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99)
“일어나라, 돌의 방패여어!”
고깔모자의 주문은 기묘한 울림을 퍼뜨렸다.
다들 급하게 구덩이 안으로 들어선 다음이었다.
곧바로 귀에 들려온 소리와 겹쳐져서 살갗을 살짝 누르고 가는 압력이 뭔가 속삭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싶은 순간, 구덩이의 외곽을 따라 돌이 솟아올랐다. 넓적하고 두꺼운 돌의 벽은 ‘어?’ 하는 순간에 구덩이를 휘둘러 감은 돔 형태를 구축(構築)했다. 한복판, 천장의 중심에 1미터 너비의 네모진 구멍만이 밖으로 통하는 출입구로 남겨진 채 사방이 봉쇄된 것이다.
“우어!”
“와앗!”
“대단한데!”
“무슨 모자에 이런 마법을 심어 놨대?”
마법사의 일행이 모두 놀란 소리를 흘렸다.
바로 안을 울리는 메아리가 윙윙거리면서 놀라움을 한층 더 강조하는 듯했다.
투란은 저 일행이 고깔모자가 독자적으로 마법을 펼쳤다기보다는 모자에 이런 마법이 각인되어 있다가 발동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법사가 말하는 모자에 바로 호기심을 드러냈던 까닭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것일까? 모자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 척하는 것일까?
마법사는 분명히 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멍청이들이…… 이봐, 모자! 이제 여유가…….”
한시름 놨으니까 다시 뭔가 물으려는 마법사의 말은 베즐이 싹둑 잘랐다.
“벽 두께는?”
고깔모자도 마법사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살짝 으스대는 소리로 대답한다.
“얇은 곳이 2미터는 된다. 널찍한 곳은 3미터가 기본이지. 걱정 마라. 바닥도 처리되었으니까. 머리 위에 보이는 구멍으로 쳐들어오는 것만 상대하면 돼! 한쪽으로 모여 있다가 밀어붙이면 화살이나 투창이 빗나가도 상관없으니까…… 어때, 마음에 드나?”
“좋군요! 멋져요!”
테란이 벽을 두드리며 ‘진짜?’라고 확인하려드는 베즐을 대신해서 얼른 고깔모자를 칭찬하며 감탄하는 소리를 내줬다.
그사이에 칼잡이와 활잡이, 두 카엘이 윗편의 구멍을 노려보는 자세로 경계했고 나머지 베즐 팀 멤버들이 빠르게 구멍 주변에 작은 갈고리를 걸고 그물을 펼쳐 막아 버렸다. 뭐가 들어오려 하든, 천장의 구멍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그물부터 거쳐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테란은 베즐을 한쪽으로 당기고, 가몬티와 마법사 일행에게도 손짓으로 있어야 할 곳을 알려 줬다. 한쪽 벽을 등지고, 비워 둔 맞은편을 바라보는 채로 천장으로부터의 침입자를 대비하는 위치였다.
마법사가 살짝 툴툴거리고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 일행은 군소리 없이 재빠르게 테란의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뭘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몬스터 헌터에게 뭐 하냐고 묻기보다는 그 지휘를 신속하게 따르는 선택을 한 셈이었다. 덤으로 마법사의 옷자락도 당기고 있었으니, 불만스러운 표정이기는 해도 마법사 역시 그 움직임에 합류하고 있었다.
가몬티와 함께 그 틈새에 낀 채로 투란은 구덩이의 넓이, 천장의 높이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꽤 깔끔한데? 전부 나란히 서도 될 정도잖아? 천장도 높고…… 대체 무슨 마법이었지?’
―엘리멘탈 컨트롤, 그 계통의 마법일 거야. 흙을 소재로 돌의 형상을 빚어내는 거였으니까. 상당히 자기 취향대로 재구성한 마법으로 보였다. 아마 독자적인 계파를 이룬 마법사였을 거다. 저 모자가 사람이었을 때는…….
‘그래?’
투란은 돔의 원주를 따라 나란히 늘어선 일행을 흘깃 둘러봤다.
대강 봐도 스물을 넘는 숫자가 선 채로 천장을 노려보면서 각자의 도구를 준비한 채로 기다리는데…….
끄엑! 끄웅!
괴상한 소리와 함게 악어새 몇 마리가 한꺼번에 구멍을 넘었다.
그물이 아래로 축 쳐졌고, 악어새 몇 마리는 그물주머니에 담긴 꼴이 되었다.
그 순간, 테란이 커다란 뭔가를 휘둘렀고, 그물 째로 악어새를 바닥에 찍어 버렸다.
퍼석.
살과 뼈가 한꺼번에 으깨지는 광경이었다.
핏물과 살점이 그물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사이, 베즐 팀 멤버들이 재빠르게 그물을 잡고 당기다가 놨다. 늘어졌던 그물이 무슨 요술처럼 팽팽해지면서 다시 구멍을 막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물에 걸려 있던 악어새의 핏덩이 조각들은 구멍 너머로 날려졌고, 남은 것은 끈적해 보이는 바닥의 흔적뿐이었다.
“어?”
누군가 놀란 소리를 냈고…….
“뭐야, 늘어난 게 다시 줄었잖아?”
“그냥 그물이 아니었어?”
“마법인가?”
“몬스터 소재로 만든 도구……?”
연이어 그물의 정체에 대해서 의아해하는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테란은 대답하지 않았고, 베즐 팀의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럴 틈을 주지 않고 구멍을 넘어 그물에 대롱거리는 몰골로 담긴 랩티드 때문이었다.
다시 테란이 커다란 것을 휘둘렀고, 투란은 그 모양을 한번 더 확인하면서 어이없어했다.
‘뭐야, 저거!’
이전에 성기사인가 성전사인가를 날려 보냈던, 켈타 마을에서 봤던 망치와 모양이 완전히 달랐다. 지금 꺼내는 것은 무슨 둥글고 굵은 기둥 토막처럼 보이는데, 손잡이 형태만은 망치 때와 닮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망치랑 전혀 다르잖은가!
뻐억! 빠각!
랩티드가 순식간에 잘게 짓눌리면서 뼈마디를 으스러뜨리는 음향을 흘렸다.
그물 아래로 피와 살점이 촤악 뿜어졌고, 베즐 팀은 그물을 당겨 튕겨 올려서 으스러진 랩티드를 천장 구멍 너머로 날려 보냈다.
그 광경에 그물에 관심을 보이던 마법사 일행의 눈이 휘익 돌아가면서 테란의 새로운 망치…… 기둥 같은 몽둥이를 향했다. 처음 휘두를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랩티드를 뭉개는 광경은 새삼스럽게 충격이란 듯!
―임팩트 효과를 집중시키는 몽둥이인가…… 희한하구먼.
‘응? 충격을 한점에 모은다고? 골고루 짓이겨서 퍼지게 했잖아?’
투란은 의문을 품었다.
―그러니까 희한하지. 원래 충격파를 일으키는 마법의 효과라면 타격점부터 으스러뜨려서 번지게 하는 거잖아. 그런데 저건 치는 순간에 맞은 개체의 전신(全身)에 동일한 충격을 준다. 저번 망치와 닮았으면서도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오지. 그게 전신으로 충격을 퍼뜨리면서 그 파동에 타격한 개체를 공진(共振)시켜 본래의 형태가 유지되고…… 어떤 면에서는 파동을 이용해 타격한 개체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한다면, 이건 파동과 개체가 완전히 별리(別離)된 상태를 유지해서 파괴하거든.
‘그니까 저먼 네모난 망치는 안전하고 이 동글동글한 굵은 몽둥이는 위험하다?’
약간 복잡한 설명을 투란은 간단하게 요약하며 되물었다.
그사이에 다시 한 마리 랩티드가 악어새 몇 마리를 입에 물고 그물 안으로 떨궈졌고, 테란의 몽둥이질에 핏덩이가 되어서 바닥에 잔해를 흘린 채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테란이 저쪽 비워 둔 쪽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른 탓에 핏방울 더미가 저쪽 벽에도 자욱하게 뿌려졌다는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면, 하루 내내 저렇게 구멍 너머로 들어오는 것을 후려치고 튕겨 낼 수 있을 듯이 보이는데…….
“안 돼. 테러사우루스까지는 무리야.”
마법사가 갑작스럽게, 아주 냉정한 말을 하고 있었다.
테란과 팀 멤버들이 천장 구멍이 집중하는 사이, 베즐이 한발 빼면서 마법사에게 묻는다.
“무슨 소리요?”
마법사는 흘깃 고깔모자를 향해 눈짓하면서, 자신을 향해 표정을 구기는 자기 일행을 외면하는 듯이 목소리를 낮춰 대답한다.
“모자에게 물어봐. 테러사우루스가 팔을 펼쳤을 때의 괴력까지 버틸 수 있냐고, 이 마법의 석벽(石壁)이 말이야.”
바로 베즐의 눈길이 가몬티를, 가몬티의 어깨에 걸쳐진 꼴인 고깔모자를 향했다.
가몬티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곁에 있던 투란이 슬슬 옆으로 발을 떼면서 구경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이 고깔모자가 말한다.
“마력은 하찮은 수준인데 보는 눈은 꽤 좋구먼? 맞아, 이 석벽은 등짐 푼 놈의 괴력까지 막아 내기에는 부족해. 그 주먹질이면 기껏해야 두어 번? 세 번은 넘기지 못한 채로 부서질 거야.”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일행이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 베즐은 눈을 번뜩이면서 다시 묻는다.
“한 번은 확실히 막는다는 거군요? 이 돌덩이…… 석벽을 얼마나 더 세울 수 있죠? 이렇게 말고 간격을 두고 장애물처럼 몇 개나 더 깔 수 있어요?”
투란은 리더의 이 물음에 베즐 팀의 분위기가 살짝 위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몬티도 이를 느낀 듯이 낮게 휘파람을 불듯이 숨을 내쉬는데…….
“투지가 좋구먼! 하지만 저런 숫자를 상대로 그런 무리한 짓은 할 필요가 없어. 테러사우루스는 다른 곳으로 유도할 수 있으니까. 당장 저 숫자와 무리해서 싸우려 하지 말라고. 그런 거는 다른 수가 없을 때나 시도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자고. 괜찮지?”
고깔모자가 다독이는 말을 하고 있었다.
베즐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한숨처럼 대답한다.
“방법이 있어요?”
“있어. 테러사우루스는 뜨거운 불빛에 꽤 민감한 녀석들이거든. 뭐가 따끔하고 뜨겁게 건드리면 앞뒤 따지지 않고 성질내면서 쫓아가지! 몇 킬로이든, 몇십 킬로이든 말이야! 그러니까 이걸 선물해 주면 되는 거야! 오라, 불나비여! 나의 귀여운 날개여, 가라!”
간략한 설명과 함께 고깔모자의 마법이 속삭여졌다.
빛의 가닥이 바로 베즐 앞에서 꼬이며 드러났고, 불꽃이 이뤄졌다.
기묘한 울림이 여운처럼 번지고, 불꽃은 나비의 형태를 갖췄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한꺼번에 수십 마리는 되는 불꽃 나비였다.
군무(群舞)를 추듯 맴돌며 잠깐 날개를 파닥이던 불꽃의 나비는 떼가 곧 가늘고 긴 끈을 만들듯이 꼬이며 엉겼고 벽을 타고 번지면서 천장 구멍으로 흘러나갔다.
그 광경에 활잡이 카엘이 중얼거린다.
“그물을 잘도 피했네?”
고깔모자가 피식 하는 말투로 대꾸한다.
“벌레잡이까지 겸한 그물인 줄 모를까 봐! 시간을 좀 들이면 그냥 벽을 투과해서 나갈 수도 있었어. 뭐, 그렇게 여유롭지 않으니까…… 아무튼! 테러사우루스 패거리는 다른 곳으로 유도해도 랩티드나 저 악어새 떼는 아니거든? 열심히 싸워 봐!”
칼잡이 카엘이 투덜거린다.
“이슬 방울 스며드는 것도 안 놓친다더니…… 그물 품질이 약속한 대로가 아니잖아. 그 먼 길을 돌아가서 따져야 하나?”
끄윽! 크릉!
몇 마리 악어새와 두 마리 정도의 랩티드가 뒤엉겨서 그물 안으로 떨어졌다.
빠아악!
테란이 가차 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잡담은 나중에 하고! 베즐, 정신 차려!”
몽둥이질과 함께 나온 외침이 베즐을 심호흡하게 했다.
“후우, 후웃! 알았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우리가 맡고 있을 테니까, 마법사님은 마력부터 빨리 회복하고…… 그쪽들도 좀 쉬고 있어. 벽이 무너지지 않는 한은 안전할 테니까. 가몬티랑 투란도 힘을 아끼고 쉬어 둬. 다른 얘기는 좀 한가해서 여유 있을 때 하자고!”
연이어 나온 팀 리더의 지시에 베즐 팀이 덫을 활용해서 구멍을 지키고, 마법사 일행은 등을 바싹 벽에 기댄 채로 가만히 앉았다. 앉은 채로 물을 마시고, 몸을 점검하는 모습이 이럴 때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한다는 베테랑 헌터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 틈새에서 마법사는 엉거주춤하니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지만, 천장 구멍으로 꾸역꾸역 들이대다가 그물에 싸이고 짓이겨진 채 튕겨 나가는 광경을 두어 번 더 본 다음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투란은 마법사의 몸에서 희미했던 마력의 자취가 보다 명확한 흐름과 함께 두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법사가 정말로 저 몽둥이질이 터뜨리는 섬뜩한 소리를 이겨 내고 마력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니…….
‘와, 대단하네? 엄청 신경 쓰일 텐데!’
―초보도 아니고 미숙한 자도 아니다. 당장 죽게 생겼어도 마음먹으면 저 정도 집중은 할 수 있어야 마법사지!
‘그래도 엄청 신경 쓰는 눈치였잖아. 그런데 저렇게 하네?’
―그야 이 상황이 많이 불안하니까. 목숨을 맡길까 말까 한 번 더 고려해 봐야지. 상아탑의 마법사랑 많이 다른 성향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몫하는 마법사다.
‘흐흠…… 일단 나도 좀 쉬어야겠는데…… 밖은 어때? 쉬어도 되는 거야?’
마법사의 태도에 한번 더 감탄하면서도 투란은 고깔모자의 시도가 어떤 상황으로 진행되는가를 확인하려 했다. 드라고니아가 이런 투란의 태도에 새삼 피식거리는 말투로 대답한다.
―신중하구먼? 걱정할 일은 없다. 어차피 테라트와 에어로를 이용하고 있던 중이니까. 거기에 불나비가 가세해서 테러사우루스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부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다시 뭉쳐서 무리 짓기 힘들 정도로 따로따로 말이지.
투란은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가만히 베즐 팀을 바라보면서 숨을 고르고 편안한 몸가짐을 갖췄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 최대한 몸을 느슨하게 하고 쉬는 자세였다.
가몬티도 투란의 곁에 앉은 채였고, 살짝 의아한 듯 묻고 있었다.
“침착하구나, 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