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2)
도마뱀은 컸다.
원래 손바닥만 한 크기였을 것이 사람 두엇은 가볍게 혀로 말아 삼킬 정도로 컸다.
보통 소나 말 정도는 앞발로 찍어 누르고 천천히 혀끝으로 감아 삼켜도 될 정도로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 거대한 도마뱀이 갑작스럽게 먼지를 털며 불쑥 몸을 일으켰을 때, 네발로 굳건히 땅을 디딘 채로 달려오는 인간을 바라보며 혀를 날름했을 때…….
서걱.
혀가 몇 토막으로 잘렸고, 높이 치솟았던 망치가 내리찍혔다.
콰앙!
거대한 머리가 바닥에 찧고 그대로 튕겨 올라가며 그 큰 몸도 함께 딸려 치솟았다.
싸아아! 촤악!
빛의 칼날이 길고 가늘게, 바람결처럼 휘둘러졌다.
투둑, 두두둑!
잘린 거대한 도마뱀의 몸통이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퍽, 퍽!
그 토막들이 일찌감치 옆으로 쳐 날리면서 길이 훤히 열렸고, 질주하는 일행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훅훅, 대단…… 한데? 훅훅!”
입에 끈을 문 채로 루센카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세모꼴의 선두에 선 루센카와 달릴 수 있는 둘이 그물을 몸에 건 채로 그물 한 자락에 이어진 끈을 물고 있었다. 그물에는 달릴 수 없는 동료가 얹힌 채였고, 숨쉬기도 벅찬 상황이지만 빛의 칼날과 커다랗게 변했다 오그라든 망치에 대해서는 감탄을 억지로라도 토해야겠다는 듯한 루센카였다.
하지만 선두에서 이 소리를 들은 베즐은 이를 칭찬으로 듣지 않았다.
“쉬어 갈 수 없어. 닥치고 달리라고.”
루센카는 끈을 악물고 말없이 달려야 했다.
저 거대한 도마뱀을 만나기 전에 이미 크고 작은 짐승, 마수와 망아지나 송아지만 한 도마뱀을 여럿 거쳤다. 속도를 늦추자고 할 겨를도 없었고, 지친 루센카 팀의 상황을 봐 달라고 할 틈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알드바인의 성벽에 닿자마자 루센카 팀은 탈진해 엎어질 듯했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지쳤다는 신호를 보낸 것인데, 베즐은 깔끔하게 그 의미를 읽고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팀 리더 베즐의 반응과 함께 팀 멤버들이 서로 손짓했고 곧 가몬티가 루센카 팀 한구석으로 와서 그물 한 자락을 손으로 쥐어 올리며 외친다.
“투란!”
투란도 냉큼 가몬티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겨 그물 한 자락을 쥐어 올렸다.
베즐 팀의 진영이 살짝 변했고, 거기에 맞춰 산돌프 일행도 진영을 바꿨다.
쉬어 갈 수는 없지만 어쨌든 힘을 보태 준 셈이었다.
화살이 다 떨어지고 가까이 붙은 것에게만 검을 휘둘러야 하는 투란과 더 이상 정찰이 필요 없고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가몬티가 진영을 이룬 팀과 어우러지기 힘드니 루센카 팀에게 조력하는 셈이기도 했다.
산돌프가 이런 상황을 확인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루센카를 구박한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도와 달라고 해! 고마우면 돈으로 계산해서 갚고! 꼭 그런 헛소리로 힘 빼야겠냐!”
대꾸 없이 루센카는 끈을 더욱 악물면서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산돌프도 혀를 차며 루센카 쪽에서 거리를 둔 채로 멀리 보며 이쪽 눈치를 보는 짐승이나 마수, 몬스터를 견제하며 달렸다.
그렇게 알드바인과의 거리가 좁혀져 갔다.
‘어째 점점 줄어드는데?’
투란은 성벽에 가까이 갈수록 벌떡거리고 펄떡거리면서 달려드는 몬스터나 마수, 짐승이 적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의아해했다.
―성벽도 포석처럼 몬스터나 마수를 물리치는 처리가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포석과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한계를 넘어선 공황에 빠진 짐승이나 마수, 저것에 압박을 받아 불쾌함이 쌓일 대로 쌓인 몬스터라면 달려든다. 조심해라. 상아탑이 가공한 포석 위로, 성벽으로 달려들 정도라면 반쯤 미친 경우니까.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둘러보면서 냉정하게 경고했다.
그리고 투란은 그보다 더 야릇한 느낌에 갸웃했다.
‘성벽…… 포석보다 더 강하게 뭘 발라 놨나? 전이랑 다른데? 엄청 자극적이잖아?’
―음? 분명히 그렇군. 마법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인걸? 어지간한 몬스터나 마수는 그냥 진저리를 치고 물러설 정도로군. 하지만 멀리서는 느끼기 힘들어. 이만큼 가까이 온 다음에야 겨우 느낄 수 있는 건데?
‘아, 그거야 멀리 있는 놈 건드리지 않고 가까이 온 놈만 몰아내면 되니까 그런 거 아냐?’
―그런가? 그래 보이기는 한다. 유인해서 팍팍 죽이는 목적의 성벽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겠어.
‘저 성벽 뒤에는 싸울 수 있는 헌터만 사는 게 아니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살짝 잊은 것을 짚었다.
쓴웃음과 함께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나온다.
―지키기 위해서라면 위험 요소는 아예 먼저 제거하는 편이 옳다고 본다만…… 아무래도 알드바인의 상아탑에서는 이 상황을 분명하게 단정 짓지 못하고 있군. 이건 평소보다 더 경계하는 것이기는 하다만, 여기까지 오면서 본 상황을 고려한다면 조금 안일한 대처다. 이 일행이 오면서 본 정도만 알아도 저렇게 수동적이고 방어에 몰두하지는 않을 텐데…….
조금 길게 이어지는 말에 투란도 자기 입꼬리에 쓴웃음이 살짝 매달리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후욱 숨을 내쉬고 멀리 보면서 투란은 이 미묘한 표정을 감췄다.
베즐 팀을 선봉(先鋒) 삼아 돌격해 가는 이 일행 탓에 주변이 많이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꽤 멀리 있는 녀석들도 슬그머니 이쪽 분위기를 보면서 입맛이 돋는 듯이 서서히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알드바인의 성벽이 거슬리는 듯 멈칫거리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일행은 성벽까지는 무사히 닿을 듯하지만…….
‘입구로 바로 닿지는 못하겠는데, 일단 성벽에 달라붙은 다음에 입구쪽으로 가려는 건가?’
투란은 베즐의 의도를 추측해 봤다.
일단 알드바인과 거리를 좁히는 것에 몰두한 듯, 베즐은 무조건 최단 거리를 잡아 돌격하는 모습이었다. 성벽 안으로 들어갈 입구와 거리가 있든 말든, 성벽에 달라붙어서 뭘 하려는 것처럼.
―그냥 성벽을 올라갈 방법이 있는 것 아니냐?
드라고니아도 갸웃하며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베즐 팀만 있는 일행이 아니라고. 이 일행을 전부 성벽 위로 옮겨갈 마도구가 있으려나?’
―보면 알겠지. 기대되는군.
드라고니아의 호기심이 맴도는 대꾸에 투란은 가볍게 헛기침하고 입가의 먼지를 핥아 담은 침을 뱉으면서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기분대로 하자면 다들 목숨 걸고 뛰는데 너무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 아니냐고 한 소리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투란 스스로도 과연 이다음에 이 일행이 어찌할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으니,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며 어울려서 지켜볼 작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가몬티! 이 정도면 날아 볼 만한가?”
베즐이 외쳤다.
가몬티는 바로 그물을 쥐었던 손을 놨고, 투란이 냉큼 빈손으로 그물 한쪽을 잡아 올리며 루센카 일행에게 힘을 더해 줬다. 가몬티의 눈길이 슬쩍 투란을 훑었고, 그 다리는 벌써 랩티드의 형상으로 변했다.
파팟!
거세게 가몬티가 베즐을 스쳐 갔다.
말보다 행동으로 대답하는 가몬티의 뒷모습을 향해 베즐이 다시 외친다.
“편지통! 입에 물고 날아!”
펄럭!
가몬티는 랩티드의 다리로 가속해서 높이 뛰며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확실하게 베즐과 일행에게 보여 줬고, 그다음에 날개를 펼쳐 알드바인의 성벽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끈을 문 루센카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뒤늦게 들어온다.
“저 새끼…… 몬스터 로드……였나.”
짙은 혐오와 분노가 서린 목소리였다.
투란이 갸웃하며 그 뒷모습을 보는데, 루센카 팀 중 한 명이 한숨처럼 내는 소리가 있었다.
“루센카, 입 다물고 있어.”
그다음에 투란은 루센카의 목줄에 핏대가 서면서 그물과 이어진 끈이 팽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데, 팀 멤버의 말에 꼼짝없이 입을 다무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투란은 말을 한 루센키 팀 멤버를 바라봤고, 그는 달리면서 ‘뭐예요?’라는 투란의 눈길을 느끼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낮게 말한다.
“사정이 좀 있어서.”
이 상황에서 ‘무슨 사정인데요?’라고 물을 수도 없어서 투란은 ‘그런가요.’라는 표정만 지어 보이고는 그물을 조금 더 높이 당겨 올리면서 루센카 팀과 달리는 속도를 맞췄다.
가몬티가 날아오른 다음에 일행은 속도를 더 올리면서 알드바인 성벽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에서는…….
‘망보는 사람도 없는 거야?’
아무 반응이 없어서 투란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누가 내려다보다가 날아드는 가몬티가 뭔가 확인하려는 낌새 정도는 있을 만한데, 아무것도 없다니?
―마력의 흐름은 변하고 있다. 상아탑 쪽에서 직접 반응하려는 것 같다만, 지금은 성벽이 아니라 뒤에 들러붙는 녀석한테 관심 가져야 할 때야!
‘어?’
드라고니아의 경고와 함께 투란은 등골이 오싹한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앞에서 앞만 보는 루센카는 이런 투란의 표정을 못 봤지만 다른 두 명의 루센카 팀 멤버는 똑똑히 봤다. 그리고 둘은 곧 반쯤 고개를 뒤로 돌렸고, 바로 외쳤다.
“베즐!”
“땅구렁이다!”
베즐은, 베즐 팀은 곧바로 반응했다.
선두에서 바로 뒤돌아섰고, 나머지 일행이 자신들을 스쳐 가게 하면서 진영을 고쳐 잡았다. 산돌프가 그런 베즐 팀을 지나치자마자 멈추고 돌아서며 외친다.
“너넨 빨리 가! 내가 마법으로 지원할 테니! 베즐, 내가 마법을 쓰면……!”
“돌아서서 뛰지요!”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즐이 대답했다.
산돌프 일행은 내달리는 속도를 늦추지도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그 입은 거친 숨결 사이로 몇 마디씩 토해 내고 있었다.
“아이, 씨!”
“일발조루가 멋부리긴!”
“훼방만은 놓지 말라고!”
“불만 있으면 와서 때려 봐아!”
산돌프가 그런 일행을 향해 울컥한 듯이 반쯤 고개를 돌려 외친다.
“이 시키들이 진짜! 나중에 내 손에 전부 뒈질 줄 알아!”
이 오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잠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다가 가까운 산돌프 일행 몇몇에게 소리쳤다.
“이거 좀 잡아 줘요! 이 아저씨들, 힘없으니까! 난 남아야겠어요!”
바로 두어 명이 루센카 팀의 그물로 손을 내밀며 투란의 자리를 대신했는데…….
“확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몰고 와서 떠넘기니 기분 좋수?”
“하여간 저 마법사 물러터져서는!”
루센카 팀을 향해 핀잔하는 소리를 거침없이 뿜어내기도 했다.
루센카가 끈을 꽉 문 채로 콧김을 거칠게 뿜으면서 뭐라 반박하려는 듯했지만, 그보다 먼저 팀 멤버가 헛기침과 함께 외친다.
“고마워! 나중에 제대로 한턱내지!”
이 소리는 산돌프 일행의 입을 다물게 했고, 살짝 루센카를 휘청이게 했지만 역시 입은 다물게 했다.
그 광경을 떠나보내면서 투란은 키득거리는 채로 마법사의 뒤편으로 다가갔다.
산돌프가 다가오는 투란을 흘깃 돌아보더니 투덜거린다.
“뒤통수 때리지 마. 나 쓰러져서 끌고 갈 때는…… 질질 끌지 말고 업고 가라, 부탁한다!”
이 소리에 투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요? 질질 끌고 갈려고 한 거?”
산돌프의 어깨가 축 처졌고…….
“너, 인마! 너도 저 얼간이들처럼 마력 바닥난 마법사 대하는 방법을 소문으로 배운 놈이잖아! 발목 잡고 끌고 가네, 뒷목 쥐고 끌고 가네! 그딴 짓 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투란은 혀를 날름했고…….
“그러면 안 되나요?”
툴툴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산돌프는 이에 다시 뭐라 하지 못했다.
베즐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나온다! 대기!”
쿠릉, 콰드득.
땅이 찢어지면서 땅속으로 일행을 따라온 몬스터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뱀의 비늘, 뱀의 몸을 지녔으니 뱀의 머리가 아닌 지렁이의 단말(端末)을 지닌 몬스터…… 땅구렁이였다.
활잡이 카엘이 빛의 화살을 딱 한 번 쐈다.
빛의 화살은 땅구렁이의 몸에 꽂히지 않았다.
뱀의 비늘에 빛의 화살이 닿는 순간, 환하게 비늘이 밝아졌고 화살은 사라졌다.
그 광경에 투란이 ‘어?’ 하는 소리를 냈고, 베즐이 뒤로 물러서면서 테란과 자리를 바꾸며 외친다.
“크리스털 스케일이다! 꼬챙이 꺼내!”
이 상황을 이미 염두에 둔 듯한 대처를 하는 듯한데…….
‘아니, 솔리드 포톤이 안 먹히는 거야?’
투란은 눈을 부릅뜨며 땅구렁이를 쳐다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