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01)
Chapter 121. 하이랜드, 질주
준비는 철저히 했다.
랩티드의 다리 한 쌍과 가몬티를 저쪽 벽에 가까이 두고 중간에 줄로 만든 울타리를 쳐 놓았고, 테란과 베즐이 울타리 양쪽에서 경계를 서는 위치를 잡았다. 칼잡이 카엘은 천장 구멍 쪽과 이 울타리 양쪽을 지켜보고, 나머지 베즐 팀 멤버들은 이제 많이 뜸해진 천장 쪽을 만약을 대비해서 경계하며 상황에 따라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투란은 마법사 일행과 함께 석벽에 기댄 채로 가몬티가 저 울타리 너머에서 자신을 가다듬는 광경을 보며, 한 손으로 고깔모자를 잡고 저쪽을 향하게 하는 중이었다. 가몬티가 몬스터의 형상을 드러낼 때 제정신이 아니면 괴롭다는 고깔모자의 요청으로 잠시 대신 맡아 두는 셈이었다. 투란이 보기에 고깔모자는 왠지 가몬티가 힘겨워하는 것을 떨어진 곳에서 마음껏 즐기려는 게 아닌가 싶기는 했는데…….
“가몬티, 자신이 뭘 가지고 있는지 이제까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잊지 마라. 싸우려는 의지가 곧 네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나름대로 응원하는 척하는 소리를 열심히 내주고 있기는 했다.
물론 투란에게는 어리둥절하고 의아하게 하는 얘기였다.
‘이게 뭔 소리야? 싸우려는 의지? 힘? 이 모자, 뭐라는 거지?’
―글쎄? 지켜봐야 알 것 같군.
드라고니아도 갸웃했다.
몬스터 로드의 의지는 본능을 따라 일어나는 폭동을 억누르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대부분 그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되니까. 마음 한구석으로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을 해도,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몬스터의 성향에 따라 날뛰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주변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 바로 폭동이고, 광란이잖은가?
그러니 강한 의지보다는 어떻게든 몬스터의 성질을 억누르고 그 약점을 잡아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부적이라든가 이런저런 도구를 사용해서 효과를 본다면 아낌없이 써 줘야 하는 것이고!
한데 마법의 고깔모자는 묘하게 거슬리는 한마디, ‘의지’를 아주 깊은 의미를 담아 강조하고 있었다.
가몬티가 저쪽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를 낸다.
“알아, 닥치고 좀 있어! 어, 그러니까…… 웬만하면 죽이지 말고 미는 것으로 끝내 달라고.”
모자를 향한 말에 이어 망치를 든 테란에게 간청하는 말이 나왔다.
테란은 시원하고 단호하게 대꾸한다.
“걱정 말라니까! 잘 돌봐 준다고, 잘!”
넓적하고 네모난 망치를 보면서 한번 더 한숨을 쉬고 가몬티는 랩티드의 다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려 나간 단면을 나란히 놓고 그 살점을 짓뭉개서 겹쳐 핏물이 밴 살덩이가 서로 이어지게 하고, 피 묻는 손을 가만히 자신의 가슴에 올려놓는다.
곧 천장 너머로 멀리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가몬티의 몸에서 기묘한 느낌이 주변으로 번져 나오는 듯했다. 가몬티의 손이 랩티드의 다리, 절단면에 올려졌고…… 랩티드의 다리가 가볍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잘렸음에도 아직 달리겠다는 것처럼, 그 무릎과 발목이 꿈틀거리며 미묘하게 퍼덕대려는 듯한 광경 속에서 투명한 광채가 번졌고 다리 한 쌍이 으스러져 갔다.
다리의 형체가 너덜거리는 얇은 가죽의 조각만 남긴 채로 으스러진 다음, 가몬티는 다시 두 손을 가슴으로 옮겨 품었다.
꿀룩! 꿀럭!
가몬티의 목이 도마뱀이나 개구리의 부푼 목덜미처럼 부어올랐다가 꺼졌다.
어깨 위에서 팔뚝으로 깃털이 돋아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두 발은 사나운 새의 발톱을 뿜어냈다가 랩티드의 살갗이 되면서 굵고 널찍한 모양이 되었다가 도마뱀의 발톱 모양으로 변하기도 했다.
바닥을 긁던 가몬티의 두 손에서 손톱이 벗겨지며 거의 부러질 듯했지만, 손톱 아래에서 붉은 반점이 맺힌 회색의 걸쭉한 체액이 번져 나오며 손톱이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그 광경을 보며 마법사의 일행들이 가벼운 신음과 함께 놀란 소리를 속삭인다.
“뭘 삼킨 거야, 대체…….”
“허리에 부적이 저리 많다 싶더니!”
“부적 많으면 하급 아니었어?”
“젠장, 아무리 봐도 중급 이상의 몬스터 로드인가 본데!”
“야, 저 허리에 문신이 또 있는데!”
“어? 몬스터 엠블럼 말고 문신을 또 새겨? 그냥 문신인가?”
“안 보이던 문신이 나타났잖아, 저것도 무슨 마법 아냐?”
속삭임은 낮게 시작했지만 그 당혹스러움을 바탕으로 점점 더 커지는 듯했다.
투란은 입은 아물고 있기는 했지만 마법사 일행들이 떠드는 말에 완전히 공감하는 기분이었다.
‘하피만 보이더니, 대체 뭐야! 완전 내숭이었어!’
가몬티가 보이는 몬스터의 조각들, 그건 전부 다른 것들이었고 다양했다.
목을 부풀린 저 모양, 손발에 잠깐씩 드러나는 이상한 체액, 하피의 깃털이나 랩티드의 가죽도 섞여 있지만 이제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몬스터의 파편이 이모저모로 그 형상을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지적한 대로, 가몬티의 허리를 휘감는 저 기이한 문신…… 몬스터 엠블럼과 전혀 다른 느낌의 문신은 도대체 뭔지 투란은 감을 잡기도 힘들었다. 어딘가 짙게 사제가 풍기는 분위기랑 닮기도 했는데, 몬스터 로드에게서 왜 그런 분위기를 띤 문신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홀랑 웃통을 벗어 드러냈던 가몬티에게서 여태 보이지 않던 문신이기도 해서, 더욱 판별할 수 없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대로라면 ‘저거 너무 수상하다, 일단 죽여 놓자!’라고 누가 외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될 듯한데…….
“싸워라, 가몬티! 싸우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한, 투신(鬪神)이 너를 가호한다! 네 몸에 새겨진 투신의 징표(徵標)를 느껴! 투지야말로 너를 가호하는 방패, 너의 힘이다!”
고깔모자가 투란의 손에 들린 채로 낭랑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의미가 투란을 흠칫하게 했고, 마법사 일행 중의 누군가가 ‘어?’ 하는 놀란 소리와 함께 떠들게 했다.
“투신의……? 그거 바로크 왕국에서 겁나 센 몬스터 로드들이 몸에 새긴다는 거 아냐? 잘못되면 완전 미친놈 된다던데!”
순간, 마법사 일행이 모두 무기를 손에 쥐었다.
마법사는 여전히 깊은 명상에 잠긴 것처럼 꿈쩍도 않았지만, 그 일행은 혹시나 모를 위험에 전부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한데 멍하니 놀라 구경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 분위기가 전해진 듯, 가몬티가 고개를 홱 돌리며 목을 잔뜩 부풀렸다.
“가몬티! 너 자신과 싸워! 다른 이들에게 신경 쓰지 말……!”
모자의 외침이 나오는 순간, 가몬티의 입에서도 뭔가가 뿜어졌다.
녹색 안개로 이뤄진 화살이 뭉클거리는 자취를 남기며 울타리를 관통할 것처럼 쏘아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울타리에 여린 빛이 엉기면서 가몬티가 쏘아 낸 화살의 모양이 으스러졌고 녹색의 안개가 잠깐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 여린 빛도 덩달아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처럼 옮겨지는데, 베즐이 울타리를 이룬 줄의 한쪽을 단단히 쥐고 있는 손을 환하게 비추는 듯했다.
―호오? 솔리드 포톤 베일을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군?
드라고니아가 재미있어하는 사이 베즐의 목소리가 울린다.
“정신 차려! 팀 리더가 말하잖아! 팀 멤버라면 지시에 따른다며! 날개와 다리를 잃지 마! 이건 중요한 임무라고! 가몬티이!”
가몬티가 울타리에 달려들고 있었다.
뭔가 듣기 싫다는 듯, 귀찮으니 다 죽이겠다는 듯한 섬뜩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몬스터 로드의 돌격이었다.
뻐엉!
테란의 망치가 울타리를 돌파하려고 들러붙은 가몬티를 후려쳐서 저쪽 석벽 아래로 처박히게 했다. 그 충격이 굉장히 세게 석벽과 바닥을 울렸고…….
“주, 죽은 거 아냐?”
“저러고 살 수 있어?”
위기를 느끼고 무기를 잡았던 마법사 일행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테란을 흘깃거리면서 가몬티가 죽었다고 여기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말대로 가몬티는 이상하게 굽어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면서 바닥에서 엉금거리며 겨우 기어 다니는 모습이었고, 세찬 기침과 함께 입에서는 핏물도 게워 내는 것이 아직 죽지 않았어도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에 고깔모자가 투란의 손아귀에서 그 삐죽한 꼭지를 비비 꼬아 돌리며 투란을 보는 듯한 모양이 되더니 묻는다.
“야, 안 죽는다며!”
“안 죽어요, 아마도? 테란, 안 죽죠?”
왠지 쑥쑥 자라나는 듯한 민망함 속에서 투란은 테란에게 간절하게 묻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고깔모자가 파닥대면서 다시 꼬인 모양을 풀며 묻는 소리를 낸다.
“진짜 안 죽는 거지? 어이!”
연이은 물음에 테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테란은 죽을 듯이 허우적대다가 갑작스럽게 튀어오르며 다시 빛을 머금은 울타리로 달려드는 가몬티를 향해 망치질부터 했다! 다시 가몬티가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저쪽에 처박혀서 아까보다 더 망가진 몰골로 피를 게워 내는 사이에 테란의 대답이 나온다.
“보다시피, 안 죽잖아?”
투란이 황당해서 ‘엥?’ 하는 소리를 냈고, 고깔모자도 동감한다는 듯이 외친다.
“죽일 작정이었냐! 안 죽어서 섭섭하다는 그 말투는 뭐야!”
테란은 작게 투덜거리듯이 대꾸한다.
“그러니까 죽일 작정으로 패도 이 망치로는 안 죽는다니까! 뭐, 좀 다치기는 하겠지만…….”
“곧 죽을 정도로 만들지 말라고!”
고깔모자가 불평했다.
다들 자신도 모르게 테란의 말투를 거북하게 여기며 이런 불평에 동참하듯이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는데, 베즐이 무겁게 외친다.
“가몬티! 사람이란 것을 잊으면 진짜 죽는다! 정신 차려! 이겨 내라고!”
투란이 ‘헐?’ 하는 소리를 냈고, 고깔모자가 화들짝 놀란 소리를 낸다.
“뭐? 그거 죽일 수도 있는 거였냐! 야, 가몬티! 얘들 진짜로 널 죽일 수도 있어! 웬만하면 정신 좀 차려! 투신의 징표에 집중하라고! 투지를 끌어올리란 말이야!”
이 소리가 닿았는지, 가몬티의 배에 드러난 문신…… 투신의 징표가 꿈틀거리면서 배꼽 양쪽으로 두 눈을 뜬 듯한 모양이 되었다. 그 눈가는 그물처럼 번지며 가몬티의 허리에 넓게 펼쳐지며 감는 것이 마치 벨트를 그린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 가몬티가 꿈틀거리며 뒹굴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부들거리는 모습이고 힘겨운 듯했지만, 가몬티는 두 손을 꽉 마주 잡고…… 붉은 반점의 회색이 무슨 엉겨 붙어 두 팔을 묶는 듯한 모양을 만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한 방 더…… 부탁…….”
다음 순간, 부들거리며 겨우 서 있는 듯했던 가몬티의 두 다리가 바람처럼 휘저어졌고 울타리를 향해 돌진했다.
테란은 가차 없이 그 돌진을 후려갈겼다.
뻐어억!
가몬티가 다시 등짝부터 저편에 꽂혀 뒹구는데…….
“방금, 때려 달란 거였어?”
“저걸 또 맞고 싶었다고!”
“아, 역시 미친놈이었…….”
“맞는 걸 즐기는 타입?”
가만히 듣고 있던 투란이 슬쩍 고깔모자를 얼굴 곁으로 당겨 귓속말하듯이 속삭여 봤다.
“그래요? 가몬티…… 맞으면 행복해해요?”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저놈의 성벽(性癖)이 저런 거였나?”
고깔모자도 많이 당황한 듯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분위기가 어이없다는 듯, 투란에게 으르렁거린다.
―뭔 헛소리야! 몬스터의 본능을 억제하는 데 저 충격이 도움이 되니까 한 말이잖아! 딴 놈은 몰라도 넌 알면서 왜 그래? 분위기 타서 헛소리하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알긴 뭘 알아! 처맞고 한 대 더 때려 달라잖아! 뭘 어떻게 봐도 미친 거 맞구먼!’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속닥거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맴도는 사이, 베즐이 목청을 높인다.
“가몬티, 정신 차렸냐?”
문득 모두의 눈길이 가몬티에게 모여들었다.
어기적거리는 몸짓으로 가몬티는 일어나 앉고 있는데, 아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뒤죽박죽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한 채로 허우적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지쳤지만 아주 침착하게 자신을 가누며 똑바로 앉아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 정신 차렸어. 그 망치…… 꽤 좋구먼. 몬스터를 화끈하게 겁주는데…… 다음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
어느새 실실 웃으면서 나오는 가몬티의 말이었다.
베즐은 그 여유로운 태도에 다른 사람처럼 안도하는 대신에 조금 더 날이 선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묻는다.
“날개와 다리는? 둘 다 쓸 수 있어?”
가몬티가 깊은숨을 몰아 내쉬면서 자신을 다시 되새기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어, 잃은 것 없어. 이렇게 화끈하게 길들인 적은 없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베즐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활잡이 카엘이 대답한다.
“화끈하고 빨랐어. 아직 두어 시간도 안 지났거든.”
가몬티가 흠칫 놀랐다.
“그렇게 짧았어?”
고깔모자가 다소 안도했다는 듯, 다소 삐뚤어진 말투로 말한다.
“최단 기록이구먼?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잘돼도 사나흘 걸리던 녀석이 두어 시간 동안 발광하다 끝냈으니 말이야.”
“그렇네요.”
가몬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