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79)
“착하네? 그래도 덤벼 볼 줄 알았는데.”
투란은 가슴에 자리 잡은 황금매의 형상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윌 라이트를 기반으로 한 마법으로 몸을 지키면서 ‘천칭’에서 황금매로 문장을 전환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틈은 없을 수가 없었다. 그사이에 작더라도 몬스터답게 ‘아이’가 덤벼들 가능성도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다행이고 잘된 일이라 생각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게 몬스터 하피의 아이 맞는가?
로드 오브 몬스터, 그 계승자가 맞는가?
잔뜩 겁에 질린 ‘아이’는 그냥 몸이 조금 특이하게 생겼을 뿐인, 사람의 아이로만 보일 뿐이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덤볐으면 갈아 버렸을 거면서.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에 깃든 채로 투덜거렸다.
‘그야…… 그랬겠지.’
살짝 혀를 날름하면서 투란은 숨을 고르고 마법의 감각을 확장했다.
동시에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 오러의 기척도 뿜어냈다.
가장 먼저 호응해 온 것은 휘드라곤, 물의 정령수였다.
문장을 전환하는 도중에 뭔가 투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면 휘드라곤이 바로 날카로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갈아 버릴 참이었다. 엷은 수막(水膜)이 되어 살결처럼 보이지만 정해 놓은 간격 이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반응하도록 해 놓았으니까. 한편으로는 스피릿 아티팩트와도 연계되어 강력한 방벽을 구성하면서…… 이런 정령수의 방어와 별개로 다양한 마법 또한 투란을 다양한 측면에서 지키도록 윌 라이트에 심어져 있었다.
이는 모두 드라고니아와 함께 연구하고 궁리해서 계속해서 개선해 온 안전 대책이라 최초의 형태랑은 또 다른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몬스터가 설쳐 대는 곳에서 문장을 전환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전환이 끝난 다음에는 정령수를 거두고, 손아귀 속에 숨겨진 샤벨투쓰의 이빨을 점검해 보고…… 다리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미묘하게 든든한 느낌을 주는 잉크의 가죽을 느끼면서 투란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자신을 향해 속삭인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투란의 눈길이 먼저 ‘아이’에게 닿았다.
울먹거리고 조그마한 꼬맹이, 분명히 몬스터인데 가슴 어딘가 조금 뜨끔한 느낌이 서늘하게 투란의 마음을 쿡쿡 찌르는 듯하다!
“일단 넌 생각 좀 더 해 보고, 딴 녀석들부터!”
―뭔 생각을 더 해? 설마 저게 인간 아이로 보이냐?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윌 라이트를 통해 귓속으로 파고드는 그 소리는 투란에게 과연 황금매의 문장을 가슴에 품었구나 하는 느낌을 좀 더 짙게 전해 왔다. ‘천칭’일 때도 윌 라이트의 마력을 이용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는 했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반향(反響)이 살짝 먼저 닿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황금매의 문장을 품은 지금, 드라고니아의 말은 완전히 마법에 의한 전언이라고 금 긋기를 할 수가 있었다.
“알아, 안다고. 하지만…… 기분이 그러니까 좀 있다가.”
이모저모로 복잡한 기분 속에서 투란은 윌 라이트의 마력을, 마법을 움직였다.
지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며 거대한 고치의 주둥이가 툭툭 여럿 튀어 올랐다.
몬스터의 능력을 통해 세상에 남겨지도록 생성된 거미줄, 그 그물로 만들어진 고치 속에는 여왕 하피가 거느렸던 친위대…… 마울 트롤과 사이렌, 하피 떼와 머드 퍼피티어 중에서 선별해 낸 개체가 구겨진 채로 담겨 있었다.
고치의 주둥이가 투란의 손짓에 따라 열리면서 잔뜩 압축되어 뭉클거리는 피와 살의 반죽을 드러냈다. 조금만 기울이면 주르륵 흘러내릴 듯이 보였고, 섬뜩한 느낌이 피어나는 모양이었다.
곧바로 ‘아이’가 바르르 떨었고, 발갛게 달아오른 듯한 입술을 꽉 깨물면서 투란을 흘깃거렸다.
투란은 그런 ‘아이’의 눈길에 조금 더 쓴웃음을 지었지만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핏덩이를 한 움큼 쥐어 가슴에 문지르고…… 몬스터 에센스를 삼킨다!
하나씩 하나씩, 고치가 비워졌다.
마울 트롤의 황금상이 문장의 풍경 속에 나타났다.
사이렌의 황금상이 문장의 풍경 속에서 움찔거렸다.
하피의 황금상이 파닥거리다가 마그마 로드의 풍경이 보이는 주변에 내려앉았다.
머드 퍼피티어는 역시나 황금의 해골, 척추와 뒤엉긴 괴상한 핏줄과 내장의 형상으로 생겨나서 어기적거리고 기었다!
그리고……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투란은 문장 속에 생성되는 몬스터의 형상에 집중하느라 잠시 그런 ‘아이’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새로 삼킨 몬스터의 정수를 풍경 속에 제대로 자리 잡아 놓고 그 본능을 가늠하는 것은 집중해야 할 일이니까, 꽉꽉 묶어 놓은 탓인지 얌전한 ‘아이’에게 신경 쓸 여유도 필요도 없는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 저거 좀 이상하게 군다만…….
‘어? 뭐가…… 왜 저래?’
―그러니까 왜 저러는지 몰라서 이상하다고!
‘도망치려는 방향도 아니잖아?’
묶인 팔다리를 당기면서 ‘아이’는 매달린 우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듯했다. 마치 사라져 가는 몬스터의 잔재(殘在)를 보며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피하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아이’가 간절하게 바라보며 움직이려는 방향이 바로 투란이었다.
다시 봐도 ‘아이’는 투란이 몬스터의 잔재를 삼키는 광경을 보며 멀어지기는커녕 가까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겁먹고 피해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라 들러붙으려 하니, 확실히 이상하다!
‘어, 이 눈빛 왠지 익숙한데?’
―그래, 여왕 하피랑 닮았지! 당연히 지금이면 너한테 익숙하지! 그러니까 뭐 짐작 가는 거 없냐고!
‘아니, 아직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는데 짐작이 갈 리가…… 근데 얘 지금 날 보는 꼴이 꼭 하피가 마지막에 눈깔 들이대던 거랑 비슷하잖아. 그래서 익숙하다고.’
―뭐? 심연의 각인을 자극했던 그때? 잠깐, 이것도 로드 오브 몬스터라서 그러는 거라면…… 투란, 조심…… 뭐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분석해 보려 할 때, 투란은 버둥거리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물론 방비는 한 채로…….
하지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몬스터, 비록 꼬맹이의 모습이라 해도 그 능력이 제대로 가늠되지 않는 몬스터에게 다가서는 것은 드라고니아를 놀라게 할 일이기는 했다.
그래도 투란은 ‘아이’의 손이 닿는 곳까지 다가섰고, 가만히 지켜봤다.
‘아이’가 손을 내밀어 닿고자 하는 곳은 투란의 가슴, 분명히 몬스터 엠블럼이었다. ‘아이’는 황금매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고 간절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축소된 눈동자 속에서 작은 별빛이 아주 애타게 반짝이는 듯하니…….
―아니, 이게 뭔!
문득 드라고니아가 그 태도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기막혀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조금 더 자신의 마법 방어를 엄밀하게 준비하면서, 가만히 ‘아이’를 당겨 품에 안아 봤다.
그렇게 거미줄에 묶여 있던 팔다리가 풀려나는 순간, ‘아이’는 냉큼 투란의 가슴을…… 문장을 더듬었고 혀를 대고 할짝였다. 그다음에은 이마도 문지르다가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황스럽다는 듯이 울먹거리며 간청하는 표정으로 투란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 행동, 태도의 의미는 이제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지만 투란은 더욱 마음을 가다듬으며 굳게 다진 채로 가만히 지켜만 봤다. 무엇을 얼마나 더 어떻게 하는지 끝까지 보자는 듯!
‘아이’도 곧 투란의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살짝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가 싶던 ‘아이’가 바로 자신의 두 손목을 입가에 대더니…… 아직 어린 탓에 겨우 볼의 어중간한 자리까지 열리는 입을 활짝 열고, 겨우 잇몸에서 삐죽거리는 끝자락만 드러낸 이빨로 사납게 깨문다!
그러나 무는 힘이 너무 약해서 핏방울이 살짝 맺힌 상처만 남았다.
‘아이’는 그 손목의 핏방울을 투란의 가슴에 열심히 발랐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더욱더 굳센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두 발을 두 손으로 쥐고 얼굴로 당기고 있었다.
가만히 그 허리를 잡은 채로, 거의 품에 안은 듯이 들고 바라보는 투란의 코앞에서 ‘아이’는 발톱을 이용해 이마빡을 긁었고, 이마에서 피가 철철 넘쳐나게 했다. 아직 어리다 해도 역시 하피의 발톱은 상당히 날카롭다고 증명한 듯한 광경이었다.
그다음, ‘아이’는 바로 투란의 가슴에…… 황금매의 문장에 이마를 열심히 문지르며 혀를 움직여 골고루 칠했다.
그 광경을 보고 느끼며,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이 호응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지닌 몬스터의 정수에 황금매가 반응하고 있다!
―투란, 어쩔 거냐?
‘어쩌긴, 예정대로 해야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과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로드 오브 몬스터를, 그 시작 단계에 겨우 들어선 계승자를 처분하는 일에는 변경이 있을 수 없었다.
곧 황금매가 발톱을 드러냈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형성한 금색 각인이 ‘아이’를 휘감아 삼켰다.
터럭 하나, 깃털 하나 남김없이 ‘아이’의 형상은 투명해졌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황금의 문을 넘어 나타난 것은 ‘아이’가 아니었다.
봉긋한 가슴부터 들이밀며 날개를 활짝 펼치고,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높이 휘날리는 ‘하피’였다.
여왕 하피의 기척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지녔지만, 그 모습과 아주 닮았지만 깃털과 몸 곳곳의 색채는 완전히 다른 ‘하피’였다.
이마 위의 머리카락은 붉은 왕관처럼 보이면서, 길게 휘날리는 검은 바탕 위로 춤추는 뿔을 뻗어 낸 듯했다. 깃털은 뿌리는 검지만 그 끝으로 갈수록 붉은 색조가 강해져서 검은 날개 위로 불꽃의 파문이 교차하며 번져 가는 듯이 보였다. 그 붉은 무늬는 마치 어두운 밤을 불꽃이 수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배꼽 아래의 깃털 가죽 반바지 역시 그런 색조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무릎까지 덮은 반바지 아래로 검은 가죽 부츠처럼 매끈하게 뻗어 내려간 발가락은 맹금(猛禽)의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냈고, 발톱 끝으로 갈수록 달아오른 쇠처럼 붉은색을 띠었다.
그 눈, 그 입술은 투란에게 아주 단순한 결론을 내리게 했다.
‘빨갛네?’
눈가의 색조, 입술 색은 노을을 보는 듯했다.
봉긋하고 튼튼해 보이는 가슴에 얹힌 꼭지 색조차도 그랬다.
‘천칭’의 여왕 하피와는 이모저모로 다른 모습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황금매의 풍경 속을 아주 즐겁게 활강하면서 황금빛 마력을 온몸에 휘감으며 옥좌(玉座) 앞에 내려앉는데, 어느 틈엔가 그 미묘한 날갯짓에 휩쓸려서 몬스터의 황금상이 끌려오기도 했다!
마울 트롤과 사이렌, 머드 퍼피티어…… 헬임프에 트리니티 히엔나까지!
투란이 어이없어 보니 파이로칸은 날갯짓에 휩쓸리지 않았고 그 곁에 있는 붉은 그랑츄는 파이로칸에 붙들린 탓에 버틴 것처럼 보인다! 마그마 로드나 몬스터 세란드는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꿈쩍도 않을 뿐이고…….
한데 ‘하피’는 억지로 황금상을 끌어당길 의도는 없는 듯했다.
그 눈길은 높은 곳을 향해 있었고, 검은 눈동자가 별빛에 완전히 삼켜진 것처럼 압축되어 하늘로 뚫린 구멍처럼 생긴 ‘심연’에 고정된 채였다. 그러는 사이 황금빛 마력이 노골적으로 그런 ‘하피’의 주변에 안개처럼 모여 맺혔고, 깃들었다.
한없이 커지는 호기심으로 투란은 가만히 이를 지켜봤고…….
‘어이?’
‘하피’의 눈동자가 별빛 속에서 다시 확장되어 나오는데, 그 색이 푸른 하늘빛이었다. 황금매의 문장, 그 풍경 속에 자리 잡은 끝없는 하늘의 심연이 지닌 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하늘빛이 곧바로 ‘하피’의 눈알을 물들였고, 다시 눈동자로 축소되었다.
하얀 눈알 위에 하늘빛 눈동자, 그 속에 선명한 별빛이 맴도는 모습으로 ‘하피’는 날개를 접어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리며 옥좌 앞에 한쪽 무릎를 꿇어앉으며 몸을 숙이고 있었다.
문득 투란은 그 모습이 언젠가 오러클 아저씨를 향해 성기사와 사제가 인사할 때의 자세란 것을 알아차렸다.
매우 경건하게, 깊은 공경을 품었다고 드러내는 자세.
‘하피’는 투란이 기억하는 그 자세를 이용해서 드러내고 있었다.
이 황금매의 문장이 자신의 둥지이고, 투란에게 한없이 복종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었다.
덤으로 로드 오브 몬스터답게, 어설픈 녀석들은 자기 날개 아래 깔아 놓기도 하고!
‘이것 참…….’
투란의 마음이 조금 복잡해져 갔다.
한숨과 함께 빈손을 비비적거리면서 투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감하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건가?”
―어떻게 되었는데?
조급하게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덕분에 투란은 황금매의 풍경 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직 드라고니아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것을 알았다. 마음에 품은 바를 윌 라이트를 통해 전해야 드라고니아가 이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니…….
“글쎄?”
살짝 튕겨 보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의 이 물음에는 대꾸할 수밖에 없잖나!
―몬스터 에센스, 여럿 지워졌냐?
“아냐!”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