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0)
누군가의 부름에 늑대의 팔뚝이 은빛 불꽃의 힘을 빌려서 열심히 호응하고, 투란은 거기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신세였다.
‘살 수 있으려나?’
문득 머리 한구석을 간질거리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글거리는 은빛 불꽃을 한껏 휘감으며 어깻죽지까지 올라온 붉은 털의 팔, 그저 왼쪽에만 달린 팔 하나로 숲의 나무를 융단 깔개처럼 아래에 둔 채로 그 위를 쏘아져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이 끓어오르고도 있었다.
겨우 한쪽 팔이지만, 이 늑대의 팔뚝은 실로 강력한 도움이 될 것이 너무 뻔하잖은가!
‘제대로 쓸 수 있을 때 이야기지.’
즐거움의 한쪽에서 다시 처음의 차가운 간지럼을 동반한 생각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가볍게 나무 꼭대기를 잡아채며, 몸을 무슨 투석기에 올려진 돌처럼 날려 보내는 왼팔의 괴력이 ‘우와, 이런 것도 되네!’라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줬으니, 투란은 이 팔이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환호를 가슴에 품을 수가 있었다.
다음 순간에는 대체 이렇게 해서 끌려가는 곳이 어딘가 하는 불안함, 그다음에는 또 곡예를 하는 듯한 동작 하나에 몸이 휘휘 날아가는 신기함을 기뻐하고…… 뭔가 스스로 생각해도 혼란스러운 상태로, 투란은 날려 갔다.
오로지 자신의 왼팔에 의해!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쏴아아아아!
물결과 함께 바람이 요동쳤다.
투란은 그 물결 곁에 내려앉으며 당황했다.
은빛 불꽃이 열기를 잃은 채로 물결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열기를 잃은 불꽃에도 왼팔은 뜨겁게 달아오르며 투란의 어깨를 타고 가슴으로 온기를 전한다.
‘……늪? 아니, 이건 연못……이라기에는 큰데. 아, 이게 진짜 호수인가?’
제대로 된 호수 같은 것은 본 적이 없는 투란이니, 늪처럼 물기를 머금고 크게 펼쳐진 물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 낯선 풍경은 곧 투란의 마음속에서 밀려나야 했다.
달빛을 뒤집어쓴 물결이 찰랑거리는 반대편 호숫가에서 자글자글 피어나는 기괴한 열기를 느끼고 본 탓이었다.
거리는 멀었고,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투란의 눈에는 그 너머의 풍경이 바로 코앞의 상황처럼 보였다. 심지어 냄새도 선명하게 느껴졌고 귀로는 거칠고 사나운 숨결까지 듣는 듯했다.
‘뭐야.’
놀랍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투란의 가슴에서는 아주 냉정하고 고요하게 심장 둘이 조율되며 뛰고 있었다. 이런 상황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투란의 왼팔은 여전히 호수 너머의 풍경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듯이 멋대로 뻗으며 바닥을 찍고, 호수를 숲처럼 가로질러 가겠다는 손짓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투란도 무작정 그 팔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다. 저편의 상황을 선명하게 보는 순간,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왼팔을 잃은 웨어울프와 바위 같은 살갗과 몸집을 자랑하는 그랑츄가 맞서고 있었다.
투란의 생각이 조금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
온통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왜 여기에 왔는가? 왼팔은 어째서 이런 곳으로 그를 쏴 날리듯이 끌고 왔을까?
은빛 불길에 휩싸인 하늘의 열기, 은빛 불꽃이 가득하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호수 위, 저편의 웨어울프가 휘날리는 붉은 털이 은은하게 불꽃과 열기를 휘감아 무슨 은색의 횃불처럼 보이는 상황…….
투란이 제대로 알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 웨어울프가 그랑츄와 싸운다는 것과 자신의 팔 하나가 저곳으로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이런 상황에서 저곳으로 끌려가기를 거부했다.
크우워어어어!
웨어울프의 절규가 호수의 물결을 뒤흔들면서 밀려왔다.
은빛 불꽃이 일렁이며 그 절규에 호응하는 듯한 광경이 분명히 보였다.
투란은 오른손으로 왼손을 눌러 바닥에 처박았다.
등짝이 부풀고, 발 또한 그랑츄의 거칠고 굵은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바닥을 꽉 움키는 시늉을 했다. 그랑츄의 손가락에 비하면 짧은 발가락이지만, 그 크기로 인해 사람의 손가락보다는 훨씬 길고 굵은 발가락은 아주 세게 바닥을 움키면서 무거운 발과 함께 투란을 버티게 해 줬다.
늑대의 울부짖음 따위에 질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의 버티기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일까, 곧 그랑츄의 괴성이 호수를 넘어왔다.
‘대체 몇 마리야!’
한두 마리의 울음이 아니었다.
수십 마리는 될 듯한 그랑츄 무리가 호수 저편에 쫘악 깔려서 웨어울프를 가둔 느낌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랑츄 무리가 한꺼번에 웨어울프에게 덤비지 않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눈에 비치고, 코에 느껴지고, 귀에 들리는 저곳의 상황이 알려 주었다.
웨어울프 앞에 거대한, 무슨 바위산 같은 느낌을 주는 큰 그랑츄 한 마리가 버티고 있고 웨어울프의 가까운 뒤편으로는 다가서지 않는 두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싸움에 직접 가담한 그랑츄는 달랑 세 마리뿐인데, 그나마 제대로 웨어울프와 싸우는 꼴은 앞에 선 거대한 놈 하나였다. 나머지 둘은 간간이 웨어울프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주먹질을 하지만, 뒤를 막는 것에 더 주력하는 모습이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다리에 매달리거나 붙잡을 낌새조차 없었다.
‘나머지는 그저 도망만 못 치게 하는 건가?’
호수 너머에도 숲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요란을 떨면서 웨어울프의 절규에 마주 소리치는 그랑츄 무리는 그 숲을 가로막으며 붉은 털의 늑대를 호수 쪽으로 몰아가는 듯한 태도만 보이고 있었다.
투란은 대체 그랑츄 무리가 뭘 하나 의아했지만, 머리 한구석에서 기묘하고 색다른 열기를 느끼기도 했다. 마치 그랑츄라면 당연히 저래야 한다는 느낌, 강한 생명력을 지닌 늑대를 사냥해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의무라고 여기는 그랑츄의 투지가 호수를 건너오는 듯했다.
‘설마, 정말 그런 건가?’
돌연 투란은 자신의 몸, 그랑츄의 형상을 드러낸 부분과 저 무리가 호응하는 것을 느꼈다. 늑대의 왼팔은 여지없이 웨어울프에게 호응했고!
이 기묘한 공감대를 통해 자신이 정말 저 괴물들의 사정을 납득하고 있는가, 투란에게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이상한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을 더듬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호수 너머에서 그랑츄를 마주 보며 빙빙 돌던 늑대의 눈동자가 투란과 마주쳤다. 저 먼 곳에서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투란은 분명히 웨어울프의 황금색 눈동자 속에 은빛 불꽃이 일렁거리는 것을 똑바로 봤다.
웨어울프 또한 투란을 본 듯, 이를 가는 모습이었다!
‘엥?’
그런 웨어울프와 마주하며 도는 그랑츄, 그 거대한 놈도 호수 너머에 있는 투란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 얼굴이 이쪽을 향하는 순간, 투란은 미묘하게 그랑츄의 바위 같은 얼굴이 구겨진다고 느꼈다.
‘뭣!’
마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저편의 몬스터들 모두 언짢아하는 듯하니, 투란으로서는 당연하게 반발하는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곧 떨쳐 낼 수 있었다.
더 빠르게 서로를 마주 보며 맴돌던 녀석들이 제대로 맞붙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붉은 털을 휘날리며 은빛 불꽃을 휘감은 늑대 머리가 하늘을 향해 무서운 외침을 터뜨렸다. 바로 그에 처지지 않는 맹렬한 함성이 거대한 그랑츄에게서 터져 나온다. 웨어울프의 뒤를 잡고 있던 두 마리 그랑츄는 그 순간 뒤로 물러섰다.
완전히 한 마리의 그랑츄와 한 마리의 웨어울프만의 전투였다.
크르르르르.
붉은 털이 불길처럼 휘날리며, 늑대의 목 울림과 거친 숨결이 하얀 서리처럼 뿜어져 나왔다. 호수의 차가운 바람과 엮인 탓에 금세 사라지는 입김이었다.
그랑츄 역시 거대한 몸을 살짝 숙이며, 늑대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비슷한 숨결을 벌린 입으로 토해 냈다. 목젖이 꿀럭거리며, 다른 짐승이었다면 거의 숨넘어가는 소리라고 착각할 듯한 이상한 울림도 함께.
웨어울프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녀석들보다도 더 큰 그랑츄의 몸집은 아주 조금씩 꿈틀대듯이 그 움직임에 느릿하게 반응했다.
붉은 그림자를 수놓으며 검은 갈고리 손톱이 회색 바위 조각 위를 긁듯이 스쳐 갔다. 흠집이 조금 났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크워엇!
늑대의 입에서 화난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서 뭉툭한 손목만 남은 왼팔이 늑대의 머리 옆에 세워졌다.
그랑츄의 손바닥이 그 팔을 후려쳤고, 늑대의 몸은 반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튕겨지듯 옆으로 굴렀다. 그랑츄가 구르는 늑대를 발로 밟으려 했지만, 이미 일어서서 현란하게 옆으로 미끄러지는 늑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크르륵!
늑대의 목젖이 거칠게 울리고, 하얀 서리가 코끝과 입가에 맴돌았다.
그랑츄의 큰 몸이 다시 느릿하니 돌며 웨어울프를 마주했다.
다시 웨어울프의 형상이 손톱을 휘둘렀지만, 그랑츄는 느릿하니 그냥 몸을 대 주면서 슬쩍 손을 푸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웨어울프도 아까처럼 그랑츄의 등짝이나 뱃가죽을 세게 긁어 대려 하지 않았다. 그 거리로 다가서는 순간에 그랑츄의 손길이 잽싸게 날아들었고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을 기억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웨어울프는 보다 적극적인 걸음과 살짝 소극적인 듯한 손짓을 쓰려 하는데, 두 손을 번개처럼 움직이며 급소를 긁으려는 동작이 그랑츄의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을 띠게 했다.
크륵!
늑대 머리가 분노를 토했다.
그랑츄는 꿀럭하는 목젖으로 대놓고 비웃는 모습을 드러냈다.
웨어울프와 그랑츄, 서로 다른 종이나 얽히며 싸운 시간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정도의 관계는 이미 갖춰진 듯, 서로 알고 있었다.
그랑츄는 늑대의 한쪽 팔이 손이 없는 뭉툭한 손목뿐이라 위협적인 손톱이 없는 것을 비웃었고, 늑대는 그 때문에 연속 동작으로 상대의 눈깔을 할퀴지 못하고 번번이 빗나가는 처지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의 원인을 향해 웨어울프의 황금색 눈길이 분노를 뿜어냈지만, 그렇게 한눈팔 때마다 그랑츄의 손이 날아들 뿐이었다.
굵고 큰 손가락이 활짝 펼쳐진 채로, 바닥을 찍으면 망치 여러 개가 후려친 듯이 파인 흔적이 남았다. 덤으로 붉은 털과 스친 곳에서는 끊어진 털 가닥이 티끌처럼 휘날리고도 있었다.
웨어울프는 저 일격이 자신의 몸통을 으스러뜨릴 것을 알았고, 그런 위협에 대해 느낀 분노를 하늘을 향해 토해 냈다.
크워어어!
거대한 그랑츄가 재빨리 반걸음 물러서면서 웨어울프의 뭉툭한 손목을 주시했다.
꾸물거리는 손목 끝이 보였지만 여전히 손아귀의 형태는 갖춰지지 않았다.
그랑츄의 노골적인 냉소가 흘렀고, 분노에 찬 늑대의 울부짖음이 다시 허공을 쩌렁쩌렁 울렸다.
‘뭣 때문에 저렇게 짖는 거야?’
투란은 웨어울프의 포효가 조금 의아했다.
마치 하늘에 대고, 저 은빛 불꽃으로 타오르는 듯한 달에 대고 팔을 내놓으라고 외치는 듯한 꼴은 뭘까? 놈의 울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땅에 쑤셔 박은 투란의 왼쪽 팔, 늑대의 팔이 욱신거리면서 화끈거리는 열기를 쑥쑥 어깨로 가슴으로 밀어 넣으려 하는 탓에 신경이 곤두서니 더 궁금했다.
그랑츄의 큰 머리가 살짝 기울어지면서 하늘을 향했다.
차갑고 맑은 밤하늘의 복판에 꽤 많이 차오른 달이 보였다.
그랑츄 무리가 모두 큰 머리를 따라 달을 흘깃거리며 살짝 동요하는 듯했다. 하지만 거대한 그랑츄는 안심했다.
달은 아직 덜 찼다!
좀 더 크고 환한 둥근 달이라면, 웨어울프의 저 뭉툭한 손목에는 이미 손톱이 길게 치솟은 손이 생겨났을 터이니!
끄륵!
그랑츄가 목젖을 울리며, 오늘 밤에 반드시 이 웨어울프를 잡겠다는 각오를 드러내듯 두 팔을 벌렸다. 어서 덤벼 보라고 권하는 듯했다.
붉은 털이 일렁거리며 바람결을 타고 흔들렸다.
적의 권유를 웨어울프가 전혀 마다하지 않겠다는 듯, 울부짖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이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뭉툭한 손목 따위를 아쉬워하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진 늑대의 두 다리가 바닥에 크게 파인 흔적을 남기며 전력으로 뛰어드니, 붉은 불꽃이 회색의 큰 바위에 격돌하는 듯했다.
소리 없이 웨어울프가 뻗은 오른손이 그랑츄의 크고 넓은 가슴에 꽂혔다.
꽈드드득.
살갗이 갈라지고 뼈가 밀려나며 웨어울프는 그랑츄의 심장을 쥐었다. 거침없이 이를 확 뽑아내려던 웨어울프는 자신의 손목이 그랑츄의 가슴에서 빠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껴야 했다.
끄르르…….
거센 마지막 숨결을 흘리며 거대한 그랑츄가 깍지 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채로 웨어울프를 노려봤고, 하나의 돌덩이처럼 엉긴 두 손이 늑대의 머리통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