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8)
‘저건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몰랐어? 알면서 가만있었냐?’
투란이 달리면서 드라고니아에게 한껏, 소리내지 못한 채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성질을 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아주 평온하고 빠르게 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땅속에 있던 놈들이다. 조금 깊이 말이야. 프로브의 탐색 영역을 잔뜩 축소해 놓은 채였잖아. 땅속은 기껏해야 1, 2미터 깊이로만 탐지하던 중이라 저 덩치가 몇 미터 아래에 숨은 것을 알 수가 없었지. 그러니까 왜 이 녀석들 수준에 맞춰서 대강 둘러보자고 우겼냐고!
‘우잇! 책임 떠넘기지 말고, 녀석들을 여기 두 파티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부터…….’
―도망치는 거는 별 무리 없을걸.
‘어?’
―쓰러진 동족부터 뜯어 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틈에 되도록 멀리 도망치면 된단 말이지. 물론 그냥 도망치는 것이 성미에 맞지 않는다면, 스리 핏 아티팩트로 살짝 교란을 해도 좋고 말이야. 변형 전이든 후이든, 저것들의 통찰력은 그저 짐승 수준이니까 별로 어렵지 않을 거야.
‘전부 몇 마리나 나왔지?’
조금 침착해진 채로 슬쩍 뒤돌아보면서 투란이 물었다.
테러사우루스는 얼핏 보이는 것만 너댓 마리는 되어 보였다.
보이는 녀석 전부가 두 팔인지, 길게 늘어뜨린 날개인지 모를 등짐을 활짝 펼친 채였고 쿵쾅거리는 발 구르기와 콰르릉거리는 주먹질로 땅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그 땅울림을 발바닥으로 느끼면서, 베즐 일행을 중심으로 한 파티와 마법사를 믿고 유인하려던 파티는 온 힘을 다해서 내달리고 있었다. 균형이 흩어지면 그대로 땅에 몸을 던져 앞구르기를 하면서 절대로 처지지 않게 속도를 유지하면서!
가몬티가 허공에서 잠깐씩 빙빙 맴돌면서 뒤쪽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지만 낮게 내려와 알려 줄 겨를은 없었다.
―여덟 마리. 쓰러진 놈들 빼고, 테러사우루스는 여덟 마리다. 전부 변형을 마친 상태이고…… 금방 다 먹어치우겠구먼.
‘그래? 그럼, 어떻게 시간 좀 더 끌어 봐! 파이로는 너무 티 나니까 말고, 티 안 나게 저 녀석들 발을 묶어 두라고.’
―테라트가 지반을 몇 미터 내려앉히고 아쿠아와 함께 뭉개 놓으면 저 녀석들 습성상 얼마 동안 거기서 비비적대고 있을 거다. 그런데…….
‘하라고, 얼른!’
투란은 뭔가 다른 말을 하려는 드라고니아를 재촉했다.
일단 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뛰는 일행을 살려 놓고 뭘 하든 해야 할 듯한 상황이니까.
―저 덩치 큰 녀석들만 문제가 아니거든? 지금 달려가는 방향을 유지하면 가다가 랩티드 무리를 만날 거다. 그리고 악어새도 말이야.
‘뭐?’
투란은 냉정하게 새로운 상황을 알려 주는 드라고니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뒤에는 테러사우르스, 앞에는 랩티드와 악어새…… 캐러반을 덮쳐 왔던 날아다니는 몬스터 악어새는 일행의 발목 잡기에 딱 좋았다. 랩티드라면 함께 처달리는 채로 이빨을 드러내겠지만, 악어새는 일단 그 악어를 닮은 주둥이로 누구든 깨물면 그 순간에 이동할 수 없는 꼴이 될 테니까. 악어새를 상대하기 위해서 멈추면 랩티드에게 포위당할 테고, 두 몬스터가 각각 영역을 달리해서 일행을 공격해 오면 수비적인 방석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테러사우루스가 몰려올 테고…….
투란의 낯이 미묘하게 구겨졌고, 눈길이 이리저리 사방을 훑었다.
‘아직 안 보여! 진짜 있어? 아니, 악어새 대체 얼마나 되지?’
캐러반과 함께했던 싸움에서 본 악어새, 겨우 어른 팔길이 정도의 악어에 비늘과 깃털이 섞인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몬스터라고 얕보다가 물리면…… 부풀어 올라 진짜 악어보다 더 큰 덩치가 자신을 삼키려는 꼴을 보게 된다! 방패를 물면 방패를 삼킬 정도로 몸을 키우고 칼을 물면 칼을 삼킬 정도로 몸을 키우는 몬스터, 그게 바로 악어새였다. 그러니 싸우려 하다가 뭐든 일단 그 길쭉하고 자잘한 이빨이 돋은 주둥이에 물리면 문 놈을 해결할 때까지는 이동할 수가 없는 것!
거기에 함께 달리면서 물어뜯으려는 랩티드가 더해지만, 일행은 꼼짝없이 못 박힌 것처럼 자리를 유지하고 싸워야 한다.
―가몬티도 본 것 같군.
‘응?’
묻는 말보다 일행의 상태에 대해서 먼저 확인해 준 말에 투란이 흘깃 가몬티 쪽을 봤다. 어느 틈엔가 가몬티는 활강(滑降)하며 일행의 머리 위로 자리 잡아 날고 있었고, 막 외침을 터뜨리고 있었다.
“방향 바꿔! 앞에 랩티드랑 악어새 떼가 있다! 그대로 가면 싸울 수밖에 없어!”
“이런 제에엔장! 어느 쪽!”
베즐이 화를 못 참겠다는 듯이 성질부터 냈지만 곧 가몬티에게 방향 잡아 줄 것을 말하고 있었다. 가몬티의 두 어깨에 힘줄이 돋았고 힘찬 날갯짓과 함께 치솟으며 한쪽으로 선회하는 채로 대답이 나온다.
“이쪽으로! 다들 이쪽으로 달려! 선도(先導)할 테니, 날 보고 달려와!”
베즐은 달리는 방향을 바꾸며, 일행에게 손짓하는 채로 저쪽 일행을 향해 우렁차게 보태는 말을 외쳤다.
“거기! 마법사! 아저씨—들! 살려면 우리 몬스터 로드가 나는 쪽으로 뛰어! 죽고 싶으면 맘대로 하고!”
이 소리는 문득 투란을 쓴웃음 짓게 했다.
뭔가 이런 상황에서 딴소리하면 안 될 듯한데,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헤에…… 우리 몬스터 로드네…….”
투란보다 몇 걸음 앞에서 뛰던 활잡이 카엘이 홱 돌아보며 외친다.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잖냐!”
테란 쪽에서도 몇 마디 말이 나온다.
“급하잖아.”
“낯가림이 끝났나 보네.”
“살아남으면 빚진 꼴이니까.”
“닥치고들 뛰어!”
막판에 테란이 슬쩍 던진 말이 일단 떠드는 소리를 매듭짓기는 했지만, 투란은 문득 죽어라 도망치던 일행 사이에서 미묘한 여유가 맴돌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증거로 베즐도 저 앞에서 뒤돌아보며 투덜거리잖는가!
“이럴 때 꼭 헛소리해야겠냐! 이 못된 것들!”
테란은 그런 베즐을 향해서도 엄격한 말투로 외친다.
“닥치고 뛰라고! 리더잖아, 모범을 보여!”
뭔가 더 투덜대고 싶은 표정을 남기기는 했지만 베즐은 앞을 보고, 가몬티가 날고 있는 쪽으로 더 빠르게 질주하는 데 집중했다.
묘하게 시원한 기분으로 투란은 슬쩍 마법사 쪽 파티를 살펴봤다.
처지는 사람 없이 정말 잘들 달리고 있었고, 덕분에 투란은 조금 놀라야 했다.
‘와, 저 마법사…… 몰이꾼한테 처지지 않고 뛰잖아?’
―발목이랑 손목에 부스트(Boost) 마법이 걸린 고리를 차고 있거든. 마력이 바닥난 상태라도 별도로 마법이 발동해서 오러 마크를 지닌 자만큼 빨리 달릴 수 있고…… 아마 더 오래 달릴걸?
‘준비가 철저한 분이시구먼!’
―일격(一擊)에 끝내지 못할 경우에 대한 대비겠지. 일격에 한 마리 잡아도 이렇게 도망쳐야 하는 상황도 쉽게 상상할 수 있으니.
‘그 일격에 테러사우루스를 죽이는 마법, 그렇게 어렵냐? 연속으로 서너 번 날려 주면…….’
―무리다, 투란. 저 마법사의 마력으로는 그렇게 못 해. 한 번이 전력이었을 거야. 게다가 마력이 여유 있어도, 연속으로 쓰기에는 주문 구성이 너무 까다롭고 복잡했다. 덕분에 마력의 소모량이 꽤 적다는 장점이 있기는 한데…….
‘마력이 적게 소모되는데 한 번밖에 못 쓰는 마력이라고?’
투란은 다시 마법사를 흘깃했다.
길고 굵은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고, 로브 자락을 한 손으로 말아쥔 채로 가죽 바지와 가죽 장화가 드러난 다리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질주하는 모습! 어딘가 정신 줄 놔 버린 듯한데, 자신의 기량에 대해 냉정하게 파악하고 저렇게 뛸 준비까지 했다니…… 역시 마법사는 마법사인가 감탄하다가도 저 엉뚱한 모습이 뭔가 괴상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투란, 한눈팔 때가 아니다. 저 위!
‘어?’
갑작스러운 경고에 투란은 흠칫하며 위를 올려다봤다.
가몬티를 향해 한 무리의 악어새가 빠르게 날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앞쪽만 살피는 중이라 가몬티는 아직 모르는 모습이잖은가.
뭐라 하기 전에 달리는 채로 투란은 화살을 시위에 걸고 당기면서 짧게 외쳐야 했다. 앞에 있는 활잡이 카엘을 향해…….
“봤어요?”
목소리를 내기가 무섭게 투란은 악어새 무리에게 닿을 리가 없는 화살을 쏘아 올렸다. 그 화살이 나는 소리는 바로 일행의 관심을 끌었고…….
“가몬티! 내려와!”
베즐이 외쳤다.
오러를 이용해 목청껏 외친 탓에 가몬티가 선회하며 무슨 일인가 살피는 듯했고, 활잡이 카엘이 달리는 채로 검은 날개를 펼쳐 빛의 화살을 날렸다. 악어새 몇 마리가 바로 빛에 꿰인 채로 떨궈졌다.
상황 파악을 한 가몬티가 그사이에 낮게 미끄러지듯이 일행의 앞쪽에 착지하고는 바로 뛰기 시작했다. 그 머리 위로 몰려드는 악어새는 곧바로 베즐과 칼잡이 카엘의 칼질에 토막 나거나 활잡이 카엘의 화살에 맞았다. 하지만 악어새 무리는 저편에서 더 많이 몰려들고 있었고, 땅에서는 짙은 티끌이 연기처럼 피어나는 광경도 보였다.
베즐이 바로 가몬티를 향해 묻는다.
“버티고 싸울 만한 곳, 봤어?”
가몬티가 한쪽을 가리키면서 대답한다.
“구덩이가 있었어. 쓸모는 잘 모르겠지만!”
“쓸모있게 해 주지.”
고깔모자가 가몬티의 등짝에서 펄렁거리면서 외쳤다.
“좋아, 다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 구덩이를 보면 뛰어들고! 맞지, 모자님?”
“아, 맞다. 영리한 리더로군! 흘흘흘…….”
고깔모자가 기분 좋게, 이 상황에서 나름대로 공경해 주는 베즐에게 매우 만족한 듯한 대답을 했다. 가몬티가 이에 대해 투덜거리기는 하는데…….
“너무 추켜세우지 말라고! 버릇 나빠져!”
다리는 꽤 부지런히 뛰는 채라서인지 숨이 좀 가쁜 목소리였다.
고깔모자가 그런 가몬티를 놀리듯이 말한다.
“흐흥, 오러 마크를 지닌 몬스터 헌터들처럼 뛰지도 못하는 것이 잘난 척하나? 어이, 리더! 날지 못하면 이 녀석, 느림보야. 구덩이에 닿기 전에 지쳐 쓰러질걸!”
“누가 느림보……!”
가몬티가 후욱 숨을 몰아쉬면서 반발하려 했다.
하지만 가몬티는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로 베즐과 칼잡이 카엘의 팔뚝이 파고들며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것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야, 왜!”
그래도 가몬티가 한마디 투덜거리려 하는 순간…….
“닥쳐.”
“시끄러워.”
베즐과 칼잡이 카엘이 동시에 외치더니, 가몬티를 들어 올린 채로 더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몬스터의 형상을 풀어 버린 가몬티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질주였고, 가몬티의 입을 막는 속도였다.
하지만 저쪽에서 달리는 마법사에게는 충분히 따라붙을 만한 모양이었다.
“모자인가! 방금 모자가 말한 것인가! 그 모자 대체 뭔가? 뭘 할 수 있지?”
“닥쳐요!”
“시끄러워어!”
베즐과 칼잡이 카엘은 이 와중에 대체 뭘 묻냐고 정중하게 대꾸하는 대신, 으르렁거리면서 저리 가란 눈빛부터 뿌려 내고 더욱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 속도에 맞춰 뛰며 다시 떠드니…….
“나중에 자세히 좀 얘기해 주게! 잠깐 만져 봐도 되나?”
“아, 이 미친놈아! 내 몸에 손대지 마!”
들려가는 가몬티의 등 뒤에서 대롱거리는 꼬갈모자도 손을 내미는 마법사에게 으르렁거렸다.
그 광경이 투란을 비롯한 베즐 팀 멤버 모두를 헛웃음 짓게 했다.
마법사는 방금 지팡이를 로브를 잡은 쪽 겨드랑이로 옮겨 한 손을 자유롭게 하고서 모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리 달리면서, 몬스터에게 쫓기는 이 상황에서 저런 탐구심을 발휘하는 태도를 대체 뭐라 해야 하는가?
정말 고깔모자 말처럼 딱 미친놈으로만 보이잖는가!
과연 마법사의 일행은 이런 모습을 어찌 생각할 것인가?
“그만해!”
“저 일발조루(一發早漏)가 진짜!”
“쓸모없이 나대지 말라고!”
“지금 그러고 싶냐!”
가까이 거리를 좁히면서 욕을 하고 있었다.
같은 일행조차 치를 떠는 광경에 이쪽에서는 더욱 헛웃음이 짙어질 수밖에 없는데, 테란이 그 욕설 중의 한마디를 짚어 묻는다.
“일발조루? 저 마법사가 그 일발조루야?”
고깔모자에 손 내밀던 마법사가 홱 돌아보며 으르렁거린다.
“누가……!”
그 일행이 바로 그 말을 자르면서 떠든다.
“봤잖아, 한 방 날리고 바로 저러고 도망치잖아!”
“아랫도리 불기둥 얘기가 아니라고, 일발조루!”
“당신 마력 얘기잖아!”
입술을 엄청 삐쭉거렸지만, 마법사는 다시 앞을 보고 내달렸다.
어느새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는데, 달리는 속도는 전혀 줄지 않고 않는 채로 일행은 하나로 엮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구덩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