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6)
Chapter 116. 왕의 무도(舞蹈)
시아아! 키이이이앙!
하피, 여왕의 입에서 괴성이 짙게 울려 퍼졌다.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손아귀에 쥐어져 마그마의 열기로 인해 지글지글 타오르던 마울 트롤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를 쥔 용암 덩어리를 향해 쇠망치 같은 주먹을 휘둘렀고, 대롱거리던 발끝에도 뭔가 걸리는 대로 걷어차겠다는 듯이 발길질을 했다.
동시에 주춤하던 마울 트롤의 무리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면서 용암 연못, 더욱 넓어져서 붉은 광채와 불꽃을 휘날리는 마그마의 웅덩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앞뒤 가릴 것이 없어졌다는 듯,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다는 듯!
더불어 쌍을 이루고 있던 사이렌들이 일제히 합창하면서 그 어깨 위에서 퍼덕거리기도 했다.
‘어쭈?’
내려다보이는 작은 것들이 꽥꽥 달려드는 광경에 투란이 우습다고 느끼는데, 드라고니아의 경고가 쩌렁쩌렁 마음을 울렸다.
―얕볼 때냐! 정신 차려! 로드 오브 몬스터에 지배당하는 마울 트롤이 거의 백에 가깝다! 저 정도면 지금 용암 연못 정도는…….
그러나 이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투란은 손에 쥔 마울 트롤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달려드는 마울 트롤 떼의 앞을 휘젓는 시늉을 했고…… 다른 한 손이 높이 치켜올라 가서 날카로운 손톱 끝을 드러내고는 여왕 하피를 내리찍고 있었다.
콰아아! 파드드드득!
여왕 하피의 발 받침대, 혹은 움직이는 왕좌의 노릇을 하고 있던 머드 퍼피티어가 길게 몇 갈래로 찢어졌다.
그렇게 서너 가닥 손톱의 궤적에 따라서, 폭이 7, 8미터 몸길이가 거의 30여 미터에 달하던 덩치의 몬스터가 순식간에 찢어발겨진 광경 속에서 여왕 하피는 상처 없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곧이어 찢긴 몬스터의 살점이 불거지고, 내장이 터지며 핏덩이가 몰려나오는데…….
‘이거 머드 퍼피티어 맞냐?’
투란은 새삼 여왕 하피의 발판 노릇하던 것이 생김새는 같지만 두어 배는 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맞아. 여러 가지 면에서 우월한 개체이기는 한데, 머드 퍼피티어다.
‘오? 우월!’
―투란?
드라고니아가 괴상한 투란의 대꾸에 움찔하는 순간…….
파아앙!
허리 아래의 용암을 향해 불타는 손길이 내리찍히며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져서 튀어오른 세찬 물방울처럼, 짙게 번져 가는 물결처럼…… 뜨거운 열기와 자욱한 불티를 휘날리는 마그마가 튀어오르고 번져 갔다.
그리고 이 광경의 모든 것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여왕 하피는 격노(激怒)한 표정과 함께 입술을 오므렸다.
사이렌 무리는 격한 날갯짓과 함께 부드러운 합창을, 함성처럼 우뚝 선 불타는 사자 머리의 거체를 향해 질러 댔다.
마울 트롤 떼는 발 가죽부터 벌겋게 달아오르며 다리가 불길에 휘감기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용암 웅덩이로 뛰어들며 쇠뭉치 같은 주먹질을 하려 했다.
멀리서 다양한 몬스터 떼가 이 소란의 중심을 향해 내달려 오려는 듯한 격한 괴성을 지르며 더 큰 소란을 일으키며 호응했다.
가까이에서는 여왕 하피처럼 날아오르는 하피 떼가 그 발아래에 머드 퍼피티어 떼를 거느린 채로 닥쳐들려 하고 있었다.
마그마의 열기가 아무리 뜨겁더라도 이 광란(狂亂)의 몬스터 군단의 질주를 멈출 수는 없어 보였다.
이런 대규모 공세 속에 놓인 투란도 바쁘게 움직이니…….
여왕의 입술 사이에서 쏘아져 온 소릿살, 음파의 공세는 가늘고 긴 투창의 예리함을 갖췄고 그대로 사자 머리의 옆을 스쳐 가며 마그마의 거죽에 옅은 파문을 남겼다. 한번 빗나갔어도 두 번, 세 번 연이어 쏘아졌다. 하지만 까닥거리는 고갯짓을 통해 정통으로 꽂혀 든 것은 한 가닥도 없었다.
사이렌의 합창은 어느 틈엔가 사람의 목소리처럼 청각(聽覺)을 자극해 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달콤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힘을 빼요.’라든가, ‘가만히 있어요.’라든가…… 혹은 ‘심장을 뽑도록 가슴을 들이대요.’라는 이해할 도리가 없지만 이상하게 듣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는 괴이한 속삭임이었다. 하지만 그 소리에 주의하던 ‘투란’, 마그마의 웅덩이 속에서 마그마로 이뤄진 채 동글동글하게 떠다니는 ‘악마의 심장’ 속에 갖춰진 투란의 의식(意識)은 ‘뭔 헛소리야?’라고 대꾸할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소리를 통해 의식에 간섭하고 행동을 유인하려 하는 그 힘을 명확하게 파악하면서 잔뜩 흥미로워하고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사이렌의 붉고 검은 발톱은 그 추레하게 구겨진 얼굴처럼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으니까.
투란은 사이렌의 특이한 능력에 대해 과거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마울 트롤의 머리통을 쥐고 있던 손을 더 세차게 흔들었고…… 그 움직임에 맞춰 용암 조각이 물방울처럼 가늘고 긴 자취를 남기면서 넓게 퍼져 나가게 했다. 달려드는 마울 트롤 떼, 가까이 다가온 것 중에서 그 자취에 닿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싶은 순간에는 쥐고 있던 마울 트롤을 바로 허리 아래 용암 웅덩이에 담갔고…….
치잇, 치이익!
선명한 음향은 열기에 의해 마울 트롤의 살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한 곳에서 울린 것이 아니라 사이렌의 부드러운 합창에 비견될 정도로 곳곳에서 격하게 울려 퍼진 음향이기도 했다.
이 음향이 퍼지는 것을 시작으로 땅을 가르는 붉은 금이 사방으로, 지상을 메우고 공중으로까지 뻗으며 번졌다. 광대한 범위를 단숨에 장악하듯 퍼진 그 광경 속에 갇힌 이종(異種)의 몬스터 무리는 갑작스럽게 붉고 뜨거운 거미줄 그물에 사로잡힌 듯했고…….
크르르르, 크워어엉!
불타는 사자의 머리에서 길게, 거대한 포효가 터졌다.
용암 웅덩이가 격하게 요동쳤고, 거미의 다리가 여럿 치솟아 올랐다.
둥글게 휘말린 기묘한 거미의 몸체도 서넛 생겨나며 웅덩이 표면을 부유(浮游)했다. 그 형상은 비록 마그마를 빌려 이뤄졌지만 섀터드 세븐의 여러 왕국에서 치를 떨며 기억하는 쟈카라 산림의 거미 군단장의 모습을 절반씩 떼어 온 듯했다.
곧바로 불타는 아라크녹스 왕의 허리춤에서 날개 같은 치마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 속으로 자리 잡은 군단장의 형상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허공에 펼쳐진 불티와 붉은 금이 제대로 그물질을 하며 마그마 줄기가 물줄기처럼 가늘고 날카롭게 멀리 뻗어 나가떨어져 지면(地面)을 물들여 갔다.
불타는 사자 머리가 목뼈가 있다면 확실하게 부러졌을 것처럼 한 바퀴 맴돌면서 전후(前後) 좌우(左右)를 텅빈 눈구멍으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완전한 원을 그리며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앞을 보는 순간, 허공을 찢어발기는 절규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왕의 팔, 거미의 다리가 섬세하고 빠르게 허공을 두드리고 사방을 짚었다.
이글거리는 마그마의 표면에서 거미의 다리가 몇 가닥 더 치솟으며 그 움직임을 보조했고…… 붉고 뜨거운 거미줄 그물이 순식간에 공중과 지상을 제압하며 그 틈새에 낀 몬스터 군단을 분류(分類)하고 구별(區別)했다.
여왕 하피의 몬스터 군단은 순식간에 붉은 거미줄에 사로잡힌 벌레처럼 끌려왔고, 나뒹굴며 마그마의 광채가 뒤덮은 땅 위로 굴러야 했다. 날고 있던 하피 떼나 사이렌도 끌려왔고 기고 있던 머드 퍼피티어도, 쿵쾅거리며 달리던 마울 트롤도 단숨에 포박된 채로 즐비하게 눕혀 진열된 광경이었다.
거의 반경(半徑) 5백여 미터 내의 몬스터는 모조리 제압해 버린 듯했는데…….
‘헤에? 저건 빠져나갔네? 과연 여왕인가? 근데 저거 어떻게 한 거지?’
여전히 날고 있는 여왕 하피를 보며 투란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 기특하다는 듯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드라고니아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짜증 난다는 듯이 대꾸한다.
―뭐야, 로드 오브 몬스터니 뭐니 해도 몬스터잖아! 뭔 음파 장벽(音波障壁)을 저렇게 정교하게 구사하냐고! 음향(音響) 전문의 마술사라도 된 것 같잖아! 몬스터 주제에 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흠? 음파 장벽?’
투란의 사유(思惟)가 기억을 더듬었고, 조금 전에 여왕 하피가 보인 모습이 고스란히 마음속에서 다시 더듬어졌다.
붉은 마그마의 섬세한 그물이 공중까지 장악해 버린 그 순간에 여왕 하피는 거칠게 치솟는 날갯짓을 한번 하며 바로 날개를 접어 몸을 휘감았고 빙빙 돌면서 오므린 입술로 길게 휘파람을 부는 듯했다. 소릿살이 쏘아지는 대신에 길게 흘러나온 음파는 겹으로 쌓이면서 여왕 하피를 감싸더니,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음파로 이뤄진 장벽이 되어 그물질에 그 몸이 닿지 않게 막아 줬다.
다른 하피 중에서는 그런 재주를 보인 경우가 전혀 없었다.
마치 여왕만의 특권을 발휘한 듯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특권의 발휘는 아직 멈추지 않은 듯, 몸을 감싼 여왕 하피의 날개깃이 날개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회전하는 그 움직임에 따라 음파 장벽으로 섞여들었다. 날개깃, 하피의 깃털이 음파 장벽을 벗어나며 무슨 화살 비처럼 투란을 향해…… 사자 머리를 향해 쏘아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응?’
여왕 하피가 두 발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리그으면서 쏘아 낸 화살 비의 뒤를 따른 광경이 바로 보여,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굉장히 빠른 움직임이었고, 자신이 쏜 화살을 뒤따른다는…… 거의 따라잡을 수도 있어 보이는 그 모습은 아주 신기하기는 했다.
하지만 멀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덤벼든다……?
가까이에 있는, 반경 5백여 미터 내의 휘하가 모조리 제압당한 상황 속에서 저것은 대체 어떤 선택인가?
백기의 프로브가 수 킬로미터를 질풍처럼 맴돌면서 주변 상황을 알려왔고, 펼쳐져 있는 거미줄과 엮인 마그마 로드를 통해 확장된 투란의 지각이 다시 검토해도 지금 달려드는 여왕 하피는 오직 홀로 남았을 뿐이었다.
뭔가 호응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럼에도 여왕 하피는, 로드 오브 몬스터―몬스터즈―라 일컬어지는 정점(頂點)의 괴물은 이 상황을 역전시킬 뭔가가 있다는 것처럼 덤벼든다!
‘좋아, 뭔지 봐주마!’
―어? 야, 투란!
투란이 마음을 정했고, 드라고니아는 화들짝 놀랐다.
그야말로 거대한 용암으로 이뤄진 손짓 한 번이면 끝날 상황이었다.
굳이 여왕 하피가 뭘 하려는가 봐야 할 까닭은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보고자 했고, 드라고니아는 이딴 방심을 용납할 수 없어 놀란 외침을 터뜨린 것인데…….
여왕 하피의 돌격을 확인할 때까지, 투란의 다른 의식 ‘투란’은 떼로 활동하면서 아주 바빴다. 정리하고 분별해 놓은 몬스터 군단의 사이로 하얀 실 가닥이 새로 생성되면서 품종별로 몬스터 몇몇 따로 분리해 놨고 붉은 그물 속에서 움찔거리는 몬스터의 살갗 위로 핏빛 고리가 맺히면서 유영(遊泳)하듯이 흘렀다. 그 결과 투명하게 으스러지는 몬스터의 형상이 곳곳에서 발생했고, 그 남은 잔재는 마그마에 뒤섞이며 녹거나 부서졌다.
마울 트롤이, 사이렌이, 머드 퍼피티어와 하피가 몬스터 엠블럼에 그 정수를 갈취당하는 와중에 여왕 하피가 돌격해 온 셈이었다. 이 상황이라면 거의 자신의 군단을 구해 내기 위해 여왕이 홀로 결투를 시도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다.
투란은 그런 여왕의 시도를 막아서는 거대한 장벽이 된 듯했고…….
‘아, 역시 씻고 다니지는 않네.’
더욱 세세하게 보이는 여왕 하피의 모습, 그 날개와 몸에 이리저리 얼룩진 티끌과 깨끗하지 못한 몰골을 감상했다.
그렇게 바로 느껴지는 씻지 않은 듯한 몰골이기는 했지만, 투란은 그 봉긋한 가슴에 얹힌 옅은 갈색의 꼭지를 봤고…… 어린 시절에 물가에서 지켜봤던 여성 헌터의 알몸을 떠올렸다. 그보다 훨씬 균형 잡혀 있고, 찰랑거리는 흔들림이 더욱 탄력 있고 튼튼해 보였다. 씻기만 한다면 압도적으로 더 보기 좋은 형상이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가슴은 곤두박질하듯이 들이대는 하피의 얼굴 탓에 금방 가려졌다.
그 얼굴에서는 새하얀 눈알, 그 눈알을 완전히 검게 물들이기도 하는 기괴한 눈동자가 별빛을 짙게 머금은 채로 번쩍이면서 투란을 노려보는 광경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 듯했다.
쩌억, 째째쟁!
그런데 뭔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고 울렸다.
‘응?’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의 깊은 곳에서, 문장의 풍경 깊은 곳에서 여왕 하피의 눈길에 호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가 다시 놀란 외침을 터뜨리는 것도 알았다.
―뭐야, 이 미친년! 심연의 각인을 자극할 수 있었어!
상당히 당황한 듯, 전혀 드라고니아답지 않게 경악하고 있잖은가.
그런 사이에 투란은 몬스터 로드가 삼킨 몬스터를 빠뜨리는 깊은 아래에서 치솟아 오는 강렬하고 거대하며, 사나운 힘의 파문을 느꼈다. 마치 풍경 속에 담아 둔 몬스터의 정수를 모조리 집어삼키겠다고 치솟는 듯한 섬뜩한 힘이었고, 투란의 마음은 반사적으로 보이드의 장막)을 펼쳤다.
문장의 풍경 속에 놓인 몬스터의 형상, 그 정수가 한 가지도 빠짐없이 보이드의 셸터에 보호된 듯했다. 때문에 아래에서 울려 나온 사나운 힘은 그저 문장의 풍경을 이루는 입구, 몬스터의 정수가 들어오는 문을 출구 삼아 뿜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