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06)
Chapter 122. 알드바인, 전초선(前哨線)
은빛의 물줄기가 달빛 아래에서 반짝였다.
달빛이 비추는 뾰족한 뿔처럼 보이는 상아탑, 그 아래로 길게 펼쳐진 성벽의 모습이 탑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밤이었으나 찬란하다 싶기까지 한 달빛 덕분에 갈기산맥은 여전히 그 삐죽거리는 위용을 드러냈고 반대편으로 안개가 살며시 맴도는 광대한 수림(樹林)의 모습 또한 선명했다.
성벽을 향해 정비된 포석이 깔린 도로 위로 어슬렁거리는 짐승 무리도 그 달빛 아래 군데군데 잘 보였다.
이런 알드바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투란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쳐 내면서 중얼거렸다.
“밤에도 잘 보이네…….”
곁에서 가몬티가 함께 중얼거린다.
“잘 안 보일 리가 없잖아. 헌터 대공방이니 뭐니 하더니, 저렇게 큰 성벽이 있는 도시란 말은 아무도 안 하더만.”
갸웃하면서 투란이 가몬티에게 살짝 묻는다.
“처음 와 봐요?”
“어, 처음이야.”
가몬티는 어깨를 으쓱하고 몸에 거뭇하게 묻는 검댕을 툭툭 털어 내면서 대답했다. 이에 보태듯이 고깔모자가 다소 힘 빠진 소리로 말한다.
“상아탑이 주도하는 도시니까, 굳이 상아탑이 아니더라도 마법사가 와글거리는 곳은 가급 피해 다녔거든. 나 때문에 말이지. 내가 워낙 마법사에게 매력이 있어서 말이지.”
산돌프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로 한 소리 한다.
“살면서 말하는 모자 구경한 마법사가 몇이나 된다고! 아니,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저렇게 떠드는 꼴을 보면 가만있지 않을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뭘 굳이 마법사라고 찍어서 말하시나!”
고깔모자가 코웃음 소리를 꾸미면서 으르렁거린다.
“마법사만이 음흉하게 내게 손을 대려고 하니까! 딴 놈들은 기껏해야 신기해하면서 훔쳐다 팔아 볼까 하는 정도지만, 마법사는 자기 손으로 직접 별별 수작을 다 부리려고 하잖아! 그게 얼마나……!”
“귀찮다고? 모자인 꼬락서니라도 다른 마법사를 귀찮아하는 마법사의 성질머리는 고스란히 가졌구먼! 그러면서도 마법사 욕하느라 바쁘다니, 대단하셔!”
산돌프가 다시 비꼬듯이 말해고, 이에 고깔모자가 챙을 까뒤집으면서 욱한 것처럼 뭐라 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 가몬티가 고깔모자를 꽉 움켜쥐었고 둘둘 말아서 허리춤에 덜렁이는 가방 속으로 구겨 넣으며 중얼거린다.
“마법을 많이 써서 피곤하잖아, 쉬라고. 이틀 동안 씻지도 못하고 달리기만 해서 나도 피곤하거든…… 좀 쉬어야 하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어, 마법사님. 적당히 하세요. 그런 식으로 떠보는 거, 뻔히 알면서 수다 떠는 거니까요. 모자라고 얕보다가 마법사님 밑천 털리는 수가 있거든요.”
“음?”
산돌프의 눈가에 의혹이 맴돌았다.
가몬티는 자신의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마법사의 표정에 한숨을 쉬었고, 주변에서 이런 작은 말다툼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채로 알드바인 앞의 풍경을 주시하는 일행을 둘러보다가 베즐을 향해 묻는다.
“어이, 리더. 불길을 돌파하고서 벌써 이틀 지났다고. 알드바인이 보이는 곳까지 오면 일단 쉰다고 하지 않았나? 물가도 보이는데 말이지.”
베즐은 바로 손짓하면서, 가몬티만이 아닌 일행 모두를 향해 말문을 연다.
“포석이 깔린 길로는 가지 않을 거야. 강줄기를 타고 간다. 일단…… 저기, 가까운 물가에 가서 쉴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쉬자. 숙영(宿營) 준비를 해. 보초 순번은 일단…….”
“어, 베즐. 그건 우리 쪽에서 맡을게. 그쪽 팀이 지금 주력이니까, 일단 최대한 힘을 회복하라고. 아무래도 막판이 꽤 까다롭게 보이니까 말이지.”
산돌프 일행 중 한 명이 나서면서 하는 말이었다.
베즐이 잠깐 입을 다물며 둘러봤고, 팀 멤버들이 가만히 마법사 일행의 말을 긍정하는 모습부터 확인했다. 산돌프와 그 일행 또한 나온 이야기에 모두 동의한다는 모습을 보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저곳에서 숙영하는 거는 다들 괜찮나?”
베즐은 한번 더 선택한 숙영지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물었다.
산돌프 일행 중 또 다른 한 명이 말한다.
“음, 물었으니까 하는 말인데…… 잘 고르기는 했지만, 기왕이면 거기 말고 저곳이 더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지. 거기 바닥이 평평하고 큰 바위거든. 반은 물속에 잠긴 채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냥 침낭만 깔고 누워야 하겠지만…….”
“좋아, 그쪽으로 하지.”
베즐은 그 의견을 바로 받아들였다.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투란이 갸웃했다.
“바위 바닥?”
가몬티가 두어 걸음 앞서가다가 피식 웃고 이에 대꾸한다.
“벌레 나올 수도 있잖아. 뒤숭숭하니까, 뭔 벌레가 나올지도 모르고.”
“어, 그렇기는 그렇네…… 그런데, 밤이라 좀 어두워 보이는 것 말고 뭐 다른 거 보이는 거예요?”
투란은 냉큼 걸으면서 주변의 일행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저 포석이 깔린 길 위로 몇몇 짐승이 오가는 것이 특이해 보일 뿐인 밤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보면서 일행 모두가 아주 심각한 분위기를 띤 채였다. 알드바인에 처음이라는 가몬티만이 그런 분위기에 조금 먼 듯하니…….
마치 가몬티와 투란을 제외하고는 다들 이 풍경을 아주 위험하게 여긴다는 모습이 또렷하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투란으로서는 슬쩍 물어볼 만한 일이었다.
순진하게, 아는 것이 없는 척하고!
산돌프가 바쁘게 주변을 돌아보는 일행을 흘깃하면서 투란에게 답한다.
“여기 도로에 깔린 포석은 알드바인의 마법사가 관리하지. 평소에는 짐승이 그 위로 나돌아다니지 않아. 기본적으로 짐승이 혐오감을 일으키도록 이런저런 처리를 해 뒀으니까. 하지만 주변에 몬스터라든가 위험한 마수의 존재가 또렷해지면, 오히려 평범한 짐승에게는 그 혐오감을 일으키는 대상이 안전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 자기보다 더 위험한 것들이 도로를 회피하는 상황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저 포석 위로 짐승이 오락가락하는 꼴이 보인다면, 보이지 않아도 아주 위험한 뭔가가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린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알드바인처럼 산맥 안으로 깊이 파고든 상아탑의 근처에서는 흔한 대책이니까, 다른 곳에 가서 저런 포석이 깔린 길에서 짐승이 보이면 조심하라고.”
“그랬군요.”
투란은 잔뜩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일행이 숙영할 곳으로 옮겨 몇 시간이나마 쉴 준비를 할 때, 투란의 마음은 바쁘게 드라고니아에게 묻고 있었다.
‘저 돌 깔아 둔 길이 그런 거였어? 너, 몰랐냐? 왜 한마디도…….’
―몰랐다. 그냥 반듯하게 모양만 잡아 놓은 줄 알았지. 지금 마력이 간섭하고 있는 기척도 전혀 없다고. 무슨 처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이 새겨졌거나 하는 경우가 아냐.
‘상아탑에서 했다는데?’
―상아탑에서 할 줄 아는 게 마법이 전부가 아니라고!
‘흐흠…….’
투란은 궁금했다.
드라고니아도 궁금한 듯, 슬그머니 프로브를 움직이고 있었다.
‘알아내면 알려 줘.’
―그러지.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투란은 주변 사람처럼 가만히 바닥을 더듬었고, 슬쩍 산돌프와 그 일행에게 말을 건넨다.
“내 차례는 언제예요? 일찍이거나 나중이면 좋겠는데…….”
보초 순번을 묻는 말에 산돌프가 곁을 봤고, 그 일행이 서로 둘러보더니 그중 한 명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투란에게 답한다.
“너도 그냥 쉬어. 우리끼리 할 테니까.”
“음? 어, 나는…….”
투란이 갸웃하니, 피식 웃는 대답이 바로 나온다.
“너, 헌터스 배너 새겼잖아. 우리처럼 팔다리 한쪽도 아니고, 제대로 말이야. 우린 잘 뛰는 데 집중한 파티라고. 일발조루 마법사만 믿고 모였다고 해도…….”
“아니라고! 잘나가다 왜 자꾸 조루조루 해! 그만해라, 화낸다!”
산돌프가 욱해서 으르렁거렸다.
마법사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듯이 투란을 향한 말이 이어진다.
“제대로 베즐네를 돕고 싸울 수 있으니까, 너도 쉬는 게 나아.”
투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펼치고 대충 누웠다.
베즐 팀 역시 다른 무엇보다 휴식이 우선이란 것처럼 드러눕고 있었다.
산돌프는 가만히 한구석에 자리 잡고 마법사답게 침묵과 명상하는 자세였고, 그 일행은 물가에서 씻거나 물통을 챙기면서 사방을 경계하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로 투란은 문득 생각난 것을 바로 드라고니아를 향해, 소리 없이 말한다.
‘너무 길만 쳐다보지 마. 이상한 것 있으면 미리 좀 알려 달라고. 아, 지나온 길도 다시 보고 말이야.’
―하이랜드 전역을 감시라도 하라고? 그건 무리야. 그러고 싶으면 하이랜드 곳곳에 마법 각인을 남기거나 마법 물품을 뿌려서 장시간에 걸쳐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한다니까. 역병의 수해에서도 못 했잖아. 하이랜드는 그보다 훨씬 넓어. 몇 년은 해야 그런 감시망을 만들 수 있어. 지금은 그렇게는…….
‘누가 전부 다 봐 달래! 그냥 뒤쫓아 온 거 없나, 앞으로 가다가 만날 것 없나! 적당히 상황만 봐 달라고! 먼저 가다가 죽어 있는 시체를 모르는 채로 만나면 기분 나쁘잖아!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눈을 질끈 감으면서 투란이 투덜거렸다.
이리 칭얼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처럼 드라고니아는 조금 뚱한 듯한 말투로 대꾸를 한다.
―시체라면, 가는 길에 좀 볼 수 있을 것 같구먼.
‘에? 시체가 있어?’
―루케인과 함께 오다가 봤던 녀석들, 그 강도들이랑 닮았는데 찢겨 죽은 녀석들이 좀 있다.
‘그 녀석들 그때 멜란드가 주먹으로 낙인찍어서 넘겼잖아? 상금도 받았는데?’
―그때 그 녀석들이 아니라, 닮은 녀석들! 아마 강도 짓을 하려고 준비하다가 마수를 만나서…….
‘마수?’
―곰도 있고, 범도 있다. 레오팬저도 몇 마리 있지. 갈기산맥에서 내려와 사냥을 하는 듯한데, 강도 짓 하려던 녀석들이 사냥당한 듯하군.
‘그냥 짐승이 아니고 마수인 곰, 범, 레오팬저?’
―마력의 냄새를 풀풀 남기면서 돌아다니고 있어. 묘한 상황이다만, 여기서 알드바인까지 보이는 풍경 안으로는 보통 짐승이나 인간은 없는 것 같다. 뭐랄까, 알드바인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하려는 놈들이 모이는 상황? 아니면 뭔가가 알드바인으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기어 나온 상황? 어쨌든 너 말고 다들 분위기 심상치 않게 여기는 까닭이 분명히 있어.
‘쳇, 그래. 나만 둔하고 멍청하지.’
―그야…… 너는 놀고 있는 셈이고, 너 말고는 다들 목숨을 건 상황이니까. 너보다 훨씬 예민할 수밖에 없잖아?
‘노는 거 아니거든! 사람 이상하게 만들지 말라고! 티 안 내려고 애쓰면서 열심히 보탬이 되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나름대로 많이 도왔잖아! 아으! 근데 정말 늪구렁이 이후로 뒤탈 없는 거야? 뭐가 몰래 따라오거나 하지 않아?’
―없어. 그렇게 불을 질러 놓은 덕분에 지나온 길을 더듬으며 냄새 맡는 것도 없다. 다만…….
‘다만?’
―몬스터라든가 마수는 아니지만, 거리도 꽤 있지만 열심히 쫓아오는 많은 인간들은 있지.
‘응? 아, 캐러반! 왜? 별일 없다면서?’
―별일은 없어. 그저 닥치는 대로 가로막거나 엇갈리는 몬스터를 쳐 죽이면서 속도를 더하고 있을 뿐이지.
‘속도를 늦추거나 엘데인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그런 의논을 하고 있었다면서!’
투란은 낯을 움찔거리면서, 애써 소리 나지 않게 물어야 했다.
마켈과 라펜, 둘이 돌아가는 길에 슬그머니 붙여둔 프로브를 통해서 대강 캐러반의 상황을 알아내고 있었다. 무사히 다시 캐러반에 합류한 둘의 보고를 통해 앞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낸 세마인은 캐러반의 여러 파티 우두머리를 불러 모았고, 거의 반나절 동안 함께 논의했다.
그중 예민한 자가 있을 수 있으니까 프로브는 거리를 둔 채로 엿들었다.
물론 투란에게는 너무 지루하고 긴 이야기인지라 전부 지켜보거나 듣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캐러반에 참여한 이들 중 상당수가 위험한 길보다는 안전을 고려해서 엘데인으로 귀환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 정도까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바로 되돌아가지 않더라도 일단 캐러반의 속도를 대폭 늦추고 정찰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그다음으로 많이 주장되었는데…….
―시작은 그랬지. 하지만 이틀째에 상황 보다가 몬스터 무리랑 격돌한 다음부터 그 의견이 싹 달라졌다고 했잖아. 사흘째부터는 아예 전열(戰列)을 새로 짜서 알드바인으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니까!
드라고니아가 했던 얘기를 언제까지 또 해야 하냐는 듯, 살짝 짜증을 섞어 말하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때 꽤 바빠서, 정말 대충 대꾸를 했던 듯한데…….
“전멸이라도 하는 거야? 떼죽음 나는 거 아니면 알아서 하게 놔둬! 나 바빠!”
테러사우루스를 쫓고, 산돌프 일행을 만나 바쁜 와중에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해서 엄청 귀찮아하며 되는대로 투덜거린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