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3)
어느덧 해가 기울어졌고, 어스름한 노을빛이 사방을 채우려는 듯이 번져 갔다.
“이쯤에서 야영해야겠다! 준비하자고! 헛소리 그만하고!”
베즐은 한참 뒷담화를 뒤통수에 대놓고 질러 대는 뒤편을 향해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외쳤다. 그 뒷담화를 시작한 지 이미 한참이 지났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쫑알거리는 중이었으니까.
라펜은 이에 컬컬해진 목을 풀겠다는 듯이 물부터 마셨고, 투란은 투덜거리면서도 배낭을 여는 테란을 보다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언덕이 여러 곳에 불쑥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었다.
캐러반의 낌새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일행만이 이곳에서 유일하게 인기척을 지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마치 일행만이 이 하이랜드에 살아 있는 사람인 듯한 분위기…….
투란은 그 고요함에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있나?’
간혹 섬뜩한 것이 자리 잡은 숲이나 산, 늪의 깊은 곳이 이렇게 고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섬뜩한 것 주변의 모든 것이 전부 조심하는 탓에…….
―없다. 텅 비어 있다고 해야겠지.
‘텅 비어?’
―쓸고 지나간 흔적은 있다만, 지금 남은 것은 없어. 아마 캐러반을 습격한 녀석들이 이 근처를 헤집었던 모양이다.
‘그래? 아, 그러면 그 흔적을 밟아 온 거였나?’
―아마 그럴 거라 생각된다.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드라고니아와 몇 마디 하고 나서 투란은 지나온 방향과 다른 쪽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이런 투란의 모습을 눈치챈 듯, 라펜이 말한다.
“당분간 이 근처에서 구워 먹을 만한 것은 찾을 수 없어. 가지고 온 식량만 먹어야 해. 캐러반을 덮친 것들이 여길 먼저 덮치고 온 거였을 테니까.”
“음…… 일부러 이쪽으로 온 거네요?”
“어? 그렇지. 일단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 캐러반이 알드바인으로 가기 위해서 잡은 경로이기도 하고 말이야. 이렇게 우리가 미끼 노릇을 하면서 앞장서면, 배고픈 짐승이든 몬스터든 일단 입맛을 다시면서 나오지 않겠어?”
“헐? 정찰이 아니고 미끼 노릇하려고 왔다고요오!”
투란은 라펜의 주절거리는 소리에 놀란 대꾸를 했다.
라펜이 흐흣 하며 더 뭐라 하려는데, 그 곁에서 마켈이 라펜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면서 말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투란, 진지하게 듣지 마!”
“아, 왜! 정찰이란 게 원래 미끼가 되기도 하고…….”
라펜은 반발하려 했다.
하지만 곧 터져 나온 테란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라펜의 말을 자른다.
“위험해지면 너만 미끼로 던지고 가 버린다! 싫으면 닥치고 있어! 괜히 불운을 부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마켈, 너넨 대체 저 주둥이 험한 놈을 왜 데리고 다니는 거냐?”
마켈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넋두리처럼 대꾸한다.
“몰라. 한동안 잠잠했는데, 어제오늘 얘가 이상하네…….”
투란이 냉큼 이 대화에 끼어들어 한마디 한다.
“혹시요…… 라펜이 뭐에 물려서 그러는 거 아닌가요?”
“야! 안 물렸거든!”
라펜은 바로 토라진 소리를 냈다.
툭탁대며 오가던 이야기는 베즐이 다가와 하는 말에 끊어졌다.
“뭔 일 나면 재수 없는 소리 해서 불운을 부른 녀석만 남기고 가는 거는 몬스터 헌터의 전통이지! 라펜, 계속 그러면 뭔 일 나기 전에 그냥 두고 갈 수밖에 없어. 헛소리는 적당히 해라.”
“쳇, 알아! 안다고!”
그래도 그냥 입을 다물기 싫은 듯, 라펜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리고 다시 잠자리를 깔고 경계를 잡고하며 야영할 준비가 갖춰지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불운을 부른다는 말투가 좀 묘한데?
드라고니아가 불쑥 투란에게 물었다.
‘어? 아, 그거…… 그런 말 있잖아. 재앙을 말하면 그 말이 씨가 돼서 진짜 재앙이 자란다고 말이야. 몬스터 헌터 중에서 괜히 그런 일에 민감한 경우가 많아. 지금 라펜은 민감하지 않더라도 좀 많이 거슬리는 소리를 하기도 했고…….’
―거슬려?
‘팀을 앞에 두고 누가 미끼가 되고 말았네 어쩌네 했으니까. 팀과 파티, 살짝 다르다고 했잖아.’
―아, 인간 사이의 규칙 말이군.
투란은 조금 알아들었다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의심했다.
하지만 굳이 짚어 따지지는 않았다.
팀이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때, 파티는 저마다 살 궁리부터 하는 것.
보통 그런 차이가 있었고 그 때문에 파티 멤버는 미끼로 던져지는 경우가 있어도 팀 멤버는 그런 일을 겪지 않는다.
드라고니아에게는 그 차이가 굉장히 이상한 것이고, 납득이 안 되는 얘기였다.
결국 사냥에 나서게 되면 누군가는 사냥감의 주의를 끌어야 하고, 그것은 미끼 노릇이니까. 하는 짓은 똑같은데 뭐가 다르다고 따지는 것인가, 드라고니아에게는 해괴할 뿐이라니까.
―하지만 투란, 라펜의 말이 거슬린다 해도 일리는 있잖나?
‘일리야 있지. 듣기 거북하고 무서워서 그렇지. 그냥 사람의 기분 문제라고 생각해 둬. 기분 좋으면 다 좋은 거고 기분 나쁘면 다 나쁜 거라 생각하니까. 아, 잠이나 자야겠다. 별일 없으면…… 깨우지 마!’
투란은 자신의 잠자리를 두어 번 더 손으로 토닥인 다음에 드러누웠다.
옆으로 몸을 누인 채로 투란이 바라보니, 가몬티는 베즐 팀이 밤의 보초를 정하는 순번에 끼려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한몫해서 베즐의 팀에 참여하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저 모자…… 계속 조용하네?’
―마력을 아끼는 거야. 말하고 떠들고 하려면 마력을 계속 소모하니까. 자아를 갖춘 마도구라면 당연한 거다.
‘그래? 흐흠…… 너, 말하는 모자를 또 아는 모양이다? 그런 말 안 한 것 같은데 말이지.’
―모자는 아니지만, 대화가 가능한 아티팩트라면 겪은 적이 있다. 지금 할 얘기는 아니니까, 더 묻지 마라.
‘흐음! 어째 앞으로도 할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겠지.
‘쳇.’
투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노을이 드리워지며 밤이 다가오던 풍경과 닮았지만 다른 아침의 풍경 속에서 이슬이 차갑게 뺨을 적시는 것을 느끼면서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막 잠이 깬 것처럼 주섬주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곁을 보다가 투란이 불쑥 입을 연다.
“어, 아침이네요.”
라펜이 부스스한 눈길을 돌리더니 구겨진 표정으로 대꾸한다.
“좋지 않아! 왜 악몽을 꿨지? 밤새 몬스터한테 씹히는 꿈을 꿨어! 왜? 나만 악몽을 꾼 거야? 왜!”
투란은 못 들은 척하고 일어나서 잠자리를 치우고 장비를 점검했다.
그런 투란을 대신하듯, 손과 눈은 역시 자신의 장비를 정비하는 채로 마켈이 말한다.
“덜 깼냐? 깼으면 정신 차려. 놀러 온 거 아니잖아.”
“어흐으!”
억울하다는 듯한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라펜도 준비를 했다.
가벼운 아침 끼니를 챙기고, 일행은 다시 베즐이 선두에 선 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른 점은 가몬티가 슬그머니 베즐 팀 멤버들 틈새에 끼어 있다는 것인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간밤에 보초 교대하면서 친해진 듯이 보였다.
투란은 이를 흥미롭게 여겼지만 라펜이나 마켈에게 짚어 묻지는 않았다.
베즐 팀의 일은 베즐 팀이 해결할 것이고, 이쪽은 어디까지나 공역 때문에 뭉친 파티 멤버니까.
그렇게 해서 다시 살짝 지루하고, 살짝 긴장되는 반나절이 지났다.
들판은 그냥 들판이었고, 언덕은 언덕이며 알드바인을 향해 펼쳐진 하이랜드는 갈기산맥과 남쪽의 거대한 수림 풍경을 멀리 보면서 퍼져 누운 듯이 고요했다.
그 고요함은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둥실거리고,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 아래에서 깨졌는데…….
“이거, 뭔 발자국이지요?”
투란이 점심 끼니를 준비하는 일행을 구경하듯이 주변을 조금 멀리 돌다가 소리친 탓이었다.
“발자국? 그냥 웅덩이 아냐?”
베즐이 앉았다가 일어나며 엉덩이를 터는 채로 빠르게 다가왔다.
투란은 가만히 손가락질했고, 베즐은 곧 ‘젠장.’ 하는 소리부터 내뱉었다.
팀 리더의 이 한마디는 점심거리를 꺼내던 팀 멤버들을 움직였고, 다들 투란이 물어본 발자국을 구경하듯 모였다.
“큰데……?”
“들어가 누워도 되겠군.”
“사우루스겠지?”
“거대 사우루스 계통으로 이리 나오는 놈이 있던가?”
오가는 이야기를 듣다가 투란이 ‘사우루스?’ 하고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빠르게 투란의 뇌리에 속삭인다.
―용아종(龍亞種)을 말하는 거다. 랩티드도 그 계통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여기 발자국을 남긴 놈은 대형 용아종, 제대로 커다란 놈이야. 이 파티가 상대할 수 없을 수도 있어.
투란은 가만히 베즐 팀을 둘러봤다.
라펜과 마켈도 가까이 와서 거의 물웅덩이처럼 보이는 발자국을 보며 낯빛이 어두운데, 베즐 팀은 묘하게 눈빛과 낯빛을 번뜩거리면서 몬스터를 가늠해 보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 사람들 설마……?’
투란이 막 의심을 품었을 때, 마켈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끌고 말한다.
“어— 흠! 이봐,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점심을 먹고 조금 더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일단 돌아가면서 새로운 상황이 왔던 길에 생겨났나 확인하고 캐러반에…….”
“라펜, 너 이런 거 쫓는 일은 싫지? 마켈이랑 같이 돌아가서 레쓰 대장이랑 세마인 아저씨한테 보고 좀 해 주겠어? 왔던 길 그대로 되밟아 가면 별일 없을 거야. 우리 활잡이가 오면서 계속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트래커(Tracker)이기도 하잖아, 우리 활잡이 말이야. 혼자라면 위험해도 둘이라면 웬만한 짐승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 어때?”
마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온 베즐의 장황한 제안이었다.
마켈은 좋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라펜은 좋지 못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듯이 따지려 하는데…….
“베즐, 너 설마…… 어이, 너네 설마!”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베즐 팀을 둘러보다가 어이없어하고 말았다.
베즐은 그런 라펜을 외면하며 투란에게 말한다.
“투란, 넌 우리랑 같이 가 줬으면 한다. 이런 커다란 사우루스가 한 마리라면 우리끼리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어. 여유 있지. 하지만 두 마리부터는 그렇게 쉽지 않아. 네 솜씨라면…… 오러의 강화 검 일격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도와주지 않겠어?”
“어? 아니, 그게 꼭 되는 거는 아닌데…….”
투란이 조금 애매해서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베즐은 고개를 끄덕였고…….
“알아. 오러 마크를 이용한 강화 검, 꽤 불안정하지. 하지만 걱정 마. 우리도 나름대로 경험이 있으니까, 가면서 그 요령을 알려 주고 다듬어 줄게. 너에게도 괜찮은 기회가 될 거야. 그러니까…….”
“야! 너네 사정 때문에 공역을 팽개칠 생각이냐?”
라펜이 버럭 고함쳤다.
바로 나온 베즐의 대꾸는 어딘가 차가웠다.
“공역을 수행 중이잖아. 캐러반의 진행 경로에 거대한 사우루스의 흔적이 나왔어. 몇 마리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움직이는지도 몰라. 캐러반이 그런 대형 몬스터랑 싸우려 하면 최악의 결과만 나와. 이건 추적해야 하는 게 맞아. 우리 사정은 운 좋게 이 일과 어우러진 것뿐이지. 마켈, 내 말이 맞지?”
라펜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마켈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마켈이 그런 라펜의 어깨를 잡으면서 씁쓸하게 베즐에게 답한다.
“어처구니없기는 하다만…… 틀렸다고 할 수가 없군. 하지만 베즐, 다시 생각할 수는 없냐? 이건 좀 무모하잖아?”
“무조건 쫓아가 잡는다는 게 아니야. 우선 상황을 보고, 안 된다 싶으면 바로 물러설 거야. 그러기 위해서 지금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갖추고, 우리가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서 너네한테 보고 임무를 맡기는 거라고.”
조금 부드럽게 베즐이 말했다.
라펜은 그래도 못마땅한 듯…….
“아오오! 이 망할!”
성난 소리를 내면서 베즐 팀 멤버들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라펜의 기분에 동조할 낌새가 없었다. 그야말로 적절한 까닭을 말했으니 괜찮지 않냐는, 다소 뻔뻔해 보이는 분위기만 맴돌 뿐이었다.
그래서 라펜이 겨냥한 것은 투란인데…….
“투란, 우리랑 가자! 얘네 지금…….”
“음, 난 사우루스 보고 싶어요!”
냉큼 라펜의 말을 자르는 소리를 하는 투란이었다.
“얀마!”
결국 투란에게도 성난 소리를 질렀지만, 라펜은 마켈과 함께 캐러반으로 돌아가야 했다. 거대한 사우루스랑 캐러반이 예고 없이 마주칠 경우를 생각하면 보고는 최대한 빨라야 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투란이 베즐 팀과 함께 남으니, 가몬티가 한구석에서 가만히 구경하다가 불쑥 묻는다.
“자아, 그러면…… 이제 갈 사람은 갔으니까, 누가 설명해 줄 거야? 아까 그 친구들이 말하는 사정이라는 거, 뭐야? 혹시 사우루스랑 깊은 원한이라도 있나?”
투란도 ‘오? 그런가?’라며 눈을 깜박거렸고, 베즐은 팀 멤버들을 주욱 둘러보고 나서 천천히 대답한다.
“아, 그래. 있지. 우리 팀의 결성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원한이 말이야.”
말하는 그 표정이 아주 으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