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6)
Chapter 120. 하이랜드, 램피지
테러사우루스(TerrorSaurus), 옆으로 길게 몸을 누인 채로 잠결에 꼬리만 움직이던 녀석의 발가락 사이에 칼이 꽂혔다. 꿈쩍도 않고 있는 탓에 겨냥은 빗나갈 리가 없었고, 강철의 이빨이 가차 없이 그 발가락의 가장 여린 틈새를 물어뜯은 셈이었다. 그 결과는 몬스터의 괴성, 그리고 거대한 꼬리가 칼을 꽂은 이를 향해 휘둘러진 강타(强打)였다. 통나무보다 더 굵을 수밖에 없어 보이는 꼬리에 맞으면 인간은 일단 터지고 산산조각 나서 흩어질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테러사우루스의 발가락 사이를 찍은 이는 꼬리와 다리 사이, 테러사우루스의 엉덩이 쪽으로 몸을 던져 굴렀고…… 그 우악스러운 강타를 피해 냈다.
괴성을 멈추지 않은 테러사우루스가 일어섰다.
꼬리가 마구 휘둘러졌고, 빗자루질 당한 땅이 두텁게 쓸리면서 사방으로 흙과 돌멩이가 뿌려졌다.
그러나 잠자는 테러사우루스를 공격해간 일행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구르고 뛰고 몸을 낮추면서, 꼬리가 휘날린 여운을 피해 낸 것이다.
쿠워어어!
쿠웅!
틈새를 찍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시 한번 포효한 테러사우루스가 발을 굴렀다. 땅울림이 꽤 멀리까지 은은하게 펼쳐졌다.
테러사우루스를 공격하던 저쪽 일행이 겁먹은 것처럼 도주하기 시작했다.
‘힘은 별것 아닌데?’
투란은 땅울림을 통해 일어선 머리 높이가 거의 10미터에 가까운 몬스터의 힘이 그 덩치에 비해 그다지 괴력(怪力)이라 하기 어렵다고 가늠했다. 드레이크의 앞발이 힘차게 한번 찍히면 그 자리에 발자국을 중심으로 삼는 웅덩이가 팰 정도인데, 저건 체중을 전부 실은 발 구르기에도 겨우 발의 윤곽에 맞춰 깊은 발자국만 생긴 정도니까. 이 정도는 카프리곤도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는 땅울림이었다.
체격을 비교해서 생각한다면, 테러사우루스는 겨우 그 덩치에 걸맞은 힘을 지녔을 뿐이었다. 그 정도라면 비정상적으로 거대화해 버린 마수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니…… 결국 덩치만 믿고 날뛰는, 저질러 놓은 짓만 끔찍한 괴수(怪獸)일 수 있었다. 하는 짓은 분명히 괴물인데, 몬스터 로드에게는 살점 한 조각도 의미가 없는!
―변형 전이니까.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평가에 대해 짧게 말했다.
‘어? 변형하면 달라져?’
―그러기 전에 잡아 죽이라고!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은 투란에게 새로운 호기심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을 어쩌기 전에 투란은 질주해 나가는 베즐 일행과 발을 맞추면서, 저쪽 일행의 상황에 대해 이쪽에서 대응하는 일에 보조(補助)할 준비부터 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팀을 중심으로 한 파티의 멤버였고, 팀을 보조한다는 관점을 유지하려 하는 투란이었다.
그런 투란의 판단에 베즐 일행은, 이 파티는 아주 전력으로 호응하는 듯했으니…….
“잘하는데?”
“발이 아주 빨라.”
“아직 전력 질주는 아닌 모양인데?”
“유인하는 거 맞았구먼!”
“오러 마크를 다리 중심으로 박은 모양이다!”
“치고 빠지는 전문 몰이꾼이겠지?”
저쪽 일행의 움직임에 대해서, 베즐 일행은 주거니 받거니 여러 가지 분석을 하며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격렬하고 빠른 저쪽과 비교하면 꾸물거리는 애벌레처럼 느리다고 해야겠지만, 이쪽은 테러사우루스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이쪽에는 저 대형 몬스터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공연히 관심을 끌어서 저쪽이 목숨을 걸고 시도하는 계획이 망쳐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쪽 일행의 계획이 망가질 때를 대비해서 언제라도 테러사우루스의 관심을 끌 준비를 한 채이기도 했다.
베즐은 빛의 칼날을 드러내지 않은 칼자루를, 칼잡이 카엘은 그 이상해 보이는 막대를, 활잡이 카엘은 팔뚝에 이미 검은 날개를 펼쳐 둔 채로…… 테란과 나머지 멤버들도 상황 변화에 즉각 대비할 태세로 진영의 중심을 이뤄 나아가고 있었다.
가몬티는 그 완성된 진영에 끼기보다는 투란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활잡이 카엘의 곁을 따르는 채였다. 어떤 상황이든 활잡이 카엘이 이 팀의 관망자이고 저격수이니까, 여차할 경우에 팀에 가장 도움이 될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가장 적당한 자리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이쪽에서 나아가는 사이, 저쪽은 구르고 뛰고 서로 테러사우루스를 한 번씩 건드리며…… 스치기만 해도 죽을 상황 속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유인하려는 계획대로라고 해도, 이제는 설렁설렁 도망치는 시늉이 아니라 전력으로 뛰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만큼 테러사우루스는 성난 포효와 더욱 과격해진 몸짓으로, 미친 듯이 쫓는 중이었다.
쿠워어어!
쿠쿵, 쿠웅!
슬슬 익숙해질 듯한 테러사우루스의 포효였고 발 구르기였다.
그러나 베즐 일행은, 저쪽에서 필사적인 일행까지도 이를 아주 낯설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태 유인해 가던 테러사우루스가 아니었으니까!
“이런 썩을!”
누군가 새로운 광경에 대해 짧고 강한 감상을 터뜨렸다.
눈앞에 언덕으로 가려졌던 시야가 펼쳐졌고, 잠시 아래로 흐르는 듯했던 비탈길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언덕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새로운 테러사우루스가 인간 몰이를 하며 즐기는 광경이었다.
단단하게 볼록 튀어나온 새가슴, 커다란 머리통, 목 언저리를 가로질러 불룩하니 메고 있는 듯한 길쭉한 짐…… 앞발이나 팔로 보이는 것이 전혀 없는 대신에 열린 입에는 가시밭인가 싶은 이빨이 마구 돋아난 사이로 두텁고 길쭉한 혀를 날름거리는 테러사우루스는 간식으로 인간을 쪼아 먹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굵직한 허벅지가 무릎으로 보이는 부위 아래로는 거의 맹금의 다리 형태인 것까지, 두 마리 테러사우루스는 가죽의 빛깔에 차이가 좀 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꼭 닮은 몰골이었다.
한쪽은 발가락을 찍혀 성난 채이고 한쪽은 먹이를 쫓느라 바쁘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인…… 그 크기와 난폭함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과연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저기 마법사가 쫓기는 건가?”
베즐이 외쳤다.
활잡이 카엘이 바로 대답한다.
“어, 마법사네. 엄청 큰 지팡이랑 마법 각인이 잔뜩 새겨진 로브야. 잘 뛰네?”
칼잡이 카엘이 곧이어 말한다.
“쟤네 계획은 실패야. 유인하던 녀석들, 방향을 잃고 흩어지는 중이다.”
테란이 납득했다는 듯, 하지만 아쉽고 서운하다는 듯이 말한다.
“한 마리 더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나 보네. 그게 덫을 먼저 덮칠 줄도 몰랐고…… 베즐?”
이제 이쪽의 행동을 정해야 한다고 팀 리더를 보채는 한마디로 테란의 말이 맺어졌다. 베즐은 이에 아주 빠르고, 분명하게 응했다.
“쫓던 놈 먼저 잡는다. 한 놈 확실하게 토막 내고, 그다음에 남은 한 마리를 상대한다. 칼카, 가자! 테란, 알지?”
“늘 하던 대로? 좋아, 가라!”
테란은 한번 더 확인하며 대답했다.
베즐과 칼잡이 카엘이 단숨에 수 미터를 한 걸음에 뛰면서 내달렸다.
테란이 손짓하고 남은 베즐 팀 멤버가 두 편으로 나뉘었다.
앞선 둘의 뒤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한편은 테란과 둘이고, 활잡이 카엘과 하나가 남아 가몬티, 투란과 함께 걸음을 맞춰 움직였다.
가몬티가 베즐 팀, 일곱 명의 움직임을 둘러보다가 투란에게 낮고 빠른 목소리로 묻는다.
“야, 우린?”
“난 활 쏠 거예요.”
투란은 간단히 대답했다.
가몬티가 뭘 해야 하는가까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듯한 말이었고, 이에 활잡이 카엘이 보태 말한다.
“내 곁에서 기다려. 지켜보고 있으라고. 적당할 때, 알려 줄 테니까 그때 날아가서 하고 싶은 대로 날뛰어 봐.”
걸음을 늦추지 않고 앞을 보며 내달리는 모습으로 하는 말에 가몬티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떡여야 했다. 뭘 하는지 모르는 얼간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일을 확실히 알고 움직이는 팀에 대해 딴소리할 필요가 없다고 바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그리고 활잡이 카엘은 베즐과 칼잡이 카엘이 테러사우루스에게 닿기 전,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채로, 그 팔뚝에서 검은 날개가 파닥거렸고 빛의 화살이 테러사우르스의 온몸을 두드리며 관심을 끄는 시도를 한 셈이었다.
베즐 팀의 전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쿠워억?
테러사우루스는 의아함이 어린 성난 소리를 내면서 꼬리를 휘둘렀다. 도대체 뭐가 자신의 살갗에 따끔거리면서 꽂히는가를 확인하려는 몸짓이었다.
꼬리가 흔들렸고, 뭐가 뒤에서 오든 일단 꼬리에 채여 날려갈 듯했다.
그걸로 테러사우루스는 자신을 따끔거리게 한 것에 대해 관심을 끊고, 이제까지 쫓아온 먹잇감의 행방에 집중하려는데…….
싸아!
바람이 펼쳐지며 우는 듯한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꾸우워어! 꾸어엉!
테러사우루스가 꼬리의 속살에 스며오는 통증에 민감한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잡힐 듯 말 듯 했던 앞의 먹잇감을 잊을 수밖에 없었고, 테러사우루스가 험악하게 발을 구르며 몸을 돌리는데…….
큰 통나무가 꿈틀거리면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터텅, 꿈틀거리는 통나무는 그 탄력을 잃지 않고 땅을 두어 번 더 찍었다.
쿠웅! 테러사우루스의 발 구르기가 뒤이어 큰 울림을 퍼뜨렸다.
잘린 꼬리로 인해 돌아보는 테러사우루스를 향해, 드러누운 채로 장대한 빛의 칼날을 휘두르던 칼잡이 카엘이 히죽거리는 외침을 터뜨린다.
“이 새끼야, 네 가죽 두꺼운 것만 믿었지? 어떠냐! 이게 바로 룬디아크 공방에서 너 같은 놈을 썰라고 만들어 준…….”
“닥치고 피해!”
베즐이 몬스터를 희롱하고 싶어 하는 칼잡이 카엘을 향해 외치면서 테러사우로스의 발목을 빛의 칼날로 그어 버렸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테러사우루스의 발목에서 울렸다.
“아, 왜 못 잘라!”
칼잡이 카엘은 베즐의 참격(斬擊)이 테러사우루스의 발목을 절단하지 못한 상황에 투덜거리면서 통나무 굴리듯이 몸을 굴리고 있었다.
“이 망할 것이 피해!”
베즐의 성난 외침이 터졌다.
광하검의 참격이 그어지는 순간, 테러사우루스는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동작으로 발을 뺐고 덕분에 완벽하게 절단되지 않고 가죽 한 귀퉁이가 덜렁거리면서 매달린 꼴이 되었다. 그래도 발목의 뼈와 힘줄은 끊어졌으니 발 하나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는 한데…….
퍼억!
베즐이 몸을 돌리면서 자신이 벤 테러사우루스의 발목을 후려 찼다.
가죽이 늘어지며 잘린 발이 기울어졌고, 테러사우루스의 몸이 기우뚱하며 기울어졌다. 꼬리를 잘렸고, 한쪽 발도 겨우 살갗 끄트머리만 붙은 상태이니 당연히 제대로 설 수가 없어 넘어지는 듯한 광경인데…… 테러사우루스의 크게 열린 입은 베즐의 몸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꼬리가 잘렸든 발목이 끊어졌든, 한입 물기만 하면 인간 따위는 바로 씹어 버릴 수 있다는 몬스터의 공격이었다.
베즐은 물리지 않았다.
몸을 돌리며 가속한 발차기 다음에 바로 낮아지는 무릎으로 뛰어올라 테러사우루스의 턱 아래로 숨어든 덕분이었다.
그리고 베즐은 테러사우루스가 한 발로 버둥거리며 다시 일어서려는 몸짓에 따라 그 허벅지를 밟고, 볼록한 가슴을 찍으며 그 등 너머로 달려 올라갔다.
테러사우루스는 먹잇감이 몸에 들러붙는 상황에 고갯짓을 하려 했다.
퍼억, 퍼퍼퍽!
그러나 굵직한 투창처럼 빛의 화살이 쏟아져 그 몸의 곳곳에 쑤셔 박혔다.
싸아아, 썩둑!
바람이 울었고, 테러사우루스의 남은 한 발이 무릎 아래에서 절단되었다.
빛의 칼날과 함께 물러서면서 칼잡이 카엘이 성난 소리를 지른다.
“제대로 자르라고, 이렇게!”
베즐은 테러사우루스의 등짐을 밟고 섰고, 가늘고 길게 뻗은 광하검을 내지르면서 대답한다.
“이렇게 말이지!”
위잉!
빛의 칼날이 테러사우루스의 목덜미를 깊이 스며들며 베었다.
핏줄기가 장막처럼 펼쳐졌고, 베즐은 뒤로 몸을 튕기면서 피했다.
공중에서 두어 바퀴 돌다가 베즐이 땅에 두 발을 디디며 납작 엎드리는 자세가 될 때, 테러사우루스가 주둥이를 땅에 박으면서 넘어졌다.
콰앙.
“후우으……!”
베즐은 짙은 숨을 몰아 내쉬면서, 몸을 흔드는 격렬한 떨림을 가라앉히고 나서 벼락같이 외침을 터뜨린다.
“테란, 제대로 토막 내라! 칼카, 아직 안 끝났어! 활카, 저쪽 상태를 말해!”
테란이 먼저 대답한다.
“얼른 가! 완전히 죽여 놓을 테니까!”
활잡이 카엘이 뒤이어 또 한 마리의 테러사우루스를 눈으로 좇으며 대답한다.
“잘 뛰네, 마법사가! 아직 잡아먹힌 녀석은 없어! 근데 곧 잡아먹히게 생겼네! 견제한다! 투란, 가자! 가몬티, 저기 가서 재롱 좀 피워 봐!”
“내가 무슨 짹짹이냐?”
가몬티가 투덜거렸지만, 두 팔은 이미 날개로 변한 채로 땅을 박차며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었다.
두 번째 전투가…… 사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