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03)
편지통은 말 그대로 간단히 제작되었다.
그 과정은 보기에도 꽤 쉽고 간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돌프가 십몇 센티 정도의 짧은 막대를 꺼내더니 한쪽 귀퉁이를 툭 쳤고, 막대의 속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시작이었다. 마치 원래 대롱이었고 원래 뭔가 끼워 놓은 것을 뽑는 듯한 광경이었다. 산돌프는 대롱을 옆에 두고 빠져나온 것, 반 정도로 가늘어진 막대를 두 손으로 비비적거렸다. 가는 막대는 부스스 얇게 펼쳐지며 넓적한 가죽처럼, 팔랑거리는 나무판으로 변했다.
“여기 쓰면 돼. 아, 글 쓸 줄은 알지? 이 펜 끝을 손등에 잠깐 대고 있다가…… 아프지 않을 거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메시지를 남기는 거잖아. 피 두어 방울 뽑는 것 갖고 엄살 피우지 말라고!”
산돌프가 품에서 꺼낸 펜, 끝이 뾰족한 갈색 막대에 깃털을 장식으로 붙여 놓은 것을 베즐에게 내밀면서 하는 말이었다. 엉겁결에 받아 들면서 베즐은 이걸로 정말 손등을 찔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재촉하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장갑을 젖히고 손등의 맨살에 살짝 대 봤다. 펜 끝에 금세 핏방울이 맺혔지만 베즐의 손등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그다음에 베즐은 팀 멤버들과 의논하면서 써야 할 내용을 정했고, 바닥에 엎드린 채로 조심스럽게 옮겨 적었다. 그러는 사이에 산돌프는 작은 가죽 조각을 꺼내 대롱이 된 막대에 두르면서 편지통의 마무리를 준비했다.
베즐이 메시지를 다 쓰고 펜과 팔랑거리는 얇은 나무판을 내미니, 산돌프는 펜부터 받아서 자신의 피를 먹여 대롱에 자신의 각인을 새겼다. 베즐이 쓸 때와 달리 산돌프가 펜을 사용할 때는 묘한 마력이 움직인 듯, 각인은 꿈틀거리며 대롱 깊이 스며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에 말린 나무판이 다시 대롱 속을 채웠고, 준비한 가죽에 둘둘 말리고 단단한 매듭으로 묶였다.
메시지를 적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편지통은 이렇게 간단히 제작되었다.
그러고 나서 산돌프가 가몬티에게 이를 내밀며 말한다.
“자네가 갖고 있는 동안에는…… 살아서 갖고 있는 동안에는 마법이 발현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자네가 죽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걸 잃어버리면 마법이 바로 발현될 거야. 여기 새긴 마법은 상아탑에서 공식 지정한 코드 알람이니까, 그렇게 되면 알드바인에서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뭔지 나와서 찾아볼 거야. 그러니까 가능한 알드바인 가까이에서 잃어버리거나…… 알지?”
“살아서 잘 전하죠.”
가몬티가 구겨진 낯으로 못마땅한 기분을 잔뜩 드러낸 채로 대답했다.
마법사는 죽을 때 죽더라도 알드바인 가까이 가서 엎어져야 마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가몬티는 반드시 살아서 전하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셈이었다.
산돌프는 피식 웃었다.
“가능하면 다 같이 살아서 돌아가자고. 이 편지통은 그냥 기념으로 남게 말이야.”
베즐이 여기 바로 호응했다.
“그게 최선이죠. 자, 그러면…….”
숨을 고르는 베즐에게 다들 집중했다.
잠깐의 휴식이 끝났고, 이제 이 안전한 곳을…… 얼마나 오랫동안 안전할지 모르지만 당장은 안전한 이곳을 벗어나서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몬스터 떼가 배회하는 하이랜드를 돌파해서 귀환해야 하는 긴장감이 짙게 번지고 있었다.
너무 긴장해서 분위기가 어딘가 위험하다 싶을 정도인데…….
“대단하군. 크라프트 계열을 익힌 마법사라도 그렇게 간단히 편지통을 제작하기는 힘든데 말이야. 쉽다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어! 자네 정말 마력만 제대로 갖춘다면 상위 마법사라 할 수 있겠어!”
고깔모자가 갑작스럽게 산돌프를 칭찬하고 있었다.
바싹 긴장했다가 불쑥 터져 나온 이 소리에 다들 어깨를 툭 떨구면서 고깔모자를 바라봐야 했고, 어느 틈엔가 팽팽했던 분위기가 느슨해지고 여유롭게 변했다.
팍팍, 가몬티가 고깔모자를 두드리면서 나직하게 으르렁거린다.
“그딴 얘기를 꼭 지금 해야겠어?”
“지금 아니면? 죽은 다음에? 죽을 것처럼 굴면서 뭘 다음을 생각해?”
고깔모자도 으르렁거리며 반박했다.
다들 뭐라 해야 할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는데, 산돌프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한다.
“하하하…… 고마운 말이로군. 맞아, 죽은 다음에 칭찬 들어 봐야 뭔 소용인가! 나는 살아서 더 많은 칭찬을 듣고 싶군! 제대로 상위 마법사로 대접받고 싶으니, 반드시 살아남아서 마력을 손에 넣도록 하겠어! 하하핫, 다들 살아남자고!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잖아?”
이에 산돌프의 일행이 피식거리는 사이로 몇 마디씩 한다.
“다발조루가 되는 꿈을 꾸는 마법사라…….”
“그래도 조루냐?”
“그건 질병이니까, 마력 채워도 못 고치는 거잖아?”
웃던 산돌프가 바로 발끈해서 외친다.
“이 새끼들이! 이젠 내 아랫도리 얘기냐! 한번 보여 줄까! 내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 몸으로 한번 겪어 볼래!”
“사양하죠.”
“응, 사양할래.”
“이런 변태였어!”
툭탁대는 분위기가 짙어질 듯했다.
짜악! 어흠!
베즐이 손뼉을 치고 헛기침을 조금 크게 했다.
베즐 팀은 다 함께 한숨을 쉬면서 ‘적당히 좀 하셔.’란 소리를 웅얼거렸다.
투란은 이를 보며 키득거렸다.
드라고니아는 갸웃거리며 왜들 이러는가 의아해하는 듯했다.
베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말한다.
“일단 여기서 나가면…… 알드바인에 도착할 때까지 쉴 틈이 없을 수도 있어요. 체력 배분을 할 여유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니까…… 갖고 있는 스태미너 보충제가 있으면 미리 좀 먹어 두고, 언제라도 먹을 수 있게 준비해요.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중간에 발이 묶이거나 할 상황이 되면 가몬티, 우리 몬스터 로드만은 반드시 보낼 수 있도록…… 걸림돌 역할이 되어 몬스터의 관심을 끌고 버티야 해요. 가능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런 것이 싫다면…… 여기 남아서 상황 보다가 다른 쪽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한번 더 생각하고 결정해요. 일단 출발하고 난 다음에는…….”
잠시 베즐의 말이 멈췄다.
베즐 팀은 가만히 있었고, 산돌프는 조용히 자신의 일행을 둘러봤다.
그중 누군가가 가벼운 말투로, 하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 낸다.
“알아. 가는 길에 발목 삐기라도 하면 그냥 두고 가야지, 뭐. 남은 녀석의 사정 따위는 생각할 필요 없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일단 이 상황을 알드바인에 전해서 대비시킨다, 그렇지?”
“그렇지.”
베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돌프가 담담하게 말한다.
“출발을 당장 하지 않고 두어 시간 정도 늦춘다면, 여기 모두에게 보조할 수 있는 마법을 몇 가지 걸 수 있어. 한 이틀 정도 지속할 수 있는 마법이니까, 달려나가는 데 도움이 될 듯하네만?”
“그걸 쓴 다음에 다른 마법은 어느 정도나 쓸 수 있지요?”
베즐의 물음에 산돌프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큰 거 말고 자잘한 거는 이틀 정도 문제없이 쓸 수 있어. 원래 적은 마력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내 특기 분야거든.”
“혹시 몬스터 로드를 보조할 수 있는 마법은……?”
“그건 무리야. 몬스터 로드의 힘이 마법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여기 이 친구가 지닌 부적도 몸에 거는 마법을 대부분 차단할걸. 약물이라면 그럭저럭 먹힐지 모르지만, 이 친구에게 직접이든 간접이든 마법의 효과를 부여할 수는 없어.”
산돌프의 말에 베즐이 후욱 하고 한숨을 쉬었다.
투란은 편지통의 경우를 보며 혹시나 했던 베즐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가 들고 갈 수 있는 편지통을 만들었으니, 혹시 효과가 있는 보조 마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모습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갸웃하는 척하면서 슬쩍 묻는 소리를 흘렸다.
“모자는…… 도울 마법 없어요?”
아이처럼 작고 순수하게 흘린 물음은 곧바로 모두의 눈길이 고깔모자를 향하게 했다. 가몬티가 덤으로 눈길을 받는 듯해서 살짝 어깨를 움츠리는 사이, 고깔모자가 시원하고 당당하게 쏟아지는 눈길에 대답한다.
“바람결을 덧씌워 줄 수 있지. 몸놀림이 더 빨라지고, 평소보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을 거야. 한번 씌워지면 사흘 정도 거뜬히 유지되고 말이지. 산돌프 마법사의 주문과 충돌할 일도 없을 거야. 내 마법은 몬스터 로드에게도 통하니까! 에헴!”
“어떻게?”
산돌프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고깔모자가 챙을 펄럭이며 으쓱대는 대꾸를 한다.
“그야…… 나의 지혜가 대단하기 때문이지!”
산돌프의 표정이 구겨졌고, 그 일행은 ‘아, 역시 마법사다.’ ‘모자가 잘난 척하고 있어!’ ‘모자라도 마법사잖아.’ 따위의 소리를 흘려냈다.
가몬티가 그 분위기에 고깔모자 챙을 접고 고깔 부분을 꽉 쥐면서 말한다.
“하, 하, 하…… 이 녀석의 마법은 멀리서 결과를 불러와 덧씌운 거라 그래요. 직접 거는 마법은 하나도 없고 대부분 정령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마법의 효과를 입게 되는 거라서요.”
“아! 그런 방법이!”
산돌프가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란 소리를 냈다.
바로 고깔모자가 조여진 탓에 쥐어짜 내는 듯한 소리로 가몬티에게 짜증 낸다.
“야! 왜 가르쳐 주는 거야! 그런 거는 비전이라고, 비전! 함부로 알려 주면 안 되는 거라고 했잖아!”
가몬티는 이를 싹 무시한 채로, 마법사 이외의 모두를 둘러보면서 묻는 것처럼 말한다.
“이게 뭔 소리인지 알겠어요?”
맹하니 다들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마법사끼리 통하는 암호(暗號)냐? 은어(隱語)야?’라는 표정만 지어 보였다. 도대체 뭐가 비전이란 것인지 의아하며, 그냥 외웠다가 어디다 팔아먹을 수는 있는 건가 의심도 하는 듯햇다.
산돌프가 그 분위기를 보며 쓴웃음과 함께 말한다.
“몰랐던 것을 알아서 기분은 좋은데, 내가 쓰기에는 곤란한 방법이야.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그러니…… 괜히 딴 데 가서 입 놀리지 말고 모르는 척해. 그러면…… 베즐, 두어 시간 여유를 두고 갈 텐가 바로 갈 텐가?”
“마법의 도움을 받도록 하죠.”
베즐은 별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장 출발해서 마법의 힘을 빌리지 못한 채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잠시 출발을 늦추고 마법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결국 알드바인까지 가는 길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대강 두 시간가량이 흐르고…….
투둑, 쩌억!
석벽의 한쪽이 으깨지며 무너져 내렸다.
둥근 돔의 한쪽에서 시작된 붕괴는 곧 전체로 번져 나갔고, 구덩이를 감싼 석벽이 사라진 중심에 한쪽을 노려보는 인간들의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작은 구멍 속에 먹을 것이 있다고 노리던 몬스터 떼는 뭐가 있든 먹지 못한다는 상황을 깨닫고 멀리 사라진 다음이었고, 간혹 멀리서 흘깃거리다가 관심을 끊는 몇 마리가 얼핏 보일 뿐이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잘게 일어난 바람이 크게 휘말리며 인간들을 향해 몰려들었고, 티끌과 함께 들러붙는 듯했다.
외침은 그 순간에 터졌다.
“가자!”
베즐과 칼잡이 카엘이 선두가 되어 내달렸다.
그 뒤로 진영을 갖춘 베즐 팀이 달렸다.
산돌프와 가몬티가 진영의 중심이었고, 나머지 일행은 그 양쪽과 뒤를 맡은 채로 선두가 여는 길을 뒤따라 뛰었다.
가볍다 해도 대략 이십 이상의 인간이 발을 구르며 뛰는 기척은 멀리 퍼졌고, 거리가 꽤 있는 몬스터…… 랩티드와 악어새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렇게 뭔가 일단 쫓아 보려 하는 몬스터 떼 주변으로 불꽃의 가닥이 날아가며 불나비가 되어 팔랑거려서 그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낚았다.
그사이에 석벽을 허물고 나온 일행은 질주했고, 불나비가 사라진 다음에 몬스터 떼가 다가와 둘러봤을 때는 무너진 석벽과 빈 구덩이에 인간의 냄새만 짙게 남겨진 채였다.
마법으로 기묘하게 엮인 냄새와 자취는 근처의 몬스터가 달려가 버린 인간의 자취를 쫓는 것을 철저하게 방해했다.
그럼에도 한참을 뒤척이면서 인간의 자취를 쫓으려는 몬스터가 있기는 했다.
와르르!
땅에서 솟아난 커다란 손아귀가 그 끈질긴 몇 마리를 움켜쥐고 으스러뜨렸다.
덤으로 불끈거리는 불 구름이 자욱하게 손아귀 주변을 맴돌며, 석벽 주변에 남겨진 자취를 아예 전부 불 질러 없애기도 했다.
그리고 멀리 간 일행 속에서는…….
―테라트, 파이로가 정리를 끝냈다. 뒤에서 따라붙는 경우는 없을 거다.
‘그래? 앞은 어때?’
―어느 정도는 미리 치워 두는 게 좋아 보이기는 하다만, 티 나지 않게 하자며? 그렇다면 완전히 정리는 못 한다만?
‘완전히 할 필요 없어. 적당히, 우리 뛰는 속도를 따라붙지 못할 정도면 돼. 싸울 생각들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적당히 다리를 분지르거나 날개를 꺾어 두면 되겠군. 건조해서 아쿠아로 힘쓰기는 힘들고…… 역시 에어로와 파이로, 테라트가 움직여야겠네.
‘알아서 잘해 줘!’
투란이 시침 뚝 뗀 채로 드라고니아와 소리 없이 의논하고 있었다.
일행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큰 방해 없이 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