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1)
Chapter 119. 하이랜드, 귀로에서
서늘한 고원(高原)의 바람이 구름을 낮게 몰고 지나갔다.
멀리 한쪽에는 맹수(猛獸)의 갈기가 대지(大地)에서 돋아난 듯한 산맥이 보였고, 그 반대편으로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을 휘몰고 있는 바람결에 쌓인 듯한 거대한 수림(樹林)이 아스라이 보였다.
그 중간의 구릉(丘陵)은 울퉁불퉁한 융단이 비스듬히 깔린 평원(平原)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평원을 굽어보는 구름은 아주 느릿하게 지나는 듯했다.
그 구름 아래에 은은히 타오르는 짐승, 괴물의 살 내음과 상처 입은 인간의 신음이 뒤엉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를 부정(否定)하며 싸운 몬스터와 인간의 전투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 흔적의 한 귀퉁이, 길게 늘어진 마차 방벽의 한 곳에서 베즐이 묻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야, 우리 다친 사람 있어?”
투란은 매캐하게 몰려오는 연기의 냄새를 손으로 휘저으면서, 대체 왜 이 상황에서 매운 연기 냄새를 맡아야 하는가 의아해하면서도 옆을 보고 묻는다.
“라펜, 다쳤어요? 마켈은?”
라펜이 성난 목소리로, 누구에게 화내는 건지 자기도 몰라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멀쩡해! 우린 멀쩡해!”
마켈이 바로 이 말을 받듯이 일해의 마차 안쪽을 보고 묻는다.
“어이, 너네 괜찮냐? 안으로 날아든 화살 쪼가리에 맞거나 하지 않았어?”
가룬과 아이들이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마차 뒤편에 고개를 떨구듯이 내미는데…….
“아닙니다.”
“안 다쳤어요.”
“저기 꽂혀 있어요!”
가룬은 떨었고, 두 아이는 멀쩡한 것을 자랑하면서도 마차 안으로 촉을 내밀고 꽂힌 화살 몇 개를 가리키며 고자질하듯이 외치고 있었다. 안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고개를 내미니 어딘가 좀 살 만해졌다고 느끼는 모습이었다.
마켈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베즐은 다시 팀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자잘한 상처라도 주의해! 이 개새끼들…… 작아도 미친개 맞거든. 방심하지 말라고! 카엘! 너 말이야, 너!”
활잡이 카엘과 칼잡이 카엘이 말끝에 붙은 지적에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활잡이 카엘이 먼저 불평한다.
“난 뒤에서 화살만 날렸구먼…… 모처럼 팔에 힘주고 날리니 힘들었는데 구박을 하냐?”
이 소리는 투란의 귀를 쫑긋하게 했고, 곧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길게 늘어선 대열을 놓고 대규모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베즐 팀은 룬디아크 공방의 도구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매우 평범한, 그저 능숙하고 경험 많은 헌터처럼 보통의 장비를 이용해 싸웠다. 그 장비 또한 마차 안에서, 주변의 눈길을 피해 테란이 마법 배낭에서 꺼내 줬다. 아주 조심스럽게 전력을 숨겼다고 할 수 있었다.
―저거 의미가 있는 짓이냐? 엘데인 성에 들어설 때 꽤 보여 줬는데?
드라고니아는 그런 베즐 팀의 행동에 처음부터 이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투란에게는 바로 대답해 줄 말이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거지. 전부 다 아는 거는 아니라고. 여기 대부분이 모르는 쪽이잖아.’
―하지만 그 때문에 자신들도 꽤 위험했고, 이 주변도 꽤 위험했잖아.
계속 집요하게 따지고 드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나름대로 설명해 보려고 했다.
‘내가 몰튼노트 거인이라도 꺼내서 날뛰었으면 몬스터 떼가 다 도망갔을 텐데, 아무도 안 다치고 끝낼 수도 있었고 말이야. 그건 이상하지 않냐?’
―걸어 다니는 재앙이 정체를 드러내는 거랑, 헌터가 자신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랑 같은 수준에 놓고 말하지 마라!
‘그러니까…… 굳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괜히 좋은 거 보여 줬다가 뒤통수에 화살 맞는 수가 있다고. 엘데인 성벽 구멍에 들어갈 때 봤잖아. 슬그머니 아닌 척하고 노리고 쏜단 말이야. 룬디아크 공방에 가는 것보다 그게 훨씬 쉬워 보이니까.’
―결론은…… 불신(不信)이로군.
‘뭐, 그런 거지.’
투란이 이렇게 드라고니아와의 얘기를 빠르게 마무리 지을 때, 칼잡이 카엘도 베즐을 향해 불평하고 있었다.
“리더 시키는 대로 하다가 엄청 힘들었구먼, 끝나고 나니 위험한 짓을 했다고 구박이야? 그러지 말자, 응? 따지고 보면 베즐 넌 리더이면서 나랑 앞에 서는 이상한 짓을 했으니까, 욕은 네가 먹어야 하는 거 아냐? 팀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라고, 책임감을!”
베즐은 이에 대해 대꾸하며 싸우는 대신에 마차를 두드리면서 외친다.
“슬리피! 괜찮냐? 왜 고개도 안 내밀어!”
가룬과 아이들과 다르게 슬리피는 마차 앞쪽으로 발 한 짝만 늘어뜨린 채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팀 멤버들이 전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슬리피의 상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단 파티를 이룬 이상 한 명도 놓치지 않고 확인하겠다는 베즐의 물음에 슬리피가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꾸한다.
“별거 아냐…….”
투란이 냉큼 마차 뒤편으로 윗몸을 기울여 밀어 넣는 자세로 슬리피를 봤고, 바로 소리친다.
“피 나잖아요?”
가룬과 아이들이 먼저 놀랐다.
싸우는 와중에 슬리피는 셋에게 마차 중심에 모여서 엎드려 있으라고 했고, 자신은 마차 앞쪽으로 나귀를 돌보면서 상황만 지켜보는 듯했다. 공중에서 덮쳐 오는 뭔가에 대비해서 슬링을 준비한 채로…… 가룬과 아이들이 전혀 상처 입지 않고 덜덜 떨기만 하는 동안 슬리피도 별일 없어 보였는데, 끝나고 나서 자세히 보니 슬리피는 자신이 흘린 피를 깔고 눕고 앉아 가린 것뿐이었다.
베즐이 마차 앞으로 뛰어오르며 짜증 난다는 듯이 묻는다.
“그냥 긁힌 거냐? 아니면…… 뭐에 맞았어?”
눈먼 화살, 하늘로 쏘았는데 아무것도 못 맞히고 그냥 추락한 화살이나 쇠뇌살이 적지 않았다. 뭔가 날아드니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쏘아 댄 것이 캐러반의 동반자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가 꽤 있었고, 슬리피 또한 그렇게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런 물건 중에 몬스터를 노린 독이 발린 것도 있으니, 일단 피를 봤다면 가볍게 긁혔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별거 아냐…… 그냥 마비약인 모양이니까. 조금 저린 것뿐이고…… 금세 풀릴 거야. 이런 거에는 익숙해서…… 내 몸이 꽤 잘 버티니까.”
슬리피가 끙끙거리며 일어나 앉으려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베즐은 가만히 슬리피를 앉혀 주면서 상처 난 곳을 살폈고,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묻는다.
“어디서 날아왔나 몰라? 독 바른 놈이 약도 갖고 있을 텐데…….”
“몰라. 앞쪽 어딘가인데…… 거기 꽤 심하게 뭉개졌잖아.”
슬리피는 살짝 턱짓하면서 대답했다.
베즐은 더 묻지 않았다.
몬스터 떼가 와르르 몰려와 흩어졌다 뭉치며 격돌한 캐러반의 중앙, 거기서 벌어진 난장판은 캐러반 전방에 있던 세마인과 기병까지 나서서 수습해야 했다. 마법과 검투의 난전 속에서 공중까지 견제하느라 화살을 날려 댔으니, 떨어질 자리 보고 쏠 여유 따위는 전혀 없을 수밖에.
그러니 독 바른 화살 쏜 녀석을 찾아 약 내놓으라기가 많이 곤란했다.
투란은 갸웃하다가 마차에서 몸을 뺐고,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가 어디 있는가 멀리 보는 척하며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야, 죽은 사람은 없다며?’
―없다. 사망자는 없고, 중상자의 수도 적다. 중상이라고 해도 현재 이 캐러반이 보유하고 있는 약물 수준에서 하루나 이틀이면 다시 이동과 전투가 모두 가능한 상태가 될 거야. 이건 마법사 세마인과 기병대장 레쓰의 결론이기도 해.
‘꽤 잘 막았네?’
―그렇지. 습격이 시작되자마자 세마인이 작정하고 돌풍(突風) 장벽을 펼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 그리고 쟌이 날뛴 것도 꽤 컸다. 루비도 세마인과 협력해서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의 주전력을 삭감했고 말이야. 전술적으로 꽤 잘 싸운 결과라고 해야겠지.
‘흠…… 슬리피는 죽지 않는 거네?’
―그냥 하루 푹 쉬었다 일어나면 멀쩡해질 거다. 본인도 자각한 모양이지만, 순수하게 마비를 목적으로 하는 약물이 발린 화살이었으니까. 인간이든 대형 괴수든 전부 똑같은 효능을 발휘한다는 게 나름대로 대단하지만…… 덕분에 인간이 잘못 맞아도 급소만 아니면 별일 없다는 것은 장점이겠지?
‘대단한 거지, 그런 건…….’
투란은 다시 베즐 팀을 중심으로 한 파티를 둘러봤다.
라펜이나 마켈, 투란 자신은 외부인이나 다름없지만 베즐 팀과 엮여 싸울 때는 이상하게 서로 연계되고 협력이 잘 이뤄지는 느낌이었다. 서로 간섭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서로를 꽤 잘 엄호하는 그 느낌은 되새겨 봐도 역시 묘하게 상쾌하고 재밌었는데…….
“어이, 대장. 나도 일단 걱정을 좀 해 주면 안 될까?”
앞쪽 나귀 사이에서 어기적거리는 몸짓으로, 나귀에 기대듯이 걸어 나오면서 가몬티가 투덜거리고 있었다.
베즐이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면서 그 투덜거림을 단칼에 자르듯이 대꾸한다.
“넌 보이지도 않았잖아! 아니, 내가 왜 네 대장이야! 맘대로 우리 파티에 합류하지 말라고!”
가몬티는 이 핀잔에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로, 오히려 당당하게 활잡이 카엘을 가리키며 말한다.
“잘 보고 엄호해 줬으면서 뭘 딴소리야? 앞쪽에서 이리로 덮쳐 올 녀석들을 공중에서 막고 있었잖아. 어이, 활잡이 아저씨! 나 잘 보고 엄호해 줬잖아, 말 좀 해 줘! 나 쓸 만하다니까.”
베즐이 고개를 돌려 보니 활잡이 카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잡이 카엘이 그 꼴을 보더니 중얼거린다.
“뭐야, 어째 내 어깨 너머로 날아오는 화살이 좀 적다 했더니…… 신참 챙기고 있었냐? 덕분에 내가 위험한 짓 한다고 리더는 쌍욕을 하고?”
“내가 언제 쌍욕을 했어! 근데 누가 신참이야!”
베즐이 발끈했다.
칼잡이 카엘은 혀를 날름했고, 고개를 홱 돌리며 외면하는 척했다.
“어? 레쓰 대장……?”
하지만 고개를 돌린 쪽에서 다가오는 기마를 보고는 갸웃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 소리에 일행이 바로 반응해서 보니, 세마인 곁에 맴도는 듯이 보였던 기병대의 대장 레쓰가 바쁘게 말을 몰아 다가오고 있었다.
베즐은 콧등을 찌푸리면서 ‘설마 우리?’라며 마땅치 않아 하는데, 기병대장 레쓰는 바로 그 설마설마하는 기분을 뭉개듯이 외친다.
“베즐! 세마인 마법사의 부름이다. 너랑 네 파티, 모두!”
“아, 왜요! 우리도 좀 쉬어야…….”
베즐이 일단 튕기는 소리를 하려는데, 레쓰가 조금 더 빠르게 말을 몰아 허리를 숙인 다음에 하는 빠른 말이 그 입을 막는다.
“예정에 없던 조우(遭遇)였다. 한 번 더 당하면 캐러반 수레마다 시체를 가득 싣고 갈 수도 있어! 예정보다 빠른 선행 정찰이 필요하다고! 닥치고 일단 와서 얘기부터 들어! 너네 팀 중에 사상자(死傷者)가 있나? 없지? 있어? 아무튼 가서 얘기하자.”
베즐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완전히 뾰로통해진 척했지만, 레쓰는 그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손짓하며 말머리를 돌려 나아가고 있었다.
테란이 마차 앞으로 앉으며 나귀 몇 마리의 상태를 점검하는 채로 말한다.
“하기로 한 일이잖아. 예정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가자고.”
“그래, 하기로 했지. 하아…… 오자마자 공역질에 붙들려서 이게 뭐냐.”
베즐은 머리를 벅벅 긁적대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그럭저럭 이야기가 정리된 듯한 것을 느낀 투란은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고 라펜과 마켈도 얼른 마차 안으로 뛰어들듯이 탔다. 테란이 마차 앞쪽에서 고개를 돌리며 그 꼴을 평하듯이 말한다.
“편한 거 엄청 좋아해요, 하여튼! 야, 투란! 그 녀석들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이상한 버릇 생기잖아!”
라펜이 바로 반박한다.
“얘가 먼저 탔거든?”
마켈은 입을 다문 채로 살그머니 고개만 끄덕였다.
테란은 코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리면서 말한다.
“그렇게 망쳐 놨으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라펜은 더 반박하려 하는데, 그 옆구리를 밀면서 칼잡이 카엘이 말한다.
“들어가! 우리도 좀 나귀가 끄는 수레 타고 가자고! 안으로 좀 들어가 앉으라고!”
어쩔 수 없이 라펜이 말을 못 하고 움직이니, 베즐 팀 멤버들이 차례대로 마차 안으로 올라오거나 지붕에 걸터앉았다. 그 틈새에 끼어 가몬티도 슬쩍 지붕에 올라타고 있었다.
앞뒤 뚫린 상자 모양의 마차는 터덜거리면서 레쓰의 기마를 쫓듯이 움직였고, 투란은 앞쪽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면서 캐러반의 모습을 살폈다. 길게 이어진 대열 곳곳에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는데, 그 잔해 속에서 다친 만큼 보상을 받겠다는 듯이 몬스터의 사체(死體)를 뒤적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 광경을 스쳐 가면서 투란은 하늘을 잠깐 올려다봤다.
몬스터건 뭐건 상관없다는 듯이 맴도는 독수리 떼가 얼핏 보였다.
두 다리였고, 머리가 훌렁 까진 대머리가 틀림없이 멀쩡한 독수리였다.
‘먹고 탈 날지도 모르는데…… 탈 안 나려나?’
―매드독을 잘못 뜯어 먹다가 미친 새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거 갈기산맥의 독수리잖아. 먹을 것 못 먹을 것 정도는 알아서 구분할 것 같은데? 야생이라고 너무 무시하지 마라.
‘흠…… 뭐 그렇게 멍청하면 벌써 죽었겠지.’
투란은 멀리 세마인 쪽을 보며 독수리 떼에 대해 관심을 끊었다.
과연 세마인은 베즐에게…… 이 파티에게 뭘 재촉하려는가?
그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