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04)
달리는 동안, 숨을 아끼기 위해서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기본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 침묵 속에 퍼지는 숨소리와 지나치며 눈에 들어오는 하이랜드의 상황은 일행에게 아주 심각한 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짐승과 몬스터, 미친 맹수와 괴물이 격돌하면서 난리를 떠는 광경이 몇 번이나 보였고 언덕을 넘으면 이미 끝난 싸움을 알려 주는 짐승과 몬스터의 사체(死體)가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땅을 가르고 저쪽에서 고블린 몇 마리가 튀어나와서는 뒤따라 나온 걸쭉한 액정(液晶) 상태의 슬러쉬에게 붙들려 잡아먹히는 광경도 보였다. 슬러쉬는 고블린을 잡아먹다가 햇살에 김을 모락모락 풍겨 내며 오그라들었고 다시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며 많이 보인 것은 랩티드, 그런 랩티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매드독과 매드독에게 물려서 상황 파악 못 하는 온갖 짐승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늘에는 악어새가 간간이 보였고, 그 악어새를 덮치는 사나운 새도 있었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와, 이거 꼭…….’
―산맥 깊은 곳 같군.
드라고니아도 신경이 곤두선 것처럼 동의했다.
‘그래도 좀 낫잖아?’
―보이는 녀석들이 좀 약하기는 하지.
그나마 투란에게 조금 낫다고 여겨지는 것, 나와서 설쳐 대는 몬스터가 대체로 그리 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심장을 뚫으면 죽고, 머리를 터뜨리면 죽고…… 서로 물고 뜯다가 죽기도 하니까! 죽은 다음에 주변에 불을 지르지도 않고, 뭔가 심각한 독성을 남기지도 않으니, 이모저모로 눈에 보이는 만큼만 위험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몬스터들이 목숨에 지장이 없는 안전한 놈들이라 할 수도 없기는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뭐, 깊은 곳이었다 해도 꼭 전부 강하고 괴팍하고 고약한 놈만 있는 거는 아니었잖아.’
투란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버틸 만했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생각도 열심히 했다. 이런 것들을 대체 어떻게 버텨 왔냐고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니까.
―먹잇감이 되는 녀석들이었지. 이 녀석들도 안이라면 먹잇감이 되는 정도일 테고…… 어쩌면 그래서 원래 서식지에서 하이랜드로 도망쳐 온 것인지도 모르겠군. 산맥 안에서 뭔가 기어 나와 포식을 시작했다면, 저 정도 몬스터라면 생명의 안전을 위해 도주하는 정도는 할 테니까 말이야.
‘야, 그건…… 이것들 다 정리돼도 나중에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말이잖아! 그러지 마! 괜히 무섭다고!’
―누가 무서워한다고?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집중하자! 딴생각할 때가 아니야!’
투란은 시치미 뗐다.
그러나 소리 없이 빈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멀리 보이고 스쳐 가는 몬스터, 짐승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을 가로막고, 포식하면서 다가오는 인간들을 향해 ‘어서 와, 맛있어 보이네!’라고 외치듯이 이빨을 드러내는 몬스터 무리도 있었고 달리는 인간들을 느끼자마자 쫓아오면서 함께 달리는 채로 물어뜯겠다는 짐승도 있었다.
매드독에게 물린 짐승 히엔나라든가, 늑대라든가…… 반쯤 몬스터가 된 것처럼 보이는 미친 짐승들과 그 짐승들을 노리다가 인간도 함께 노리는 악어새, 랩티드 따위도 있는 것이다.
베즐과 칼잡이 카엘이 선두에서 맞닥뜨리는 것들을 상대했고, 활잡이 카엘을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이 요격(邀擊)하고 길목을 정리하며 일행은 나아갔다. 산돌프 일행은 때로는 선두를, 때로는 후미를 견제하면서 베즐 팀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채로 어떻게든 달려나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도록 열심히 움직였다.
그런 격렬함이 조금 잦아들면 가몬티가 공중을 둘러보고 안전하다 싶으면 가끔 날아올라 언덕 너머의 상황을 보고 내려오기도 했다. 전방 정찰을 시간 들여 하기보다 바로 보이는 곳까지 본 다음에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메우는 셈이었다.
그런 일행에 섞인 채로 투란은 활을 쏘고, 가끔 칼을 휘두르면서 달렸다.
이렇게 질주해 가는 이틀 정도는 일행이 감당 못 할 정도의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그러나 질주와 함께 치러진 전투, 길을 여는 행위가 쌓는 피로와 자잘한 상처는 이틀 동안 깊고 짙게 쌓일 수밖에 없었다.
잠을 포기하고 달리면서 먹고 마시면서 최대한 빠르게 알드바인으로 귀환한다는 의무감은 일행을 계속 움직이게는 했지만, 그런 피로와 상처를 덜어 주지 못했다.
그렇게 맞이한 사흘째, 일행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맨 처음 발견한 것은 가몬티였다.
가몬티는 굽이치는 언덕 위로 먼저 날아올라 건너편의 풍경을 봤고, 보자마자 뒤로 물러서면서 달리는 일행에게 경고했다. 덕분에 일행은 언덕 위에 엎드려 살짝 고개만 내민 채로 가몬티가 발견한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먼저 봤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부분은 없기는 한데…….
“늪구렁이잖아?”
“여기가 늪지대냐, 하이랜드냐?”
“하이랜드인데 늪에서나 사는 놈이 있는 거지.”
“대체 저게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저거 늪을 벗어나면 말라비틀어지는 거 아니었어?”
“저놈 주변이 늪이 된 것 같은데?”
“늪이라고? 저거 슬러쉬 아냐?”
“슬러쉬가 늪구렁이에게 늪을 대신해 준다고? 그런 게 되는 거야?”
“고블린을 참 맛있게 먹는구먼?”
“하이랜드에서 햇살 쏘이러 나오는 고블린이 저리 많았나?”
산돌프 일행부터 베즐 팀까지 다들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하면서 지친 상태로도 불평을 해 보고 있었다.
덕분에 입 다물고 가만히 듣고 있던 투란은 어렴풋이 저 풍경이 여기서 보통은 볼 수 없다는 것, 구렁이라 불리는 몬스터가 늪이란 조건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 고블린은 하이랜드의 한낮을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 등등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알았다고 해서 딱히 뭔가 상황 돌파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없기는 했다.
그래서 투란은 소리 없이 바쁘게 드라고니아와 의논해야 했다.
‘저건 슬쩍 치울 수 없었어?’
―땅을 쪼개고 불 질러야 하는데, 보다시피 살짝 어떻게 할 정도가 아니잖아. 뭘 하든 흔적이 아주 또렷하게 남을 거다. 파이로가 날뛰었다면 이 근처가 온통 불타올라서 당분간 꺼질 일이 없었을 테고, 테라트로 지반을 흔들어 파묻었다면 저거 죽지도 않고 도로 기어 나왔을 텐데, 그러면 미리 보고 숨어 구경하는 대신에 발아래에서 튀어나오는 놈이랑 딱 마주쳤겠지. 저거랑 충돌을 피하려면 갈기산맥 쪽이든 반대쪽이든 길을 빙 돌아가는 것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땅 아래를 훌렁 뒤집어서 조그맣게 지진 난 것처럼 꾸미는 거는? 지나가는 동안만 파묻어 버릴 수는 없나? 그렇게 하면 눈치 빠르게 그냥 마구 뛸 텐데…….’
―그 정도 충격을 지반에 가하는데 그 위를 달려? 이 녀석들이 몬스터 헌터 중에서도 제법 기량이 뛰어난 편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아! 너 혼자라면 몰라도 베즐이나 다른 녀석들에게는 무리다.
‘그대로 달렸다면 알드바인까지 얼마나 남았던 거지?’
―시간으로 따진다면 대략 나흘 정도였을 거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사흘째 제대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다들 상당히 힘겨운 상태야. 아무래도 뭔가 걸리는 것이 없으니까 빈틈이라 생각하고 더 빨리 달린 것이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중간에 두어 번 발걸음을 멈출 수 있게 적당히 처리하지 않고 두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겠어.
‘음, 그랬다면 하루 전에 지나온 곳에서 아직도 버벅거리고 있었을 거잖아. 그러면 산맥에서 기어 나오는 것들이랑 저 남쪽에서 올라오는 것들 사이에 끼어 버렸을 거라면서!’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뭐, 이러나저러나 지치기는 했어도 여기까지 무사히 편히 온 것만 해도 좋은 결과였다고는 해야겠지. 앞에 좀 힘겨운 녀석이 버틴 것은 문제겠지만…… 투란, 전부 재워 놓고 몰래 처리하는 수도 있기는 하잖아?
드라고니아의 이 말은 투란을 조금 고민하게 했다.
늪구렁이, 뱀이랑 닮았지만 그 머리부터 툭툭 튀어나온 눈동자 없는 눈알은 쉬임 없이 발광(發光)하고 있었고 그 빛이 드리워진 곳에서는 하이랜드의 마른 땅을 걸쭉하게 물들이는 슬러쉬가 가득 꿈틀거리고 있었다. 햇살에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중인데도 슬러쉬는 늪구렁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그늘 아래에서, 그 반짝거리는 이상한 눈알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늪처럼 보글거리는 거품을 뿜어내며 엉겨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저 늪은 움직였다.
한곳에 고정된 지형이 아니었다.
수십 미터의 길이, 수 미터의 몸통 굵기를 자랑하는 늪구렁이의 움직임에 따라 슬러쉬가 함께 꾸물거렸고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때문에 갈라진 땅의 틈새로, 땅 아래쪽에서 도망쳐 나온 듯했던 고블린 떼가 간신히 벗어나는가 싶다가도 덮쳐 오는 슬러쉬의 늪에 휩쓸려 몰살당하고 포식당하고 있었다.
늪구렁이는 고블린을 삼킨 슬러쉬 방울을 통째로 삼키며 만찬을 즐기는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 광경에 문득 투란이 입을 열어 속삭인다.
“슬러쉬를 먹기도 하고 몸에 두르기도 하고…… 대체 뭐 하는 몬스터야…….”
가까이 있던 산돌프가 씁쓸한 말투로 이에 대답하듯 속삭여 준다.
“늪지대에서는 거의 악마라든가 신성하다고까지 불리는 놈이다. 저놈의 저 희한한 눈깔 보이지? 저 눈깔이 반짝이는 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놈의 휘하가 돼 버려. 몬스터든 짐승이든…… 하지만 슬러쉬까지 저기 걸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에? 저게 그런 눈깔이었어요? 으앗, 그럼 이렇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인간에게는 사흘 정도 걸려. 단번에 효과를 발휘하는 게 아냐.”
마법사가 투란의 놀란 말을 딱 잘랐다.
베즐이 여기에 살짝 보내 말한다.
“한번 걸리면 죽어서 데드워커가 돼도 벗어나지 못해.”
“엥? 저게 그렇게 지독한 녀석이에요!”
투란은 더 놀랐고, 얼른 소리 없이 묻기도 했다.
저것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드라고니아는 전혀 그런 부분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야, 진짜야?’
―몬스터 로드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서 사흘 동안 뭉개고 있을 리도 없잖아? 다들 대처할 줄 아는 걸로 보이는데?
‘어?’
투란은 슬쩍 옆을 봤고, 아무 걱정 없이 피곤에 찌든 듯한 모습만 가득한 것을 확인한 다음에 물었다.
“그렇게 지독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며칠 버티다가 저거한테 홀려서 해롱해롱할 작정은 아니잖아요?”
“응? 그런 걱정은 별로…….”
베즐이 무심결에 대꾸하려 하는데…….
“으아, 생각만 해도 무섭잖아!”
“거기 걸려서 우리끼리 싸움 나면 어쩌지?”
“으으, 여기까지 와서 저런 끔찍한 놈한테 걸리다니!”
산돌프의 일행이 갑작스럽게 투란을 보면서, 그야말로 반짝거리는 눈길로 몇 마디씩 하고 있잖은가! 베즐 팀은 그 꼴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가몬티는 푸풋 하면서 웃는 소리까지 냈다.
투란이 ‘이 인간들이 지금 사람 놀릴 때인가!’라고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기며 노려봐 주는데, 산돌프가 한숨과 함께 말한다.
“아주 여유 있구먼? 농담까지 하고…… 투란, 저 눈깔의 빛이 닿지 않게 한 시간 정도만 피해 있으면 돼. 침낭을 뒤집어쓰고 한잠 자고 일어나도 되고, 눈을 감은 채로 구덩이 파고 누워 있어도 괜찮고. 그러고 나면 다시 사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저게 문제 되는 거는…… 너무 크다는 것뿐이다.”
마법사의 설명에 일행이 키득거렸고, 그중 한 명이 갸웃하며 말한다.
“투란, 멀리서 왔나 보네? 하이랜드나 하이랜드 남부 늪지대 수림에 대해서 잘 모르다니…….”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투란이 투덜거리는데…….
“맞아요, 잘 몰라요. 정말 멀리서 왔으니까. 이렇게 몬스터가 날뛰는 곳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말이죠. 근데 이제 어쩔 거예요? 좀 돌아가면 피해 갈 수는 있어 보이는데…….”
말꼬리에 살짝 의견을 덧붙이고 있었다.
이는 긴장을 풀고 조금 편안한 표정을 짓던 일행 사이에 잠시 이것저것 생각하는 분위기를 띠었다. 그리고 슬슬 모두의 눈길이 베즐을 향했다. 아무래도 결정은 일행을 주도하는 팀의 리더에게 맡기겠다는 듯한 분위기로 바뀐 듯했다.
베즐이 그 분위기에 호응하듯, 깊은 생각을 정리하듯 말문을 연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여기는 늪지대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야. 저런 몰골을 하고 늪구렁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늪에서 조금 벗어나서는 피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는 거야. 그게 뭔지 알 수 없지만, 저걸 쫓아 늪지대에서 나왔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잠깐 망설임에 베즐이 말을 살짝 멈추는데, 산돌프가 냉큼 말한다.
“피해 간다고 잔머리 굴리다가 더 험악한 놈 만날 수도 있겠지. 그나마 저건 어떻게든 대처할 방법을 아는 놈이니까,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저걸 넘어가는 게 좋다. 그런 얘기지? 그러면 저렇게 슬러쉬를 끌고 와서 퍼져 있는 놈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를 궁리해 봐야겠군?”
베즐이 깊이 숨을 몰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쉽게 말해서…… 저걸 어떻게 바싹 말려 버리느냐 궁리해 내야죠.”
일행은 다시 거대한 슬러쉬의 늪을, 그 늪을 몰고 다니는 몬스터 늪구렁이를 바라보며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