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4)
‘우씨! 이럴 거면 처음부터 마법 걸어 줄 것이지!’
투란은 일단 투덜거리고 불평했다.
―세마인을 기점(起點)으로 삼아 펼쳐야 했으니까 그런 거다. 엘데인을 감싸고 정보를 차단하는 게 목적이니까. 넌 나가 싸울 거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불만을 찍어누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투덜거림을 우물거리면서 삼키며 투란은 일단 홀시딘의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세마인을 향한 듯하지만 투란에게도 함께 전하는 이야기니까.
“네가 전혀 예상 못 한 재앙이 엘데인 앞에 도달해 있다. 엘데인은 그 재앙이 자기 힘을 연습하기 위한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야. 당연히 엘데인이 무너지면 칠왕국, 아니 왕국의 경계에 속하지 않는 섀터드 세븐 전체에 재앙이 넘쳐날 거다. 그러니까 누가 눈치채기 전에, 재앙이 아직 미숙한 지금 단번에 처리하려고 한다. 거기에 네 손이 좀 필요해.”
“마스터, 돌려 말하지 마시고 그냥 알려 주세요.”
세마인이 위엄이 넘쳐나는 홀시딘에게 투정과 한숨을 섞어 말했다.
홀시딘은 바로 혀를 차는 소리로 먼저 짚어 두는데…….
“마음을 닫아. 네 주변에서 네 감정으로 일어난 마력 파동에 놀라지 않게, 단단히 준비부터 해라. 내가 길게 말하면 그런 준비부터 척척 갖춰야지! 그래야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넘어가잖아!”
“아, 네.”
세마인은 뭔가 평소 홀시딘의 나쁜 버릇이라도 떠올리는 듯이 시큰둥하니 대꾸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투란이 그 태도에 홀시딘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궁금할 지경이다!
“엘데인을 공략하고 있는 거는 로드 오브 몬스터의 휘하다. 천천히 힘을 시험하는 단계인 모양…….”
그러나 홀시딘이 진지하고 신중하게 여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마스터어! 장난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분위기 뒤숭숭하고 흉흉하거든요! 개뜬금없이 마법 실험하시는 거면 그냥 그렇다고 하세요! 그런 흉악무도(凶惡無道)한 핑계는 대지 마시고요!”
세마인이 부들부들하면서 울컥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최대한 짓누르는 채로 홀시딘의 말을 자르면서 잔소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아, 이 마법사를 대상으로 이것저것 많이 실험한 모양이구먼. 흐흠…….
‘뭐? 실험?’
―상아탑의 고위 마법사가 새로운 마법을 구상한 다음에 휘하의 마법사에게 관람을 시키거나 하는 경우가 있거든. 가끔은 직접 실험 대상으로도 삼고, 새로 구상한 마법이 하위 마법사에게도 쓸모가 있는가 알아내려고도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을 얻는다고 하더군. 뭐, 거기 참여한 하위 마법사가 심한 꼴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저런 반응도 나올 수 있는 거지.
‘덕분에 아예 못 믿을 지경이란 거야?’
문득 투란은 첫 만남에서 홀시딘이 한 짓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세마인 역시, 투란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이래저래 시달려서 저러는 듯한데…… 지금은 어떻게든 세마인을 납득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홀시딘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만 닥쳐! 닥치고 들어! 이대로 주문을 인계할 테니, 그대로 실행해! 마법의 효과가 다 할 때까지 엘데인을 지키는 임무, 마법사 세마인! 닥치고 복종해라! 불평은 일이 끝난 다음, 상황을 정리한 보고서에 함께 문서로 첨부해라!”
홀시딘은 설득하지 않았다.
그냥 금빛의 형상 속에서 눈을 부라리면서 명령할 뿐이었다.
결국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위계 상위인 마스터의 명령에 더 따질 수가 없게 된 세마인은 시무룩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두 손을 내밀어 금빛 조각을 받아 들었다.
“응? 이건 대암막! 자, 잠시만요! 마스터, 이건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 님의 독자적이고 특별한 주문이잖습니까! 어째서 마스터께서…… 아니, 그리고 이 마법은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이 아닐……?”
“어? 아, 너 대마도사 전기(傳記)에 푹 빠져 있던 팬보이였지. 카티야 님이 네 취향이었냐? 흐흠, 나중에 보고서에 질문을 첨부해라. 지금은 그런 거 설명해 줄 때가 아냐. 로드 오브 몬스터를 막고, 엘데인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먼저야. 그럼, 세마인. 나중에 알드바인에서 보자.”
홀시딘의 형상이 금빛으로 흩어졌다.
세마인은 더 따질 대상이 사라진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마법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면서 계속 놀란 소리를 중얼거린다.
“어째서…… 대체 마스터가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의 마법을…… 내가 알드바인에서 몇 달 떠나 돌아다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낮은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마인은 라비엔에서 알드바인으로 가는 도중에 스쳤던 이래로, 투란이 루케인을 앞장세워 알드바인에 도달한 이후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하잖나. 이 엘데인에 도달할 때까지 여기저기 헤매면서, 몬스터의 흔적만을 쫓느라고.
―준비해라, 어쨌든 시작할 모양이니까.
드라고니아가 세마인의 태도를 보다가 말했다.
‘아, 그래.’
투란도 가만히 자신을 감싼 어둠을 살피면서 대꾸했다.
금방 세마인이 홀시딘이 인계한 마법의 조각에 집중했고, 어둠이 짙게 세마인의 주변을 휘감으며 형성되었다. 그리고 바로 급격하게 팽창했다.
“우앗, 이게 뭐야!”
“뭐야, 뭐가 스치고 갔어!”
“깜깜해! 어, 밝아졌……!”
“하늘을 봐! 시커멓잖아!”
“엘데인이 어둠에 덮였어!”
“몬스터냐? 뭔 몬스터지?”
“마법이다! 누가 이런 마법을……!”
펼쳐지며 스쳐 간 어둠이 투란을 감춰 주는 어둠을 울리며 엘데인 곳곳에서 일어나는 당황스러운 소감을 알려 줬다. 그리고 투란은 자신이 성벽을 관통하듯 지나치는 어둠에 실린 채로 성벽 밖에 서 있게 된 것을 알아차렸다.
‘헤에?’
―호오? 이게 상아탑 그랜드 마스터의 울티마틱 다크베일인가…….
‘어? 울티…… 뭐?’
―이 마법, 꽤 유명하거든. 흥미로운 구성이야.
‘아, 그래?’
마법에 대해 잔뜩 관심을 두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내면서 투란은 일단 자신이 선 자리를, 마법에 의해 풍경이 어떻게 달라져 보이는가를 다시 확인했다.
홀시딘이 투란을 포착하고, 대암막이라는…… 울티마틱 어쩌구 하는 마법을 이용해서 싸우라고 몰아낸 것은 대단했다. 비록 시크릿 키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을 한 듯한 느낌도 있기는 했지만, 엘데인의 성채 안쪽에서 밖으로 이렇게 감쪽같이 내보내 줬으니 투란의 수고는 조금 덜어 준 셈이었다.
엘데인 안쪽의 소란은 세마인에게 떠넘기고, 투란에게는 꽤 명확하게 몬스터 격파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투란이 지금 할 일은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를 점검해 보는 것이 당연했는데…….
‘와, 나 이제 꽤 도시 사람이 되었나 봐!’
차림새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투란의 마음에 불쑥 떠오른 생각이 드라고니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뭐……? 도시 사람?
너무 뜻밖이라 어이없다는 듯, 드라고니아는 잠시 그랜드 마스터의 마법에 집중하던 것이 와장창 박살 난 듯한 말투로 되묻기까지 했다.
투란은 히죽 웃으면서 느릿하니 성벽을 감싼 어둠으로부터 걸어 나가면서, 숨을 고르며 소리 없이 대답한다.
‘응. 이거 봐. 허물 벗기 하고 빠져나왔는데, 장비를 하나도 벗지 않았잖아. 가짜로 모양만 만들어 두고, 입고 있던 장비 그대로 다 챙긴 채잖아. 지금 싸우러 가는 데는 딱히 쓸모도 없는데 이렇게 챙겨입은 채라니, 도시 사람이잖아!’
―그냥 홀랑 벗어젖히는 걸 잊은 거잖아? 요새 홀딱 벗고 다니질 않아서 간만이라 잠깐 잊은 것뿐으로 보이는데?
‘어이, 내가 도시 사람이면 안 되냐?’
―홀랑 벗어젖히는 걸 잊었다고 도시 사람 어쩌구 하니까!
‘잘 입고 다니면 도시 사람 맞거든?’
투덜거리는 채로 투란은 어둠에서 벗어났다.
감각으로 더듬던 세상이 다시 눈앞에 훤히 펼쳐졌고, 어둑한 풍경이었음에도 어딘가 눈부시다는 느낌이 투란을 설레게 했다. 별빛이 맴도는 밤이 깊어 가는 탓인 듯, 등 뒤에 성채를 가린 어둠 탓인 듯…….
‘자아, 그러면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투란은 검은 사자 머리의 버클이 달린 마법 배낭, 이제까지 물통인 양 허리에 매달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열면서, 차려입고 있던 장비를 벗어 그 안에 담아 가며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그 말투 속에 담긴 진지하고 신중한 의미를 읽었다는 듯, 조금 전의 놀려 대는 말투와는 전혀 다른 차분함을 담아 이야기한다.
―대강 4, 5킬로 거리에 있는 언덕 너머다. 산자락은 아니지만 거기 지형이 움푹 파여 들어간 구덩이 형태야. 그 지형을 이용해서 이쪽에서 바라보는 시야에서 벗어난 채로 모여 있다. 저 정도면 거의 군단이 주둔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지.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려 한다면…… 꽤 피곤할 거야. 엉망진창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대열을 갖추고 있고, 몬스터를 종별(種別)로 배치해 놓은 모양이니까. 가장 앞쪽으로는 하피를 거느린 머드 퍼피티어가 있고…… 아까 전부터 강에서 끌고 간 뒤틀린 게 떼도 함께 있군. 그리고…… 흐흠, 저 멀리로 새로 고블린 무리도 합류하는 모양인데? 점점 품종이 다양해지는구먼!
‘고블린도? 고블린이 다른 몬스터랑 잘 어울리나? 떼로 몰려다닌다면 고블린도 나름대로 무리의 규칙이 있잖아?’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은 몬스터 중에서도 이모저모로 인간과 닮은 특성을 보인다.
그중에서 호드라는 형태로 집결한 경우에는 아예 왕국의 군단과 맞설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일 지경이니까. 작은 무리라 해도 자신들과 다른 몬스터 종에게 굴복하기보다는 몰래 도망치거나 들켜서 잡아먹힐 때까지 도망치는 일은 있어도 거기 합류해서 한 무리가 되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기야 있지. 지금 합류한 고블린 무리의 규칙은 여왕에게 복종한다, 인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씁쓸한 듯이 대답했고, 이는 투란에게 다시 한 가지 물음을 되새기게 했다.
‘로드 오브 몬스터…… 도대체 그게 뭐야? 다른 몬스터를, 품종도 다른데 막 지배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여러 번 겪었다며? 아, 직접 겪은 일이 없어도 말이야. 홀시딘도 꽤 아는 눈치던데…… 난 들은 적이 없다고.’
―들은 적이 없어? 흠…… 직접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는 꽤 들은 적이 있을 거야. 몬스터 무리가 뭔가에 놀란 것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간다든가, 서로 싸우지 않고 오직 인간만을 노리고 덤빈다든가…… 그런 현상이 발생할 때,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로드 오브 몬스터즈니까 말이야.
‘그런 얘기야? 그거 좀 애매한데? 아, 그러고 보니 유니크라고 했잖아. 유니크 타입의 몬스터라면 모양이든 성질이든 다른 거랑 확 다른 한 마리뿐인 경우 아니었어? 유니크라면서 어째서 그렇게 몇 번씩 나타난대?’
―그래서 홀시딘이 특이점이라고 한 거다. 어떤 품종의 몬스터가 로드 오브 몬스터즈가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 물론 기본이 되는 몬스터가 아예 완전히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개체인 경우도 있다만, 이미 있는 몬스터를 바탕 삼아 로드 오브 몬스터즈의 특이한 능력이 덧씌워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지.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바탕이 된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격이 다른?’
―원래 능력이 다른 성질로 바뀌기도 하고, 몇 배로 증폭되기도 하지. 간혹 사라지기도 하고…… 때문에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는 독특한 몬스터가, 얼핏 생각하면 아주 익숙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 거랑 마찬가지인 셈이지. 그러니 하피의 형상이라 해도 하피라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이전에 없고 나중에도 없는 유니크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
투란은 마법 배낭, 블랙레온을 어둠 속으로 던져 넣었다.
금빛 반지의 광채가 살짝 깃든 검은 사자 머리의 버클이 어둠 속에서 반짝하며 금색의 안개에 둘러싸이다가 사라졌다. 로열 가든의 마법과 대암막이 어우러진 광경이었다.
―이제 홀딱 벗은 거냐?
‘야, 가죽 바지 잘 입고 있잖아!’
―그 가죽, 몬스터의 힘으로 만든 가죽이잖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래서 유니크 몬스터…… 로드 오브 몬스터인가 뭔가가 있는 곳까지 직진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주 피곤해진다. 수가 너무 많아. 그리고…… 사이렌을 어깨에 얹은 마울 트롤이 떼 지어 있다고 했잖아. 아무래도 그게 일종의 친위대 역할인 것 같은데, 힘도 좋지만 튼튼해서 무쇠뿔 오우거의 주먹질이라도 제대로 몇 대 정확하게 치지 않으면 꽤 버틸 거다. 마그마 로드라면…… 저 웅덩이를 다 채우는 데 며칠 걸릴 수도 있어. 이기긴 하겠지만, 지금 펼쳐진 대암막이 유지되는 시간은 훨씬 지난 다음이겠지. 홀시딘이 계속해서 지원해 준다면 대암막도 며칠 가긴 하겠지만…….
‘음, 그렇다면…….’
투란은 다시 엘데인을 감싼 어둠을 바라봤다.
이제는 거의 어둠의 성채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별빛 아래 밤보다 짙은 어둠이 깔린 듯한 광경이었으니…….
‘시간 끌지 말고, 피곤하지 않게 가자!’
엘데인을 등지고 돌아선 투란은 한쪽 무릎을 접으면서 높은 밤하늘의 풍경을 올려다봤다.
곧 드라고니아가 알려 준 방향 너머로 눈길을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