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85)
첨탑에 가까운 큰 건물의 모서리, 툭 불거진 모서리의 그늘 아래에 마른 나무껍질로 짠 거적을 깔고 물건을 늘어놓은 채로 등은 건물 벽에 기댄 채로 앉아 있었다. 조금 심심해 보이고, 조금 지루해 보이면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열심히 눈을 마주치며 웬만하면 한번 물어보고나 가라는…… 하지만 매달려 사정은 하지 않는다는 묘한 분위기를 띤 채로.
투란은 그 모습에 갸웃하면서 나직하니 마켈을 향해 묻는다.
“저 사람 맞아요? 머리에 수건만 올려놨는데?”
딱히 변장을 했다고 보기 힘든 차림새였다.
잔뜩 얼굴을 가리거나 흙칠이라도 해 놨기를 기대했는데 많이 다르잖나.
마켈이 쓴웃음과 함께, 투란과 비슷한 기분인 듯이 대답한다.
“글쎄…… 찾는 것도 행운이 필요하다니까. 뭐, 일단 물어나 봐야겠지.”
라펜은 기다리지 않고 냉큼 다가가 늘어놓은 물건을 자세히 보듯이 앉으면서 묻고 있었다.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두바크.”
머뭇거림 없이 대답이 나왔다.
씨익 웃는 표정인 것이 라펜이 뭘 기대하고 물었는가 다 안다는 듯한 눈치가 역력했다. 그리고 그걸 감출 마음도 없는 듯…….
“운이 좋으면 좋은 물건을, 운이 없으면 폐품(廢品)을 가져갈 거야. 값은 모두 똑같아. 동전 오십 닢!”
“비싸!”
투란이 라펜 곁에 선 채로 좌판…… 거적 깔개 위에 늘어놓은 물건을 보다가 대뜸 한마디 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걸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뜯어서 다른 용도로 쓴다 해도 동전 서너 닢이면 되어 보인다고 대놓고 항의한 셈이었다.
라펜이 앉은 채로 투란을 올려다보면서 너무 대놓고 한 말이라는 듯, 실룩이며 새는 웃음을 지은 채로 말한다.
“야, 아직 거래 시작도 안 했잖아.”
“음? 그런 거예요?”
투란은 갸웃했고, 마켈이 선 채로 두바크라고 이름을 밝힌 이를 보며 묻는다.
“본명요? 엘데인 장터를 헤매는 사람을 노리고 지은 이름 같은데?”
라펜과 투란이 노골적인 물음과 함께 눈을 반짝이면서 두바크를 바라봤다. 혹시나 그 태도에 어딘가 켕기거나 찔끔한 모습은 없을까 했는데, 두바크는 여유롭게…… 상당히 뻔뻔한 태도로 답한다.
“그저 돈이 필요해서 긁어모은 물건으로 장사를 하려는 것뿐이야. 가명을 쓰려면 투란이나 카엘, 아니면 아란, 그란도 있잖아. 굳이 유명하지도 않은 두바크란 애매한 이름을 쓰겠어? 그래, 내 이름은 두바크! 그래서, 살 거야 말 거야.”
라펜은 너무나도 당당한 두바크의 모습에 혀를 차며 바로 일어섰다.
“우린 돌바크란 몬스터 스미스를 찾는 중이라서. 일단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올게요.”
“다시 올 때까지 내가 여기 있으려나.”
두바크는 여운을 흘리듯이, 하지만 잽싸게 대꾸하고 있었다.
이는 라펜을 히죽 웃게 했고, 마켈이 ‘아닌가 보네.’라고 중얼거리게 했다.
가는 사람 뒤통수를 가렵게 하는 저 눈길과 자세는 소문의 몬스터 스미스로 여길 수 없다는 증거라는 듯.
그래서 둘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두바크를 냅두고 돌아서는데…….
“이건 뭐예요?”
투란이 거적 위에 늘어놓은 물건 하나를 들고 묻고 있잖은가.
라펜과 마켈이 ‘응?’, ‘뭐가?’라고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니, 두바크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을 쏟아 낸다.
“주웠지! 척 보기에도 누가 쓰다 버린 단검 같잖아? 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로 누가 쓰다 버린 단검일까? 행운을 시험하고 싶다면 동전 오십 닢! 싸잖아? 한번 사 봐!”
라펜도 마켈도 혀를 차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분위기 잡으면서 행운의 몬스터 스미스인 척하더니, 애송이로 보이는 투란이라도 붙잡고 뭐든 팔아치우겠다는 자세로 순식간에 돌아선 모습이라니!
한데 투란은 그런 두바크의 태도에도, 라펜과 마켈의 어이없어하는 모습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검게 번들거리는 단검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흑요석(黑曜石)으로 칼자루까지 조각해서 단검의 모양을 만든 것 같은데, 날은 제법 잘 갈려 있었고 칼자루를 쥔 손이 칼날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날막이도 작지만 분명하게 굴곡진 형태로 갖추고 있었다. 칼자루에 묘한 홈을 파서 테를 두른 모양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그 홈에 줄을 감아 자루를 굵은 나무 봉에 끼우면 창으로 쓸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형태가 투란의 관심을 끈 것은 아니었다.
‘이거 뭔 돌이야?’
단검이란 모양보다도, 투란은 검은 바탕에 은은하게 푸른빛이 맴도는 그 재질(材質)에 끌리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는 날카로운 시각에 의해서만 보였던 푸른빛이 햇살 아래로 살짝 내놓자 더욱 깊고 그윽하게 보였다.
―글쎄……? 화산지대의 화강암(花崗巖)이 아닐까 싶군. 원래 이것저것 섞여 있는 모양일 텐데, 이건 단일(單一)한 결정(結晶)으로 되어서 조금 특이한 것 같군.
드라고니아도 갸웃하면서, 나름대로 분석을 하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느끼고 있었다.
‘맛보고 싶다.’
―야! 너, 설마 지금……?
‘나중에 맛봐야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투란은 품속을 뒤적여서 널찍한 주머니를 꺼냈다.
넓지만 얇아 보이는 수건 모양의 주머니에서 동전이 좌르르 쏟아졌고, 두툼하니 쌓였다. 두바크가 그 광경에 눈을 크게 뜨며 환한 웃음을 머금었고…….
“좋은 선택이야! 그 단검은 자네에게 아주 큰 행운이 될 걸세! 음하하…… 하?”
신나서 떠드는가 싶었는데 동전을 쓸어 담다가 갑자기 말꼬리를 흐리고 있었다.
투란이 흥미를 느낀 돌단검을 대충 허리춤에 꽂으며 두바크가 바라보는 등 뒤를 향해 돌아보니, 라펜과 마켈은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슬금슬금 투란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 대신이란 듯이 서너 명이 투란의 뒤편으로 다가와 둘러서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투란이 갸웃하며 누구냐고 물으려는 찰나, 그 말을 막듯이 그들 사이에서 빠른 말이 오간다.
“야아, 카엘이라고 했던가?”
“아니, 투란이라고 했을 거요!”
“뭐, 애송이가 고르는 가명이 늘 그렇지!”
“이름이 뭐가 중요해?”
“맞아,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우리 사이에 빚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어?”
“마침 만났으니…….”
“빚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애송이! 빚이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수밖에 없잖아?”
“그럼, 그럼!”
투란은 두바크가 기댄 벽에 좀 더 바싹 붙으면서 동전을 발아래로, 엉덩이 아래로 쓸어 넣으며 나름대로 대비하는 기척을 느꼈다. 더불어 라펜과 마켈은 거리를 좀 더 둔 채로, 표정은 말썽을 피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눈가에는 살짝 재미있어 죽겠다는 웃음을 띤 꼴도 확인했다.
―뭐냐, 너 이런 인간들에게 빚을 진 적이라도 있어?
드라고니아가 이들이 쏟아 낸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했다는 듯이 묻기도 하잖나!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어디 도망 못 가게 둘러싼 듯한 이들을 눈동자만으로 둘러봤고, 나직하니 속삭이는 소리를 낸다.
“그렇지, 빚은 확실히 주고받아야지.”
둘러싼 이들 중 앞장선 한 명이 귀를 쫑긋하면서 들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껄껄, 그래도 애송이가 뭘 알긴 아…….”
이는 일이 잘 풀려서 좋다는 듯이 떠드는 말이었는데, 돌연 투란이 큰소리로 싹둑 자른다.
“내가 받고, 너넨 줘야 할 빚! 이제 깔끔하게 정리 좀 해 볼까!”
“……는? 뭐?”
퍽!
앞장서서 떠들던 이의 얼굴에 투란의 주먹이 꽂혔다.
얼굴이 출렁이며 옆으로 돌았고, 거기에 다시 주먹이 두어 번 꽂혔다.
투란은 확실하게 그 배도 걷어차서 뒤로 기울어지던 몸을 앞으로 접혀 엎어지게 했다. 그다음에 당황해하는 그 일행을 보며 말한다.
“구경만 할 거야?”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는 듯한 움직임이 겨우 그 일행에게서 터져 나온다.
“이, 이 새끼가!”
“죽여!”
단도, 단검을 꺼내며 팔뚝에 찬 작은 버클 타입의 방패까지 들이밀면서 한꺼번에 투란을 향해 달려드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서슴없이 마주 외치면서 대응하니…….
“빚 갚기 싫어서 사람을 죽이려고 들어? 이런 못된 것들!”
단도, 단검을 쥔 손목을 너클 블레이드와 팜 블레이드가 쓱쓱 그어 버렸고 발길질과 주먹질이 난타를 이어 갔다.
요란한 상황은 금세 정리되었다.
칼을 쥐었던 손목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채로, 빚에 대해 떠들던 일행이 모두 널브러진 몰골을 투란이 내려다보면서 신음 소리를 내거나 아직 정신이 든 자를 찾아 뒤통수를 한 대씩 더 갈기는 것이 일방적인 싸움의 마무리였다.
하지만 그다음, 투란은 곧 이들의 품을 뒤졌고 작은 천 조각이나 수건을 찾아내서 출혈 중인 손목을 감아 줬다. 이를 보던 두바크가 겨우 한숨 돌린 표정으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넌지시 물어 온다.
“자네…… 오러 윌더였어?”
“음? 오러를 좀 쓰기는 해요. 딱히 오러 윌더까지는 아니지만.”
투란의 대답에 두바크는 퍼뜩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어린 애송이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오러 마크를 품었을 것이라고, 납득하던 두바크가 금세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 되어 투란에게 다시 묻는다.
“어, 뭐 하는 건가?”
출혈로 사망하는 것을 막아 주는 모습이 나름대로 시비 걸고 강도 짓 하려던 녀석들을 배려하는가 싶었는데, 지금 투란은 그들을 다시 뒤져서 돈주머니를 빼내고 있잖은가!
“뭐 하기는요, 빚 받는 중이잖아요. 못 들었어요? 얘네랑 나랑, 빚이 있어요. 내가 받고, 얘네가 줄 빚이죠. 그걸 주기 싫어서 못된 칼부림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깨끗하게 지금 받아 가야죠. 그렇잖아요?”
투란의 대답에 두바크가 어이없고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이렇게 되면, 생각 없이 이 험한 엘데인의 장터에서 돈주머니를 꺼낸 투란의 행동은 완전히 이런 녀석들을 꼬이게 하려는 미끼 짓이 아닌가!
물정 모르는 애송이를 골라 시비 걸면서 주변 구경꾼에게는 뭔가 아는 사이이고 사연이 있겠지 싶은 인상을 주면서 대놓고 강도질하는 패거리를 두들겨 패고 강탈을 하다니…… 투란이 훨씬 더 악랄한 강도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생명을 뺏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조금 착해 보이는 면이 있기는 한가……?
두바크는 ‘대체 얘 뭐야!’라는 눈길을 멀찍이 구경하는 라펜과 마켈 쪽을 향해 보냈다. 둘은 아까 키득거리면서 구경했고,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은 못 한 것처럼 머쓱하고 민망한 모습이었다. 둘은 투란이 얌전히 당하지 않겠거니 하며, 살짝 장난처럼 물러서서 어쩌나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더 황당한 상황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딱 두바크처럼 놀란 듯!
이런 상황을 잠깐 구경하는가 싶은 이들이 주변에 좀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오가는 주먹질과 난무하는 고성(高聲) 탓인지 금방 흥미를 잃는 듯했다. 아무래도 좀 떨어진 탓에 뭔 일인가 제대로 듣지는 못한 듯했다.
투란은 이런 주변의 정황 따위는 아랑곳없이 세심하게 뒤졌고, 돈주머니뿐이 아니라 허리에 차고 있던 배낭과 단검, 단도까지 칼집째로 걷어 챙겼다. 그다음에 허리띠라든가 바지, 신고 있는 가죽 장화를 자신의 것과 이모저모로 비교하는 척하면서 살짝 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내 거가 더 좋은가.”
그러고 나서 투란은 쓰러진 일행을 두바크가 앉은 옆쪽, 건물의 모서리 한구석에 모두 포개 쌓아 버렸다.
빼앗은 배낭을 두툼하게 채우고 어깨에 걸면서 투란은 두바크에게 한마디 하고 돌아선다.
“어, 그럼 많이 파세요!”
라펜과 마켈이 맹하니 선 곁으로 다가가며 투란의 입은 조금 짓궂고 험한 소리를 거침없이 흘려 내기도 했다.
“구경만 하다니! 재밌었어요?”
“어, 어…….”
“나중에 탈 날 일은 생각 안 하냐?”
라펜이 맹한 채로 맹한 소리를, 마켈은 조금 정신이 든 것처럼 염려하는 말을 했다. 투란은 싱긋 웃으면서 대꾸한다.
“탈 날 곳에서 저럴 리는 없었겠죠? 믿어 봐야죠!”
“아, 그건 그렇지.”
키득거리면서 라펜이 고개를 끄덕였고, 마켈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 우리도 어디 가서 자리 깔고 팔아 볼까요?”
투란이 빼앗은 단검, 단도를 쑤셔 넣은 빼앗은 배낭을 슬쩍 들어 올리면서 히죽거리는 소리를 흘렸다. 라펜이 ‘그건 아니지!’라는 듯 고개를 저었고, 마켈은 두바크 쪽을 흘깃하면서 말한다.
“확실히 뒤탈은 없나 보네.”
투란과 라펜이 그 눈길을 따라가 보니, 어느새 두바크가 자신의 발을 포개진 녀석들의 발과 대보는 중이었다. 발 크기를 재는 모습인데, 두바크의 장화는 포개진 일행의 누구랑 비교해도 훨씬 낡았다. 그런 두바크를 보며 주변에서 슬슬 다가서는 이들 또한 차림새가 많이 낡은 이들이었다.
“모르는 일이니까, 얼른 가죠.”
투란이 잽싸게 말했다.
라펜도 얼른 말한다.
“험한 동네야, 여긴. 얼른 가자.”
마켈도 고개를 싹 돌리면서 말한다.
“장터의 행운을 찾기로 했잖아. 눈 부릅뜨고 잘 살펴보라고. 진짜 돌바크를 한번 봐야잖겠어?”
그래서 투란은 어느 날 한가한 오후인 엘데인의 장터를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