點)이라고도 부르는 건데…… 아, 무슨 대범람이라도 터졌냐고! 그런 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건데! 젠장!”
“그러니까 그냥 때려잡으면 안 되는 거예요?”
투란이 다시 순진(純眞)하고 무구(無垢)한 눈빛과 낯빛으로 물었다.
진정했다가 다시 낑낑거리는 표정이 되었던 홀시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그 입에서는 다소 얼떨떨한 소리도 나온다.
“어? 때려잡…… 그냥 때려잡아? 어…… 어라?”
눈을 깜박이기도 하는 홀시딘의 형상이 투란에게 살짝 재미있었다.
은발인 홀시딘이 금발이었고, 그리 크지 않은 몸이 가슴 언저리 아래쪽은 싹 사라진 채로 투란만을 보는 듯이, 투란에게만 보이는 듯이 꼬물거리는 듯한 이 모습을 대체 뭐라 해야 하는가?
조금 더 이 홀시딘의 모습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진 투란이 다시 떠벌리듯이 말한다.
“그러니까요, 저 특이점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하피가 몬스터 떼의 중심인 것 같잖아요. 저거 한 마리만 때려잡으면 저 몬스터 떼가 흩어지고, 그걸로 끝낼 수 있는가 확인하고 싶다고요.”
“아니, 그 한 마리만 처리해서 되는 쉬운 일이 아니야. 로드 오브 몬스터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상속(相續)이란 특성(特性)이니까. 상속성(相續性)을 해결하지 못하면 저 몬스터 군단은…… 해체되지 않아. 그러니 한 마리만 처리해서는 안 돼.”
“그럼……?”
상속이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렇다면 뭘 해야 하느냐고 묻는 눈빛으로 투란이 짧게 대꾸하듯 묻는 소리를 냈다.
홀시딘이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쓸어 올리는 모습으로 대답한다.
“몰살(沒殺). 저 휘하에 소속돼 버린 몬스터는 모조리 처리해야 해. 아주 작은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어, 투란?”
투란은 잠시 생각하는 시늉부터 했다.
홀시딘은 몬스터 떼를 모조리 처리할 수 있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아주 작은 한 마리라도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더라도, 한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고 몬스터 무리를 전멸시킬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니, 쉽게 대답할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상아탑에도 쉬운 방법은 없나 보군.
드라고니아가 살짝 기대했다가 실망한 듯이 중얼거렸다.
아마도 상속성, 그 계승이란 특징을 포착해서 억누르는 방법이 있기를 기대한 듯한 말투였다.
투란이 생각을 마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연다.
“그게 말이죠, 홀시딘…… 아직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못 봐서 그러는 모양인데요, 굉장히 많다고요. 저걸 전부 때려잡으려면,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다 잡아 죽이려면…… 아주 크게 저질러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여기 엘데인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볼 수도 있거든요. 내가 뭘 하는지 말이에요. 음, 그러니까 그게…….”
“안 돼! 그건 안 돼!”
주섬주섬 이야기하는 투란을 바라보다가 잠깐 맹한 표정을 지었던 홀시딘이 화들짝 놀라면서, 겨우 깨달았다는 듯이 손을 휘젓고 고개를 저으면서 외쳤다.
투란은 일단 입을 다물고 홀시딘을 바라봤다.
홀시딘은 끙끙거리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로드 오브 몬스터를 그냥 둘 수는 없어. 깔끔하게 처리해야 해. 하지만 투란 네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아. 캘러미티 로드가 몬스터 로드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미쳐 날뛸 놈들이 잔뜩 있으니까, 그건 두고두고 문제야. 그러니까 저 로드 오브 몬스터를 처리하고 투란 너에 대해서도 감춰야 하고…….”
뭔가 미로 안에서 헤매며 힘겨워하는 모습이잖은가.
투란이 그런 홀시딘에게 불쑥 한마디 던진다.
“그랜드 마스터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요?”
“어? 그랜드 마스터?”
잠시 홀시딘이 눈을 깜박이며 뜻밖의 소리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투란이 피식 웃으며 홀시딘을 손끝으로 가리키면서 말한다.
“그랜드 마스터잖아요?”
홀시딘의 낯이 살짝 구겨졌다.
“투란, 너 그걸 어떻게…….”
투란은 바로 허리춤의 물통 같은 마법 배낭을 툭 치며 말한다.
“이거 만들 때, 그랜드 마스터로서 어쩌구 하는 주문을 외웠잖아요.”
“어? 아……그랬군.”
쓴웃음과 함께 홀시딘의 머리카락을 긁적였고, 금빛이 산란했다.
동시에 홀시딘의 표정이 어딘가 홀가분해진 듯이 풀리며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래, 그랬어. 난 그랜드 마스터지…… 내게는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의 전승 마법이 있었지. 굳이 시크릿 키퍼가 아니라 해도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투란, 엘데인에 상아탑의 마법사가 한 명 정도는 있지?”
“세마인, 여기 발이 묶여 있는 채라고 했어요.”
“오, 세마인인가. 그럼, 조금 쉬워지겠어.”
“쉬워져요?”
갸웃하며 투란이 물을 때, 홀시딘은 두 손을 맞잡으면서 이미 어떤 마법의 의식(儀式)에 몰입하고 있었다. 작은 금빛 조각이 다시 펼쳐진 홀시딘의 두 손 사이에서 구슬을 그리듯이 맴돌며 나타난 것은 잠깐 사이였다. 홀시딘은 그 빙글거리며 맴도는 조각을 투란의 손에 쥐여 줬고…….
“이걸 세마인에게 몰래 넘겨줘. 네 모습을 보이지 말고, 대충 뒤통수 때려서 납치한 다음에 손에 쥐여 줘도 괜찮으니까, 암튼 들키지 말고 전해. 그다음에 내가 세마인에게 일을 시킬 테니까, 투란 너는 마법이 엘데인을 감싼 다음에 움직이면 돼.”
“마법이 엘데인을……?”
투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궁금해했다.
홀시딘이 금빛 낯짝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리듯 말을 잇는다.
“옛날에도, 카티야 님이 현역 시절에도 괜히 강한 헌터나 마법사를 보면 이러쿵저러쿵 미친 수작을 걸어오는 경우가 많았어. 그때마다 귀찮은 일을 겪었던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가 특별히 구상한 마법이야. 그냥 보면 뭔지 대강 알 테니까, 그 마법이 펼쳐지고 나서 로드 오브 몬스터를 처리하면 된다고. 그러니까…… 음, 투란 이건 좀 무리한 요청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뭘요?”
다시 갸웃하면서 투란이 머뭇거리는 말을 재촉했다.
홀시딘은 한숨을 쉬면서 조금 더 미적거리는 말투로 말한다.
“로드 오브 몬스터, 저 하피를 그냥 쳐 죽여서 끝내지 말고 말이지…… 가능한 무력화해서 산채로 제압한 다음에 그 능력을…… 로드 오브 몬스터의 능력을 획득해서 몬스터 떼를 제어해서…… 그 능력이 상속되지 않게 막아 줬으면…… 그래 줬으면 좋겠어. 어려운 일이겠지만…… 부담스럽더라도 할 수 있다면 그리해 줘.”
“몬스터를 부리는 몬스터 로드? 그게 될까요?”
투란은 미묘하게 헛웃음을 흘리며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 무리 중 한 마리를 잡아 삼키고 그 형상을 완벽하게 갖춰도 몬스터 무리는 몬스터 로드를 자신들과 다르다고 빠르든 늦든 결국 구별해 낸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은 몬스터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 주지만, 그 특별한 마력으로 인해 몬스터와 확실하게 변별되는 특징이 생기는 것이다.
과연 로드 오브 몬스터라는 특이한 성질이 몬스터 로드에게서 발휘될 때, 저 하피 휘하의 몬스터 군단이 복종할 것인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런데 홀시딘이 이를 요청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