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7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5)
비스듬히 허공을 겨냥하며 투란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 쪽 손목으로 세밀한 대롱이 두툼하니 불거진 핏줄처럼 돋아났고, 그 끝이 열렸다.
피잇.
가는 소리와 함께 대롱 끝에서 붉은 실 빛이 높이 뻗어 나갔다.
처음에는 굵은 듯했지만 실 빛은 어느 틈엔가 사라진 듯 눈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늘고 섬세해서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탓이었다.
그러나 투란은 미크론 영역의 실이 높이 뻗어 올라갔다가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명확하게 자각(自覺)하고 있었다. 나노미터 굵기의 실, 거미줄이었지만 그 안에는 마그마 로드의 정수(精髓)까지 담겨 있어 붉은 광채와 함께 투란의 지각 영역을 확장해 주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길게, 정상적인 감각 영역에서 포착될 일이 없는 거미줄은 저편에서 포물선의 끝을 맺었고 땅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곧바로 투란의 손목 대롱이 불끈하면서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거미줄은 저 멀리 그 끝자락을 꽂았다고 느슨해지거나 헐렁거리며 지상(地上)으로 추락하지 않은 채, 오히려 강철(鋼鐵)의 몇 배나 되는 강도(强度)와 인장력(引張力)으로 팽팽하게 버텼다. 저편에서 더 깊숙이 땅에 스며들며 뿌리를 내리는 듯했고, 이쪽에서는 투란의 손목에 생성된 대롱이 마수(魔獸)처럼 강경하게 물고 있는 듯한 상태였다.
그렇게 거미줄의 긴장(緊張)이 형성되는 순간, 그에 호응하듯 투란의 발목, 종아리, 허벅지가 팽창하며 핏줄과 힘줄이 노골적으로 도드라졌다.
푹.
가볍게 발을 딛는 소리가 투란의 발아래에서 울리는가 했을 때, 투란은 어둠에 둘러싸인 엘데인을 저 멀리 남겨 둔 채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야, 잠깐! 너 지금 어디까지 치솟으려고……!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강철 강도의 거미줄을 장대 삼아, 그 불가해(不可解)한 특성을 투석기처럼 활용해 몸을 날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계산을 겨우 끝내고 화들짝 놀라 외쳤다.
그러나 이미 투란의 몸은 더욱 높이, 멀리 날고 있었다.
화르르!
바람이 살을 짓이겨 갈아오는 순간, 투란의 몸은 그대로 붉게 물들면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타는 살갗은 출렁거렸고 끈적하게 녹아 뭉쳐 들면서 퀭하니 뚫린 듯한 눈구멍의 검은 색조조차도 붉게 물들였다.
어느 틈엔가 검은 사자의 형상을 드러내던 머리는 붉은 사자 머리가 찰랑거리며 용암의 땀방울을 드리운 듯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변화와 함께 온몸을 타고 번지는 불길이 바람의 도움을 받아 더욱 크게 번졌고, 불길로 이뤄진 몸집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밀고 있는 손목의 대롱은 뿜어낸 거미줄을 놓치지 않았고, 나노미터의 장대는 더욱 높이 투란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체격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아니란 듯!
그래서인가, 드라고니아가 허겁지겁 놀란 소리로 투란의 마음속에 열심히 외치고 있었으니…….
―생각은 하는 거냐! 너 벌써 1킬로 이상 치솟았어! 게다가 체중은 왜 증가시키는 거야? 대체 왜! 이대로면 3킬로 이상 치솟아서 톤으로 세어야 하는 체중으로 추락한단 말이다! 그게 뭔 뜻인가 몰라? 임팩트 웨이브로 지진(地震) 난다고! 충격파(衝擊波)가 조금만 잘못 집중되면 엘데인의 성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고! 못 알아듣냐! 투란!
불타는 사자의 입가에, 투란의 미소가 걸렸다.
‘아, 그럴 수도 있어? 하핫, 그런 일 없어. 이대로 무게 잡고 바로 떨어져 내릴 생각은 없으니까. 자아, 그보다 이제 정상에…… 정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그러니까…… 백기(百機)의 군무(群舞)를 준비하자고.’
―뭐?
드라고니아가 방금 전과는 다른 놀란 대꾸를 했다.
투란은 놀라는 드라고니아에게 다시 짧게 보챈다.
‘적당하잖아? 지금 쓰기에 말이야.’
―그렇기는…… 하군.
‘그럼, 시작하자고. 도울 거지?’
―그래. 너 혼자 아등바등하게 둘 수는 없잖아. 프로브를 다루는 거니까.
불타는 사자의 입이 열리면서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투란의 몸이 들이쉬는 숨결에 따라서 거센 불길을 일으켰고, 더욱 크게 부풀면서 거대한 사람의 형상에서 붉은 사자 머리에 어울리는 형상…… 퀸 아라크레온의 형체로 변해 갔다. 그러는 사이 주변으로 튀어 나간 불꽃이 뒤틀리며 마법과 뒤엉켰다. 곧 불길이 일렁이는 아라크레온 주변에 불꽃을 머금은 프로브가 잔뜩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수가 거의 백에 이르렀을 때, 거품 같은 프로브의 안쪽에서 투명한 광채가 번져 나왔고 프로브에 엉겨 있던 불꽃의 색채가 일렁임만을 남긴 채로 사라졌다. 일렁이던 투명함은 곧 깨끗하게 정리되며, 생성된 프로브의 형체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 마리도, 한 조각도 놓치지 말고 전부 포착해야 해!’
투란의 강한 의지가 마음을 울렸다.
―아, 물론. 역병의 수해 이후로 처음인가? 거기서도 거의 벗어날 즈음 돼서야 가능했지? 어때, 오랜만인데 할 만한가?
드라고니아가 백을 헤아리는 프로브로부터 흘러들어 오는 방대한 지각의 정보량을 가늠하면서 물었다.
퀸 아라크레온의 형체가 꼿꼿하게 서는 듯했고, 몸의 곳곳을 뒤틀면서 변형(變形)했다. 그렇게 해서 아라크녹스의 왕, 여왕의 모습을 바탕으로 갖춰진 왕의 형체를 갖춘 다음 투란은 짧게 대답한다.
‘쉬운데?’
―쉬워?
꽤 뜻밖이라는 듯, 드라고니아가 놀랐다.
마음속에 미소를 휘날리면서 투란은 조금 더 자세히 말한다.
‘어, 거미 임금님, 백기가 아니라 천기의 프로브라도 춤을 추게 해도 될 것 같아. 음, 게다가…… 내려다보이는 전체를 단숨에 제압할 수도 있겠어. 하핫, 마그마 로드랑 잘 어울리기도 하네!’
융합된 몬스터의 감각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전한 이야기에 드라고니아가 크게 곤혹스러운 듯이 잠시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투란은 꼿꼿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을 밟고 선 자세로 왕의 감각을 보다 더 강하게 확장했고, 프로브에 공명(共鳴)했다.
곧이어 꼿꼿하게 서 있던 왕의 몸이 기울어졌고, 하강(下降)이 시작되었다.
―퀸 하피의 위치는 봤지?
‘아, 보여.’
사자 머리의 불꽃 한 자락이 살랑거리는 와중에 그 속에서 둥글게 맺힌 불덩이가 눈알 모양을 형성했고, 불꽃 속에서도 검게 맺힌 뿔수리의 눈동자는 거의 3킬로 아래인 지상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하피…… 로드 오브 몬스터의 자태를, 그 입술을 오므리는 표정과 봉긋한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들이쉬는 광경을 선명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응? 저게 널 보잖아!
드라고니아가 흠칫 놀랐다.
‘입술로 겨냥하는데?’
투란은 흥미롭다는 듯, 서서히 맴돌며 떨어져 내리는 채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대꾸했다.
―이런! 저게 쏘……!
파앙! 파파팡!
드라고니아가 한 박자 늦게 외치는데, 가늘고 섬세한 불길의 그물이 갑작스럽게 공중에 나타나며 뭔가와 충돌하는 광경이 드러났다. 그물은 몇 겹으로 쌓여 있었지만, 충돌한 것은 그물 한 겹 한 겹을 계속 뛰어넘어 오듯이 연이어 불길의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끝자락이 사자 머리의 옆을 스쳐 갔다.
‘역시 바람결이 아니네?’
투란이 그에 대해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음파(音波)라고, 음파! 바람을 매질(媒質)로 삼는 음파 충격, 그게 하피의 보이스 슈팅, 소릿살이다. 설마 3킬로 거리를 관통시켜서 공격 가능할 줄이야……. 그런데 저게 일부러 빗맞힌 거냐, 네가 피한 거냐?
갑작스러운 저격에 당황했던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리다가 물었다.
하강하는 채로, 점점 더 바람에 부추겨서 커져 가는 불길 속에서…… 사방으로 휘날리며 번져 가는 불티, 불씨의 난무(亂舞) 속에서 투란이 느릿하니 대답한다.
‘내가 피한 쪽이려나? 소릿살이라도 쏘아졌을 때, 조금 빨리 맴돌았거든. 그런데, 저거 눈동자, 참 특이하네?’
―눈동자?
투란의 지적에 드라고니아는 하피의 모습을 조금 더 세심하게 검토하는 듯했다.
투란은 빙빙 맴돌면서 계속 하강하는 채로 하피의 시커먼 눈알, 그 위에 작게 부스러지듯이 흩어져 박힌 듯한 별빛의 조각을 관찰했다. 하피도 그 기묘한 눈알을 굴리면서 투란을 바라보는 듯했다. 거의 눈이 마주친 채로, 서로를 관찰하면서 좁혀지는 거리를 가늠하는 상황이었다.
사자 머리의 눈구멍은 비운 채로, 휘날리는 갈기에 왕의 형상에는 없는 날짐승의 눈알을 띄워 놓은 듯한 채로 내려가면서 투란은 하피의 눈알이 변하는 것을 바라봤다.
하피 눈알의 검은색이 별빛 조각이 뭉치면서 함께 오그라들며, 하얀 눈알 위의 검은 눈동자가 되었다. 어느새 꽤 정상적인 하얀 눈자위에 검은 눈동자, 그 속에 별빛이 점점이 박힌 듯한 모양이 된 것이다.
변한 것은 하피의 눈알 형색만이 아니었다.
투란의 하강을, 불타며 이글거리고 찰랑이는 마그마로 이뤄진 아라크녹스 왕의 강림을 맞이하려는 것처럼 하피 주변으로 몬스터 떼가 모여들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를 맞이해서 여왕을 호위하겠다는 것처럼.
‘정말 특이하네, 로드 오브 몬스터라…….’
사방으로 가득 펼쳐 놓은 백기의 프로브가 보내오는 상황을 마음에 담으며 투란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정말로 품종이 다른 수많은 몬스터가 지금 하피의 호출(呼出)에 응하고 있고, 그 명령에 복종(僕從)하고 있다!
걸어서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했다면, 저 몬스터를 모조리 때려눕히고 그 시체로 이뤄진 길을 따라가야 했을 테고…… 하피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전에 지쳐서 헐떡대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물러서기라도 한다면 며칠을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싸워야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투란의 선택이 아니었다.
투란은 날아올랐고, 떨어지고 있으니까.
이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찾으라 바쁜 것은 저 로드 오브 몬스터, 여왕으로 보이는 하피였다.
투란은 가속하며, 여왕을 위협하며 강림(降臨)할 뿐이었다.
―야, 감속 안 할 거냐! 정말로 지진 낼 작정이야?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일 없어.’
대답하면서!
콰앙!
땅울림은 웅장했다.
하지만 땅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거의 10여 미터에 가까운 크기의 수 톤에 달하는 거체가 떨어져 내린 것을 맞이했을 때의 현상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굉음을 울린 것은 땅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라는 듯!
이 현상을 바라보면서 하피가 고개를 갸웃했다.
떨어져 내린 거대한 것은 하반신을 땅속에 박아 넣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채로 불길이 맴도는 사자의 머리가 까닥거렸다.
“못 알아듣겠지만, 말해 줄게. 나는 말이야…… 네가 유니크 몬스터인 만큼 유니크한 몬스터 로드거든. 그러니까 그만 까불고 얌전히 내게 잡아먹혀! 아프지 않게 단번에 삼켜 줄게!”
윙윙거리는 울림이 말의 형태를 꾸민 채 퍼져 나갔다.
―몬스터 앞에 놓고 뭐라는 거야!
너무 어이가 없는지 드라고니아가 잠깐 막혔던 말문을 간신히 다시 열면서 투덜거렸다. 충돌의 순간에 어떻게 그 모든 충격을 완화했는가, 관찰하고 겨우 안도했던 것을 모두 잊었다는 듯!
‘군단을 조직해서 움직이잖아. 어쩌면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잖아? 뭐, 아니면 마는 거지!’
넉살 좋은 척,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떠들다가 하피와 그 몬스터 떼가 전혀 못 알아듣고 달려드는 광경을 확인하면서 말끝에 너스레를 덧붙였다.
가장 먼저 땅에 박힌 불타는 적을 때리겠다고 달려든 것은 마울 트롤이었다.
그 주먹은 마울(Maul)이라는 호칭이 어울리게 두텁고 컸고, 쇳덩이 이상의 강도를 가진 채였다. 그 어깨 위에 올려진 사이렌은 노쇠(老衰)한 인간의 낯짝, 그중에서도 특히 노파(老婆)의 얼굴에 가까운 모습으로 입을 열고 나직한 울음을 흘렸다. 그 머리 말고는 그저 사납고 큰 독수리 같은 사이렌이었지만, 마울 트롤의 어깨 위인 탓인가 작은 애완용 새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이렌의 울음이 퍼지고, 마울 트롤의 쇠망치 같은 주먹이 이글거리며 붉게 번들거리는 형상에 닿는 순간…….
콰르르, 콰아앗!
시뻘건 쇳물처럼 변한 바닥이 출렁거렸다.
단단한 땅에 하반신이 박혀 있는 듯했던 모습은 더 이상 없었고, 작은 용암의 연못 속에 하반신을 담근 채로 왕의 손이 마울 트롤의 머리를 잡아 치켜올리고 있었다.
거의 4미터에 육박하던, 모여들었던 마울 트롤 무리 중에서 가장 크고 용맹했던 한 마리가 가벼운 인형처럼 들려 올라가 발을 버둥거리는 광경이었다.
불타는 사자의 입에서 다시 한번 웅장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쪼그만게…… 덩치는 보고 덤벼야지.”
상반신만 드러난 채였지만, 불타는 아라크녹스의 왕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7, 8미터에 달하는 높이를 지닌 거대한 체격이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더 커져 버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