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3)
“다른 몬스터 로드라면 이런 요청을 할 생각도 못 했을 거야. 하지만 투란, 황금매의 몬스터 로드는 조금 다르거든. 옛날에…… 재앙을 일으켰던 황금매가 비슷한 짓을 한 일이 있어서 말한 거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 보라고. 그게 되면, 정말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거니까.”
“흐흠,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워낙 많아서…….”
“투란, 로드 오브 몬스터가 출현해서 나돌아다니는 사실이 알려지면 보상금 받아내는 데 지장이 많아! 그러니까 어쨌든 해내야 해!”
“아니, 왜 갑자기 보상금 얘기가 끼어요?”
“칠왕국 전체가 대응해야 하는 사건이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아직 너랑 나만 아는 지금 깨끗하게 정리해야 금전을 쥐어짜 낼 수 있단 말이야! 들키지 않게, 흔적도 없이 정리하라고! 자, 그럼 이제 세마인을 찾아가라고!”
홀시딘의 모습을 이뤘던 금빛 안개가 흩어졌다.
투란은 엘데인의 성벽, 그 높은 곳의 한 귀퉁이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꼴이 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대화를 위해 형성되었던 로열 가든의 마법이 사라지면서, 마법의 영역도 함께 사라지고 다시 세상 풍경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손에 쥐어진 금빛 조각이 조금 전의 일이 환상이 아니라 특별한 마법의 영역에서 있었던 현실이라고 증명하는 듯한데…….
“왜 상금 얘기로 마무리하고 튀는데!”
투란은 불만스럽게 으르렁거렸다.
―나름대로 동기 부여한 거잖아. 사실이기도 할걸? 로드 오브 몬스터, 저 하피는 이제 겨우 시작한 경우지만 저게 제대로 몬스터 군단을 형성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이다. 상금이고 뭐고 태평하게 꺼내 줄 여유가 없을걸.
‘제에엔자아앙!’
키득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한층 더 화난 기분을 소리 없이 질러 봤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고, 빙빙 맴도는 금빛 조각은 조금 더 뚜렷하게 손의 감촉을 자극할 뿐이었다.
“어흐…… 세마인 한 대 세게 때릴까?”
살짝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할 궁리를 하면서 투란은 밖을 내려다보다가 소리 없이 말을 덧붙인다.
‘저 아래쪽에서 화살 좀 모아 줘. 마법으로 깔끔하게.’
―화살?
‘화살 구한다는 핑계로 나왔잖아.’
―그랬지. 그냥 돌아가서 못 구했다고 해도 뭐라 할 것 같지는 않다만…….
‘뭐라 하지! 길바닥에서 주워 오지도 않았다고 뭐라 할걸!’
―그러냐? 흐흠…….
이러쿵저러쿵 미적대는 말을 몇 마디 했지만 드라고니아는 성벽 밖으로 쏘아졌던 화살을 한 움큼 마법으로 긁어모아 투란에게 건네줬다. 투란은 그 화살 한 움큼을 나란히 세우고 화살촉과 대, 깃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특별히 새겨진 글자나 무늬를 지우고 흙칠을 바르듯이 옅은 갈색으로 다시 물들이기도 했다. 길고 짧은 차이가 나는 것은 적당히 중간을 자르고 길이를 맞춰 마법으로 이어붙이기도 하니, 화살 사, 오십 대가 순식간에 깔끔하게 정리된 채로 구색을 맞춘 한 뭉치가 돼 버렸다.
그 정리된 모양을 보며 투란은 살짝 으쓱거린다.
‘좋아, 마법 좋아! 그랜드 마스터는 아니더라도 쓸 만한 마법을 나도 안다고! 음핫!’
―마스터 정도가 못 돼도 중급 마도사라면 맨땅에서 그 정도 화살은 그냥 뽑아 올릴 수 있을 거다만.
‘시끄러워! 나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음, 그럼! 아, 근데 홀시딘은 왜 내가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니까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
―응? 그거 알고서 둘러댄 거 아니었냐?
‘둘러대다니?’
―블랙레온 배낭을 만들 때 마법 주문 사이로 그랜드 마스터란 말이 들어갔다고 한 거, 얼렁뚱땅 둘러댄 소리 아니었어?
‘들어갔잖아, 그게 왜 둘러댄 소리야?’
―주문 속에 들어간 몇 마디를 듣는 거, 엄청나게 어렵다고! 귀가 밝아야 하고, 어느 정도 마법에 대한 소양도 있어야 할 수 있다! 황금매라서 그럭저럭 들었구나 한 홀시딘이 불쌍하구먼!
‘그게 어려운 일이야? 흠…… 아, 근데 그랜드 마스터라고 했을 때 놀란 거는 그거 때문은 아니잖아? 그 말 듣고 그렇구나 한 거지.’
―하아…… 홀시딘이 너랑 남매들 앞에서 이모저모로 으쓱대고 티를 내기는 했다만, 상아탑의 그랜드 마스터라고 노골적으로 자랑은 안 했다고.
‘어? 안 했어?’
―넌 계속 엿듣고 엿보고 있어서 알고 있는 거잖아! 어차피 그랜드 마스터니 마스터니 하는 상아탑의 위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 살짝 참은 거겠지만, 어쨌든 네가 그걸 안다는 것은 마법사 입장에서 어딘가 수상하게 보인다고! 인간 사회에서는 정보의 진실보다도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느냐에 따라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고 하더만…… 넌 엿듣고 엿본 걸로 아는 척해서 의심을 산 거다. 뭐, 결국 둘러댄 소리로 그냥 넘어간 듯하지만 말이야.
‘으흠…… 그런 일이었나. 그럼 앞으로는 웬만하면 모르는 척해야겠네.’
투란은 살짝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성벽 아래를 둘러봤다.
엘데인의 거리 한적한 곳을 골랐고, 주변의 이목이 자신에게 전혀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투란은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곧 상처 입은 엘데인의 풍경 속을 되짚으면서 투란은 헌터 길드로 돌아갔고…….
“뭐야, 어디서 그렇게 깔끔한 걸 구했어?”
누워 뒹굴뒹굴하던 라펜이 돌아온 투란에게 바로 묻고 있었다.
투란은 훗 하고 으쓱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화살 뭉치를 배낭 옆 화살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대답한다.
“화살 고르고 있는데 분위기 이상한 아저씨가 싸게 준다면서 넘기길래 냉큼 동전 건네고 받아 왔죠.”
“분위기 이상한? 아, 로그메이지가 주운 화살을 팔았구나!”
라펜은 잠깐 갸웃하다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마법사였던가?’ 하면서 배낭 속에서 침낭을 꺼내 대충 펼치고 자리를 다진 다음에 드러누웠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라펜에게 묻는다.
“다들 흩어졌어요?”
마켈이 곁에서 낮은 숨소리를 흘리는 모습이 잠든 듯했고, 베즐 팀이 세운 천막 속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살짝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졸탄 일행이라든가 가까이 머무는가 했던 켈타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가만히 듣다 보면 베즐 팀도 전부 천막 속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각자 볼일 보러 갔든가, 갈 곳 찾아가서 흩어진 듯한 분위기가 엿보여서 묻는 말인데…….
라펜이 심드렁하니 대답한다.
“볼일 다 봤으니까. 살길 찾아 알아서 갔겠지.”
결국 별 관심 두지 않아서 잘 모른다는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샤오콴 마을에 힘들게 도착한 파티도 몇 개로 갈라서서 따로 사냥 나가기 일쑤였고, 돌아갈 때는 새로운 파티와 뭉쳐서 떠나는 일이 많았으니까. 마을이나 도시는 헌터를 모으기도 흩어 놓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라펜처럼 관심 없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같은 도시에서 전멸(全滅)할 수 있는 운명(運命)을 함께 맞이한다 해도, 지금은 그렇게 서로 무관심할 수 있었다.
투란은 그 무관심에 걸치듯이 라펜에게 말한다.
“그렇군요…… 잠이나 자야겠네요. 라펜, 몬스터가 열 걸음 안에 들어와 울부짖는 일 아니면 깨우지 말아요.”
“그 전에 일어나라!”
갑작스럽게 자신이 불침번이 되었는가 어이없어하면서 라펜이 투덜거렸다.
투란은 혀를 날름하면서 그대로 옆으로 몸을 누이면서 깊은숨을 내쉬며 잠든 척했고…… 순간적으로 땅속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라펜이나 주변의 누구도 투란의 모습은 그대로 누워 잠든 모습 그대로였다. 투란의 잠자리에는 여전히 투란이 누워 있으니까.
‘허물 벗기 성공! 후훗! 이제 완전히 요술쟁이 수준인데! 아무도 몰라!’
땅속 깊은 곳에서 투란은 소리 없이 으스댔다.
―남매들 속이느라 익숙해졌잖아. 게다가 근처에 시알라 남매 수준의 감각을 지닌 사람도 없으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드라고니아가 바로 핀잔했다.
‘역병의 수해’에서 투란이 자는 척하고 밤나들이를 할 때 썼던 수법이었다.
깊이 잠든 모습의 가짜 몸을 남겨 두고 몰래 빠져나가는 것!
땅을 파지 않고 투과(透過)해서 움직이는 탓에 더욱 흔적이 남지 않았다.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능력을 마법을 기반 삼아 펼치기에 더욱 은밀한 수단이기도 했다.
‘어, 근데 여기 땅밑이 왜 이래?’
프로브를 통해 둘러보다가 투란은 바로 갸웃거렸다.
헌터 길드의 땅 아래는 부드러웠지만, 엘데인의 성벽 안쪽의 지하 전부가 부드러운 흙이 아니었다. 높은 첨탑을 지닌 건물 아래쪽으로 몇 층의 지하실이 두꺼운 바위 소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건물이 몇이 있었으니, 지하실은 마치 땅속으로 파고든 쐐기가 된 듯했고 서로 이어진 것처럼 암반(巖盤)의 사슬을 꾸미고 있었다.
―침투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야. 몬스터가 하늘로 넘어오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땅속으로 파고드는 경우에 대해서 미리 대비를 해 둔 거지. 이 도시를 처음 건설한 이들이 남긴 유산이라 해야겠지. 헌터 길드는…… 이 지하가 돌파될 경우 가장 먼저 뚫릴 곳에 자리 잡았군. 무모하긴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자들을 바로 전투에 투입하려는 생각인가 보네.
‘자다가 봉변당할 뻔했잖아!’
투란은 살짝 투덜거렸다.
헌터 길드에 잠자리 틀었는데 땅속에서 뭔가 툭 튀어나왔다면…… 그리 몰골 좋은 상태로 끝날 리가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이 투덜거림을 무시한 채로 말한다.
―세마인은…… 길드 안쪽의 한 귀퉁이 침상이로군. 조금만 가면 되긴 하는데, 길드 건물은 기둥 세우고 그 위로 지어져서 다시 땅 위로 나가야 한다만?
‘어?’
투란은 잠시 길드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가 떠올렸다.
넓은 땅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얇은 지붕을 세웠고…… 그 중심에 굵직한 기둥 몇에다가 판자를 대놓았고 문짝을 붙여 놨다. 하지만 정작 건물은 그 판자 벽 너머에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위쪽…… 땅에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붕 뜬 것처럼 기둥을 다리처럼 내밀고 있는 형태였다. 그 형태에 엘데인 지하 구조를 겹쳐 생각해 보면…….
‘길드가 바로 뚫리는 거는 예방했던 거냐! 우와, 이 흉악한 작자들!’
투란의 투덜거림이 한층 더 심해진 듯했다.
그러나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세마인이 잠든 침상 아래로 흙을 가르면서 움직였다. 땅속으로 파고들 때는 흙덩이를 뽑아 ‘악마의 심장’으로 외견을 꾸민 가짜 몸 안에 밀어 넣고 자신과 바꿔치기했고, 땅 아래로 파고든 다음에는 흙을 당겨 밀어내면서 물살을 가르듯이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마인 가까이 온 다음, 투란은 바로 자신의 스피릿 아티팩트, 정령수를 불러냈다.
‘테라트, 에어로!’
―아쿠아도 불러. 편광(偏光) 장막에는 아무래도 아쿠아가 더 유리하잖아.
흙이 꾸물거리면서 구멍을 냈고, 구멍 주변으로 티끌이 맴돌면서 작은 회오리를 일으켰다. 회오리는 작았지만 맹렬했고, 회오리 너머의 풍경이 일그러지게 보일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그 일그러짐은 투명하게 출렁이며 저편과 이편을 가르는 장막을 형성해 냈다.
‘잠깐이잖아. 아쿠아까지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투란은 구멍으로 머리만 빼꼼히 내밀면서, 주변에 자신을 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이 장막 너머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곧바로 투란은 세마인이 누운 침상 아래쪽 바닥에 들러붙었고, 테라트의 힘으로 바닥을 뒤틀어 열었다. 건물의 주소재인 굵고 두꺼운 목재가 부러지거나 깨지지 않고 얌전히 뒤틀린 채로 투란에게 구멍을 열어 준 셈이었다.
세라트가 침상에 옆으로 누운 모습을 확인하고 투란은 슬쩍 그 귓가에 손을 대며 속삭였다.
“홀시딘.”
금빛 조각이 투란의 손에서 맴돌며 나타나 세마인의 귓불에 찰싹 달라붙었다.
“흐윽! 마스터!”
세마인이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투란에게는 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 대 쳐서 기절시켜야 세마인이 투란을 못 볼 상황 아닌가!
재빨리 투란이 주먹을 꽉 쥐는데…….
―안 그래도 된다. 홀시딘의 마법이 세마인의 감각을 완전히 차단했어. 음? 저건 단순한 메시지가 담긴 마법이 아니네, 지금 세마인과 홀시딘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어? 뭔 소리 하는지 못 들어?’
―홀시딘이 너에게도 들려줄 생각인가 보군.
잠깐 의아해하는 사이,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로열 가든의 반지가 손가락 사이에서 찰랑거리는 빛과 함께 형체를 드러내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홀시딘의 낮은 속삭임이 투란의 귓가에 들려온다.
“대기하고 있다가 세마인이 마법을 펼치면 빠져나가.”
쥐었던 주먹에 힘을 빼면서 투란은 자신을 감싸는 부드러운 힘, 어둠을 느꼈다.
형체를 감춰 주고 기척도 함께 지워 주는 홀시딘의 마법이었다.
슬쩍 힘을 빼면서 투란은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테라트가 열었던 틈새를 닫았고, 홀시딘이 세마인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암막(大暗幕)이라 일컫는 주문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