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
Chapter 2. 허무의 소용돌이
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늪이 통째로 기울어, 그 안에 담긴 것들이 어디론가 쏟아져 들어가는 듯했다.
투란의 주변에서 흐느적대던 악마의 심장들이 부지런하게 요동을 쳤다. 투란이란 먹이를 찾아 모여들었다가 분위기 보면서 맴돌고 있던 이빨거머리 떼도 식욕을 잃은 듯이 늪을 후려치며 팔딱거렸다.
그렇게 느닷없이 부지런해진 괴물 떼가 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투란도 문득 깨달았다.
저리로 가야 한다고.
사람으로서 투란은 ‘아니, 대체 왜!’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의 심장인 투란은 ‘살려고!’란 대답을 바로 내놓는다!
‘이 심장이란 괴물은 원래 이렇게 생각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투란은 자신을 향해 묻기까지 했다.
그리고 좀 더 어이없게도 바로 그 대답을 알 수 있었다.
‘아니구나!’
주변에서 요동치는 악마의 심장들이 뒤틀린 시야 속에 잡혔다.
느리고 기운 없고, 그저 늪의 끈끈한 물결을 따라 둥실거리고 너울거리며 밀려가는 듯한 몰골. 그게 그나마 부지런 떨어 대는 꼴이라니! 심장과 하나가 되어 강렬하게 피의 격류를 일으키는, 투란의 가슴속 악마의 심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들이 악마의 심장과 완전한 일체감을 느끼며 생각하고 있는 투란과 같을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생각하고 느끼는 부분의 격이 다르다 할 수밖에 없는 꼴이었다. 본래 몬스터인 악마의 심장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투란의 가슴에서 맥동하는 놈은 왜 다른가?
가볍게 치밀어 오른 물음은 역시 간단하게 답을 찾아냈다.
인간의 심장과 하나가 된 악마의 심장, 이로부터 흘러나온 미세한 넝쿨이 가장 가느다란 실핏줄보다도 작고 섬세하게 투란의 두뇌를 그물처럼 감싸고 있었다.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교하게 그물이 엮인 형상은 거의 투란의 두뇌 형태를 그대로 따르는 듯했고, 몬스터로 하여금 사람처럼 생각하게 했다.
‘흉내!’
투란은 한순간에 마음을 관통하며 깨달은 사실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었다.
사람의 심장을 파먹듯이 융합하여 사람의 심장이 지닌 약동하는 힘을 얻은 것처럼, 악마의 심장은 두뇌의 구조와 형태를 피의 격류를 통해 파악하고 흉내 내서 비슷하게 기능하는 것이다. 다름 아닌 투란의 기억, 몸에 남겨진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생각하는 셈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그대로 포식한 악마의 심장이 제대로 그 본색을 드러냈다 할 수도 있었다.
콰아아아아!
투란의 두 손이 나무를 꽉 끌어안았다.
기울어지고 급류를 일으키며 흐르는 늪에 잠겨 있던 나무가 뒤집히면서 사람 대여섯은 매달려도 될 듯한 크기를 보여 줬다. 조금 전까지 투란을 꿰고 있던 부분은 그 나무의 꼭대기, 가늘게 가지 친 부분에 불과했다. 드러난 크기로 봐서는 작은 배처럼 올라타도 될 듯싶었다.
때문에 투란은 두 손을 바쁘게 움직여 나무에 오르려 했다.
하지만 요동치는 늪이 나무를 통째로 뒤집고 돌려서 그저 달라붙어 있기만도 힘겨웠다. 한순간 늪에 통째로 처박혀야 했고, 보이는 것 없는 늪의 격류 속에서 오로지 몸의 촉각만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기도 했다.
투란이 다시 뒤집히고 돌려진 나무를 따라 늪의 표면으로 나왔을 때도 뭔가 제대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사냥하고 포식하는, 영양분의 섭취를 철저하게 우선순위로 잡은 악마의 심장은 아직 모자란 양분을 시각과 청각으로 기능하는 눈과 귀에 배분하지 않았다. 그 탓에 눈은 일그러진 풍경을 담은 채 시야가 흐릿했고, 귀는 뒤집어지는 세상도 아랑곳없이 고요함만을 듣고 있었다.
이 늪을 통으로 실어 나르는 거대한 격류는 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투란이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농담으로라도 들은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반사적이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달랑 하나 삼킨 몬스터 악마의 심장이 마찬가지로 들은 적 없는 기괴한 능력을 보여, 당황해서 얼어붙어 마땅할 그를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해 준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콰아앙!
투란이 어디의 아무에게나 대고 ‘이제 그만 좀 하자!’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 절벽이 앞을 스쳐 갔다. 냉혹하게 생각하는 악마의 심장 투란조차 오그라들며 ‘이건 무섭다!’라고 공포를 외칠 정도였으니, 방년 십육 세를 찍은 소년 투란은 당연히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작스럽게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어?’
투란은 대체 자신이 뭘 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전히 찌그러진 풍경이었지만, 눈과 귀의 시각과 청각이 망가진 탓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건 제대로 보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일 법한 상황이었다.
스쳐 간 절벽, 큰 바위라든가 한순간에 눈앞을 채우고 가린 단단한 덩어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거대한 산봉우리를 뚝 잘라다 놓은 진짜 절벽이었다. 그 절벽이 바스러지고, 거품처럼 터지면서 타오르는가 싶은 순간에 얼어붙으면서 사라졌다.
그렇게 시야가 훤하게 열렸으니, 갑작스럽게 하늘을 대신한 이상한 숲이 보이고 있었다.
하도 넓어서 시야의 위아래를 몽땅 점하는 규모 때문에 투란은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그 큰 절벽이 어디서 튀어나와 어떻게 박살 나 버렸나조차도 순간적으로 잊어버릴 정도였다.
때문에 투란은 뒤늦게 알아차렸다.
자신이 몸을 둔 늪이, 엄청나게 높고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마치 늪처럼 생긴 큰 배에 탄 것같이 느껴지게!
‘뭐야, 이게!’
상황을 알아차렸지만, 투란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춤추는 산맥, 그렇게 불리며 산맥의 안쪽 지형이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흐르며 변한다는 소리는 철들 무렵부터 들었다. 투란이 자란 샤오콴 마을은 그런 지형 변화에 살짝 얹힌 듯 위치해, 아슬아슬하게 왕국의 경계와 맞물려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마을 앞의 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큰 숲이 우거지다가 금세 없어지거나 하는 것을 몇 년에 걸쳐 볼 수 있었다.
샤오콴 마을에서 살아 보지 않은, 외지에서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들은 그런 풍경을 보며 엄청나게 놀라고는 했다. 거기서 자란 소년에게는 당연한 것을 가지고 왜 놀라는지 의아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투란도 지형이란 ‘몇십 년’에 걸쳐서 변하는 것이라는 상식을 알게 되었다. 샤오콴 마을 앞의 풍경은 북쪽에 있다는 ‘혼돈의 늪’이 발산하는 여파에 아주 쉽게 영향을 받아 그 기간이 극단적으로 단축되어 ‘몇 년’ 만에 훅훅 바뀌는 것이라고, 그렇게 상식을 넓혔다!
그런데 지금 그 상식이 파괴당했고, 깨부숴지고 있었다.
이렇게 눈 깜박할 사이에 폭풍처럼 흔들리고 변하는 지형 따위, 샤오콴 마을의 소년 투란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스쳐 간 절벽이 사라진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뒤통수를 서늘하게 하는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바위산이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울창한 숲이 보였다가 모래 더미에 휩쓸려 없어졌다.
하늘 대신에 눈앞에 보이던 숲이 가득했던 풍경도 알록달록하니 무늬가 바뀌는 중이었다.
이렇게 거시적으로 투란의 상식이 파괴당하는 사이, 그를 태운 채로 무슨 배처럼 흘러가는 중인 늪은 그나마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슬슬 이상해질 무렵, 투란은 매우 미시적인 관점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태에 직면했다.
처음 그 느낌을 준 녀석은…….
딱, 촤악!
이빨거머리가 나무를 꽉 물며 곧추세운 꼬리 줄기로 투란을 때리려 했다.
투란은 이빨도 없는 그 묵직한 밧줄 가닥 같은 녀석을 손으로 잡아 버렸다. 때리려고 한 줄기가 투란의 손아귀에 물린 셈이었다.
그 순간, 나무를 물고 있던 놈의 이빨 돋은 두 가닥 줄기가 그를 물려고 날아왔다. 손을 휘둘러 녀석을 팔뚝에 감은 투란은 바로 씹고 으깨 삼켰다.
찾아온 놈이라 일단 냉정하게 영양 섭취를 한 것이지만, 이상했다.
‘어디서 튀어나왔지?’
새삼 둘러보니, 주변 상황이 어처구니없었다.
어느새 늪은 꽤나 조촐한 크기로 줄었는데, 뭔 항아리에 물고기랑 미꾸라지 떼를 잔뜩 담아 둔 것처럼 찰랑거리면서 난리가 나 있다니!
걸쭉하고 무거운 늪의 진액 속에서 그 난리를 치는 것은 서로 엉겨 붙은 악마의 심장, 이빨거머리 떼였다. 한쪽으로 쏠리면서 도망치려고 허우적대던 놈들이 멀리 못 가고 투란이 매달린 나무를 중심으로 가득 채워진 걸로도 보였다.
‘이건 또 어떻게 된 거여!’
그렇게 솟아난 의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악마의 심장 투란은 냉정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고, 투란의 손발이 나무를 꽉 붙들고 안으면서 천천히 안정적인 자세를 잡아 갔다.
다리가 보다 튼튼하게 나무를 조이듯이 감은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천천히 두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켜 앉는 자세를 취했다.
앉고 나서 잠시 멈춘 듯하던 두 손이 어느 순간에 빠르게 움직였다.
파닥, 파다닥!
투란의 두 팔에 이빨거머리가 감겨 있었다.
멋지게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 팔딱대던 이빨거머리가 회피하며 ‘이건 먹을 것?’이라는 듯이 역으로 팔을 타고 오른 것이다.
‘쳇, 아무려면!’
두 손 모두 헛방을 날렸지만, 두 팔뚝 모두 이빨거머리를 낚았잖은가?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식사를 시작했다.
아득, 으적, 와드득.
목구멍으로 으스러진 이빨거머리의 잔해를 넘기는 그의 눈길이 찰랑찰랑 허우적거리는 악마의 심장 넝쿨을 향했다.
‘저것도 먹을 수 있나?’
소년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항아리 도박판에서 악마의 심장을 놓고 내기할 때, 멀쩡한 놈만 가지고 하지는 않았다. 멀쩡한 놈을 토막 내서 반 토막짜리를 만들거나, 반의반 토막짜리를 만들어 내기 돈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빨강 물감을 먹인 놈과 파랑 물감을 먹인 놈 들이 엉켜서 한쪽 색이 다른 쪽을 물들이는 꼴도 봤다.
그때 내기는 못 했지만 구경을 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조각난 녀석들이 서로 잡아먹고 나면 세졌지.’
악마의 심장은 반 토막짜리, 반의반 토막짜리가 싸워도 크기로 승패가 결판나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 더 강하게 맥동하며 움직이는가가 문제였다.
투득.
돌연 투란은 손가락 한쪽 끝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실 가닥 같은 넝쿨이 혈관 끝에서 튀어나오며 촉각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좀 더 가늘고 긴 넝쿨의 실 가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기 담긴 의지는 투란이 방금 떠올린 의문에 대한 본능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투란의 손은 내밀어지지 못했다.
“우컥!”
소리를 내지 않으려던 입이 저절로 열리며 턱이 따닥일 정도로 흔들렸고, 몸이 받은 충격이 저절로 입을 통해 새 나갔다.
갑자기, 누군가 꽉 막혀 있던 바닥의 마개를 뽑아 버린 것처럼 늪이 아래로 쑥 빠져나가고 투란과 늪 속에서 팔딱대던 괴물 떼가 몽땅 공중에 뜬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공중에 뜬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었다.
“……마!”
투란은 갑작스러운 추락의 상황에서 자기가 뭐라 외쳤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늪이 저 혼자,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팽개치고 혼자서,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저만 쑥 빠져 아래로 꺼져 버렸는가 하는 거시적인 문제를 통찰할 여유도 없었다.
느닷없이 공중에 떴다가 까닭을 따질 겨를도 없이 추락하는 괴물 떼에 섞여서, 매우 미시적인 상황에서의 난투극을 벌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늪이라는 걸쭉한 방해물이 사라진 순간, 한 무더기의 악마의 심장들이 제각각 뻗은 넝쿨을 좀 더 자유롭게 움직였다. 기댈 곳이 사라진 이빨거머리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물고 마구 후려쳐서 그 반동으로 움직이려 들었다.
투란이 매달린 나무는 뿌리가 덜렁거리면서 잔가지가 출렁이는 꼴, 늪에 통째로 떨어져 잠겨 있기 전의 자태를 드러내며 허공에 누운 작은 배 혹은 작은 섬 형상으로 그런 괴물 떼의 표적이 되었다.
물에 빠졌는데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실 가닥을 던져 주면 그게 무슨 밧줄인 것처럼 무작정 잡으려 든다는 속담처럼, 돌연 사라진 늪 탓에 갑작스럽게 기댈 곳이 없이 남겨진 존재에게 유일한 피신처가 된 나무였다.
투란은 거기 어정쩡하게 두 다리를 감고 올라탄 꼴이었으니, 허공을 헤엄치는 괴물 떼에 피신처는 물론이고 먹을 것까지 제공하는 낙원으로 보였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낙원의 만찬이 된 투란은 자신을 노리는 괴물 떼를 씹어 댈 기세로 외쳤다.
“제에에에에에엔장!”
그리고…… 괴물을 씹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