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7)
‘투란’은, 수많은 ‘투란’과 함께 바빴다.
수백 미터의 영역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거미줄, 그 그물 사이로 붉게 흐르는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통해 맺힌 ‘악마의 심장’을 통해 형성된 ‘투란’들이었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인 채로, 거미줄을 타고 움직이면서 어떤 ‘투란’은 뒤틀린 게를 쪼개는 일에, 어떤 ‘투란’은 매드독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떤 ‘투란’은 랩티드의 다리를 더듬으니……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의지를 지녔지만 동시에 다른 일을 했기 때문에 아무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돌연 강렬하게 뻗어 온 ‘천칭’의 마력, 시커멓고 그윽하며 깊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모든 ‘투란’의 의식을 단숨에 집결시켰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춘 채로, 동시에 모두가 하나의 물음을 투란에게 던지는 순간이었다.
‘뭐야?’
똑같은 물음을 마음에 품은 투란은 더 깊이 더듬고 느끼며 생각해야 했다.
문장 속의 심상 풍경과 현실의 풍경, 양쪽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동시에 대응하는 채로…….
아라크녹스 왕의 팔, 그 끝자락의 새끼손가락처럼 자리 잡은 손톱 혹은 발톱이라 해야 할 가지가 까닥였다. 이는 여왕 하피 쪽으로 몇 겹의 그물을 촘촘히 펼쳤다. 쏘아져 온 깃털이 그물에 걸렸고, 뒤이어 여왕의 발톱으로 일어난 바람의 칼날이 그물에 부딪쳐 왔다. 몇 겹의 그물은 깃털에도, 바람 칼날에도 찢기지 않고 버텨 냈다.
하지만 그물 너머에서 쏘아져 오는 여왕 하피의 별빛 머금은 눈동자는 명확하게 투란에게 꽂혀 왔고, 이에 자극받은 ‘심연의 각인’은 어둡고 짙은 마력으로 문장의 풍경을 물들이면서 투란을 여전히 놀라게 했다.
‘이건 꼭…….’
마치 드레이크를 지워 없앴을 때처럼, 고무쇠를 가라앉혔을 때처럼 느껴지는 것이 단순한 착각일까, 아니면 여왕 하피의 저 기묘한 눈빛 때문에 강제로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인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투란은 바로 확인해야 했다.
삼켜 두기는 했지만 결국은 ‘악마의 심장’에 의해 해석되고, 그만 못한 정도의 능력밖에 발휘하지 못해 한구석에 치워 뒀던 임모그 웜의 정수를 보호하던 보이드의 셸터가 거둬졌다. 임모그 웜의 정수가 그대로 솟구쳐 오는 시커먼 심연의 흐름에 떠넘겨졌고, 지워졌다.
‘헐?’
―허?
설마 몬스터가…… 아무리 로드 오브 몬스터라 해도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간섭해서 몬스터 에센스를 지워 없애려 할 줄이야.
투란이 어렴풋이 짐작했으면서도 놀랐고, 드라고니아도 어이없어했다.
그리고 수많은 ‘투란’의 마음은 즉각적으로 이에 대응하고 나섰다.
여왕 하피에 대해서 위협을 느낀 순간, 극단적이라 할 정도로 냉정한 사유(思惟)가 이뤄졌고 그 결과는 바로 드러났다.
여왕 하피의 주변으로, 넓게 펼쳐져 있던 거미줄 사이로 수백 마디의 절규(絶叫)가 울려 퍼졌다. 여왕은 입을 오므린 채로 새로운 소리를 내려 하다가 묶인 꼴이 되었다. 가늘고 섬세한 거미줄이 수십, 수백 가닥으로 여왕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개깃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휘감아 버린 것이다. 너무 작아 절규하는 듯한 괴성(怪聲)으로만 그 존재를 드러내는 탓에 ‘절규하는 마물’이라 불리던 자캬라 산림의 거미 군단장이 수십, 수백 마리가 형성되어 단숨에 제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거미줄은 너무 가늘고 섬세하면서도 강인(强靭)했기에 여왕 하피를 그대로 썰고 갈아 버렸다.
촤아악!
핏덩이가, 뼈와 살이 한꺼번에 뭉개지면서 뒤엉긴 핏물과 살점이 물컹거리면서 떨궈져 내렸다.
투란은 순간적으로 손끝을 움찔했고, 촘촘히 맺힌 그물이 옅은 바람결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정밀하게 이뤄지면서 여왕 하피의 핏빛 잔해를 모조리 받아 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투란은 검은 사자 머리가 용암의 열기에 지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느 틈엔가 아라크녹스의 왕과 마그마 로드의 융합이 단절되면서 완전히 독립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다른 몬스터끼리 억지로 붙어 버린 것처럼 뒤엉기기만 한 꼴이 된 탓이었다.
이 현상은 ‘악마의 심장’과 마그마 로드의 형상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아라크녹스 왕과 다른 점이라면, 악마의 심장 줄기가 그냥 깔끔하게 마그마에 녹고 불타면서 발버둥 쳤다는 정도였다.
‘어라?’
투란이 그 상황을 느끼고 어이없어 보니, 왕의 날개 아래에서 형성되어 매달린 꼴이 된 거미 군단장 몇 마리 형상은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럭저럭 버티는 몰골이잖은가. 그 안에 담긴 ‘투란’은 이게 뭐냐고 난리였지만.
―뭐 하는 거야? 어째서……?
‘모르겠는데? 아무튼 수습은 해야지.’
느껴지기는 하지만 까닭을 알 수 없기에 투란은 일단 정신을 몬스터 엠블럼에 집중했다.
그르르, 콰아아! 키이이끼이앙!
투란의 정신에 제멋대로 날뛰던 ‘투란’을 담고 있던 몬스터의 형상 모두가 일제히 ‘천칭’에 호응했다. 이질적으로 갈라섰던 몬스터의 정수가 다시 융합되며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삼키며 거세게 공명하는 파동, 투란에게는 소리로 들렸지만 실제로는 세상 누구도 듣지 못한 굉음이 오직 마음속으로만 울리는 듯했다.
‘세졌어?’
투란은 당황했다.
어쩔 수 없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 몬스터의 형상을 이루고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몇 배나 더 강력하게 투란의 의지를 담은 채로 엇갈리고 뒤틀리려 하는 몬스터의 형상을 정리하고 정돈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몬스터의 속성 융합은 훨씬 더 견고하고, 세련되기까지 했다.
마그마 로드가 아라크녹스 왕의 지각을 이용하고, 왕은 거미줄 사이로 더 짙게 마그마의 점액(粘液)을 뿌리며 땅밑으로 더 깊이 뿌리내리도록 유도한다. 뿌리내린 그물 사이에서는 용암으로 악마의 심장이 맺히며 더욱 깊고 촘촘하게 얕은 지면 아래를 장악해 갔고, 마그마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공중에 퍼져 있는 거미줄, 그물 사이로 용암을 품은 채로 ‘절규하는 마물’ 수백 마리가 질주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휘감아 썰고 갈아 버릴 듯한 위세였다. 이미 전부 정리된 탓에 남아 있는 게 없었지만…….
더불어 여전히 흩어져 맴도는 백기의 프로브로부터 받아들이는 상황 정보도 몬스터의 감각을 통해 재해석되고 구별되기까지 했다. 프로브를 주재하는 윌 라이트, 그조차도 투란의 강화된 의지…… 냉정하게 활동하는 ‘투란’의 사유에 따르는 것처럼!
투란은 기억을 더듬었고, 어렴풋이 이와 비슷하게 느꼈던 경우를 겨우 찾아냈다.
‘고무쇠를 삼켰을 때, 드레이크를 삼켰을 때…….’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의 정수를 삼키고 강해진다.
이는 몬스터의 능력을, 그 형상을 사용한다는 것뿐 아니라 삼켜서 지워 버린 몬스터조차도 고유 마력를 증가시킨다는 쓰임새가 있다는 뜻도 있었다. 즉 강력한 몬스터를 삼켜서 활용하지 못한다 해도 그 에센스를 깊은 ‘아래’로 불리는 심연의 각인에 공물(貢物)로 떨굼으로써 고유 마력은 계속 성장한다.
하지만 지금 시험 삼아 내밀었다 지워진 임모그 웜은 이 정도로 고유 마력을 증대시켜 줄 몬스터라고 여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여왕 하피가 자극한 덕분인 듯할 뿐이었다.
―투란?
‘어, 그래. 딴생각할 때가 아니지.’
조금 더 지금 상황을 깊이 생각하려다가 투란은 멈췄다.
아직 몬스터 군단은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그저 수백 미터 안팎으로, 여왕의 위기를 위해 달려든 친위대 같은 놈들만 제압만 해 놨을 뿐이다. 이제 막 포섭된 듯한 몬스터 군단이 와글거리는 영역은 그 너머로, 수 킬로미터에 달하고 있었다!
대암막은 이제 시작된 것처럼 엘데인을 감싼 채이고…….
투란의 정신이 다시 넓게 주변을 휩쓸며 놓친 것이 있는가를 살폈다.
이런저런 모습의 다양한 몬스터, 몬스터에 의해 남겨진 다양한 흔적들 사이로 마그마의 영역이 더욱 넓어졌고 여왕 하피가 남긴 듯한 이상한 뒤틀림 같은 느낌이 가까이서 살짝 맴도는 것 말고는 압도적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역시 여왕 하피가 막판에 조금 이상한 짓을 한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러므로 투란은 여왕 하피의 잔해가 감긴 그물주머니를 들어 올렸고, 다시 불타고 있는 사자 머리를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입안에서 찰랑거리며 용암의 혀가 날름거렸고, 핏빛 고리를 매단 채로 그물주머니 속의 핏빛 잔해를 파고들었다. 단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갈린 채로 담긴 여왕 하피, 로드 오브 몬스터의 잔해 속으로 핏빛 고리가 얽혀들며 번졌다.
문장 속에서 생성되는 하피, 여왕의 모습을 투란은 특이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른 하피의 형상, 여왕을 따르면서 날아들었던 머드 퍼피티어와 짝을 이뤘거나 그 조종에서는 벗어나 멋대로인 척하면서도 여왕에게는 복종하던 하피의 정수가 얽혀 맺힌 모습과도 차이가 심했다.
이마에서 귀를 타고 넘어가는 금색의 머리카락은 마치 왕관처럼 테를 이루고 있었는데, 뒤로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색채는 옅은 갈색이었다. 황금으로부터 흘러나온 갈색의 바탕 사이로 길쭉하고 삐죽하게 금빛의 가닥이 퍼져 있었지만 바탕은 부드러운 느낌의 갈색인 것이다. 입술과 눈가에도 그런 갈색이 화장처럼 옅게 번진 듯했고, 봉긋한 가슴의 꼭지 역시 같은 색조였다. 날개깃과 배꼽 아래에 반바지처럼 덮인 털과 깃의 어중간한 가죽 또한 마찬가지 갈색이었다. 무릎 언저리 아래로는 짙고 검은 갈색의 날짐승의 가죽에서 검푸른 광택을 띤 발톱이 무섭게 돋아나 있는 모습은 배꼽 위 상체에서 느껴지는 바와는 어긋나 있었다. 그런 데다가 날개의 깃 몇 곳이 검은 색채를 띠고 무늬를 형성한 듯한데, 날개를 활짝 펼치면 마치 눈을 뜬 것 같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런 여왕 하피의 형상, 정수로부터 가지런하게 생성된 모습에는 티끌 한 점 없어서 그런가 아주 깔끔하면서도 산뜻했다.
이에 반해 수십 마리, 수백 마리의 정수로부터 이뤄진 하피는 여럿이 섞인 티라도 내듯이 다양한 머리 색채에 깃과 털의 색상도 뒤죽박죽이었다. 가슴과 허리, 얼굴은 분명히 여왕처럼 인간 여성의 형상이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사납고 날카로운 느낌이 확실하게 맹수로,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무서운 짐승이라고 느껴지게 한다!
그런 차이를 느끼며 투란이 갸웃하는데, 여왕의 모습에서 뭔가가 얼룩진 채로 떨어져 나왔다.
‘응? 아니, 저건…….’
머드 퍼피티어의 검은 진흙, 여왕이 밟고 있던 다른 몬스터의 정수였다.
그 진흙의 정수는 한구석으로 흘러갔고 이미 삼켜 뒀던 머드 퍼피티어 쪽으로 붙어 엉기는 듯한데, 그 모습은 투란이 예상한 바랑 완전히 달랐다. 하피 떼를 등짝에 붙이고 기어 다니던 머드 퍼피티어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두개골과 거기에 검게 엮인 잔뿌리, 튕긴 채로 간신히 뼈대에 붙어 있는 내장의 엽기적인 몰골뿐이었다.
“몬스터인 부분은 딱 저것뿐이었나 보군.”
‘뭐? 이건 좀 심하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짚는 말에 바로 투덜거렸다.
두개골과 척추 일부, 거기에 엮인 핏줄과 내장만이 몬스터라니…… 머드 퍼피티어의 나머지 부분은 대체 뭔 짐승이기에 문장의 풍경 속에서 형체조차 갖추지 못한단 말인가!
“그 흉한 몰골은 필요 없잖아. 딱 저 부분만 구성한다면 인간의 몸으로도 머드 퍼피티어의 능력은 완전히 발휘할 것 같구먼…….”
‘안심해야 하냐?’
투덜거림을 잊지 않다가 문득 투란은 사이렌과 마울 트롤을 살폈다.
둘은 온전한 모습이었다.
다만 사이렌은 더욱더 흉측하게 늙어 버린 낯짝이었고, 마울 트롤은 바위인지 쇳덩이인지 모를 주먹이 더 단단해져서 온몸의 핏대가 곤두선 듯했다.
하피 떼처럼 이런저런 색채가 섞인 경향은 없었다.
투란은 다시 여왕을 봤고, 여왕의 가늘게 뜬 눈매를 느꼈다.
삼켜진 몬스터의 본능, 여왕의 본능에 투란이 가만히 닿는 순간…… 여왕의 날개가 꽈악 오므라들듯이 접히면서 여왕 하피가 떠는 듯했다.
‘음?’
투란에게는 조금 이상한 광경이었다.
다른 경우랑 다르게 지금 여왕 하피의 형상은 마치…….
“아직 자아(自我)가 남아 있었나? 대단하군. 과연 로드 오므 몬스터가 특별하기는 특별하군.”
드라고니아가 한탄을 하는지 감탄을 하는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투란은 느슨해지던 마음을 꽉 조이면서 긴장했다.
몬스터 로드가 삼키면 안 되는 몬스터, 그 금기가 되는 몬스터가 바로 지성(知性)이니 자아니 하는 뭔가를 지닌 것 아니던가!
잘못하면 거기 먹혀서…….
“그런 거 따지기에는 너무 늦었잖아. 나는 뭐라 생각하는데?”
정신이 팽팽해지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빈정거렸다.
그래서 투란은 바로 대꾸했다.
“넌 마법이잖아!”
콰아!
투란은 불타는 사자의 입으로 포효했다.
문장 속에서 드라고니아에게 대꾸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