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02)
“저렇게 빨리 길들여지나?”
“부적이 많아서 그런 거 아냐?”
“좋은 부적 잔뜩 갖고도 일 년 넘게 고생한 녀석도 있는데!”
“부적이 아니라 능력이겠지.”
마법사 일행이 조금 멍하니, 나란히 벽에 기대앉은 채로 가몬티의 상태에 대해서 두런두런 떠들고 있었다. 그사이에 가몬티는 차림새를 정리하고 투란에게서 고깔모자를 받아 들고 앉아서는 물통을 열어 입안에 쏟아붓고 있었다.
베즐은 그런 가몬티를 눈가로 지켜보면서 팀에게 새로운 지시를 하니…….
“적당히 막아.”
테란을 중심으로 천장의 구멍에 덧댄 그물을 이리저리 다 함께 손질했다. 몬스터의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그물 아래에 새로운 천이 덧대졌고, 구멍에서 훤히 쏟아지는 빛이 가려지며 안팎이 격리되었다. 그다음에 베즐 팀 멤버들이 작은 횃불을 켰고, 석벽 근처 이곳저곳에 꽂아 둬서 밝혔다.
상황이 그럭저럭 정리된 다음, 베즐 팀이 석벽에 붙어 앉으며 겨우 휴식하는 광경을 보면서 마법사 일행은 슬그머니 일어나 구멍 아래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경계를 교대하는 태세를 갖췄다.
마법사가 주변을 돌아보며 일어난 것은 다들 한참 쉬고 난 다음이었다.
마법사의 일행은 천장 구멍을 경계했지만 베즐 팀이 꽤 잘 꾸며 막아 놓은 탓인지 새로 머리통을 들이대거나 날아드는 몬스터는 없어서 긴장한 채로 휴식한 듯한 분위기를 띤 채였다.
마법사는 그런 자기 일행을 주욱 둘러보고 베즐 팀을 살피다가 문득 투란에게 눈길을 보내며 입을 연다.
“오랜만에 보는군?”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에? 네? 오랜만?”
이 마법사를 어디서 만났던가?
투란이 전혀 모르는 낯빛으로 눈을 껌벅이면서 마법사를 다시 훑어보면서 기억을 더듬으려 하니, 마법사가 피식 웃고 말한다.
“스펫의 가게에서 봤지. 뭐, 자네는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할 거야. 바쁘게 왔다 바쁘게 갔으니까. 나야 느긋하게 물건을 둘러보고 있었으니까…… 북쪽 성벽에 혼자 들락이는 마수 사냥꾼이라니 호기심을 품을 만하잖나?”
“그, 그런가요?”
투란은 맹하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마법사는 그런 투란을 재미있다는 듯이 잠깐 바라보다가 베즐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묻는다.
“정리된 건가? 이제 이야기하기에 적당해졌나?”
베즐이 대답 대신에 되묻는 소리를 꺼낸다.
“이제 다시 마법을 쓸 수 있는 겁니까? 그거, 한 방에 덩치를 꿰뚫은 거 말이에요.”
마법사가 뭐라 하기 전에 그 일행 몇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하루 안 지났잖아?”
“그럼 안 되겠지.”
“일발조루잖아. 될 리가…….”
마법사는 베즐의 물음보다 이런 일행의 작은 목소리에 먼저 반응했다.
“야! 그건 엄청나게 센 거니까 그런 거잖아! 자잘한 보조 마법은 충분하거든? 기껏 마법 잔뜩 걸어 줬더니 센 거 여러 번 못 쓴다고 자꾸 그럴 거냐! 애초에 내 말대로 재빨리 돌아갔으면 그런 위험도 겪지 않았을 거잖아!”
징징거리는 듯하지만 목청을 높여 으르렁대는 마법사의 말에 그 일행은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듣지 않는 척하며 딴짓하는 시늉을 했다. 덕분에 마법사가 한층 더 성질을 내려는 찰나…….
“일발조루 마법사님, 그러니까…….”
베즐이 또 뭔가 묻겠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더욱 성난 표정으로 마법사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베즐에게 으르렁거린다.
“이봐! 자넨 또 왜 그래! 나도 멀쩡한 이름이 있다고! 그런 사실과 다른 호칭으로 부르지 말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이름이 뭔데요?”
불쑥 묻는 소리는 투란이 꺼냈다.
제대로 이야기를 잇지 못해 조금 곤혹스러워하던 베즐도 ‘음?’ 하면서 슬쩍 팀 멤버들을 둘러봤다. 혹시 누가 ‘일발조루’란 별명으로 유명한 이 마법사의 이름을 아는가 말없이 묻는 것인데, 다들 ‘어?’ 하며 다 같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떠도는 소문을 이리저리 듣다 보니 어쩌다 듣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고 본명이 뭔가는 모른다는 것!
한데 마법사 일행 중에서도 ‘어? 그러고 보니 이름이?’라고 두어 명은 의아해하잖는가!
이 분위기는 결국 마법사를 지치게 했으니…….
“야, 이…… 어으!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내 이름은 산돌프! 산돌프니까, 마법사 산돌프 님이라고 부르든가 그냥 마법사님이라고 부르든가!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산돌프라고 불러!”
포기했다는 듯, 약간 징징대는 말투로 이름을 밝히고 있었다.
베즐이 바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겁게, 장난칠 때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듯한 신중한 말투로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산돌프 마법사, 테러사우루스 한 마리를 노렸을 때 말인데요. 그 한 마리 말고는 감지하지 못한 겁니까?”
“그랬지. 두 마리째가 있는 줄 알았다면 저 녀석들도 유인해서 잡자는 소리 따위는 아예 하질 않았을 거야. 한 마리인 줄 알고 한 방 제대로 먹이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건데…… 자네들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지도 몰라.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제대로 고맙단 말도 못 했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산돌프가 한숨과 함께 말하다가 문득 자기 일행을 노려보고는 베즐 팀을 둘러보면서 인사를 했다. 꽤 새삼스러웠고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기는 했지만, 산돌프의 일행은 쭈뼛거리는 태도로 저마다 한마디씩 베즐 팀 쪽으로 건네기 시작했다.
“어, 정말 고마웠어.”
“이래저래 많이 고마워.”
“음, 다음에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
투란은 입꼬리를 실룩이며 이 광경을 바라봤다.
인사하는 쪽이나 인사받는 쪽이나 뭔가 어색해하는 것이 조금 묘해서, 웃음을 흘리게 하니!
베즐이 그 어색함을 저 멀리 날려 보내겠다는 듯…….
“어, 그러니까!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온 놈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는 거죠?”
다시 묻던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산돌프도 이번에는 눈매를 좁히면서 신중하게 대답을 한다.
“그래…… 테러사우루스가 땅속에 숨는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아예 뒤져 볼 생각도 못 했지. 우리 정말 테러사우루스랑 만난 거 맞나? 아주 닮은 다른 종의 몬스터가 아닌가?”
“테러사우루스 맞아요. 땅속에는 숨을 능력이 있는 것도 맞고 말이죠. 단지…… 땅속이 아니라 늪 속에 숨어 있다 튀어나온다고 알려졌을 뿐이에요. 원래 늪 근처에서만 살기도 하니까, 늪에서 벗어나 이런 고원(高原) 땅거죽 아래 숨었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못 하죠.”
테란이 산돌프의 의문에 답하고 있었다.
산돌프가 ‘그래?’라고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베즐을 향해 묻는다.
“이제 어쩔 건가?”
간신히 목숨을 구했고, 나름대로 안전한 구멍 속에 숨기도 했다.
이대로 몬스터가 멀리 가서 안전할 때까지 버틸 것인가, 아니면 몬스터가 근처에 없다 여겨질 때 재빨리 그 행방을 파악해서 반대 방향으로 도망칠 것인가?
이런 상황을 고려한 산돌프의 물음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베즐은 잠시 뒷머리를 긁적였고, 산돌프의 일행 중 한 명이 대신 말한다.
“알드바인으로 돌아가서,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서 보고할 계획이래요. 아무래도 몬스터 램피지일 수 있으니까. 그게 이쪽 팀이 맡은 임무이기도 하고 말이죠. 우리 임무도 비슷하기는 하고…….”
산돌프가 말하는 이를 흘깃하고서 슬쩍 몸을 뒤로 빼며 넌지시 떠보는 표정과 함께 다시 말한다.
“임무라…… 길드가 부여한 임무는 완수하는 게 좋기는 하지. 하지만 목숨을 바쳐 가면서 완수해야 하나? 몬스터 램피지라면 알드바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드바인에서 먼 곳으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알드바인의 성벽이 높고 두껍다고 해도 몬스터 떼와 격전을 치러야 하잖아. 차라리 갈기산맥의 자락을 타고 움직여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거는? 그런 선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베즐이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다가 산돌프의 얼굴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베즐 팀 멤버들은 ‘음?’ 하며 갸웃하다가 리더인 베즐이 가만히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더니 따라 하듯이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산돌프, 마법사의 일행을 둘러보는데…….
“거참, 말을 꼭 저렇게 곱게 해요.”
“삐졌잖아. 일발조루라고 자꾸 놀려서.”
“삐졌어도 할 말은 아니지!”
“누굴 골리려고 하는 소리인지 궁금하네.”
그 일행이 툴툴거리면서 마법사를 험상궂은 표정을 꾸며 쳐다보고 몇 마디씩 떠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 산돌프가 피식 웃었다.
“그래, 알드바인의 골 빈 헌터답다! 몬스터를 보면 뒤돌아 도망치지 않고 악악거리면서 달려드는 게 상식인 줄 착각하는 놈들! 가는 길에 죽어도 후회는 없지? 시체는 하이랜드의 짐승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거지?”
“어, 그야…….”
“진짜 못됐어!”
“안 죽고 살 궁리부터 좀 합시다!”
웃음과 함께 험악한 소리를 하는 마법사를 향해 그 일행이 투덜거렸다.
이 상황에 투란이 ‘흐음.’ 하면서 슬쩍 가몬티를 바라봤다.
가몬티는 지친 몰골로 물을 홀짝거리다가 산돌프가 일행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슬쩍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베즐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그 팀이 짧은 순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몬티에게 랩티드의 다리를 부여했던 까닭…… 산돌프는 자신의 일행에게 그 위험을 짚어 준 것이다.
조금 늦은 듯해서 새삼스럽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산돌프와 그 일행은 베즐 팀과 함께 알드바인으로 돌아간다는 결정을 확실하게 밝힌 셈이었다.
산돌프는 그런 일행을 보며 킬킬거리는 표정을 짓다가 가몬티를 흘깃하면서 베즐에게 묻는다.
“저 친구, 날기는 하던데…… 좀 빠르게 날 수는 없나? 발은 꽤 느렸잖아?”
베즐도 가몬티를 흘깃하고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이제 빨라요. 절대로 빠를 거예요.”
“이제……?”
산돌프가 갸웃했다.
그 일행 한 명이 혀를 차며 말한다.
“아저씨 졸고 있는 사이에 랩티드 쪼개 주고 길들이게 했어요.”
“야! 졸긴 누가 졸아! 꼭 그렇게…… 잠깐, 길들였다고?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력을 회복에 집중한 것 같지는 않은데? 대체…….”
“그냥 알아들어요! 따지지 말고! 대단한 팀이고, 대단한 몬스터 로드인 걸로! 어쨌든 랩티드의 다리를 지녔으니까 엄청 빨라졌다고, 그냥 그렇게 넘기라고요!”
산돌프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잔소리하는 일행의 말에 잠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몬스터 로드가 몇 시간 만에 몬스터의 정수를 삼켜 길들였다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지만 지금 따질 때가 아니기는 했다.
“그럼, 메신저 마크가 찍힌 편지통 같은 것은 갖고 있나?”
그러나 산돌프의 물음은 또 다른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내고 있었다.
산돌프의 일행이 이에 대해서는 ‘어?’ 하며 눈만 깜박이며 무슨 말인가 잠시 모르겠다는 분위기를 띠었지만, 베즐은 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없어요. 혹시 하나 갖고 있다면…….”
“만들어 줄게.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산돌프는 간단히 말했다.
너무 간단해서 일행이 여전히 ‘뭔데?’ ‘왜?’라고 눈을 끔벅거리는데, 테란이 그 꼴을 보다가 불쑥 말한다.
“몬스터인지 몬스터 로드인지 알 게 뭐냐고 일단 쇠뇌부터 쏴 지르는 놈들 때문이지, 뭐…… 재수 없게 그 쇠뇌살에 죽더라도 편지통이 전해지기만 하면야…….”
이에 다들 곧바로 알아차린 듯했는데…….
“괜히 산 사람 죽이지 말라고!”
가몬티가 투덜거렸다.
투란은 키득거렸다.
베즐이 팀 리더로서 팀의 전멸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가몬티가 몬스터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은 전령이 될 것을 궁리했다면, 산돌프는 마법사답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짚은 것이다. 가몬티가 홀로 알드바인에 날거나 뛰어 도착했다가 몬스터로 여겨져서 맞아 죽는 경우까지! 하지만 그렇게 죽더라도 메신저의 편지통을 갖고 있다면 상황을 전달할 수는 있기는 할 테니…….
―투란, 알드바인에서 정찰로 나온 헌터 파티가 여럿 있지 않았나?
‘응? 여럿 있었지. 갑자기 왜?’
조용히 물어 오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티 내지 않고 되물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그들도 파악해 냈을 것 아닌가? 굳이 몬스터와 엮인 이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갈 필요가 있냐는 거지. 굳이 알리려 한다면, 가몬티만을 보내도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오가는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가몬티를 최후의 전령으로 여기는 것 같다만…….
‘음…… 흐음……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도 알드바인에 보고 안 할 수도 있잖아?’
―그런가…….
‘갑자기 왜 그래? 너, 알면서 물었지?’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만, 굳이 전원 목숨을 걸자고 하는 선택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인간의 선택은 가끔 그런 걸 당연히 여기는 듯하지만, 내게는 좀 이상하게 여겨지니까.
‘이상해? 음…… 너넨 전하려던 소식이 제때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일이 없어? 그러다 큰일 나거나 한 경우 말이야.’
―거의 없군. 그런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흉한 일이 벌어졌을 때라고 하지. 그럴 때에는 전하거나 말거나 상황이 바뀐 경우도 없고…….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문득 드라코눔은 대체 어떤 곳인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묻고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