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8)
흙탕물 색을 띤 알은 곧 흐물흐물 뭉개지고, 작은 알이 작은 도마뱀 같은 것으로 변해 버렸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고, 처음 있던 한 마리가 갈라지며 쏟아 낸 알 전부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
작은 도마뱀은 입을 열고 후욱후욱 숨을 들이쉬는 시늉을 했고, 그때마다 몸을 따라 늘어선 작은 다리들이 바르르 떨렸다. 그다음에 커졌다. 순식간에 두 배로 부풀고, 다시 숨을 쉬면 세 배가 되는…… 그렇게 변하고 커지며 처음 투란의 손톱에 갈라진 놈 크기가 되어 갔다.
투란이 몸을 얹고 있는 작은 바위가, 그렇게 마구 늘어난 도마뱀처럼 생긴 녀석 떼로 뒤덮인 것은 아주 잠깐 사이였다. 투란은 그렇게 늘어난 놈들에게 순식간에 파묻힌 꼴이 되었다.
따닥거리는 작은 이빨 소리, 스륵거리는 다리들의 엇갈림, 작은 바위 위로 도마뱀 닮은 것들이 겹겹이 탑을 쌓듯이 솟구치는 과정은 격렬했고, 미끄러져 늪으로 떨어지는 녀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철썩.
떨어진 녀석이 늪을 두드리는 소리는 꽤 요란했고, 그 입에서 나오는 비명은 더욱 요란했다. 괴상한 짐승의 거친 숨결 같은 비명은 늪에 녹아서 흙탕물처럼 퍼져 가는 놈의 유언처럼 울렸다.
투란을 깔고 쌓아 올라가던 무리 속에서 보다 격렬한 다툼이 일어났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놈을 밀치고 밟는 경쟁이었다.
그 격한 경쟁의 결과는 떨어지는 경우를 늘렸고, 작은 바위 곁의 늪가에는 짙은 흙탕물이 질펀하게 퍼지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숨 쉬기도 힘들잖아!’
투란은 욕이 저절로 나올 듯했지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욕할 틈이 없었다.
그를 덮어 누르고 깔아뭉개는 녀석들의 무리는 꽤나 무거웠다.
작은 알이 변한 것이나, 변한 형태에 걸맞은 질량을 갖춰 버린 탓에 그 수가 쌓이니 상당한 압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투란은 곧 이런 상황을 파악했지만, 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뭐 이런 놈이……!’
더욱 화가 났지만, 투란이 할 일은 성질부리며 욕할 틈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몸이 그 무게를 견뎌 낼 수 있도록 그랑츄의 몸통과 뼈대를 끌어내기 위해 애써야 했고, 녀석들의 이빨이 더 악랄하고 세게 깨무는 것에 대비해서 더욱 촘촘하게 살갗 위로 악마의 심장 껍질을 씌워야 했다. 잿빛바위 그랑츄의 단단한 살갗과 넝쿨 껍질을 적절히 섞어 이뤄진 살가죽의 강도는 뼈대나 힘줄의 뒷받침 없이 그 무게를 견뎌 줬다.
오른팔로 입가와 코를 덮으며 겨우 만든 틈새로 투란은 숨을 들이쉬었다.
노릿하고 썩은 듯한 냄새가 독하게 느껴졌다.
‘아, 왜 냄새가 이런……?’
사람으로서 짜증을 내려던 투란은 곧 의아해졌다.
늑대의 감각은 냄새를 거의 시각에 가깝게 느끼게 해 주지 않던가?
그런 늑대의 후각이 여전했기에 더욱 아리송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의 감각인가?
늑대의 감각으로 이놈들이 쌓인 높이, 부피가 적나라하게 채색되어 전해지는 와중에 왜 굳이 사람의 감각으로 이놈들의 냄새를 맡아야 하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몸의 감각이 전부 깨어난 것처럼 그랑츄와 늑대, ‘악마의 넝쿨’이 지닌 제각각의 특색을 모두 발휘하며 이 상황에 대해 탐문하듯이 더듬고 있었다.
‘그렇구나.’
곧 투란은 깨달았다.
자신이 만난 이 눈깔 없이 작은 다리가 촘촘하게 달린 놈에 대해 알고자 함이었다.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각기 다른 모든 감각이 발휘되면서 파악하려 드는 것이었다.
“알면 알수록 도움이 되지. 그게 헌터의 방식이야. 몬스터에 대해 아는 만큼 사냥할 방법도 많아지는 거니까.”
‘그래, 그랬지.’
투란은 기억 너머에서 들춰 낸 이야기를 되새겼고, 악마의 심장이 보다 분명하게 이 상황에 대응하는 의식을 형성시킨 것을 깨달았다. 이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투란과 다르게, 냉정하게 감정을 자제하며 최선을 다해 기억을 더듬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투란’이었다.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 곧장 느낄 수 있는 정리된 생각과 상황이 바로 투란에게 이 도마뱀처럼 생긴 놈들의 패거리 속을 움직이는 이상한 것을 알게 해 줬다.
작은 알 같았는데 변하지 않는 이상한 것이었다.
수없이 알이 변하는 상황에서, 그 특이한 알 하나는 알과 알의 틈새에 끼어 새로운 도마뱀의 몸에서 몸으로 옮겨 다니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늑대의 감각 속에서, 그 작은 알만이 유독 다른 색채로 느껴지기에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늪에 닿으면 녹는다.’
지금 막 작은 알에서 태어난 탓인지 도마뱀 닮은 녀석들은 늪에 떨어지면 바로 거품을 내고 녹아 없어졌다. 작은 바위 곁의 늪이 그 탓에 흙탕물 색으로 물들고 모락모락 흘리는 냄새가 투란에게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투란은 먼저 자신을 덮쳐 깔아뭉개는 놈들을 뿌리치려 했다.
힘이 모자랐다.
자세도 힘을 쓸 꼴이 아니기는 했지만, 이 도마뱀 닮은 놈들의 이빨이 기묘하게 투란의 오금처럼 힘이 들어갈 자리를 물어 대는 탓에 더욱 힘이 모자랐다. 이놈들은 자기들끼리 다투면서도 투란을 깔아뭉개 제압하겠다는 듯이 달라붙어 깨물고 있었다. 그 깨무는 자리가 힘쓰기 곤란하게 하는 급소였다.
‘이 자식,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무슨 격투가냐!’
몬스터 헌터 중에는 나름대로 격투술에 능숙한 자들도 있었다.
몬스터 상대하는 주제에 사람을 상대하는 격투술에 왜 그리 능한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들의 격투술은 순식간에 사람을 제압하는 묘기였다.
이 도마뱀 닮은 놈은 눈깔이 없는 대신에 다른 감각을 사용해서, 본능적으로 투란의 급소를 파악해 깨무는 모양이었다.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투란은 힘을 못 쓰는 상태로 깔린 채, 이 상황을 버텨야 하는 것이었다.
키익, 카아악.
늑대의 손이 손톱을 세우고 바위를 긁었다. 깔려 눌린 채였지만, 그 덕분에 손목이 딱 바위에 붙어 손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소리는 도마뱀 닮은 놈에게 꽤나 거슬리는 듯 녀석들이 열심히 물어 댔지만, 늑대 팔뚝의 가죽도 어느 틈엔가 은은한 넝쿨 껍질을 내포한 꼴로 그랑츄의 잿빛 살색을 띠고 있었다. 놈들의 이빨은 힘줄을 누르기는 해도, 그래서 살갗을 찢고 들어오지 못했다.
‘조금만 더…….’
애초에 바위가 작아서 손만 내밀면 늪에 닿았다.
그런데 눌린 채라 그 짧은 거리로 손이 움직이기 어렵다!
하지만 투란은 늪에 손을 담가야 했다.
놈들이 늪에 닿으면 녹아 거품을 피우며 흙탕물이 되니까!
그냥 물에 닿아서 그렇게 녹는 놈이라면, 손 쪽으로 ‘작은 늪’의 돌을 형성시켜 바로 물줄기를 뿜어내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투란은 이 녀석들이 물에 녹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투란은 이 늪이 조금 특별하다고 ‘느껴 알고’ 있었다.
‘좋아, 닿았다!’
겨우 늑대 손톱이 늪에 닿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손목이 진짜 큼직한 입에 독하게 깨물렸다!
위로 겹겹이 다른 도마뱀 닮은 것들이 쌓인 채인데, 투란의 손목에 붙은 놈이 자기 몸이 다 찌그러진 상태에서도 절대로 늪에 접근시킬 수 없다는 듯이 크게 입을 벌려 기어코 손목을 가위처럼 깨문 것이다.
투란이 움직이기 위해 손목을 접었다 폈다 하며 손톱을 세게 바위에 찍은 틈을 노린 기습이었다.
때문에 겨우 늪에 닿은 손톱이 다시 작은 바위 위로 당겨지는데, 그 손톱 끝에서 늘어진 가는 덩굴줄기는 여전히 늪으로 스며들었다.
‘처먹어라!’
투란은 마음속으로 힘차게 외쳤다.
늑대의 손톱에서 늘어진 덩굴줄기가 굵어졌고, 대롱처럼 늪을 빨아서 늑대의 손과 팔뚝으로 뿜어냈다.
손목을 문 놈부터 거품을 내는 흙탕물이 되어 터져 버렸다.
투란은 멈추지 않고 곧장 늑대의 팔뚝을 더 휘둘렀다.
덩굴줄기가 대롱처럼 머금은 늪이 뿌려지고, 녀석들은 연이어 터지며 흙탕물이 쏟아져 내렸다. 곧 투란은 왼팔이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을 느꼈고, 둘렀던 늪의 진액이 소모된 것도 깨달았다.
녀석들을 녹이고 터뜨린 만큼, 팔에 두른 늪이 말라 없어진 것이다.
바로 다시 투란의 손이 늪에 담겼다가 나왔다.
넝쿨 대롱을 이용한 것보다 훨씬 짙게 묻어난 늪의 걸쭉한 진액은 투란의 몸을 누른 놈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놈들은 늑대의 팔에서 멀어지려 했고, 투란은 어느새 몸 왼쪽의 자유를 찾았다!
촤아악!
이젠 아예 늪을 손으로 퍼 올려 뿌리면서, 투란은 쌓인 녀석들의 몸과 몸을 멋대로 오가며 움직이는 이상한 알을 감각으로 쫓았다.
‘저게 핵인가?’
“몬스터 핵은 어디지? 코어가 없는 놈인가? 눈에 잘 보이고 손 닿는 곳에 대놓고 달고 다니는 놈이 쉬운데…….”
어떻게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약점이 한 곳에 있는 놈인가를 따지는 꼴을 투란은 자주 봤다. 그 핵이 옮겨 다니거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닿지 않은 곳에 있는 놈은 사냥 난이도가 몇 배로 올라간다 했다.
‘늪에 녹는 놈이 대체 왜 늪 속으로 기어들어 날 무냐고!’
약간 생겨난 마음의 여유로 투란은 엉뚱한 투덜거림을 토해 내면서, 늪을 더 세게 퍼서 자기 몸에 뿌리고 두 팔의 자유를 찾기가 무섭게 늪을 두드리며 퍼 올렸다. 때문에 잔뜩 투란을 깔아뭉개던 도마뱀 닮은 녀석들은 애들이 흙장난할 때의 꼴처럼, 기둥이 파먹힌 모양으로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란이 쫓는 작은 알도 그 꼭대기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어? 이빨? 머리?’
구체적인 도마뱀의 형태가 아니라 머리만 생기고 길게 내민 주둥이에 이빨만 가득한, 하얀 색채로 보였다.
그것이 그대로 가위처럼 벌려진 채로 투란을 향해 내리꽂혔다.
이는 투란에게 위에서 기우뚱거리던 한 무리의 살덩이가 쪼개지며 뭔가 뜨거운 것이 깨무는 느낌으로 전해졌다. 반사적으로 투란은 잔뜩 늪을 머금은, 붉은 털이 덕지덕지 엉긴 왼팔을 내밀었다.
‘젠장! 뭐야, 이 이빨은!’
달궈진 가윗날처럼, 그 이빨 언저리에 닿는 순간 팔뚝을 적시던 늪이 말라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 하얀 색채의 머리통뿐인 형상은 도마뱀 닮은 놈에게 비장의 한 수인 모양이었다.
늑대의 가죽이 지글거렸고, 넝쿨 껍질은 약점을 찔린 탓인가 순식간에 갈라지고 말았다. 차라리 순수한 그랑츄의 살갗으로 버텼다면 그 바위 같은 강인함으로 더 오래 견딜 수 있었을 듯했다.
투란은 심장 속에서 맥동하는 돌을 느꼈다.
이제는 ‘작은 늪’을 형성하며 얌전히 있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작은 돌이다!
물리며 찢겨 나가는 늑대의 팔뚝 아래로, 투란의 오른팔이 덧대듯이 붙었다.
짙은 녹색이 검게 보이는 살갗이 꿈틀거렸고, 그 위를 적시는 늪이 뭉클뭉클 방울지는 듯한 광경 위로 도마뱀의 머리통이 이빨을 내리꽂았다.
지잉!
덮쳐드는 하얀 색채처럼 희끄무레한 빛깔을 띤 팔뚝의 돌은 살갗처럼 찢기지 않고, 은은한 울림으로 뜨거운 것을 언짢아했다.
그 순간에 투란은 몸을 누르는 압력을 그대로 흘리듯이, 반쯤 일으켰던 몸을 바위에 붙이고 옆으로 돌리며 굴러 두 팔을 그대로 늪에 처박아 버렸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투란의 몸을 덮치는 새하얀 열기의 충격파가 작은 바위 위에서 깔끔하게 도마뱀 닮은 놈들의 떼를 싹 날려 버렸다.
투란은 눈앞이 검붉은 색채로 물드는 것을 봤고, 그것이 눈동자를 덮은 투명한 넝쿨 속으로 퍼지는 ‘작은 늪’의 물살인 것을 알아차렸다. 악마의 심장이 뿌려 낸 줄기 속으로 ‘작은 늪’이 끈기 있게 물살을 흐르게 해서 뜨거운 것에 대항하는 것이다.
‘으아, 겨우 살았다!’
덕분에 순식간에 온몸의 살갗이 말라비틀어지는 꼴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늪에 푹 파인 구덩이 꼴을 만들어 낸 이 충격파를 일으킨 녀석, 하얀 색채의 머리통은 여전히 앞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늪의 한구석을 날리면서까지 어떻게든 늪에 닿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꼴이었다!
도저히 그냥은 저 허연 놈을 늪에 담글 수 없을 것 같았다.
‘응?’
투란은 마르면서 버티는 늑대의 팔뚝이 은빛에 은은히 휩싸이는 광경과 함께, 오른팔에 돋아난 돌이 늪과 같은 색채의 물살을 뿜어내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
뭔가 투란이 영문을 알기도 전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작은 돌이 격렬하게 늪의 물살을 일으켰고, 허연 빛이 흐릿한, 눈깔 없는 도마뱀 머리통과 이빨을 쓸어 버렸다! 마치 투란이 뭐가 팔뚝을 찌르거나 하면 가볍게, 반사적으로 팔을 뿌리치는 것처럼 늪의 물살이 뿜어져 나간 셈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 쏟아지는 은빛의 불길!
‘왜 벌써 밤이야!’
투란은 이 작은 바위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깨쳐야 했다.
늑대의 팔뚝이 은빛 불꽃을 들이쉬면서 순식간에 말라 버린 형상을 내버리고 회복하며 기운차게 꿈틀거리는 광경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