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2)
마차 안에서, 투란은 바깥의 풍경을 앞뒤로 둘러보면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자신은 밖을 봐도, 밖에서는 자신을 못 보게끔!
‘아니, 왜 앞에서 얼쩡대고 있는 거야. 쟌은…….’
쟌이 벨라딘의 잔소리에도 세마인과 레쓰 주변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번 전투의 보상에 대해서 잔뜩 챙기고 싶어 그런 듯한데, 캐러반 전체가 공격당한 시점에서 반격과 방어는 당연한 일이었고 보상금이 정해지지 않은 일이니 쟌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벨라딘은 헛짓거리하지 말라 말린 듯한데, 어째서인가 이자닌이 찔러 봐서 나쁜 것도 없다고 부추긴 모양이었다.
물론 쟌의 그런 시도에 대해 세마인은 수고했다고 쉬면서 힘을 비축하라고 반쯤 칭찬하고 반쯤 자기 할 일을 하라는 말로 얼렁뚱땅 넘겨 버렸다. 과연 알드바인의 마법사답게, 홀시딘이랑 닮은 구석이 있다고 투란은 감탄했다!
그렇게 쟌의 시도가 실패한 다음, 투란이 타고 있는 나귀 마차가 세마인 앞에 도달했다. 베즐이 대표로 세마인에게 다가갔고, 투란은 다른 일행처럼 마차 안에서 지켜봤다.
한데 무엇보다 세마인이 드러낸 인상적인 모습은…….
‘엄청 힘들어 보이잖아!’
지쳐서 금방 쓰러질 듯한 압도적인 피로에 절여진 몰골이었다.
―마력의 소모가 심했으니까. 몸을 단련했는지 억지로 버티기는 하는데, 저 정도면 지금 저기 루비처럼 퍼져 눕는 게 당연하다만?
문득 투란은 쟌이 투덜거리면서 돌아간 벨라딘의 곁, 거기서 맨땅에 그 큰 몸을 누인 채로 드르렁거리고 있는 루비를 다시 봐야 했다. 전투가 끝났으니 당연히 최대한 빠른 회복을 위해 쉬는 모습이려니 했는데, 마력 소모 때문에 찾아온 피로에 그냥 쓰러진 모양이었다.
‘아니, 근데 세마인은 왜 버텨? 루비보다 덜 피곤해 보이지도 않잖아?’
―단련의 결과인 거지. 상아탑의 마법사는 마력 소모로 인해 의식불명에 빠지지 않도록 몸도 꽤 단련시키니까.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칼질 정도는 할 수 있도록 말이지.
‘헤에…….’
투란은 새삼 세마인을 바라봤고, 베즐이 그 앞에서 주춤거리는 태도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베즐 역시 세마인의 모습에 당황한 듯했다. 뭔가 오는 동안에는 팀 멤버들이랑 덜 피곤한 쪽으로 일을 진행시키자고 쑥덕거렸는데, 세마인의 저 모습을 앞에 두고는 그런 잔머리 굴린 얘기를 한마디도 꺼낼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세마인이 거의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예상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어.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예정보다 앞당겨서 선행 정찰을 하는 수밖에…… 그건 베즐, 너희 파티가 맡기로 한 일이지. 정비되는 대로 출발할 수 있겠나?”
베즐은 ‘어…… 그렇죠.’라고 어정쩡하니 대꾸만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베즐이 돌아오니…….
“물러터져서는…….”
테란이 혀를 찼고…….
“성격 참 좋아요.”
마차 지붕 위에서 가몬티가 키득거렸다.
이 소리에 살짝 얼굴이 붉어진 채로 베즐이 으르렁거린다.
“닥치고 준비나 해! 아, 슬리피 넌 애들이랑 캐러반에 남아. 이 마차, 다시 되팔 거니까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뤄!”
곧바로 라펜이 이 말을 받듯이 묻는다.
“잠깐, 슬리피도 멀쩡하지는 않잖아? 최소한 얘가 칼질 정도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구 한 명 더 있어야 하잖아? 험한 상황이라고.”
“남고 싶냐?”
베즐이 삐딱하니 되물었다.
라펜은 슬쩍 발뺌한다.
“아니, 꼭 내가 남겠다는 거는 아니고…….”
“슬리피, 간병인 필요하냐?”
베즐은 바로 슬리피에게 물었다.
슬리피가 고개를 저으며, 라펜의 말처럼 힘없는 소리로 대답한다.
“필요 없어. 나도 정찰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요 없고! 마차 값 떨구지 마라! 나귀도 잘 먹여 놓고!”
베즐이 슬리피보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재차 확인하듯 말했다.
가몬티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웃는 소리로 말한다.
“대신 내가 가 줄 테니까 안심하라고.”
“넌 왜!”
베즐이 발끈했다.
테란은 마차에서 내리며 혀를 차는 소리로 말한다.
“그냥 돕겠다는데 냅둬. 한몫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꼬리는?”
베즐은 으르렁거리면서 확인하겠다는 듯이 짧게 물었다.
가몬티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며 대답한다.
“안전이 제일인 꼬리라서, 마차가 남겨진 걸 보면 마차를 따라갈 거야.”
베즐이 살짝 저 너머를 바라봤다.
마차가 움직이는 광경에 냉큼 따라붙으려 하던 파몬티 일행이 저쪽에서 이쪽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중에 문제 생겨도…….”
“구할 생각 하지 마. 죽게 냅둬.”
가몬티가 딱 잘라 말했다.
험악하고 사나운 그 말투에 베즐은 입을 다물었다.
속사정을 전부 캐묻기도 그렇지만, 별로 듣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리고 몇 마디 오가는 사이에 마켈이 라펜을 잡아끌고 마차에서 내렸고, 베즐 팀 멤버들도 주섬주섬 다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캐러반이란 상황을 고려해서 급히 구한 마차였고, 말은 못 구해서 나귀로 대신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편안했던 이동수단을 쓸 수가 없는 정찰을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숨과 함께 베즐이 고개를 돌렸고, 마중하려는 듯이 따라온 레쓰를 향해 말한다.
“그럼, 가 볼게요. 다시 합류해 보고할 시각은 어느 정도로 잡을까요?”
“가능하면 반나절이 좋겠지만…… 인상 쓰지 마. 하루 안에 소식이 없으면 좋은 거라 여기고 이틀 정도 간격을 두자고. 그 정도는 괜찮지?”
레쓰가 상황을 빠르게, 자주 정확하게 듣고 싶다는 의견을 말하려다가 구겨지는 베즐의 표정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베즐은 더욱 단호하게 투덜거리듯이 대답한다.
“그 정도가 당연하잖아요! 이 정도 캐러반이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리겠구먼!”
“보름 안에 알드바인으로 들어가야 해. 베즐, 너무 여유를 두지 마. 엘데인 근처는 어떻게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이지만 이 하이랜드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거 알잖아. 터덜거리면서 오래 여유롭게 하는 여행이 아니라고.”
“알아요…… 근데 보름은 너무 무리하는 거잖아요?”
“하고 싶어서 하겠냐. 너네가 엘데인으로 오는 동안 겪은 일이랑, 여기서 겪은 일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고. 그러니까…… 가능한 안전한 경로를 잡아 달라고.”
“잡기 싫을 리가 없잖아요. 어, 준비 끝났네. 가자!”
베즐은 레쓰와 대화하다가 짐 챙겨서 멀뚱거리면서 ‘뭔 수다야?’라고 바라보는 일행을 향해 외침으로서 하던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 나서 파티는 캐러반을 떠났다.
* * *
‘안 들켰다! 우하!’
투란은 소리 없이 환호하며 안도하는 숨을 내쉬었다.
쟌이 계속 세마인과 레쓰의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정찰하려는 일행이 뭔가 돈이 될 일을 하려는가 눈치를 살피다가 아닌 줄 알고 물러설 때까지…… 얼굴 마주치지 않게 꽤 조심해야 했고, 아주 잘 피한 기쁨이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만…….
드라고니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로열 클래스의 마법이 인상을 희미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그래서 과거에 알던 이를 만나도 그 기억이 흐릿해져서 ‘누구였더라?’ 하고 갸웃하는 사이에 인식이 교란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읽어 낸 다음에 하는 말이었다.
‘야, 대신 잘 읽어 둔다더니 다 지난 다음에 그런 소리 하지 마!’
투란의 투덜거림은 드라고니아를 향했다.
―급한 일이 없을 거라서 자세히 보지 않았으니까. 홀시딘에게 미리 말했더라면 아주 확실하게 바로 알았을 거다만…… 걸리지도 않은 보상금에 눈이 멀어서 중요한 일은 묻지도 못했던 게 누구더라?
‘시끄러워! 아우! 그거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구먼!’
약 올리는 드라고니아의 시도에 그대로 걸려들 수밖에 없는 기분이 억울하면서도 투란은 징징거려 봤다.
그러는 사이에 일행은 빠른 걸음으로 캐러반에서 멀어졌고, 구릉 두엇을 넘으면서 본격적으로 원래 파티의 모습을 되찾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목적이 목적인 만큼, 두서없는 대화는 아예 꺼낼 생각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 속에 끼어 있는 파티의 신참(新參), 가몬티는 얼마 후에 바로 입을 열어 속삭이듯이 묻고 있었다.
“어이, 너네는 팀 멤버가 아닌 거야?”
라펜과 마켈, 투란의 곁을 걸으면서 조금 늦게 이 파티의 구성이 순수한 베즐 팀이 아닌 것을 확인한 다음의 물음이었다.
라펜이 바로 확고하게 답한다.
“아냐! 쟤네랑 같이 다니면 죽게 딱 좋거든? 너도 웬만하면 다른 파티…… 팀을 찾아보라고.”
이 소리에 투란이 귀를 쫑긋하며 중얼거린다.
“헤에? 그랬어요? 여태 그런 소리 안 했잖아요?”
마켈이 못 들은 척 앞으로 쓰윽 내달았고, 라펜은 ‘너도 장단을 맞춰야지!’라는 표정으로 투란에게 진지하게…… 진지한 척하는 모습을 열심히 꾸민 채로 말한다.
“공역 중일 때는 어울릴 만한 팀이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역 중일 때라고! 쟤네가 고른 사냥을 할 때는 전혀 아니야! 저것들, 길드 랭크 올리려고 별짓을 다 한다니까! 그 덕분에 꽤 크게 벌기도 했는데, 보라고! 그 번 것으로 몽땅 장비를 새로 맞춰 왔잖아! 그 돈이면 십 년은 그냥 놀고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절대로 사냥할 때 어울릴 만한 녀석들이 아니지!”
투란은 눈을 깜박거렸고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몬티는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듯이 낮게 휘파람을 불고 말한다.
“강해지려는 몬스터 헌터라…… 그렇게 바란다고 강해질 수 있는 거는 아닐 텐데, 대단한 능력을 갖춘 팀이네? 성격만 좋은 거는 아니구먼!”
“말릴 수가 없는 거냐?”
라펜이 혀를 차다가 가몬티에게 진지하게, 이번에는 시늉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모습으로 짧게 물었다.
가몬티가 그런 라펜을 흘깃하고는 앞쪽의 베즐을 보며 외치듯이 말한다.
“나도 꽤 험한 놈이라고 잔소리 듣는 편이라서…… 위험한 사냥을 한다고 남탓 할 처지는 아닌 쪽이지.”
라펜이 쳇 하고는 역시 베즐을 향해 외친다.
“야, 끈질기다. 그냥은 안 떨어질 모양이네. 알아서 설득하든가, 너네 팀에 받든가 해라.”
이 말에 투란이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베즐이 거북해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라펜이 나름대로 가몬티를 겁주려 한 모양인데, 가몬티가 한술 더 뜨는 꼴을 보이니 이젠 모르겠다고 포기하는 선언을 한 광경이잖은가.
가몬티도 키득거리면서 혀를 날름하는 꼴이 대충 라펜의 공갈을 눈치챘다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란은 문득 생각난 것을 그대로 라펜에게 자그마한 소리로 묻는다.
“베즐은…… 몬스터 로드를 꺼리는 거예요?”
“응? 그건…… 아닐걸? 그냥 튕기는 거 아닌가 싶어. 원래 숫기가 많고 낯가림이 심하거든, 베즐이…….”
“헤에, 낯가림이구나.”
투란의 대꾸는 두어박자 늦었고, 이건 뭔 소리야라고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함께 흘러나왔다. 이는 라펜이 몇 마디를 덧붙이게 했으니…….
“응? 몰랐어? 투란, 베즐은 원래 부끄럼쟁이로 소문이 난 녀석이라고! 저 팀이 결성될 때 베즐이 팀 리더란 말에 다들 엄청 놀랐다니까!”
“아, 그랬군요. 길드 창구에서 부끄러워서 그랬다니, 으흠!”
투란은 한층 더 어이없다는 듯, 뭔 소리를 하든 이젠 아무렇게나 넘기겠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라펜도 길드 창구를 언급하니 잠깐 자신의 말이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는데…….
“뭐, 어쨌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목청 높이는 녀석이기는 하니까. 그래서 테란이 리더 자리를 강제로 떠맡긴…….”
“강제 안 했거든! 제비 뽑았거든!”
앞에서 테란이 다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말이 끊긴 라펜은 쓰윽 투란을 보며 아주 진지한 척, 이번에는 장난기 넘쳐나는 눈빛으로 혀를 놀린다.
“세상에 팀 리더를 제비로 뽑는 녀석들이 있겠냐? 저것들,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투란도 이 소리는 ‘아, 그렇군요.’라고 넘기기가 곤란했다.
“진짜예요? 진짜로 제비 뽑아서 리더를……?”
“야, 그건 말이지…… 어이, 너네 왜 갑자기 발이 빨라져? 내가 하는 말이 창피해? 왜 창피해! 다 같이 결정한 일이면서!”
테란이 다시 뭐라 대답하려 하다가, 팀 멤버들이 갑자기 발걸음을 빨리하면서 멀어지는 상황에 으르렁거렸다. 심지어 마켈도 더는 못 듣겠다는 듯이 테란을 스쳐서 앞으로 내달리는 꼴이잖은가!
가몬티가 상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재미있는 친구들이야. 후훗.”
투란이 라켈과 함께 눈을 껌벅거리면서 가몬티를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
설마 이 몬스터 로드, 마법의 고깔모자를 지닌 가몬티는 재미로 팀에 합류하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