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0)
많은 이들이 함께 엮인 여로(旅路)는 준비부터 이리저리 복잡한 일들이 가득했다. 준비를 하면서 의견이 달라 충돌하는 일행이 있는가 하면, 떠나려 하다가 다른 일이 생겨서 관두는 이들도 있었고 언제 출발하느냐고 보채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모인 자리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있는 하면, 오랜만에 만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 풍경의 한구석에서 투란은 멀리서 벌어지는 그 소란을 흘깃거리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비교해 봤다.
우선은 가몬티와 파몬티, 파몬티를 따라온 일행은 어정쩡하니 굴다가 결국 파몬티를 끌고 가서 따로 움직이자는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가몬티를 따라 움직일 작정인 듯한 분위기였다. 마치 언젠가는 가몬티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
베즐은 그런 상황을 전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성문 앞에서 가몬티의 도움을 받을 일 때문인지 딱히 가몬티가 알드바인으로 가는 길을 함께한다는데 반대하지도 않았다. 파티나 팀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는 길이 같을 뿐이라고 가몬티가 먼저 선을 그어 놓은 때문인 듯…… 한편으로는 이리저리 마법사 세마인에게 휘둘려 바쁜 탓에 거의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듯도 했다.
슬리피는 엘데인의 성문이 열리고 세마인과 기병이 출발할 무렵에야 돌아왔다.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이 잠이 모자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옷자락에 번져 있는 핏자국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험상궂은 그 모습에 베즐은 ‘뒤탈 있어?’라고 간단히 물었고 슬리피는 ‘없어.’라고 짧게 대꾸했다.
투란은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궁금했지만 슬리피의 행적을 따로 추적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돌아온 슬리피가 가룬과 애들에게 ‘이제 걱정할 일 없단다.’라고 했을 때, 어딘가 불길하면서도 어딘가 명확해진 상황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다른 쪽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잔뜩, 온갖 사연이 다 있는 듯했지만 몇 마디 말을 엿듣는 정도로는 전혀 무슨 이야기인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투란은 그저 가까운 쪽, 아는 이들의 사연에 집중해 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점차 부풀어 오른 듯한 캐러반의 인원이 거의 천 명 가까이 되면서 투란은 쟌과 벨라딘 일행의 눈길을 피하는 것이 수월해져서 다행이라 여길 수 있었다. 한편 투란에게는 이런 캐러반의 규모가 본격적으로 도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구경하느라 바빴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투란을 한참 지켜보다가 불쑥 묻는 말을 던진다.
―그렇게 신기하냐? 이 정도 숫자가 움직이는 걸 처음 보는 거는 아니잖아?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라 그래?
‘응? 몬스터? 아, 그야…… 그렇겠지?’
갸웃하다가 투란은 인정했다.
투란이 처음 보는 것, 낯설고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이 캐러반이 모두 인간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었다. 모두 말을 하고, 모두 각자의 장비를 갖추고…… 다들 기묘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
몬스터처럼 지켜보면서 알아내야 할 필요가 없이 묻는 것만으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비록 한 명씩 붙잡고 그걸 다 듣지는 못한다 해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온갖 벽으로 가려진 도시에서 와글와글 모여 사는 것과는 또 다른 기묘한 느낌이었다. 한꺼번에 길게 늘어진 채로 줄줄 움직이니까.
‘넌 이런 거 많이 봤어?’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드라코눔의 아칸이니까.
‘거기도 이렇게 모여서 캐러반 짜고 움직이고 그래?’
―캐러반 구경을 자주 했단 말이 아니고! 아, 젠장…… 나중에 이런 변경이 아니라 왕국을 둘러볼 일이 있다면 그때 저절로 알게 될 거다. 이 캐러반 정도는 왕국의 군단이 움직이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라고!
‘응? 군단? 아, 그러고 보니 군단도 몇천…… 아니다, 몇만 명씩 와와 하고 움직인다고 했지! 아하, 그렇구나. 경계도시니까 헌터가 와글거리는 거고, 왕국에 가면 군단이…… 평소에도 볼 수 있어?’
―좀 더 세상을 둘러보면 알 일이다. 서두르지 마.
‘잉? 대답하기 귀찮아서 피하냐! 쳇!’
무게 잡고 나온 대답 속에서 드라고니아의 한숨 같은 기척을 느끼고 투란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드라고니아는 말문을 닫았고 캐러반은 길게 늘어진 대열을 움직이면서 엘데인을 떠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라펜이 투란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투란, 너도 타! 기껏 베즐 리더님께서 캐러반에 어울리는 마차까지 구해 왔는데 안 타면 손해라고!”
“어? 다 같이 타는 거였어요? 짐 넣는 거 아니고?”
투란은 냉큼 라펜이 올라탄 마차 곁으로 다가갔다.
그저 거대한 상자의 앞뒤를 트인 채로 밑판에 바퀴만 붙여 놓은 듯한 마차였고 베즐은 팀 멤버들과 함께 지붕 위에 있었다. 가룬과 아이들, 슬리피는 마차 안이기는 한데 훤히 트인 모양이 딱히 안팎의 구분이 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투란이 앞을 보니 조금 빈약해 보이는 몇 마리 말이 마차를 당기면서 타박거리고 있었는데, 몇 명 더 타면 마차를 끌지 못할 듯이 빈약하다!
“이거 진짜 타도 돼요? 말이 너무 부실하잖아요?”
알드바인에서 세마인과 함께 온 기병들의 기마랑 비교하면, 뭔 어른과 애 정도의 차이가 나는 듯했다.
“나귀잖아! 당연히 체격은 부실하지! 그래도 힘 좋으니까 타도 된다고!”
지붕 위에서 베즐이 투란에게 으르렁거렸다.
베즐은 투란이 나귀와 말을 착각했다고 여기기보다는 마차를 끌 말을 못 구해서 나귀를 구해 왔다고 놀리는 말로 들은 모양이었다.
키득거리면서 투란은 라펜이 다리를 늘어뜨린 마차 뒤편으로 올라앉았다.
“와, 이러고 알드바인까지 주욱 가는 거예요? 편하네! 근데 진짜로 이렇게 느리게 가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느리지 않아. 가다 보면 금방 하이랜드를 가로지를걸. 생각보다 재밌다고, 이거…….”
라펜이 히힛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베즐이 지붕 위에서 아래로 머리를 떨구더니…….
“속 편한 소리 하네! 우린 중간에 계속 스카우트 경로를 확인한다고 했잖아! 사나흘에 한 번씩 합류할 거라고! 캐러반이랑 계속 같이 가는 거는…… 슬리피랑 애들뿐이야! 그러니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쉬고 있어. 오늘 늦게나 내일부터는 또 뛰어야 하니까.”
갑작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잖는가.
“에? 그런 거예요?”
투란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덜컹거리는 마차의 움직임에 따라 늘어뜨린 다리를 흔들었다. 라펜도 다리를 흔들대며 베즐을 올려다보고 말한다.
“스카우트 경로 따라가는 길이라며? 뭘 이제 와서 따로 움직여? 그냥 세마인 아저씨네…… 레쓰 대장에게 맡기고 편하게 가자!”
중간에 이리저리 계획이 계속 바뀐 것에 대해 불평하는 듯한 소리였다.
베즐이 거꾸로 늘어뜨리고 흔들거리는 머리임에도 구겨진 표정인 것을 훤히 드러내며 대답한다.
“그 레쓰 대장이 시킨 일이다! 누군 편히 가고 싶지 않냐고! 공역 중이니까 뭐라고 반발을 못 하겠어! 젠장, 치사한 세마인 아저씨! 엘데인에서 수성을 돕기만 하면 된다더니…… 하룻밤 지나 상황 바뀌니까 말을 바꿔요! 못됐어!”
투란이 키득거렸다.
하룻밤 사이, 검은 어둠이 엘데인을 감쌌다가 사라지는 순간에 몬스터로부터 엘데인을 지켜야 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러자마자 세마인은 그래서는 공역을 수행한 것으로 쳐줄 수가 없다고, 캐러반의 귀환 중에 스카우트 역할을 베즐에게…… 베즐 팀이 주축인 파티에 맡겨 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기병들을 이끄는 대장 레쓰가 엄청 눈을 부라렸고, 베즐은 하소연하고 떼를 썼지만 임무를 거부하지 못했다.
이 또한 출발 전에 베즐이 따로 마법사 세마인과 면담하면서 아옹다옹하던 일이었다.
라펜이 혀를 차면서 베즐을 향해 말한다.
“말재주가 없어요, 말재주가. 말 좀 잘하면 될 일을 왜 항상 앙앙거리는 소리부터 지르냐고. 그러니까 덤터기 썼지!”
“뭐? 시비 거냐!”
“에이, 파티 리더에게 시비는…… 그냥 그렇다고. 아, 그럼 이럴 때가 아니잖아? 야아, 자야겠다! 졸리지 않아도 자 둬야 힘겨운 스카우트 일을 하지! 야, 자리 좀!”
라펜은 실실 놀리는 말을 하려다가 베즐이 마차 안으로 뛰어들어 제대로 성질 부릴 낌새인 것을 보고는 재빨리 시침 떼고 드러누웠다. 그 꼴에 베즐도 짜증 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마차 지붕에 제대로 앉은 듯, 머리가 사라졌다.
투란은 라펜이 눕는 꼴을 보다가 문득 이미 마차 한구석에 팔짱 낀 채로 기대앉아 잠든 모습인 마켈을 봤다. 마치 슬리피를 흉내 내는 듯한데, 정작 슬리피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이 깨어서 마차 앞쪽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귀 몇 마리가 타박거리며 끄는 마차는 캐러반의 속도에 맞춰 느릿한 듯하면서도 착실하게 움직였고, 투란은 서서히 멀어져가는 엘데인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언제 다시 와 볼지 모르는 풍경을 마음에 담아 두듯…….
‘벨라딘이랑 쟌은 어디쯤에 있어?’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꽤 앞쪽이다. 기병들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채로 움직인다. 아무래도 루비 탓인 모양이야.
‘응? 루비? 여관 주인 할…… 아줌마? 왜?’
―마법사 세마인과 한바탕 했잖아. 덕분에 세마인이 루비의 마법을 나름대로 높이 평가한 모양이야. 급한 일이 있을 때 바로 곁에서 협력하도록 요청했어.
‘헤에…… 상아탑의 마법사가 대단하다고 하다니, 루비가 쇳덩이로 요리만 하는 게 아니었네?’
―열풍을 일으키던 그 마법, 제대로 쓰면 몬스터의 체내를 단숨에 재로 만들거나 녹아 흐르게 할 정도의 위력을 갖춘 거다. 얕보지 말라고.
‘우와, 대체 무슨 마법인데?’
―임플로전(Implosion) 계통이란 것만 확실하다. 그런 식으로 불의 힘을 머금은 바람을 다루는 것은 대부분 임플로전 계통이니까.
‘임플로전? 익스플로전 같은 거잖아?’
―터진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어! 이상한 방식으로 의미 바꾸지 마!
‘어쨌든…… 터지는데 뭐가 달라?’
투란은 마차 벽에 기댄 채로 물었다.
이런저런 마법에 대해 잔뜩 들어 봤지만, 뭔 플로전이라고 하면 일단 터진다는 것만 확실할 뿐이었다. 말머리가 달라 봐야 딱히 뭔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마음가짐에 새삼 짜증 난다는 듯이 대답한다.
―범위 확산형 마법과 개체 집중형 마법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거라고! 익스플로전은 폭쇄의 영역을 형성하고 그 안에 담긴 것은 골고루 모두 파괴하도록 터지는 거고, 임플로전은 격중당한 개체, 그 형체 안으로 폭쇄를 한정하는 거야!
‘루비라면 그냥 다 터뜨릴 것 같은데? 하나 터뜨려서 그 피와 살로 주변에 충격을 주는 마법 아니었을까?’
투란은 조금 더 파고들겠다는 듯, 루비가 성질낼 때 드러낸 마력의 성질을 떠올리면서 살짝 진지하게 말해 봤다.
―그런 느낌도 있긴 있었지…… 완전히 몰라라 한 거는 아니었구나?
‘어이, 이 캐러반이 이렇게 움직이게 된 것은 내가 하룻밤 열심히 고생한 결과라고! 나도 알 만큼 아는 몸이라니까!’
마음의 풍경을 향해 투란은 살짝 으스대 봤다.
덜그렁거리는 마차가 그런 투란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고, 드라고니아는 그냥 한숨을 쉬듯이 말한다.
―잠이나 자라. 하급 헌터 흉내 낼 거잖아. 휴식하는 것도 제대로 보여야지. 어차피 당장은 할 일 없잖아.
‘응, 그렇지. 근데…… 쟌이 얌전히 있기는 해?’
―별로 그럴 마음은 없어 보인다만…… 벨라딘이 꽤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어서 당장 일 저지를 분위기는 아니군. 그보다는 도적 길드의 여자, 이자닌이 바쁘게 캐러반을 둘러보는데? 그쪽은 신경 쓰지 않을 거냐?
‘모르는 척하자고. 저쪽도 날 신경 쓸 일이 없잖아? 쟌이랑 벨라딘, 루비만 조심하자고. 일단은 말이야.’
엘데인의 풍경이 사라져 갔고, 캐러반은 알드바인으로 이어진 하이랜드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조금 여유를 느끼면서 투란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차 바퀴가 고르지 못한 땅을 구르는 탓에 몸이 계속 흔들거렸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잠이 들 듯했다.
“싸울 준비 해라! 개떼랑 새떼다!”
하지만 베즐이 마차 지붕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외치는 소리는 투란만이 아니고 라펜과 마켈까지 함께 일어나게 했다.
“개떼는 매드독? 새떼는 뭐야?”
“그리핀? 하피? 아냐? 그럼 뭔데?”
투란은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면서 베즐이 바라보는 곳을 봤다.
지붕 위에 있던 베즐 팀, 활잡이 카엘과 칼잡이 카엘은 그대로 지붕 위에서 싸울 준비를 했고 테란을 비롯한 몇몇은 바로 마차를 끄는 몇 마리 나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엘데인과 멀어졌다는 증거처럼, 뭔가 날아오고 뭔가 달리고 있었다.
캐러반의 모두가 마차를 방벽처럼 세우고 전투태세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