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3)
―호오? 안 통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잖아?
드라고니아는 감탄했다.
그 말에 투란도 퍼뜩 깨달았다.
베즐 팀은 솔리드 포톤 블레이드, 광하검이 효과가 없는 경우를 예상하고 움직였다. 한꺼번에 달려들거나 하지 않았고 침착하게 활잡이 카엘이 달랑 한 발의 화살로 먼저 확인부터 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보여 준 대책도 굉장히 빨랐다.
테란이 앞장서며 꺼낸 칼은 토막질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팀 멤버들은 거뭇하고 뾰족한 꼬챙이처럼 생긴 막대를 꺼냈다. 그 상태로 돌격해 가는 광경을 베즐과 두 카엘은 뒤에서 지켜보는 듯했는데, 곧 뭔가 다른 것을 꺼내는 것이 마냥 구경만 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베즐 팀을 방패로 철저하게 믿는 것처럼, 산돌프는 당당하게 선 채로 집중하며 강력한 일격의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이 뒤편에서 보기에는 산돌프가 베즐 팀이 쓸려 나가고 바로 함께 쓸려 나갈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투란의 관심은 땅구렁이에게 쏠린 채라 그냥 어이없는 눈길로 마법사를 흘깃하고 넘겼다.
‘왜?’
―크리스털 스케일……이라서?
드라고니아가 베즐의 한마디를 되뇌듯이 중얼거렸다.
‘그게 뭔데?’
투란은 더욱 갸웃했다.
―음, 빛을 산란(散亂)시키고 뇌광(雷光)을 튕겨 내는 비늘이지. 웜 계열의 몬스터 중에서 가끔 나온다만…… 흔하지는 않아. 하지만 저거 꽤 푸석거리는 비늘이라…….
쩌억!
콰직, 콰드득!
푸석거린다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증명하듯, 테란의 칼날과 내밀어진 몇 가닥의 꼬챙이에 의해 땅구렁이의 비늘이 으깨지고 썰려 나갔다.
우우우우우웅!
뱀머리 대신에 자리 잡은 지렁이의 입이 활짝 열리면서 깊은 동공(洞空)을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픔을 호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분노를 표현하는 듯한 낌새가 짙었고, 이를 증명하듯이 땅을 가르며 뱀 꼬리가 튀어나왔다.
테란과 일행이 이리저리 뛰고 굴렀고, 그 자리를 뱀 꼬리가 후려치며 쓸었다.
베즐 팀 멤버 한 명이 그 꼬리 끝에 걸려서 튕겼는데, 튕겨 가며 외치는 소리가 아련하게 퍼진다.
“난 괜찮아!”
투란은 그 소리에 움찔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고!’
불쑥 입에서 튀어 나가려는 소리였지만, 투란은 입술을 꽉 깨물며 억눌렀다.
저편에서 데굴거리다가 발딱 일어나는 베즐 팀 멤버의 모습을 보니, 정말 괜찮아 보이잖는가!
―베일이다. 땅구렁이를 공격하는 데는 못 써도 방어용으로는 쓸 수 있나 보네.
드라고니아가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재빨리 눈알을 굴렸고, 확인했다.
넓게 쓸어가는 뱀 꼬리, 피하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껑충 뛰어넘으려던 테란의 다리가 걸려 넘어지는데 그 다리부터 몸까지 희미한 빛이 어리면서 테란은 그냥 데굴데굴 구르다가 발딱 일어나고 있었다.
분명히 광하검이 땅구렁이의 크리스털 스케일을 베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그 비늘이 어린 꼬리가 광하의 장막을 깨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이쪽은 공격 무기를 바꾼 채이니…….
퍼억, 쩌억!
땅구렁이의 비늘이 으깨지고 갈라졌다.
구우우우우!
슬슬 땅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땅구렁이의 몸길이는 어림잡아도 수십 미터, 그 격노의 울음소리는 이제 귀가 아니라 온몸을 울릴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그저 비늘 몇 장만 뜯어내고 몰살당할 지경이 아닌가?
―광하검을 쓸 작정이군.
불쑥 드라고니아가 짚었다.
‘어?’
투란은 다시 베즐과 두 카엘을 바라봤다.
뭔가 새로운 것을 꺼내고 있던 셋은 자신들의 솔리드 포톤 장비에 뭔가를 덧씌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땅구렁이를 노려보는 것이 완전히 기회를 노리는 모습이었다.
눈길을 돌려 다시 땅구렁이의 상태를 살피고서 투란은 퍼뜩 알아차렸다.
땅구렁이의 비늘을 여기저기 마구 깨뜨리고 있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뱀의 몸통 한자리에 껍질이 벗겨진 둘레를 만들고 있었다.
‘저 껍질만 벗겨 내면 통하는 건가?’
―통한다, 확실하게. 마법사의 마법은 그냥 통할 테고.
‘에? 으아!’
투란은 바로 앞에서 이글거리며 피어나는 뜨거움에 흠칫 놀랐다.
조금 전까지 없던 붉은 투창이 마법사의 두 손 사이에서 생겨나 둥실둥실 떠 있잖은가!
화르르, 파아앙!
불길이 사납게 타오르는 순간, 그 불길을 고스란히 휘감은 붉은 투창이 허공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튀어 나갔다. 마법사의 두 손 사이에는 불꽃이 여운처럼 맴돌았고…… 땅구렁이의 목줄을 투창이 꿰었다.
높이 치솟은 머리가 지렁이의 입을 열고 훌렁 저편으로 넘어갈 때, 베즐과 칼잡이 카엘이 내달렸다. 그런 둘이 지닌 빛의 칼날은 이전과 다른 색채를 띠었다. 베즐의 것에는 불그스름한 그림자가 서린 듯했고, 칼잡이 카엘의 것에는 뭉클거리는 검은 연기가 어린 듯했다. 단지 광하검만이 아니라 둘의 몸에 어린 여린 빛까지도 그런 색채를 머금은 채였다.
‘얼레?’
투란이 의아해할 때, 격돌이 일어났다.
산돌프의 마법 투창에 맞고 몸부림치는 땅구렁이였기에 테란 등이 열심히 벗겨 낸 비늘 자리에 빛의 칼날이 꽂히지는 않았다. 베즐이나 카엘도 굳이 그 자리에만 빛의 칼날을 들이대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저 닿는 대로 찌르고 벨 뿐!
그러나 색채가 변한 빛의 칼날은 비늘을 일그러뜨리고 파고들면서 땅구렁이를 썰고 있었다. 거센 몸부림 탓에 산뜻하게 토막 나지 않고 썩썩 살점이 두텁게 베이고 썰리는 광경이었다.
몬스터의 피와 살이 뿜어졌고 베즐과 칼잡이 카엘을 뒤덮었다.
테란과 팀 멤버들이 물러선 탓에 베즐과 칼잡이 카엘, 둘만 피로 범벅이 되었다. 저 정도면 앞뒤 분간도 못 하고 누가 뭐라 하는 소리도 못 들을 것처럼 보이는데…… 둘은 전혀 지장이 없다는 듯이 땅구렁이의 몸부림 속에서 빛의 칼날을 사납게 휘둘러 댈 뿐이었다.
결국 그 거센 참격(斬擊)이 땅구렁이의 긴 몸통을 난잡한 형태로 끊어 냈다.
하지만 땅구렁이는 난자(亂刺)당해 토막 난 몸을 여전히 움직이려 하는데…… 살짝 물러섰던 테란들이 다시 달려들어 벗겨진 비늘 자리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들쑤셔 댔다.
그사이에 산돌프가 털썩 주저앉았고,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깐 안 통했는데 뭐야? 비늘 벗긴 자리가 아니었다고!’
―빛의 파문(波紋) 형질이 달라졌다. 크리스털 스케일 같은 것과 만나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저거 오래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광하량의 소모가 거의 열 배 정도인 데다가 오러의 소모도 서너 배로 증가한다. 성질이 달라지고 파괴력도 확실히 증가하기는 하지만 효율은 아주 나빠.
‘오래 못 쓴다면, 한 마리 잡고 끝?’
투란은 갸웃했다.
활잡이 카엘의 목소리가 높이 울린 것은 땅구렁이가 바들거리면서 발버둥을 멈춰 갈 때였다.
“더 온다! 베즐, 싸워?”
베즐이 입가를 팔뚝으로 문지르며 물러서는 채로 되묻는다.
“몇 마리? 어떤 거?”
렌즈를 조작하면서 활잡이 카엘이 대답한다.
“땅구렁이 서넛으로 예상되고, 랩티드와 큰 도마뱀이 섞여 있다. 이쪽 소란을 눈치채고 움직이기 시작했어!”
칼잡이 카엘이 바로 투덜거린다.
“그딴 걸 보면서 싸우냐고 묻냐!”
“성벽으로 달려!”
베즐은 깔끔하게 외치고 돌아서더니, 투란을 보고 한번 더 외친다.
“투란, 마법사 집어 와!”
“어? 아, 네엡!”
투란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산돌프는 식겁했다.
“뭐? 집어! 야, 발목 잡고 달릴 생각하지 마! 얌전히 업어! 꾸엑!”
마법사의 뒷덜미를 한 손으로 잡아 올리며, 손을 어깨에 대고 뒤에 매단 꼴을 만든 다음에 투란은 달리기 시작했다. 베즐 팀도 두말없이 쓰러뜨린 땅구렁이를 냅두고 내달리는데, 산돌프가 다시 숨찬 목소리를 터뜨린다.
“수, 숨 막혀! 옷, 옷이……!”
테란이 투란 곁으로 붙어 뛰며 외친다.
“투란, 마법사님 목 조르고 있어!”
“어? 아, 미안해요오!”
투란은 냉큼 마법사를 잡은 손을 높이 올렸고, 다른 손으로 마법사의 등짝을 잡아서는 바로 머리에 얹었다. 느닷없이 사람 머리에 얹힌 짐이 된 마법사, 산돌프가 또 다른 신음을 흘린다.
“내 허리! 크억!”
칼잡이 카엘이 달리면서 투덜거린다.
“입 좀 다물어요, 마법사! 시끄럽다고!”
이 잔소리에 산돌프가 뭐라 하기 전, 땅이 울리고 큰 소리가 땅구렁이와 싸우던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콰르릉, 퍼억!
지렁이의 입, 장대(壯大)한 뱀의 몸을 지닌 땅구렁이 서너 마리가 땅속에서 뿜어지듯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곁으로 예닐곱 마리의 랩티드가 스쳐 가려 했는데, 두어 마리는 그대로 땅구렁이의 입에 걸려 삼켜졌다.
곧 땅구렁이 몇 마리가 땅을 짓이기면서, 쓰러져 있는 한 마리를 찍어눌렀고 주변을 뱀 꼬리로 두드려 패면서 휘저었다. 랩티드 몇 마리는 이제 사냥감을 쫓는다기보다는 그 난동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랩티드 몇 마리가 뒤에 들러붙는 광경을 확인하는 일행에게는 그 이빨이 꽤 위협적인데…….
“내게 맡겨!”
활잡이 카엘이 외침과 함께 달리는 자세를 더욱 낮추더니 앞으로 굴렀다. 구르고 앉은 활잡이의 눈은 일행과 거의 몇 미터밖에 남지 않은 랩티드 몇 마리를 겨냥했고, 빛의 화살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랩티드의 머리, 몸통이 꿰였고 화살의 남은 가닥들이 멀리 나아갔다.
투란은 등 뒤에서 뭐가 뒹구는 기척을 느끼면서 짧게 놀란 소리를 외쳤다.
“우앗! 이거 괜찮……!”
“괜찮아!”
어느새 일어나 투란 곁으로 달려오는 채로 활잡이 카엘이 대꾸했다.
드라고니아도 보태듯이, 투란에게 말한다.
―응, 괜찮다. 랩티드는 모두 격살(擊殺)했고 나머지 화살은 땅구렁이 주변에 떨어뜨려서 주의를 흐트러뜨렸어. 좋은 선택이야.
‘젠장, 랩티드 다리가 저렇게 빨랐냐고! 저쪽에 있더니 이렇게 빨리 숨소리가 들릴 정도까지 들러붙어!’
―뭔 소리야, 그 정도는 늘……? 어라? 야, 너 왜 갑자기 오러 마크에만 의존하고 있는 거야? 왜? 프로브의 탐지 정보도 안 받고 뭐 하는 짓이야?
‘마법사를 내 머리에 찰싹 붙이고 있다고! 너도 조심 좀 해!’
―하여간 뭔 짓을 하는 건지…….
조금 전까지 프로브가 포착한 정보를 받아들이던 투란이 새삼 헌터스 배너의 범위 안으로 감각을 위축시킨 채인 것을 확인하며, 그 때문에 랩티드의 속도에 허둥지둥거린 것을 파악하며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했다.
산돌프가 마법사로서 밀착한 상태를 통해 알아낼까 그랬다고는 하지만, 정작 산돌프는 달리는 투란의 머리에 허리를 찍히는 꼴이 되어 비명만 지르는 중이었다.
“끄억! 끼악! 내, 내 허리…… 부러뜨리지 마아아!”
도저히 마력으로 뭘 감지해 낼 상태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 마력도 바닥난 상태!
‘방심하지 마!’
물론 투란은 이렇게 소리 없는 외침을 터뜨리면서, 베즐 팀과 함께 달릴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아주 빠르게 느껴진 랩티드가 너무 위협적이란 듯, 일행을 노리고 달려든 몇 마리가 전부 빛의 화살에 맞고 쓰러졌어도 겁난다는 듯!
우우웅! 우웅!
땅구렁이 몇 마리가 깊은 울림을 토해 냈다.
곧 그 긴 몸이 높이 치켜 올라 휘청거리더니 도망치는 일행을 향해 기울어졌다.
뒤돌아보지 않고 있었지만 그 울음소리 덕분에 땅구렁이 몇 마리가 동족의 원수라도 갚겠다는 듯이 달려든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베즐 팀, 투란과 마법사의 머리 위로 불덩이 몇 개가 이글거리며 지나쳤다. 알드바인의 성벽 높은 곳에서 튀어나온 불덩이였다.
‘마법?’
―아니, 그냥 기름 먹인 바위야. 투석기를 썼다.
높은 성벽과 거리가 꽤 가까워졌다 싶더니만, 접근하는 거대한 몬스터를 향한 알드바인의 요격(邀擊), 견제(牽制)가 시작된 것이다.
땅구렁이는 이에 대해 제각각 대응했는데…….
입을 열고 날아든 불덩이를 삼킨 놈은 그 목줄이 시원하게 터져 버렸다.
흔들거리며 몸으로 튕겨 내려던 놈은 비늘과 긴 몸의 한 귀퉁이가 으깨지고 말았다.
슬쩍 피하려던 놈은 꼬리 언저리에 불덩이가 꽂히면서 불이 붙었다.
투란이 어떻게 봐도 ‘그냥 기름 먹인’ 바위가 보일 효과가 아니었다.
‘마법 맞잖아! 큰 돌에 불붙였다고 저럴 리가 있냐!’
―그냥, 기름을, 아주, 잘, 먹인, 바위라고!
드라고니아는 아주 완강하게 대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