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89)
툭탁거리며 시작되는 듯했던 싸움은 금방 멈춰졌다.
베즐이 팀 멤버들에게 붙들려 당겨졌고, 파몬티는 가몬티가 뒷덜미를 잡아 끌어당긴 덕분이었다. 그리고 저쪽에서 더욱 크고 시끄러운 소리가 와장창 하면서 터진 탓도 있었다.
“야, 이 새……!”
“미친년이!”
투란은 그 목소리 중 살짝 날카롭고 가냘픈 쪽이 쟌이란 것을 금세 느꼈고, 덕분에 목을 움츠린 채로 베즐을 말리는 척하며 그 팀 멤버들 주변을 돌며 저쪽의 시야에서 몸을 감췄다.
라펜과 마켈은 구경만 하겠다는 듯이 멍한 척하고 서 있으려 했지만, 저쪽에서 뭔가 쏜살같이 날아와 기둥을 손가락 굵기로 파고드는가 하면 곧이어 칼날붙이가 엉기는 소리까지 울리자 어쩔 수 없이 투란처럼 베즐을 말리는 시늉을 하면서 일행 쪽에 붙어 몸을 가려야 했다.
테란은 베즐을 말리는 와중에 뭐가 주변으로 씽씽 나는 상황에 목이 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씨— 이게 뭐야! 그만 좀 해! 눈먼 볼트에 맞고 뒈지게 생겼잖아!”
파몬티가 이 소리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듯, 재빨리 뒤로 드러눕고 있었다. 뭐가 날든, 일단 엎어지고 누우면 안전하다 여기는 모습이었다. 상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베즐 또한 일단 쪼그리고 앉으면서 ‘뭐야, 쟤네 뭐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주먹질을 하더라도 최소한 치명상은 피할 작정을 하고 시작했는데, 저쪽은 주변을 전혀 돌보지 않고 대놓고 칼질에다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을 마구 쏴 대고 있잖은가!
그 와중에 라펜이 마켈에게 묻는 소리도 일행의 귀를 쫑긋하게 했다.
“야, 보여? 난 전혀 안 보이는데?”
“안 보여. 그냥 뭔가 날아오는 것 같은데…… 타격은 분명히 있어.”
기둥을 파낸 것이 뭔지, 기둥에 뭐가 꽂힌 것 같지만 남은 것이 없었다.
덕분에 일행은 더욱 몸을 낮추고, 저쪽의 소동에 눌린 것처럼 얌전히 구경만 하는 꼴이 되었고…….
‘쟌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투란은 난데없이 마탄까지 뿌려 대는 쟌의 행동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별다른 일 없이 누군가랑 얘기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욕을 하면서 저리 심각하게 싸움이라니!
―이해는 안 된다만…… 일단 지켜본 바로는, 쟌의 신체 발육 상태에 대해 말이 나오는 순간에 쟌이 욕을 했고 상대가 맞받아쳤다. 그다음에…… 쟌이 상대를 더욱 모욕했고, 주먹질하려는 상대의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지. 그 시점에서 이쪽에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쟌에게 차인 쪽 일행이 칼을 빼 들었고, 쟌이 반격하면서 지금 상황이 된 거야.
가만히 듣고 있다가 투란은 갸웃해서 물어야 했다.
‘신체 발육……?’
대체 그게 뭔데 다투기 시작했다는 것인가?
―그러니까 대체 인간 여성의 유방(乳房) 발육 상태가 왜 저런 싸움의 원인이 되는 거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만…….
‘어? 그런 얘기냐? 그건 사람에 따라 좀 민감한 문제라던데?’
―뭐? 그럼 싸울 수 있다는 거야?
‘음, 아마도?’
투란은 샤오콴 마을에서의 일을 떠올리면서 엉거주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용병 여인…… 마을 아이들에게 누나라 불리던 이의 가슴을 놓고 음흉한 이야기를 하던 아저씨들은 걸리면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투란에게 그 가슴 봤냐고 묻다가 걸려서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눈탱이가 퍼렇게 처맞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투란도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여자라고 놀려 먹으려다가 걸리면 뒈지게 맞는 수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될 뿐이었다.
―투란, 너 좀 이상해! 쟌의 연령이나 너의 연령이나 비슷한데, 어째서 저 심리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냐? 너도 일단 인간이잖아!
‘응? 아, 그건 아마…… 보석 탓이겠지. 몬스터 로드가 되기 전에는 할 일 없으면 늘 보석이 마음속에 어른거렸거든. 그래서 내가 성장이 좀 늦는 경우라던데? 뭐, 열여섯 넘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괜찮아질 틈이 없었나?.’
저쪽 상황을 살피면서 일행 사이에 섞여 숨은 채로 투란이 드라고니아와 이러쿵저러쿵 떠들 때, 저쪽에서 더욱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나온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것들아!”
루비의 목소리였다.
그 체격에 어울리는 우람하고 우렁찬 목소리는 마치 투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고함치는 것처럼 울렸다. 투란이 설마 나만 이렇게 듣나 해서 주변을 훑어보니 다들 ‘뭔 목소리가!’라고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쪽에서도 놀라 질린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었는데…….
“하, 할배는 빠져! 이 미친년이 시작…….”
“뭐어엇! 할배! 할멈도 아니고 할배애애! 이 쉐끼가아아!”
쟌의 몇 배나 격분한 루비의 외침이었고, 폭음이 이어진다.
퍼어엉!
제대로 불바람이 불었다.
당장 입술을 마르게 했고, 불티가 어딘가에 들러붙으려는 듯이 휘날렸다.
“이거— 위험하잖아!”
투란은 라펜이 화들짝 놀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동시에 주변에서 휘날리는 불티를 잡으려는 다급한 분위기가 좌악 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야!”
“어떤 미친……!”
“야, 불붙지 않게 해!”
“젠장, 물이 마르고 있어!”
“누가 좀 말려!”
“길드 앞에 웬 미친 마법사야!”
어디선가 날아드는 화살이야 날 겨냥한 것이 아니면 그러려니 하고 적당히 몸을 피하던 이들이었지만, 이렇게 광범위하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마법의 바람…… 불티를 머금은 열풍(熱風)에는 격분하는 듯했다.
이 순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깔모자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살짝 투란의 귓가에 스며 왔다.
“어이, 상아탑 마법사. 세마인! 이거 수습해야겠는데? 내려오셔야겠어.”
한데 파몬티가 ‘허억! 유령! 그때 그 유령 목소리야!’라고 놀라고 있잖은가?
덩달아 파몬티를 따라온 듯했던 작자들도 ‘끄어어!’라는 괴상한 신음을 흘리면서 당황해하고…… 가몬티는 고깔모자를 슬쩍 허리춤에 구겨 넣으면서 시침 떼고 있다?
‘저건 또 뭐야?’
투란은 황당한 기분이었다.
파몬티는, 그 일행은 설마 가몬티가 지닌 고깔모자가 말하는 줄 몰랐나?
유령이니 뭐니 하는 꼴이 예전에 영문도 모르고 골탕이라도 먹은 듯하다?
새삼 그 광경에 투란이 호기심을 품은 사이, 불바람을 찍어 누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짓이야! 엘데인에 화재(火災)라도 터뜨릴 생각인가! 당장 멈추지 못해!”
세마인이었다.
단순히 외친 것이 아니었고, 강한 마력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 마력은 곧바로 루비의 불바람 사이로 스며들었고, 불티를 잡으면서 짓누르는 듯했다.
투란은 반사적으로 세마인과 루비의 마력, 두 가지 마력이 힘겨루기를 하려는가 싶어서 흥미롭게 지켜보려는데…… 둘의 마력은 서로를 가늠하면서 점차 가라앉듯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 안 싸우나?’
―바보냐? 루비는 정말로 불을 지르려는 게 아니었잖아. 그저 겁주려는 거였고, 세마인도 진짜 위협을 느껴서 마력을 펼친 게 아니야. 그냥 상황을 끝내자고 세마인이 한마디 한 셈이고, 루비도 적당히 손 뗄 기회를 얻은 거다.
‘쳇.’
사라지는 불티를 보면서, 마법사 간의 암묵적인 대화의 결과가 되어 가는 상황을 보면서 투란은 살짝 아쉬워했다.
“애도 아니고 대체 무슨 짓인가!”
세마인은 루비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루비도 이에 반발하며 외치니…….
“이것들이 날 늙은이 취급한 것도 모자라서 내 성별까지 바꿨다고! 대체 내가 어딜 봐서 할멈급으로 보이냐고!”
“할멈……?”
세마인은 거의 나올 뻔한 ‘할배가 아니고?’란 소리를 잘 억눌러 말한 듯했다.
가라앉으며 사그라들지만 여전히 요동치는 두터운 마력에 의해 둘의 목소리는 묘하게 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봐아아! 상아탑에서는 남녀 구별도 안 가르치나!”
루비는 세마인이 할 뻔한 말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따졌고…….
“그러니까 저 친구들이 할멈이라 불러서 화났다는 건가?”
세마인은 시침 떼고 물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뭔가 대단한 마법사 둘이 엄청나게 시답지 않은 말을 주고받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투란은 둘이 펼쳤다 거두는 마력의 성질을 조금 더 짙게 감지했고…….
‘이 마력…… 둘 다 좀 이상하잖아? 어째 그냥 막 부풀린 듯한데?’
―그걸 이제 알았냐? 마력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어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도록 조절된 거다. 말하자면 빈 물통이나 수레를 요란하게 울리는 경우랑 같지. 마법을 발현하기에는 너무나 옅은 대신에 넓은 범위로 전개해서 자신의 감지 능력만 높이는 거야. 세련된 마력 제어라고 할 수 있고, 마법사 간에 서로를 가늠하는 방법이기도 하지. 어쨌든 상황은 이걸로 진정된…….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를 울릴 때, 저쪽에서 루비가 울컥한 듯한 외침을 쩌렁쩌렁 울리게 터뜨리고 있었다.
“이 못된 마법사! 할멈이라고 불렀어도 짜증 나는데 할배라고 불렀다고! 내 입으로 들으니까 속이 시원하냐! 하여간 상아탑의 성질 못된 것들은!”
세마인은 이런 루비를 더 상대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벨라딘, 자네 파티 아닌가? 저 상태라면 우리 캐러반에 함께하기 어렵잖나? 어떻게 좀 해 보라고!”
“내가 애냐! 왜 벨한테 애 돌보라는 것처럼……!”
루비는 다시 반발했지만, 벨라딘이 바로 곁에서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금방 조용해지고 말았다. 멀리 있는 이들에게는 뭔 소리인가 전혀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투란은 들었다.
“일 망치면 루비가 돈 내는 거죠? 전부!”
가시 돋친 말투였고, 루비를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아, 루비도 돈 무서워하는구나.’
투란은 어이없으면서도 산뜩한 기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황금을 잔뜩 캐다 놨으니까.
이러쿵저러쿵 그 뒤로 저쪽에서 뭐라 나지막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사이에 열풍에 휩쓸렸던 이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마법사란 것들은!”
“성질나면 주먹을 쓰라고, 주먹을!”
“왜 엉뚱한 사람까지 휘말리는 마법이냐고…….”
“누가 마법사가 냉정하고 머리 좋댔어? 걸리면 죽인다!”
“아, 저 할…… 마법사도 캐러반에 끼는 거야? 젠장.”
“알드바인까지 무사히 가려나.”
그런저런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투란은 일단 바로 눈앞의 일을 지켜보는 데 집중했다.
저쪽에서 하도 크게 일을 벌여 놓은 탓인가, 베즐은 주먹질하던 일을 거의 잊은 것처럼 주욱 팀 멤버들과 일행을 둘러봤고 가몬티나 파몬티 쪽은 잠깐 제쳐 놓는 듯했다. 그리고 베즐 입에서 나온 묻는 소리…….
“슬리피는? 얘 왜 안 보여?”
테란이 어정쩡하니 그 눈길을 회피하듯이 대답한다.
“계속 말아 둘 수도 없잖아? 배고프다고 뭐 먹으러 간다기에…….”
“언제 갔는데?”
베즐의 추궁이 바로 이어졌다.
“음, 너네 가고 나서 두어 시간 있다가였나?”
테란은 계속 회피하듯이 어정쩡하니 대꾸했고, 다른 팀 멤버들은 몰라라 하는 표정으로 아예 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데 아직까지 안 왔다고? 이거 어디서 사고 치고 있는 거 아냐?”
베즐은 한숨을 쉬면서 짜증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사이에 슬쩍 한구석으로 물러서 앉으며, 이 소동에 지쳤다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투란도 살짝 어이없어하는 중이었다.
‘슬리피, 홀랑 잊고 있었네?’
―딱히 신경 쓸 만한 일은 없었잖아. 너에게 영향을 끼칠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배당인가 때문에 결국은 돌아오지 않겠나?
‘어, 그야 그렇지.’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슬리피에게 나눠질 배당은 엘데인에서 하기로 했지만, 이런저런 상황으로 인해 알드바인으로 가서 나누기로 했다. 원래 계획을 바꾼 것은 역시 가룬과 아이들이 엮인 일 탓인 듯했고, 슬리피는 켈타 마을 어른들에게는 관심을 끊는다 했다.
하지만 여태 돌아오지 않는 꼴을 보니, 아직 그쪽에 뭔가 해결할 일이 남은 것처럼도 보이는데…….
“가몬티! 대체 그 꼬리는 뭐야? 왜 그런 꼬리를 달고 다니는 거야?”
베즐이 갑자기 잊을 뻔한 성질이 다시 뻗쳤다는 듯이 외치고 있었다.
가몬티가 느릿하니 일어서면서, 한 걸음 디뎌 파몬티의 배와 가슴을 밟고 넘어서면서 대답한다.
“정리된 꼬리야. 걱정 마. 파몬티는…… 상급 헌터의 위험한 사냥에는 절대로 끼지 않으니까 말이야. 걱정할 것 없어.”
베즐은 인상을 썼고, 파몬티는 밟힌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신음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새삼 의아했다.
‘따라오면 어쩌려고? 정말 이 캐러반…… 알드바인까지 별일 없으려나?’
―가는 길에 몬스터랑 만나면 바로 알겠지. 죽든가, 살든가.
드라고니아는 피식 웃는 듯한 말투로 가볍게, 여전히 투란의 뇌리에만 울리는 소리로 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