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83)
“그 남자 하피랑 닮지 않았어요? 저 주렁주렁 허리에 매단 것 말이에요.”
투란은 라펜과 마켈 곁으로 조금 더 다가서면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라펜과 마켈이 귀를 쫑긋하는가 싶더니, 곧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네.”
그러나 둘 다 투란처럼 낮게 대꾸해서인가, 이쪽에 들리지 않게 저쪽에서 뭔가 논의하던 중이었던 베즐 팀에게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베즐처럼 템 멤버들이 모두 ‘어디서 봤었나?’라고 갸웃하는 중이었다.
사내는 다시 유쾌한 목소리로 베즐을 향해 ‘몰라보다니!’라고 웃음부터 흘리면서 대답을 하는데…….
“성문에서 만났잖아. 이렇게 하면 기억하기 쉬우려나?”
고깔모자를 벗어 손에 쥐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어깨에서부터 팔을 따라 사나운 깃털이 돋아났고 말을 하는 입가의 한쪽도 쓰윽 찢어지듯이 귀밑까지 열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어? 하피…… 아, 성문 앞에서 만났던…….”
베즐이 흠칫하면서 손을 칼자루 쪽으로 움직이다가 말과 함께 멈췄다.
“뭐 그때는 서로 바빠서 서로 자기소개도 못 했으니…… 내 이름은 가몬티. 보다시피 몬스터 로드이고…….”
가몬티는 몬스터 로드라는 것을 직접 보여 준 어깨의 깃털과 입 모양새를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리면서 여전히 유쾌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베즐이 눈을 껌벅이고 갸웃하는 모습으로 대꾸를 하는데…….
“어…… 그때는 고마웠어. 덕분에 안으로 빨리 들어올 수 있었지. 아, 나는 베즐이고…… 여기는 우리 팀…… 그런데 무슨 일이지?”
자세하게 팀 멤버를 소개하기보다 먼저 가몬티가 대체 뭔 일로 찾아왔는가를 알 수 없어 묻는 모습이었다. 이에 가몬티가 빙긋거리면서 막 뭐라 대답을 하려는 순간…….
“성격은 좋은지 몰라도 눈치는 없구먼! 괜찮은 파티를 찾는 몬스터 로드 처음 보나?”
누군가 걸쭉하고 깊은 목소리로 먼저 떠들고 있었다.
베즐은 ‘응?’ 하면서 목소리가 난 쪽을 봤지만, 가몬티가 고깔모자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몬티 어깨 너머로 멀리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방금 말한 누군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베즐 쪽의 누군가가 말한 것도 아니었고, 혹시나 해서 베즐의 눈길이 라펜부터 투란까지 훑기도 했지만 역시 방금 전 말한 이에 대해서는 다 같이 ‘누구야?’라는 중이었다.
이런 베즐과 더불어 베즐 팀 멤버들 역시 ‘뭐야?’ ‘어디서 난 소리지?’라고 제각각 주변을 훑어보는데…… 슬슬 모습을 감춘 누군가에 대해서 경계심을 드러내는 태도가 되고 있었다.
가몬티가 이런 광경에 한숨을 쉬고는 손에 든 고깔모자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미안하군. 이렇게 자주 나불거리는 일은 없었는데 말이지…… 어젯밤에 성채를 감싼 마법을 보고는 흥분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나 봐.”
이 소리에 베즐은 ‘그래서, 누가?’라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몬티는 마치 동료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가까이에 가몬티의 동료라 할 만한 사람이 없잖은가?
혹시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 눈에 보이는 누가 있나 해서 베즐이 주변 일행을 주욱 둘러봤지만, 테란부터 투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안 보여, 대체 누가 가만히 못 있을 정도로 흥분했는데?’라고 의문만 잔뜩 드러낼 뿐이었다.
가몬티가 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고깔모자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살짝 목소리를 높인다.
“이봐, 얼른 자기소개해야지! 다들 기다리잖아! 말문 열어 놓고 시침 떼지 말라고!”
고깔모자의 챙이 펄럭거렸고, 곧바로 목젖을 두드리면서 말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야아! 아아아아, 흔들지 마! 내 발성이 꼬이잖아!”
이번에는 다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바로 투란부터 입을 연다.
“어, 모자다.”
라펜이 곧이어 말한다.
“그러네, 모자네.”
마켈은 둘이 빼먹은 한마디를 덧붙이듯, 속삭이려 했는데 저절로 높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말하는……?”
불쑥불쑥 한마디씩 내뱉은 듯한 분위기 속에는 살짝 얼빠진 낌새도 섞여 있었다.
그 얼빠진 낌새, 기분에 동참하듯 베즐 팀도 제멋대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모자가 말했어!”
“말하는 모자라고!”
“왜!”
“어떻게?”
“젠장, 위험한 거 아냐?”
“몬스터 로드가 키우는 모자 모양 애완용 몬스터?”
“그건 아니지!”
가몬티는 이 소란에 한숨을 쉬었고, 고깔모자의 챙 안쪽이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챙 안쪽에는 눈과 입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검붉은 바탕색과 다르게 하얗게 새겨진 무늬가 꿈틀거렸고, 일행의 소란스러움에 동참하는 듯한 걸쭉하고 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봐, 모자가 말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냐? 뭘 그리 놀라고 있어? 모자가 말하는 것보다는 너네가 가진 장비가 더 놀라운 것 아니야?”
“상식적으로 이상하잖앗!”
베즐이 울컥했다는 듯이 외쳤다.
곧바로 베즐 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라펜과 마켈은 ‘음?’ 하면서 베즐 팀을…… 오면서 봤던 그 장비를 훑는 눈길을 세차게 흘려냈다. 그래서 투란은 한쪽을 골라 보태는 말을 한다.
“상식적으로 이상한 거는 베즐네도 만만치 않기는 하네요.”
바로 라펜과 마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즐은 그런 모습에 다시 더 울컥한 것처럼 말한다.
“야, 누가 이상해! 모자가 말을 하는…… 뭐야, 말하는 모자 본 적 있어?”
도리도리, 바로 투란이 고개를 저었다.
라펜과 마켈도 곧장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베즐이 바로 그 고갯짓에 힘을 얻었다는 듯, 가몬티와 가몬티가 들고 있는 모자를 향해 외친다.
“거봐! 그쪽이 상식이 없다고!”
가몬티가 쓴웃음을 지었고, 챙 아래 무늬를 꿈틀거리면서 고깔모자가 발끈한 듯이 대답한다.
“어딜 보고 감히! 모자가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야! 그런 편견은 버리라고!”
“아니, 그러니까 그게 상식이고 보통이라고오!”
“그런 상식은 버렷! 편견이니까 버렷!”
“편견이 아니라 말하는 모자, 당신이 이상하다고! 버리긴 뭘 버려!”
어느 틈엔가, 베즐과 고깔모자는 상식과 편견에 대해서 다퉜고 서로 누가 더 이상한가를 따지는 꼴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오가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결국은 지나가는 이들의 눈과 귀를 끌어모으고 말았다.
투란은 거기 끼어 있지 않으려는 듯이 슬그머니 발걸음을 뒤로 뺐고, 투란이 빠지는 모습을 느낀 라펜과 마켈이 흘깃하더니 재빠르게 뒷걸음쳤다. 이를 본 베즐 팀 또한, 팀 리더 베즐이 말다툼하는 광경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슬슬 딴 곳을 보면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왜들……?
드라고니아가 이 상황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투란은 슬쩍 손을 바지에 문지르고, 윌 라이트의 기척을 최대한 지우면서 소리 없이 대답한다.
‘왜들 이러기는…… 모자랑 말다툼하던 녀석들이라고 소문나 봐. 모자가 말한다는 부분은 다들 잊고 모자 걸어 놓고 말다툼하던 이상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할걸. 상식적으로 모자가 말할 리가 없으니까! 아, 그리고 마법 말고, 마음으로 직접 말해. 지금 그거 되잖아. 괜히 이상한 모자의 괴상한 능력에 걸리지 말자고.’
―그러지.
윌 라이트의 마력이 발각될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순순히 투란의 요청에 응해 마음으로 대답을 전했다. 그와 함께 여전히 말하는 모자랑 말다툼한 것이 소문나서 무슨 문제가 되는가, 인간사회의 상황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함께 전해져 왔다.
왠지 얌전히 받아들이는 드라고니아의 태도를 투란이 수상하게 여기고 뭘 물으려 하는 순간, 그 태도보다 더 수상한 마력이 몸에 닿고 있었다. 여리고 흐릿하지만 분명히 번져 가는 마력의 파문이었다.
‘어? 이건 뭐야?’
―저 모자, 일부러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주변을 탐지하는 마력의 반향을 만들어내고 있거든. 세련된 마법의 기술이야. 마치 살아 있는 상위 마도사 같군. 상아탑의 마법사도 느낀 모양이다.
투란이 조금 더 긴장하면서 느낌을 더듬으니 분명히 고깔모자가 이 묘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에 반응해서 세마인이 길드 안쪽에서 뛰어나오는 모습도 바로 보였다.
베즐과 아옹다옹하며 상식과 편견에 대해서, 말하는 모자가 상식적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다투던 고깔모자가 세마인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훅훅거리는 큰 소리를 웃음처럼 흘렸다.
“아, 왔군.”
베즐은 갑자기 자신의 말을 외면하는 고깔모자의 태도에 으르렁거리는데…….
“뭐가 와! 할 말 없으니까 딴소리…….”
“누구— 뭐야, 그건!”
세마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면서, 손에 쥔 지팡이에 잔뜩 마력을 걸어 놓고 아주 팽팽하고 긴장된 자세로 묻고 있었다.
이에 베즐이 흠칫하면서 주변을 둘러봤고, 자신과 모자를 든 가몬티 말고 몇 미터씩 다들 떨어져 구경하는 중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그래서 팀 멤버들과 투란 쪽을 흘겨보며 주먹을 쥐어 올리며 성난 소리를 몇 마디 뱉는다.
“이거 배신이야! 난 구경거리 됐는데 너네끼리만!”
따악, 지팡이가 베즐의 머리를 치면서 옆으로 밀어 버렸다.
세마인은 베즐이 ‘아, 씨— 아저씨까지!’라고 하는 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몬티와 고깔모자를 긴장한 채로 바라보며 묻는다.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
“껄껄껄! 긴장할 것 없어. 아, 물론 놀랍기는 하겠지. 나처럼 말을 하는 아티팩트를 다룬 적이 없다면 말이야. 아, 내가 그런 아티팩트란 말은 아니네. 단지 그런 경우를 겪었다면…… 끅!”
마법사를 향해 말이 길어지던 고깔모자는 가몬티가 손에 힘을 줘서 조이는 순간, 목이 졸린 사람처럼 말을 끊긴 소리를 냈다. 그래 놓고 가몬티는 재빨리 세마인을 향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요. 제가 지금 여기 베즐 씨 파티에 참여하고 싶어서 말이죠. 이쪽 이야기 다음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마법사님과 여기 고깔이의 대화를 오랫동안 깊이 나누도록…….”
“푸아핫! 얀마! 갑자기 조르지 마! 그거 완전히 교살(絞殺)당하는 기분이라고!”
가몬티의 힘이 들어간 손을 고깔모자가 꾸물거리면서 부풀어 올라 밀어내며 외치고 있었다. 가몬티는 웃는 얼굴 그대로 낯을 구기면서 하던 말을 잇는데…….
“그냥 가져가셔서 대화하셔도 되는데요. 드릴까요?”
고깔모자를 떠넘기고 싶다는 낌새가, 당장 넘겨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세마인은 살짝 어처구니없다는 듯, 가능한 한 냉정하게 표정을 관리하려 해도 어이없는 이 기분을 전부 누를 수가 없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하면서 가몬티를 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가몬티, 자네도 그 대화에 꼭 필요한 것 같군. 베즐네랑 파티라면……나중에 내가 제대로 주선해 주지. 자네 정도 몬스터 로드라면 베즐도 뭐라 하지 못할 거야. 그렇지, 베즐?”
“아저씨?”
갑자기 뭔가 덤터기 쓴 듯한 상황에 베즐이 펄쩍 뛰는 시늉부터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어깨에 테란과 칼잡이 카엘이 손을 올리며 외친다.
“마법사님이 보증하는데 불만이라니요.”
“그렇죠. 애송이도 아닌데 불만이 있을 리가요!”
세마인은 그런 둘을 보고 베즐을 흘깃하더니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가몬티에 대해서는 보증하지.”
이 말은 가몬티가 이상한 웃음을 짓게 했다.
마법사의 보증으로 파티에 참여한다면 여러 가지로 유리하기는 한데, 어째서 고깔모자와 마법사의 대화에 자신이 끼어야 하는지는 납득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몬티의 기분에 아랑곳없이 세마인은 고깔모자를 경계하는 태도로 데려갈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말하는 모자의 소동이 정리되고 난 다음, 구경하던 이들도 하나씩 둘씩 사라지는 광경을 보다가 투란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베즐에게 묻는다.
“베즐, 이 애들은…… 가룬이랑 애들은 어떻게 된 거예요?”
순간, 베즐과 베즐 팀 멤버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면서 투란이 가리키는 가룬과 꼬맹이 둘을 쳐다봤다.
가몬티 덕분에, 고깔모자와의 시답잖은…… 상황은 신기했지만 뭔 일인가 다시 생각하면 전혀 알 수 없는 일이 지나고 나니 남은 것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잊고 싶었던 일의 뒤처리뿐!
베즐과 팀 멤버들이 끄응 하며 표정을 구길 때, 라펜과 마켈은 다시 한숨을 쉬는 자세로 돌아갔다.
투란은 그 광경을 구경하듯 보면서 한마디 심술궂게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미끼……는 아니죠?”
“얀마!”
“그런 거 아냐!”
베즐 팀이 거의 동시에 화를 내듯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다행이란 듯이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