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
“제, 젠장…….”
아침 햇살 아래에서 투란은 겨우 열린 입으로 짜증과 투덜거림부터 토해 내고 말았다. 결국 밤새 은빛 불꽃에 시달렸고, 편히 쉬는 순간 따위는 없어 두 눈 부릅뜨고 버텨야 했다.
아주 잠깐은 뭔가 익숙해졌으니 좀 더 쉽게 버틸 수 있잖을까 했지만, 달이 더욱 둥글게 차오르는 광경은 투란에게 은빛 불길의 형상을 더욱 맹렬하게 보여 주고 느끼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침과 함께 피로가 몰아닥쳤다.
‘지금 자면 안 되는데…… 자느라고 잊어버리면 안 돼. 생각을…….’
쿠울, 쿨.
눈이 감겼고, 투란은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시 눈을 뜬 순간, 투란이 본 것은 하늘에 도도하게 떠 있는 태양, 어디로도 기울어지는 곳이 없이 똑바로 하늘 한복판에 자리 잡고 햇살을 뿌리는 광휘였다.
‘설마…… 하루 더 지난 다음 날이거나, 이런 건 아니겠지?’
온몸의 개운함, 푹 자고 일어난 덕분에 느껴지는 상쾌함 속에서 조금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투란은 이 불안함이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다.
‘진짜 잤어? 아무 일 없이 잤어!’
이런 깊은 잠의 느낌,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기분은 샤오콴 마을에서 이웃집에 모아 뒀던 건초 더미에 누웠다 일어났을 때의 기분이랑 거의 똑같았다. 시간이 사라진 듯한 깊은 잠 말이다.
그리고 하늘을 물들인 석양……은 아니었다.
투란은 해님이 하늘 꼭대기에 떠 있는 시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기다리기 무서운 밤은 아직 멀었다.
‘아, 밤이 오는 게 무섭다니! 내가 토란 아저씨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니!’
은빛 불길로 물든 하늘을 다시 보는 것을 끔찍해하는 틈새로 투란은 이웃집에 살았던 몬스터 헌터, 토란을 떠올렸다.
“흥, 난 토란이다! 투란이 아냐!”
흔한 이름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던 옆집 아저씨 토란, 그러나 사실은 그 역시도 투란이었다. 흔한 이름을 달고 살다가 몬스터 헌터가 되면서 이름을 바꿨을 뿐이다.
처음에는 전혀 투란과 닮지 않은 이름을 쓰려 했지만, 토란은 그 새로운 이름에 적응하지 못했다. 누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투란과 닮은 하지만 투란은 아닌 이름 토란이었다. 그나마 반 마디가 비슷하기에 대답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옆집 아저씨는 어린 시절의 이름 투란을 버리고 토란이 되었다 했다.
그런 아저씨 토란의 부인, 옆집 아줌마의 이름은 야란이었다. 아란이란 흔한 이름으로 자란 그 아줌마 역시 이름을 바꾸려 했고, 토란처럼 바꾼 이름에 적응을 못 해서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야란이란 이름을 쓰게 되었다.
이 묘하게 닮은 사정으로 인해 둘은 가까워졌고, 함께 사고를 치고 샤오콴 마을로 도망쳐 왔다! 둘은 자기 아이에게 귀한 이름을 붙이겠다고 작정해서, 딸에게 ‘티아라’라는 이름을 붙여 놨다. 물론 부모의 의도랑 다르게 그 이름은 놀림을 받았다.
“티아라? 그럼 오빠는 크라운이냐? 오빠가 없어? 남자 동생은? 그 애는 분명히 크라운일걸!
토란과 야란, 부부가 이 소리를 들으면 먼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자기네는 뻔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샤오덴 할배가 넌지시 흘린 말에 따르면, 둘은 태어난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정말 크라운이란 이름을 붙이려 했던 모양이다. 티아라, 크라운, 모두 왕의 보관(寶冠)을 일컫는 말이라 했다.
어쨌든 뭔가 죽이 잘 맞는 부부였고, 사이가 좋았다.
가끔 토란이 해가 저물 무렵 집에서 나오려 하는 묘한 꼴을 보이는 것만 아니라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밤이 무섭다고, 밤의 집은 무섭다고 했는데…… 그게 자랑인지 엄살인지…….’
투란은 바위 위에서 뒤척이며 쏟아져 내리는 햇살 아래에서 추억을 뒤적였다.
그 부부의 딸은 투란을 보면 쪼르르 달려와 갑자기 자기 윗옷을 당겨 보이며 외쳐 대고는 했다.
“봐, 내 꼭지! 봤으니까, 돈 내놔!”
딸이 그런 소리 하는 꼴을 보면 야란 아줌마는 바로 딸의 뒷덜미를 잡고 집으로 질질 끌고 들어가서 반나절 정도 잔소리를 하고는 했다. 그런다고 그 딸, 티아라가 하는 짓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며칠간 조용해지기는 했다.
‘지금쯤 풀을 잔뜩 모아다 말릴 때인가?’
투란은 햇빛이 나긋하면서도 강한 것을 느끼며 더듬어 봤다.
야란 아줌마는 연금술을 조금 아는 약제사였다.
그래서 온갖 풀을 다 뜯어다가 늘어놓고 말렸는데, 그게 깔고 누우면 꽤나 푹신해서 샤오콴 마을 애들은 종종 그 위에서 뒹굴……다가 걸려서 등짝이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얻어맞고는 했다!
생각만 해도 등짝이 슬쩍 따끔거리는 듯하잖은가!
‘응?’
추억과 현재, 그 사이에 누워 꼼지락거리던 투란은 발딱 일어났다.
등껍질이 어딘가 붙었다가 억지로 떨어지는 듯이 따끔거렸다.
돌아서 바위를 보니, 어느새 축축한 늪의 물기가 싹 빠지고 바위는 햇살 아래 달궈져 후끈대는 중이었다. 넝쿨의 껍질이 살짝 말라 벗겨질 정도로!
“하아…….”
투란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나른한 기분이 좋아서 늘어져 쉬다 보니, 잠깐 추억을 더듬는다는 것이 지나치게 오래 뒹군 모양이었다. 여기서 이러고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꾸륵, 꾸우우우우!
투란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일어나서 한숨 돌리는 순간에 울어 대는 저놈은 뭔가?
꾸르르르르르, 꾸우우!
한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의 울음이 순식간에 그늘진 숲 속에서 터져 나왔다. 늪가이지만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서 무슨 방벽처럼 서 있는 짙은 그늘의 숲, 거기서 깜깜한 밤에 켜진 등불 같은 빛들이 껌벅대며 울고 있었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고 그 빛들을 쳐다봤고, 자신이 무엇이랑 눈길을 마주치고 있는지 알았다.
‘날도마뱀!’
마수이지만 너무 자주 마물화해서 그냥 몬스터로 취급한다는 녀석인데, 무리로 몰려다니는 일은 없다는 것들이 한가득 숲의 그늘 속에서, 나무에 달라붙은 채로 그를 향해 울어 대고 있었다.
‘덤빌 낌새가 없네?’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좀 더 집중해서 그늘 속을 쳐다봤다.
날도마뱀, 네 눈깔이랑 다르게 아예 눈알이 박혀야 할 자리에 반짝이는 껍질이 점점이 흩어진 채로 눈을 대신하는 녀석이었다. 가끔 뒷발로 서서 앞발을 손처럼 쓰는 모습도 보여 줬고, 그럴 때는 겨드랑이 자리에서 넓은 가죽의 막을 펼쳐 날개처럼 쓰기도 했다. 그래서 녀석들의 이름이 날도마뱀인 것이다.
파락, 파라락!
갑작스럽게 한 무리가 일제히 가죽 막을 펼쳤다.
겨드랑이를 채우고, 앞발까지 이어진 가죽의 막은 허리와 허벅지 언저리까지 내려가는 듯했고 곧 날개처럼 펄럭였다.
“어?”
그다음 보인 광경이 투란을 놀라게 했다.
날개 같은 피막이 붙어 있고 날개처럼 팔락대기는 하지만, 날도마뱀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뛰어내릴 때나 그것을 펼친다. 그런 모습을 가끔 보기도 했다. 날갯짓을 한다고 정말 새처럼 솟아올라 나는 일은 없다는 것을 투란은 알고 있었다.
한데 이놈들은 날고 있다!
무리 짓지도 않는다는 놈들이 무리 지은 채로, 날갯짓을 해도 날지 못한다는 놈들이 날고 있었다.
마치 고요한 물가의 새 떼가 갑자기 뭔가 놀라 날아가듯, 투란의 머리 위를 넘어 와르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가끔 늪을 향해 툭툭 똥 덩이도 떨구면서.
잠깐 멍하니 있다가 날도마뱀 떼가 사라진 꼴을 보며 투란은 뒤늦게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곳은 너무 이상하다!
‘혼자 싸돌아다니는 놈들이 떼를 짓는 곳이라니, 게다가 저놈들…… 숲에 숨어 있었지? 저 캄캄한 곳에…….’
투란의 눈길이 숲을 향했다.
온몸을 나른하게 해 주는 햇살이 가득한 한낮인데도 숲은 음습한 느낌이 잔뜩 배어 나오는 그늘을 어둠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날도마뱀의 눈알을 대신한다는 껍질이 빛을 뿜어야 겨우 그 나무 틈새가 보일 정도로 짙은 컴컴함이었다.
‘햇빛 아래에서 저 정도라면…….’
투란은 마음을 굳혔다.
늪에 몸을 던지고, 숲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저 정도 그늘이라면, 달빛도 막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로.
마물화가 되지 않은 날도마뱀이 버틸 수 있는 곳이라면, 지금 자신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짙은 숲의 그늘에 몸을 담그고, 발 딛기도 어렵게 촘촘히 나무가 박혀 있는 숲을 힘겹게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그랑츄의 우람한 발로 나뭇등걸과 드러난 뿌리를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문 채로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란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밤인지 낮인지 구분도 안 가는 짙은 숲의 그늘.
투란은 분명히 그렇게 느끼면서 그랑츄의 바위 같은 살갗과 두툼한 발에 의지한 채로 그 안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늘진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낮은 낮이요, 밤은 밤이라는 듯, 진짜 밤이 오자 금방 알 수 있었다.
한 점도 스며들지 않는 달빛이지만 이미 왼팔은 붉은 털을 휘날리면서 검은 손톱 갈고리를 뿜어내 나무를 긁어 대고, 그런 왼팔의 발작과 함께 선명하게 은빛 불꽃의 열기가 팔을 통해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밤하늘을 태우는 듯한 은빛 불길은 이깟 숲의 그늘 따위로는 그 열기를 전혀 막지 못한다고 외치듯이 투란에게 그 영향력을 뿜어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 덜한 건가?’
투란은 자신이 더 잘 버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지난밤에 그 전 밤보다 더 잘 버틴 것처럼.
두 개의 심장이 익숙해진 것처럼 은빛의 열기에 대항하여 세차게 두근거렸다.
‘직접 달빛을 받지 않는 것이 조금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건가?’
약간의 여유 속에 투란은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
달빛을 직접 쏘였던 지난밤의 끔찍함이 기억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그보다는 괜찮으니까.
하지만 투란은 발걸음은 멈춰야 했다.
버틸 수는 있지만, 왼팔이 마구 휘둘러지면서 나무를 찢고 부러뜨리는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당장 장애물을 치우고 달빛 아래로 나가야 한다는 듯이.
‘이러지는 않았잖아?’
이 또한 지난밤과 다른 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곤혹스러웠다.
오른손을 변화시켜 왼손을 꽉 잡아 누르는데, 이상하게 왼손이 더 사납게 제멋대로 날뛰는 느낌이라니! 자기 몸에 달린 녀석이 누군가의 부름에 호응해서 날뛰고 싶어 하는 꼴이잖은가?
‘누군가…… 불러?’
투란은 ‘그럴 리가!’ 하며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이상한 생각은 동시에 붉은 늑대 머리를 떠오르게 했다.
저편 어디선가 맹렬하게 날뛰면서 잃어버린 팔을 부르는 웨어울프의 형상이 뇌리에 쑤욱 들어와 박힌 것이다.
‘진짜 부르는 건가?’
꿈틀거리는 늑대의 손과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투란은 당혹스러웠다.
잘려 나간 팔뚝 따위 상관없다는 듯이 가볍게 숲을 밟으며 사라진 놈이 지금 와서 그 팔을 부른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잖은가!
하지만 투란이 뭘 느끼든 상관없다는 듯, 왼팔은 그런 늑대의 충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엉뚱하게도 달래듯이 마음으로 속삭여야 했다.
‘난 그렇게 못 가거든. 늑대 앞발 하나로 내가 어떻…… 크에!’
순간, 오른손이 왼편의 늑대 팔뚝에서 튕겼다.
은빛의 불꽃을 휘황하게 뿜어내는 듯, 왼팔이 힘줄을 부풀린 탓이었다. 이전보다 몇 배로 세진 괴력이 붉은 털을 휘날리며 손을 앞으로 뻗게 했고, 나무를 움켜쥐고 위아래로 흔들게 했다.
“으아아아아!”
투란은 몸이 솟구쳐 오르는 상황에 놀라 일단 비명부터 질러야 했다. 투란의 당황에 아랑곳없이 늑대의 팔은 왼쪽 어깨를 뿌리 삼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투란은 숲의 나무가 융단처럼 깔린 걸로 보이는 정상으로 튀어 올랐다.
휘황한 은빛 불꽃이 가득 하늘을 메우며 화끈하게 쏟아지는 느낌은, 고통이 아니라 이상한 환희였다! 그리고 투란은 단지 왼손, 늑대의 팔 하나만으로 숲의 정상을 디디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이!’
늑대의 한 팔, 저 붉은 털의 웨어울프가 놓고 간 팔은 확실하게 앞발 하나만으로 나무 위를 치달릴 수 있다고 투란에게 대답하고 있잖은가! 그러나 다시 좀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고 싶다고 던진 한마디에는 대답이 없었다. 마치 팔뚝 하나라서 대답을 할 여유가 없다는 듯!
그렇게 투란은 은빛 불꽃이 넘실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끌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