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
Chapter 13. 괴물처럼!
투란은 아랫배가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자세히 저편이 보이기는 하지만 꽤 큰 호수의 건너편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아랫배를 아련하게 휘저어 오는 느낌이 강렬했다.
그리고 왼팔의 붉은 털이 곤두서는 것도 선명했다.
‘머리가 깨졌어!’
붉은 털이 휘날리며 붉은 핏줄기가 치솟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르륵!
목젖을 울리는 그랑츄의 포효는 낮았지만 자욱하게 퍼지며 강렬했다.
그 순간에 웨어울프의 팔이 힘줄을 부풀리며 매섭게 흔들렸고, 꽂혀 있던 자리에서 빠졌다. 그랑츄의 가슴팍에 시뻘건 구멍이 뚫렸고, 괄괄거리는 핏덩이가 쏟아져 내렸다.
그랑츄의 한쪽 무릎이 바닥을 찧으며, 다시 두 주먹이 깍지 낀 채로 웨어울프의 등짝을 찍었다. 반쯤 으스러지고, 두 눈알이 모두 제멋대로 튀어나왔던 늑대 머리가 겨우 땅바닥에 꽂혔고 웨어울프가 바닥에 엎어졌다.
끄르르…… 그워어!
한순간에 웨어울프를 향한 그랑츄 무리의 괴성이 피어올랐다.
그 괴성 속에서, 늑대 머리를 으깨 버렸던 그랑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도도하고 당당하게 우뚝 선 그랑츄는 곧 긴 숨을 토해 내고 그대로 멈췄다. 가슴팍 한쪽에 뚫린 구멍에서 끈적끈적하고 굵은 핏덩이가 길게 늘어지며 살갗을 타고 흐르고 가느다랗게 잦아들던 목 울림이 그쳤다.
그워어어! 끄르륵!
홀로 웨어울프와 싸우던 그랑츄가 내던 소리가 멈추는 순간, 그랑츄 무리가 한꺼번에 포효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웨어울프의 뒤편을 잡고 있던 두 마리 그랑츄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바닥에서 머리가 깨진 채로, 등뼈의 위편이 박살 난 채로 꿈틀거리는 웨어울프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한 짝씩 잡고 당긴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싸움판을 둘러싼 채 지켜보던 그랑츄 무리가 모조리 웨어울프를 향해 손을 뻗으며 뛰어들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섬뜩한 괴성 사이로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소리는 쉴 새 없이 울려 퍼졌고, 공중으로 핏방울이 자욱하게 튀어 오르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호수가 바람을 타는 듯이 출렁였다.
그랑츄 무리가 파괴를 멈추고 피투성이의 잔해, 거의 땅바닥에 피와 살을 처바른 흔적만 남은 듯한 광경만을 남긴 채로 물러섰다.
어느새 포효는 멎었고, 그랑츄 무리는 살점과 피를 처바른 회색의 바윗덩이처럼 보였다. 그 무리가 서서히 감싼 것은 우뚝 선 채로 늑대 머리를 부숴 버린 그랑츄였다.
다른 그랑츄보다 몸집과 키가 좀 더 큰 까닭에 무리 사이에서도 머리를 똑바로 세운 듯이 보이는, 하지만 그 몸에는 웨어울프의 피와 살점이 아니라 오직 제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핏덩이만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형상을 향해 그랑츄 무리가 새로운 포효를 시작했다.
꾸이이…… 끄으워어어!
뒤디어 가슴, 팔, 다리 할 것 없이 각자 제 몸을 두들기는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콰쾅, 펑, 펑!
돌북을 쳐 대는 소리처럼 거친 소리가 호수의 물결을 뒤흔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저 너머 숲도, 호숫가의 모든 존재가 불편할 정도로 거칠고 사나운 음향의 파도였다.
듣는 이가 누구든 저절로 그랑츄에 대해 심각하게 불안함을 느낄 만했다.
‘뭐 하는 거야?’
투란은 몸의 이상한 반응을 느끼고 그랑츄 무리의 이상한 꼬락서니를 보면서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얼핏 느껴지기로는 저 무리가 웨어울프의 피와 살을 처바르고 자신들이 홀로 싸운 그랑츄보다 더 위대해졌다고 우겨 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뭔 바보 짓거리냐!’
함께 달려들었다면 웨어울프의 강인함이 어쨌든 간에 확실하게 짓이겼을 듯도 한데, 구경하면서 가장 강한 놈이 죽게 뒀다. 그래 놓고 다 박살 난 웨어울프를 찢어발긴 주제에, 그중에는 겨우 손에 핏방울만 묻힌 놈도 있어 보이는 꼬락서니로 잘난 척이라니!
투란은 허리 아래, 그랑츄의 몸을 형성한 부분이 온통 불끈거리면서 아랫배가 후끈대는 느낌을 억누르며 이성적으로 저 무리의 황당함을 욕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왼쪽 어깨에서 늘어져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팔, 늑대의 팔이 전하는 격렬한 분노도 함께 느껴야 했다.
땅바닥에 늑대의 손을 처박고, 다른 손으로 팔뚝을 잡아 누르고 있지 않았다면 허공이라도 할퀴었을까?
‘나는…… 몬스터 로드! 늑대가 아니라고! 그랑츄도 아니고!’
결국은 자신에게 이런 소리까지 되뇔 지경이었다.
어째서 이런 이상한 공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이 놈들의 것에 반응하는 듯했다.
이런 경험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놈들이랑 공감해서 대체 뭘 어쩌겠는가?
투란은 자신을 꽉 붙잡으면서 호수 건너편을 노려보며, 호수 위에 가득 반짝이는 차가운 은빛 불길과 밤하늘을 채우는 뜨거운 은빛 불길을 느끼며 참고 견디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저 이상한 싸움을 지켜본 덕분에 그저 혼자 뒹굴며 온갖 괴상한 자세로 낑낑거리며 버티는 꼴은 면한 것이 다행일까?
‘어, 가네?’
투란이 이를 꽉 물며 지켜보는 사이, 그랑츄 무리가 숲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는 꼴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인 듯도 싶지만, 아랫배의 후끈함이 식어 가는 것은 이상하게 아쉬웠다. 땅에 손을 쑤셔 박은 채인 왼팔은 부르르 떨리면서, 사라지는 그랑츄 무리의 뒤통수를 찍고 싶은 듯했지만.
곧 고요해져 물결의 찰랑임만을 느끼게 된 호숫가에서, 투란은 그대로 주저앉아 홀로 은빛 불꽃과 다투는 꼴이 되었다.
‘아, 그냥 싸움 구경할 때가 좋았나…….’
근질거리는 몸의 감각, 두 개의 심장이 맹렬하게 고동치며 다시 몸속을 스며드는 은빛 불꽃의 열기에 대항하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좀 더 세차게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환한 아침 햇살이 갑작스럽게 퀭한 투란의 눈가를 비췄다.
“흐엇!”
반쯤 눈을 감고 꾸벅거리던 투란은 화들짝 놀라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이 쪼개지며, 황금빛과 아침노을처럼 붉은 색채를 띤 햇살이 한순간에 투란을 덮쳤다.
투란의 눈이 잠시 깜박거렸다.
도대체 언제 정신 줄 놓고 졸았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누워 있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앉은 꼴이었다.
‘아, 내 손!’
투란은 두 손을 나란히 앞에 놓았다.
두 손은 완연히 다른 모양이었다.
붉은 털이 가득 돋은 쪽이랑 검푸른 빛이 맴도는 매끈한 살갗.
아침 햇살과 더불어 호수는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가끔 뭔가 그 물결 틈새로 꼼지락거리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고요했다.
일단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투란은 일어섰다.
호수 너머의 풍경은 꽤나 멀어서 거기 서 있는 것이 그야말로 새끼손톱, 사람의 새끼손톱보다도 작아 보였다.
잠깐 자신의 두 손, 굵고 큼직하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두 가지 손톱을 보다가 투란은 걷기 시작했다. 굵고 큰 그랑츄의 발이 호숫가를 밟자 자갈들이 깨지며 발자국이 파였다.
‘가서 보자고, 일단 말이야, 일단…….’
투란은 왜 자신이 저 건너편으로 가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밤의 강한 충동은 짙은 여운을 드리운 채로, 그를 저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희미한 자취라도, 꼭 그 자리에 서 보고 싶다는 듯이.
사실 호숫가만 따라가면 도착하는 곳이니, 어렵지도 않잖은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호숫가를 따라, 굳은 발걸음으로 걷던 투란이 눈깔꽃을 만나게 된 것은 절반가량 호반을 돈 다음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뭔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발끝에 작은 줄기가 걸렸고, 발가락을 감는다 싶은 순간이었다.
위험한 곳이니 주의를 기울인다 해서 투란이 잠깐 멈칫하려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랑츄의 굵은 발가락은 바윗돌처럼 스윽 작은 줄기를 스치며 짓뭉갰다. 다음 순간, 줄기 끝이 발딱 일어서며 봉오리를 활짝 열어젖혔고 그 안에서 눈알이 떡하니 튀어나왔다.
쿠웅.
투란이 걸음을 멈추는데, 왠지 세차게 디딘 듯한 발소리가 났다.
퍼엉!
눈알이 터졌다.
보라색 안개가 뭉클거리며 쏘아졌다.
이때까지 투란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보는 눈깔꽃이네. 여기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
하지만 보라색 안개가 몸을 축축하게 적시는 순간, 기억해 냈다.
눈깔꽃이 펑펑 터지는 곳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보랏빛 가득한 안개는 정말 지독한 독성을 품고 있으니까! 눈깔꽃 근처에서 놀다가 죽었다면 얼간이 소리를 들어도 싼 것이다.
“어!”
투란 역시 한 번도 눈깔꽃 줄기 곁으로 다가선 적이 없는데, 갑자기 발끝에 차여서 눈깔꽃이 봉오리를 일으켜 세우고 터지는 꼴을 봐야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이 눈깔꽃, 정확하게 그를 겨냥하고 터졌다!
당혹스러움에 투란은 급히 뛰려 했고, 두어 걸음 딛다가 발이 꼬여 엎어지고 말았다. 한데 그렇게 엎어지고 보니, 웬 줄기가 이리 많이 바닥에 깔려 있는가!
“헐!”
줄기가 꿈틀거리고, 봉오리들이 즐비하게 일어섰다.
눈깔꽃이 왜 눈깔꽃이라고 불리는지 보여 주겠다는 듯, 봉오리가 활짝 펼쳐지고 그 안에서 눈알이 데굴거리며 형체를 드러내더니 펑펑 터졌다.
보랏빛 안개가 자욱하게 투란을 덮쳤다.
훤한 햇살 아래, 호수의 반짝임이 슬그머니 짙어지는 때, 호반 한쪽에서 보라색 안개의 장막이 펼쳐진 셈이었다. 그 속에서 투란은 기어서라도 서둘러 벗어나려 했다.
파닥, 파닥!
하지만 왠지 손발이 더 꼬인 느낌으로 뒹굴다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퍼펑, 퍼퍼펑!
눈깔꽃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더 많이 일어서고 더 많이 터졌다. 짙은 보라색의 안개가 거의 투란의 모습을 감춰 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연한 녹색 손바닥이 돌을 하나 집어 호수를 향해 물수제비처럼 날렸다.
딱 팔꿈치부터 바닥에서 꼿꼿하게 선 채로 손목만 움직인 동작이었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가볍게 울리고, 물가가 요란해지며 눈깔꽃이 잔뜩 봉오리를 일으켜 세웠다. 눈알이 튀어나왔고, 물수제비를 날린 투란을 향해 마구 터졌다.
요란한 파열음이 잠시 호수의 고요함을 박살 내며 울렸다.
보라색 안개가 더욱 짙게 맴도는 속에서, 투란이 천천히 엎어진 몸을 일으켜 앉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하아, 무슨 바보짓을 한 거야.”
더 이상 보라색 안개를 피할 생각이 없는 듯, 투란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갑자기 눈깔꽃의 밭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허우적거렸다. 눈깔꽃이 뿜어내는 안개는 어지간히 덩치 큰 마수도 자빠뜨리고 시체가 되어 뒹굴게 하니까.
그런데 엄청 흉악하다는 마수가 눈깔꽃밭에서 시체가 되고, 악마의 심장에 심장을 뜯겨 어기적대며 걷는 꼴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악마의 심장이 뛰고 있는 투란에게는 눈깔꽃의 독 안개가 처음부터 통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 속을 느릿하게 넝쿨로 기어서 시체를 얻는 놈이 악마의 심장이니까!
과연 그래서인지 허우적대는 투란의 몸짓 중에도 악마의 심장은 전혀 당황해 뛰는 꼴이 없었다. 그저 고요하게, 평소처럼 뛸 뿐! 마치 ‘눈깔꽃? 그게 왜?’라는 듯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늦었지 투란은 가슴속으로 이미 눈깔꽃을 경계할 필요가 없음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이 민폐 눈깔을 삼킬 수도 없고…….”
혀를 차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이 지독한 보랏빛 안개를 간혹 몬스터 헌터는 얻으려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눈깔이 터지면 그걸로 끝인 녀석들이고, 몬스터 로드가 이를 삼키고 형성시킨다 해도 마찬가지로 몸의 일부를 계속해서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뿜어져 나온 안개를 자유롭게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번 터뜨리면, 이 안개는 그냥 바람결에 흐르고 무겁게 가라앉아 주변을 독으로 물들일 뿐이다.
방금 투란이 둘러본 주변이 은근한 보라색으로 물든 채, 다른 풀잎이나 나무는 죽은 잔해만 남은 것처럼.
눈깔꽃의 본능은 뭔가 줄기를 건드리면 그때까지 만들어 둔 봉오리를 세우고 터뜨리는 것뿐이니, 달리 다룰 방법이 없기도 했다.
몬스터 헌터 중에서 부업으로 마수 사냥을 하는 이들이나 간혹 이 독성을 이용해 사냥하기 위해 채집하려 들 뿐이었다.
‘재주도 좋지, 이렇게 빵빵 터지는 걸 대체 어떻게 안 터뜨리고 모으나?’
돈 되는 비밀이라서 얻어듣지는 못한 재주였다.
투란은 펑펑 터지는 눈깔꽃의 안개 사이를 편안히 걸으면서, 두 눈에 투명한 악마의 심장 껍질과 덩굴줄기를 덮은 채로 그랑츄와 웨어울프의 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