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1)
Chapter 123. 알드바인, 방어전 Ⅰ
루센카 팀은 꽁꽁 묶인 채로 포석 위로 끌려왔고, 꽁꽁 묶인 채로 심문(審問)받는 꼴이 되었다. 중간에 뭐라 투덜거리든 말든, 베즐 팀이든 산돌프 일행이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확인을 마칠 때까지 루센카 팀을 그대로 묶어 둔다는 것에 누구도 딴소리하지 않기로 상의라도 한 것처럼!
루센카 팀 멤버들 역시 그것이 맞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국 루센카만이 묶인 채로 끌려오면서 투덜거리는 꼴인데…….
“이봐, 내 발로 걸을 수 있다고! 꼭 이렇게 질질 끌고…… 어이! 거기 내 방패! 떨구고 그냥 오지 말라고! 내 머리 위에라도 올려놓으라고! 이렇게 끌고 갈 거면 내 다리 위에라도 올려놔 달라니까! 그게 얼마짜린데! 나중에 물어낼 거야? 아니면 얼른 좀 집어 오라고오오!”
손목과 발목까지 꽁꽁 묶여서 꿈쩍도 할 수 없는 상황에도 큰소리 펑펑 치며 전혀 위축되는 낌새가 없었다.
그런 루센카를 보며 산돌프 일행이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일부러 목청을 높여 수군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떠든다. 꾸민 모습은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척이지만, 모두 들으라고 떠드는 태도가 아주 분명했다.
“물어내란다.”
“그러니까 그냥 죽이자고 했잖아.”
“쯧쯧, 우리 마법사는 마음씨가 너무 곱다니까!”
“저럴 테니, 죽이고 그냥 유품이나 챙기쟀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투란은 금방 어이없어서 산돌프 일행을 흘깃거려야 했다.
산돌프는 아직 지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라 뭐라 못 하는 듯한데, 그 일행은 루센카 팀을 산돌프가 열심히 살리자고 했고 자신들은 반대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루센카 팀이 다 죽든 말든 상관없는데 오직 산돌프가 고집해서 이리 묶어 왔다는 듯!
덜그렁.
붉은 방패가 루센카 앞으로 떨어졌다.
루센카가 고개를 드니, 방패를 던진 활잡이 카엘이 바로 입을 연다.
“제정신입니까, 아직 헛것이 보입니까?”
“내가 어디가 그리 이상해 보이는데?”
루센카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활잡이 카엘이 냉정하게, 여전히 정중한 말투로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방패를 휘두르고 칼을 휘두르고, 우리 팀 멤버를 향해서도 불을 쏘아 댔잖아요! 소문난 상급 몬스터 헌터면서 뭐에 홀려 있었는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얼빠진 대답으로 그냥 넘어가려 하는 거라면……!”
“죽일 거냐?”
피식 웃는 소리로 활잡이 카엘의 말을 끊으며 루센카가 짧게 물었다.
활잡이 카엘이 발끈해서 뭐라 하려는 순간, 루센카 목에 칼날이 드리워지면서 베즐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울린다.
“죽여서 안 될 까닭은?”
루센카의 볼이 살짝 꿈틀했고, 느릿한 대답이 나온다.
“자네, 어디서 봤는데? 아, 그래! 길드 서브 마스터의 양아들이었나? 음, 그래. 이름이 베즐? 하핫, 위세 좋구먼? 서브 마스터의 양아들이니까 이렇게……!”
말이 길어지는 사이, 베즐이 들이댄 단검의 칼날은 루센카의 목을 느릿하니 파고들어 갔다. 시답잖은 소리를 계속한다면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목을 긋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바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루센카는 전혀 기죽지 않은 태도로 말을 이어 가려 하는데…….
“루센카, 그만해. 베즐, 자네도. 우린 고블린 위치킹(Witchking)을 만났어. 팀 멤버 둘이 죽고 우리만 살아나왔어.”
루센카의 팀 멤버가 무뚝뚝하게, 또박또박 지친 목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루센카는 팀 멤버의 말에 하던 말을 멈췄고, 베즐은 그어가던 칼날을 떼어 내며 말한 이를 향해 묻는다.
“어디서?”
“원래 서식지는 아니었어. 그보다 훨씬 바깥쪽이었지. 정찰 중에 그렇게 맞닥뜨릴 줄은 몰랐고…… 그놈한테 우리가 가진 부적의 방호 따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늦었어. 어쩌면 하이랜드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야. 붉은 오우거의 진로랑 교차하는 중이니까, 겁먹고 다시 서식지로 돌아갈 수도 있고.”
“붉은 오우거? 거품 뿜는 늪에서 떠도는 그 오우거?”
베즐이 짜증 난다는 듯, 넌더리 난다는 듯한 말투로 어쩔 수 없이 확인하겠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이에 말문을 연 이가 바로 대답 않고 잠시 힘겹게 숨을 고르는 사이, 루센카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신 말한다.
“그래, 그 오우거. 그 썩을 새끼도 지가 놀던 데서 기어 나와 이상한 데서 허우적대고 있더만. 그놈 피하려다가 더러운 고블린 새끼를 만났지. 완전 사납고 더러운 날이었어. 뭐, 또 궁금한 것 있나?”
베즐의 손이 다시 칼날을 루센카의 볼에 들이댔고, 베즐의 입술 사이로는 날이 선 차가운 소리가 새어 나온다.
“길드에 제출할 보고서는? 따로 써 놨나?”
루센카는 볼에 들이댄 칼날의 감촉이 가렵다는 듯이 쓱쓱 거기에 수염을 문지르는 시늉을 하면서 대답한다.
“없지. 직접 길드에 보고해야 하는데?”
베즐이 사납게 루센카를 노려봤다.
루센카는 거침없이 칼을 든 채로 험악한 베즐의 그런 눈길을 마주 봤다.
그 묘한 대치가 숨을 두어 번 쉴 정도로 지속되니, 칼잡이 카엘이 헛기침과 함께 베즐을 향해 말한다.
“고블린 위치킹, 붉은 오우거는 출현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행방을 알아야 한다고. 직접 겪은 쪽의 얘기도 여러 가지로 검토해야 하고.”
루센카의 입가에 키득거리는 웃음이 맴돌았다.
“그렇다는데?”
베즐은 그런 루센카의 볼 위에서 턱으로, 코밑으로 입술 언저리로 칼날을 쓱쓱 움직이여 수염 가닥을 썰어 내면서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목소리를 흘린다.
“데려가 주지, 알드바인으로. 하지만 가는 길에 우리 일행 누구 하나에게라도, 당신네 팀에게 스쳐서 까인 상처라도 난다면…… 내가 당신네 전부 죽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여기 묶인 채로 남겨 두고 가 주지. 어쩌시겠나?”
루센카도 이 분위기에 어울리겠다는 듯, 웃음을 싹 거둔 표정과 섬뜩한 눈길로 잠시 베즐을 바라봤다. 하지만 루센카의 눈동자는 금방 자신의 팀 멤버들 쪽으로 굴렀고, 두 명의 지친 모습과 의식을 잃은 한 명까지 몽땅 묶인 상태란 것을 다시 바라봤다. 그다음에 루센카의 입에서 대답이 나온다.
“데려가 줘. 전부 데려가기 부담스러우면, 혼자 걷지 못하는 한 명이라도.”
찰칵, 베즐의 칼이 칼집 속으로 날을 감췄다.
“전부 데려가겠어. 다리는 풀어 주겠지만, 팔은 기대하지 마. 당신에 목에 그물을 걸어 줄 테니, 거기 부상당한 한 명을 싣고 가, 됐지?”
“그래.”
루센카가 짧게 대답했다.
가만히 보고 듣던 테란과 베즐 팀 멤버가 바로 움직였다.
루센카와 두 명의 어깨와 목에 그물 끈이 감겼고, 늘어진 그물로 부상당한 한 명이 실렸다. 그물에는 루센카 팀이 떨궜던 장비도 함께 실렸다. 그다음에 테란 등은 방벽을 거두고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는 사이, 베즐은 산돌프 쪽으로 다가가 낮게 묻는다.
“마법사, 걸을 수 있어요? 끌고 가 줘요?”
산돌프 일행이 이 소리에 대뜸 산돌프의 팔다리를 두드리면서 으르렁거린다.
“일어나!”
“일발조루, 해 떴어!”
“버리고 간다, 일어나!”
마법사를 어디 싣고 끌고 가야 하는 일이 자신들의 몫이란 것을 열심히 부정하고 싶다는 듯한 몇 마디였다.
베즐의 표정이 삐딱해졌고, 투란은 푸훗 하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가몬티가 어이없다는 듯이 곁에 서 주변을 둘러보는 두 카엘을 향해 중얼거린다.
“거참, 분위기 좋은 파티잖아요?”
칼잡이 카엘이 피식 웃었고, 활잡이 카엘은 한숨을 쉬었다.
고깔모자가 가몬티의 어깨에 기어 오른 채로 투덜거린다.
“힘든 일 한 마법사인데, 너무하잖아? 좀 봐주지!”
가몬티는 그런 고깔모자를 꽉 쥐어 허리춤의 배낭에 쑤셔 넣었다. 바로 고깔모자가 가몬티를 향해 투덜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너도! 내가 회오리로 방어해 줬는데 이런……!”
루센카 팀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말하는 고깔모자를 바라봤다.
그사이에 산돌프가 ‘아이, 시끄러워!’라며 몸을 일으켰고, 지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베즐이 산돌프에게 ‘떠나야 해요.’라고 속삭일 때, 그 일행은 마법사가 일어나서 다행이란 듯이 긴 숨을 몰아 내쉬며 안도하는 분위기를 잔뜩 띄웠다.
산돌프는 끄응 하면서도 몸을 일으켰고, 루센카 팀의 몰골을 봤다. 곧바로 짜증 난 목소리가 산돌프의 입술 사이로 샌다.
“정신 들기는 했냐?”
루센카가 입술을 뒤틀면서, 잠시 정신을 잃은 듯했던 마법사를 비웃는 것처럼 대답한다.
“조루 마법사보다야 멀쩡하지.”
바로 산돌프가 발끈했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감정이 없는 듯한 냉정한 물음이었다.
“뭐에 홀렸던 거냐? 설마 또 그 고블린 잡겠다고 미련 떤 거는 아니지? 하이랜드가 난리 난 지금이 기회라고,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거는 아니지?”
이 말은 바로 베즐의 물음을 끌어낸다.
“산돌프, 저 팀이 뭘 노리는지 알고 있어요? 그거, 고블린 위치킹인가요?”
“응? 맞아. 몰랐어? 쟤네, 몇 년 전부터 그거 잡는다고…….”
산돌프가 잠깐 멈칫하다가 말하는데, 베즐이 바로 루센카 곁으로 가서 그 목줄에 단검을 들이대고 으르렁거린다.
“제대로 말해! 서식지까지 가서 끌고 나왔던 거야? 여기까지 올 가능성이 있어, 없어? 어느 쪽이야!”
루센카가 혀를 차면서 산돌프를 흘겨보는 채로 답한다.
“안 갔다고, 서식지까지. 가는 길에 만났다고! 그래서 이 꼴이 된 거야. 붉은 오우거랑 엮이지 않으려다가, 서식지 밖으로 기어 나온 놈한테 당해서 말이야!”
그 광경을 보면서 마법사가 눈을 끔벅이면서 곁의 일행을 돌아봤다.
잠깐 자신의 의식이 몽롱했던 사이에 대체 뭔 이야기가 오갔는가?
씁쓸한 표정과 분위기가 맴돌면서 마법사 산돌프를 향해 일행이 몇 마디씩 설명을 해 준다.
“에, 그러니까 아까 그랬어요.”
“고블린 위치킹이 서식지에서 벗어났다고.”
“그래서 당했다는 것처럼 말했는데…….”
“일발…… 크흠! 마법사가 저 작자들 원래 그거 노리고 있다니까.”
“우연히 만난 게 아니고 노리고 가서 만난 거면, 얘기가 완전히 다르니까.”
“베즐이 성질내야 하는 거 맞아요.”
“아, 왜 늦게 일어나서 난리 날 소리를 하냐고!”
“쯔읏, 하여간 일발조루라 정신도 늦게 차리지.”
뒤죽박죽인 설명이었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을 알아듣던 산돌프는 마지막에 붙은 소리에 바로 으르렁거린다.
“시끄러워! 한번 더 조루니 뭐니 하면, 그 말한 놈을 불능으로 만들어 주겠어!”
이쪽에서 이러는 사이, 베즐은 루센카의 귓가에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감추고 싶은 것이든, 숨기고 싶은 것이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위태로워진다면……!”
“알아, 알아! 죽여, 죽이라고! 근데 우리도 열심히 살자는 쪽이거든? 오해받아서 죽는 거는 질색이라고! 그러니까 제대로 모르면 좀 냅둬! 봐서 위험하다 싶으면 아주 시끄럽게 재잘거려 줄 테니까!”
루센카도 베즐만큼이나 험악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찰칵, 베즐은 다시 단검을 집어넣으면서도 매섭게 루센카를 노려봤다.
그러고 나서 곧 일행은 포석이 깔린 길을 밟으면서 다시 움직였다.
반쯤 뛰는 듯한 빠른 걸음으로.
―이게 다 뭔 일이냐? 설명 좀 해 봐.
드라고니아는 묶인 채로 움직이는 루센카 팀에 대해 잔뜩 의아해하며 묻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뭘 설명해?’
―저 팀, 소수지만 강한 전력이잖아. 왜 묶은 채로 가는 거지?
‘아직 확신할 수가 없잖아. 계속 헛소리하고 헛짓하면 무슨 일이 날지 모르니까.’
―지금은 완전히 정상이다만?
‘그러니까 그걸 확신 못 하고 있다고! 너랑 나만 아는 일이잖아!’
―말 안 해 줄 거냐?
‘내가? 어떻게 알아냈는가를 자랑하면서?’
투란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드라고니아가 잠깐 침묵하다가 중얼거린다.
―너 자신에 대해서 감추느라고 몬스터가 잔뜩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전력이 될 작자들이 손을 묶은 채로 두는 거라니, 너무 나쁜 판단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저들이 멀쩡하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지 않나? 아니면 최소한 저들의 장비라도 활용할 방법을 제안하든가…… 저 몰골로 무슨 가축 몰듯이 데려가는 거는 너무 바보스럽지 않냐?
‘그 정도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어. 저 정도 헌터라면 차라리 미친 채로 앞장세워서 튀어나올 몬스터 앞에 들이미는 편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있지. 진짜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말이야. 아니면 안전하게 데려가 준다는 핑계로 저 장비를 뺏어 쓸 수도 있고…….’
―그 말은, 베즐이 착해서 그러지 않는다는 거냐? 불안하고 위험하지만, 나름대로 보호하는 채로 데려가는 쪽을 택한 거라고?
‘착한 리더를 존중해서 다들 착한 방법을 따른다는 거지. 꽤 보기 힘든 타입이야, 베즐 같은 헌터나 이런 마법사 파티는…….’
투란은 베즐에 이어 산돌프를 흘깃하면서 작은 웃음과 함께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저 멀리에는 길고 높은 알드바인의 성벽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