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84)
“다행이네요, 아니라니.”
히죽 웃음과 함께 투란이 고개를 팍팍 끄덕였다.
그 순간, 어이없어하며 보던 라펜이 눈을 반짝하고는 재빨리 마켈의 소매를 당기고 투란에게도 눈짓하면서 말한다.
“팀 리더가 적당히 일을 맡기겠지. 그러려고 힘껏…… 힘들여 데려왔을 텐데 우리가 뭐라 하면 안 되지! 자, 투란! 마켈, 여기는 팀 리더 베즐 님께 맡기고! 우리는 장터나 둘러보러 가자. 엘데인이라고, 엘데인!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운을 시험해 봐야 하지 않겠어?”
“그렇군.”
마켈이 뭔 수작이야 하는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눈을 번뜩하고는 라펜의 말에 찬성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투란에게도 슬쩍 눈짓하는 모습이 딱 라펜과 닮아 있었다.
투란은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냉큼 대답한다.
“장터에서 운을? 헤에, 무슨 일인데요? 나도 같이 가요!”
라펜이 바로 앞장서면서 말한다.
“가면서 얘기해 줄게. 아, 팀 리더 베즐 님! 우리 장터 좀 다녀올게! 오늘은 출발할 거 아니지? 여기서 저녁에 다시 보자고! 그럼, 있다 봐!”
베즐은 꼬박꼬박 공경하는 척하는 말투로 떠들면서 멀어지는 라펜을 보며 욱한 표정과 함께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아직 양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은…… 떨어질 낌새도 없이 더 세게 잡고 있는 테란과 칼잡이 카엘의 손길에 달려들어 주먹질하지는 못했다. 덕분에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짓는데…….
“어쨌든 이제 우리도 얘네 어떻게 할지 정해야잖아?”
테란이 답답한 기분을 그대로 말투에 담아 말하고 있었다.
이는 베즐을 새삼스럽게 울컥하게 했으니…….
“야, 애초에 시작한 거는 너거든?”
테란은 이런 베즐의 말에 바로 정색하며 대꾸하는데…….
“난 말만 했고, 주먹질은 리더인 네가 시작했어! 이러시면 곤란하지요, 리더……님!”
확실히 자리를 피해 마켈과 투란을 끌고 달아난 라펜을 흉내 내는 말투이기도 했다.
베즐은 다시 새삼스러운 한숨을 쉬면서 가룬과 두 아이, 팀 멤버들을 둘러봤고…….
투란은 라펜의 뒤통수를 향해 다시 물었다.
“장터에서 어떻게 운을 시험해요?”
라펜은 대답보다 먼저 뒤를 돌아보며 더 이상 베즐 일행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과 함께 쪼그리고 앉았다. 마켈이 혀를 차면서 투란의 왕성한 호기심에 대해 대답을 대신한다.
“엘데인 장터에는 몬스터 블레이드 같은 장비가 가끔 나와. 만들다 실패한 거라서 성능은 전혀 보증할 수 없는 건데…… 그게 가끔 굉장한 장비이기도 하거든. 만든 작자도 예상 못 한 결과인 셈이라, 값도 터무니없이 싸고 말이야.”
“헐?”
투란의 표정이 ‘그게 말이 돼요?’인 것을 보고 마켈은 쓴웃음을 짓고 몇 마디 덧붙어야 했다.
“돌바크라는 몬스터 스미스인데…… 이 인간이 만들고 나서 자기가 직접 장비 테스트를 하지 않고 팔거든. 근데 맨날 얼굴을 가리든가, 팔다리 한 짝이 있다 없다 하는 변장을 한 채로 좌판 깔고 팔거든. 그러니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장터를 뒤지면서 운을 시험하는 꼴이 되는 거야.”
“아주 이상한 사람이군요?”
투란은 결국 이렇게 의아함을 담은 말을 해야 했다.
마켈은 더 할 말 없다는 듯이 더 짙게 쓴웃음만 지었고, 라펜이 벌떡 일어서면서 말한다.
“그 덕분에 운이 좋으면 아주 좋은 몬스터 블레이드를 헐값에 얻는다 이거지! 운이 나쁘면…… 엘데인의 명물 때문에 사기당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거고!”
저절로 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예요! 아, 혹시 슬리피는 그거 살려고 장터 가서 안 보이는 거였어요?”
투란이 웃으며 말하다가 문득 켈타 마을과 친해 보였던 슬리피가 가룬이랑 꼬맹이 곁에 없는 것을 떠올리면서, 그 와중에도 왠지 켈타 마을 어른들 곁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묻는 말이었다.
라펜이 뜻밖의 말에 잠깐 ‘어?’ 했고, 마켈이 고개를 느슨하게 저으며 대답한다.
“옆에 있었잖아. 돌돌 말린 누더기 거적…… 그 속에 말려 있었어.”
“엥?”
투란이 눈을 깜박이면서 라펜과 마켈을 둘러봤다.
꼬맹이 둘이 앉은 너머로 분명히 말린 누더기 거적이 하나 있기는 했다.
누군가 잠자리로 쓰고 나서 치운다고 말아 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는데, 거기 사람이 말려 있었다는 건가?
그것도 슬리피가!
설명을 해 달라는 눈길에 마켈은 귀찮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고 라펜이 잊었던 것을 기억해 내듯, 멀리 보는 시늉을 하며 대답한다.
“애들 놓고 싸움 났을 때, 슬리피도 있었던 모양이야. 근데 맨주먹을 아낀답시고 대뜸 칼부터 꺼내 들었다나…… 누굴 쑤시려는지 알 수 없어서 베즐네가 일단 뒤통수 깐 다음에 묶고 말아 갖고 왔다더라고. 묶인 채로 발버둥 치니까 아예 거적 주워다 한 겹 더 말아 놓은 거지.”
“아, 네…….”
베즐 팀 일행이 뒤통수 때렸다는 부분에서 이미 슬리피가 빼든 칼끝이 어딜 향했는가는 명확했다. 라펜이나 마켈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대강 설명해 준 셈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더 자세히 몰라도 된다는 분위기가 둘에게서 묻어 나오니, 투란은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장터의 행운 쪽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고!
―말하는 모자는?
드라고니아가 휙휙 옮겨 다니는 투란의 관심에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터덜거리는 라펜과 마켈의 뒤를 따르면서 투란은 입을 다문 채로 드라고니아에게 바로 묻는다.
‘나 자는 동안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어? 엘데인을 둘러보고 있지 않았어?’
―지켜보기는 했지. 몬스터가 튀어나오는지, 어디서 금간 성벽이 홀랑 무너지는 일은 없는지…… 소소한 인간 사이의 다툼에 대해서는 알드바인에서처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만?
‘어, 잘했네.’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지만 드라고니아에게도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뭔가 물을 것을 잊은 듯한 느낌이 살짝 있기는 했지만, 엘데인의 건축물 사이로 펼쳐진 긴 좌판의 행렬과 옥신각신하면서 흥정을 하는 장터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투란의 관심은 누가 행운을 시험할 좌판을 깔고 있는가에 몰입돼 버렸다.
길드에서 가까운 곳에서 바로 시작되는 그 풍경은…….
“야! 나뭇조각에 묶어 놓은 게 단도라니 뭔 소리야!”
“어헛! 하피의 발톱이 단도만큼 날카로운 줄 몰라? 자루만 갖추면 단도라고!”
“발톱 끝만 뾰족하지 그걸 누가 칼로 쓰냐고! 그냥 발톱만 팔라니까!”
“단도값 내고 가져가라고!”
“그게 왜 단도값이냐고! 몬스터 잔재를 그딴 식으로 비싸게 팔려고 들어?”
“비싸면 딴 데 가 보라고! 흥, 투엣!”
팔려는 자와 사려는 자가 말다툼하다가 옆으로 튄 침은 지나가던 사람의 바지에 튀었고…….
“이 새끼, 어따 침을 뱉어!”
퍼억! 빠악!
흥정 대신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믿을 만한 연금술사에게 부탁해 만든 포션이라고! 왜 구경만 하고 안 사는 거야! 안 살 거면 저리 가라고!”
진흙을 구워 만든 작은 병을 진열한 이가 가까이 앉아 멀뚱거리는 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멀뚱거리는 이들 덕분에 다가오려다가 멀리 돌아가는 손님들이 있었으니, 장사에 방해받아 화내는 모습이었다.
“효과가 있으면 산다니까.”
하지만 능글거리면서 대꾸하며 비켜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때문에 더 화가 난 듯…….
“아침에 내가 마시는 것 봤잖아! 근데 왜 안 사고 버티고 구경만 하냐고! 안 살 거면 가라니까!”
포션이 담긴 병 옆에서 돌멩이를 쥐어 던질 시늉으로 외치고 있었다.
피하는 시늉을 하며 더욱 능글거리는 대답이 나온다.
“그래, 그래서 기다리잖아. 반나절이면 포션이 부작용이 있나 없나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자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듯…….”
“딴 데 가라고! 아무 이상 없…… 끄으으!”
화내던 포션 장사가 배를 움켜쥐었고, 멀뚱거리던 이들이 바로 놀란 소리를 낸다.
“아, 역시 사기 포션이구먼!”
“어, 이거 죽으려나?”
“야, 들어! 진짜 연금술사한테 데려가야 해!”
그렇게 해서 포션 장사는 실려 가 버렸다.
“소금을 대체 어디다 뿌렸다는 거야!”
“어이, 거기 하얗게 굵게 묻은 소금 안 보여?”
“모래잖아, 모래!”
“어허! 굵은 소금이라고!”
“굵어도 소금이면 물에 녹는다고! 봐, 이건 그냥 가라앉아서 그대로잖아!”
“떠들지 말고 저리 가!”
“소금 절임 고기라면서, 대체 뭘 뿌린 거야!”
“닥쳐!”
퍼억! 빠바박!
투란에게는 낯선 광경이 가득했다.
웬만하면 주먹질로 끝나거나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노려보는 채로 갈라서는 흥정이 잔뜩이었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패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가 하면 웃는 낯으로 서로를 보며 거래하는데, 그 살벌한 분위기에 옆에서 다들 피해 가는 경우도 있었고.
‘이것 참, 라비엔과는 또 다르네?’
라비엔에서 잠깐 머무는 사이에 익숙해진 광경은 가격을 묻고 나서 바로 사거나 돌아서는 거래였다.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잔뜩 무장한 채로 그렇게 거래를 하고 있었다. 칼부림하면 했지, 불평불만을 주먹질로 푸는 경우는 이렇게 많지 않았다. 덕분에 주먹질로 흥정하는 광경이 눈에 딱 띌 정도였고, 그런 일 생기면 다들 모여서 누가 이길지를 놓고 도박하는 분위기였는데…… 엘데인에서는 툭툭 험한 말을 뱉다가 바로 주먹질로 흥정을 한다! 옆에서 싸우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
이쯤 되면 어디서 누가 누굴 패든 간에 별 신경 쓸 마음이 생길 리가 없잖은가?
‘아, 너 이래서 베즐네가 싸우는 거 그냥 넘어갔구나.’
드라고니아의 심드렁한 태도가 어쩐지 이해가 가는 투란이었다.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애들을 파네 못 파네 하고 있었으니까. 입고 있던 것도 바로 벗어서 거래를 하기도 하는 곳이다. 내게는 판단할 근거가 많이 부족했어. 베즐 쪽이 옳은지, 켈타 마을 쪽이 옳은지. 다만 헌터들은 확실히 쾌락의 전당에 아이를 파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더군.
‘흐흠, 아마 거기가 창관인가 뭔가 하는 곳이라서 그랬을걸. 헌터들 중에서 흉포하다는 작자들은 사람 사서 몬스터 사냥에 미끼로 쓰니까. 아예 미끼로 사람을 모집하기도 하고…… 아, 그런데 엘데인 사람들 참 대단하네.’
―대단? 뭐가 말이냐?
휙휙, 타탁!
어디서 누가 던진 것인지 모를 돌멩이와 나무토막이 라펜의 손에 튕겨 투란에게 날아왔다. 투란은 고개를 갸웃해서 피하며 투덜거린다.
“뒤로 보내지 말아요!”
라펜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채로 대꾸한다.
“정신 차리고 있으면 괜찮잖아. 아, 근데 어디야? 마켈, 뭐 보여?”
마켈이 고개를 저었다.
둘이 다시 장터를 가로지르며 움직였고, 투란은 그 뒤를 따르며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대답한다.
‘성벽 안에 갇힌 채로 몬스터랑 싸운 게 어제라고. 간밤에는 뭔지 모를 마법에 휩싸여서 지내야 했고. 아무리 마법사가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해 놨다고 해도…… 여기 사람들, 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잖아. 가몬티였나? 그 사람도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한 몇 년 전에 성문 앞에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찾아왔잖아.’
―그건 네가 뭔 짓을 했는가 보지 못해서 아닐까? 단지 인간만이 아니고 지성적인 존재라면 자신의 무지(無知) 속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보통이잖아.
‘지, 지성? 정서……? 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냐? 그냥 그렇다는 건데…….’
투란이 너무 진지하고 신중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살짝 질린 듯이 대꾸했지만,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말한다.
―누가 몰라준다고 서운할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네가 엘데인을 구한 일은…… 아니, 이 지역의 칠왕국에 닥쳐올 재난을 막아선 일은 가능한 숨기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이, 너 말이 바뀐 거 아냐? 긍지니 뭐니 하더니…….’
―이들에게 네가 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적(奇蹟)이니까. 자랑하고 다니면 미친놈 소리 들을 수도 있다.
‘야!’
투란이 살짝 발끈할 때, 라펜의 목소리가 빠르게 앞에서 튀어나온다.
“저기, 저거! 마켈, 저 분위기면…… 맞겠지?”
마켈은 대답 없이 라펜이 앞장서면서 가리키는 저편의 좌판을 향해 다가갔고, 투란도 얼른 그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