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4)
쾅, 콰쾅!
연잇는 폭음을 뒤로하고 일행은 성벽에 닿았다.
투란은 ‘내 허리!’를 외치는 산돌프를 내려놓았고, 감탄했다.
‘와아,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떠들 수 있다니! 대단해!’
잠시라도 발걸음을 늦추거나 했으면 거대한 몬스터, 좀 덜 거대한 몬스터에게 씹히거나 몬스터를 견제하는 불덩이에 휩쓸릴 상황이었다. 한데 이 마법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불편한 자신의 자세와 몸 상태에 대해서 끊임없어 떠든다!
“살살, 살살 좀 해라!”
헉헉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산돌프는 허리를 잡고 끙끙대며 이렇게 불평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산돌프의 상태에 관심을 둔 이는 투란뿐이었다.
베즐은 바로 먼저 성벽에 도착한 산돌프의 일행에게 묻는다.
“리프트? 성벽 문?”
간단한 물음이었고 투란에게는 어리둥절한 낱말이 툭툭 나온 듯했다.
하지만 답하는 쪽에서는 그 짧은 두 마디로 충분한 모양이었다.
“리프트. 신호 올렸어. 문은 어느 쪽이든 상태 안 좋아. 땅아래에서 뭔가 잔뜩 날뛰는 모양이고, 문을 노리는 낌새거든.”
“그래? 그러면…… 왜 리프트가 내려오지 않지?”
베즐이 성벽 위를 올려다보면서 다시 확인하며 물었다.
산돌프의 일행이 서로를 흘깃거렸고, 찌푸린 표정 속에서 한 명이 답한다.
“여기서 기다리란 신호는 받았어. 합류하면 다 같이 태울 작정인가 했는데…….”
베즐 팀이 한꺼번에 낯을 구겼다.
투란이 보기에는 다들 찌푸린 표정 짓기로 무슨 내기라도 하는 분위기였다.
한데 이런 분위기 속으로 투덜거리는 산돌프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퍼진다.
“기다리라 했으면 기다려. 불타는 바윗돌까지 날려서 견제해 놓고 내버릴 일은 없으니까. 알드바인 상아탑 녀석들은…… 이 멍텅구리 벽을 엄청 자랑하니까. 그 앞에서 멀뚱거리며 누가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아, 알잖아?”
“알죠. 방어 대열을 짠다!”
베즐이 한숨처럼 대꾸하고는 바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베즐 팀을 중심으로 일행이 벽을 등지고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뭐가 오든 일단 여기서 버티고 싸우며 기다릴 작정인 모습이었다.
투란은 그 대열 한구석에 적당히 자리를 잡듯이 움직이다가 퍼뜩 벽을 보고 소리쳐야 했다.
“우어어! 벽이에요, 벽!”
이게 뭔 소리인가 제대로 알아들은 이는 없었지만 일단 다들 흠칫하고 움찔하며 투란이 손가락질하는 벽, 알드바인의 성벽을 돌아봤다.
벽이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구멍이 열리고 있었다.
널찍하게, 한꺼번에 서너 명이 뛰어들어도 될 구멍은 벽 안쪽으로 이어지는 깊숙한 통로를 드러냈고 목소리를 토해 내기도 했다.
“오래 열어 둘 수 없어요! 어서들 들어와요! 빨리!”
살짝 당황해서 주춤하는 일행 사이로 베즐의 목소리가 빠르고 크게 울렸다.
“진입! 알드바인으로 귀환이야!”
더 이상 머뭇거림은 없었다.
끙끙거리며 걸음이 불편하다고 투덜대는 마법사 산돌프가 있었을 뿐, 나머지는 베즐 팀의 재촉에 급하게 열린 구멍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 와중에 투란은 다시 베즐이 흘깃 눈짓하는 모습을 봤고, 냉큼 산돌프의 등짝을 두 손으로 잡아 보따리처럼 늘어뜨리고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얀마!”
산돌프의 투덜거림은 한 귀로 흘린 채…….
저 멀리서 으르렁거리며 불타는 바위에 공세를 땅속으로 피해 몸을 추스른 듯한 땅구렁이가 다시 치솟고 있었다. 불길이 새로 뒤집어진 땅 주변으로 퍼지고, 땅구렁이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성벽을 향해 크고 긴 몸을 움직이며 포악한 음향을 토해 낸다.
베즐을 끝으로 열린 구멍, 긴 통로로 들어선 일행에게는 그 광경이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행이 모두 들어서자마자 구멍이 닫혔고, 통로마저도 오그라들며 다시 두꺼운 벽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은근히 일행을 재촉하는 광경이었다. 늦으면 그대로 벽 속에 몽땅 묻어 버릴 낌새가 선명한!
통로를 달리면서 투란은 기억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구멍에서 울려 나온 목소리를 비교했다.
‘마스터 케이라, 맞지?’
―맞아.
드라고니아가 짧게, 윌 라이트의 기척을 더욱 은밀하게 감추면서 대답했다.
상아탑의 영역 안에서는 더욱더 조심스럽게, 투란에게 동의하는 태도였다.
그렇게 해서 몇십 미터를 이어진 통로에서 일행이 벗어나니…….
“베즐 세븐, 팀 모두 일곱 번째 대문으로 가 줘요. 편지통을 가져온 몬스터 로드도 거기서 합류할 거예요. 함께 대문 방어를 맡아 줘요. 산돌프 파티, 다들 전령으로 활동해 줘요. 지시 사항은 말로란에게서 들어요. 길드부터 공방까지 바쁘게 뛰어야 할 거예요! 투란, 마법사 산돌프 님이랑 십이 구역 성벽으로 올라가 줘요. 산돌프 님, 오랜만이니 중요한 임무 괜찮겠죠? 마력은 성벽 위에서 회복하시고, 회복되는 대로 한 번씩 써 줘요. 투란이 가드해 줄 거예요. 휴식은 자리 잡고 해도 되니, 빨리들 움직여요!”
곧바로 통로가 메워지는 광경과 함께, 그 광경을 제대로 감상할 틈도 없이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케이라로부터 쏟아져 나온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허공에 보이던 케이라의 모습이 바로 사라졌으니, 뭐라 따질 겨를도 없었다.
투란에게는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상황이었다.
하지만 베즐이나 다른 이들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베즐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외친다.
“그럼, 나중에 길드 창구에서 다시 보자고! 정리할 일은 그때 가서 하고, 다들 가자!”
베즐 팀은 후우 하는 한숨 같은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바로 그 말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돌프 일행도 끄응거리면서 몇 마디씩 툴툴대기는 했지만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투란은 ‘십이 구역이 어디?’라고 중얼거렸고, 산돌프는 사라진 케이라를 노려보기라도 하듯이 허공을 향해 투덜거린다.
“오랜만인데 뭐가 중요한 임무야! 겨우 벽 안으로 들어왔으면 어디 가서 하루 푹 쉬다 오라고 해도 되잖아! 탑에 방문 통지 안 하고 파티 꾸며 나갔다고 심술부리나! 너무하잖아! 성벽 위에서 마력 회복이라니! 내가 무슨 마도구냐고! 상아탑 소속 아니라고 이렇게 마구 부려먹어도 되나! 사람이 말이야!”
그 소리를 듣고 보다가 투란이 목소리를 살짝 높여 묻는다.
“십이 구역이 어디예요?”
말이 끊겨 인상을 팍 구긴 산돌프가 투란을 바라봤다.
하지만 투란이 두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옮겨다 드릴까요?’라는 눈빛을 보내니 산돌프는 마땅치 않은 한숨과 함께 대답한다.
“안내해 줄 테니까, 업어다 줘. 야, 들고 갈 생각 마! 머리에 얹으려 하지도 말고! 사람을 짐짝 취급하지 말라고! 아무리 급해도 얌전히 업어 줄 수는…… 우엇!”
“네, 네! 자아, 여차! 업었으니까, 어디로 가냐고요!”
산돌프를 강제로 들어 등에 붙이면서 투란이 말했다.
산돌프는 투덜거림을 멈출 생각은 없는 듯했지만, 투란 어깨 위로 팔을 내밀며 손가락질하며 방향을 알려 줬다.
“넌 왜 성벽 구역에 대해서 몰라? 맨날 북쪽 성벽으로만 들락여서 그러냐? 하이랜드 쪽 성벽 구획이 어떻게 나눠 있나 신경도 안 써? 정말 몰라? 아, 놔! 알았어, 이참에 설명해 주지! 우선 간단하게, 남쪽 성벽은 통째로 십구 구역이야. 북쪽 성벽은 구역 분할 이전에 지어져서 그냥 북벽구라고 하고…… 하이랜드를 바라보며 제일 길게 늘어진 벽, 우리가 열심히 바라보며 달려온 벽은 열여덟 덩어리로 쪼개서 관리해. 그래, 일 구역에서 십팔 구역까지 나눠진 거지. 그중에서 십이 구역으로 가는 길은…… 저쪽 계단이다. 이 성벽 안은 격벽 구조로 만들어서 외벽이 뚫리더라도 내벽으로 한번 더 방어할 수 있게 만들어졌지. 여차하면 외벽 쪽을 완전히 파괴하면서 내벽만으로도 쳐들어오는 것과 맞서 싸우도록 설계된 거야. 아, 다음 계단은 저기야. 어? 나? 나는 상아탑 소속 아니라고! 그래서 상아탑 영역 안으로, 알드바인처럼 상아탑이 자치하는 도시에 들어오면 들렀다고 말해 둬야 해. 방문 보고, 방문 신고라는 거지. 그거 엄청 귀찮거든…… 게다가 난 헌터 길드에 등록되어 있으니까 길드에서 알아서 신고해 주기도 하고…… 뭐, 그런 거지.”
몇 단으로 나눠진 긴 계단을 내달리면서 투란은 ‘몰라요.’라든가 ‘이제 어디로?’라든가 ‘상아탑 마법사 아니에요?’라든가 하면서 적당히 산돌프의 말에 대꾸하며 십이 구역 성벽으로 올라섰다.
하늘이 보이는 자리에 서자마자 거센 바람이 스쳐 갔고, 투란은 잠시 멍하니 성벽 위의 풍경을 둘러봐야 했다.
폭이 20미터가 넘는 성벽, 곳곳에 도검과 창, 도끼에다가 활, 화살통까지 비치(備置)해서 빈손으로 올라와도 아무거나 들고 싸울 수 있어 보였다. 거기에 몇 명이 달라붙어야 움직일 수 있어 보이는 대형 투석기…… 마침 불타는 바위가 쏘아지고 있는 광경과 함께 대형 쇠뇌가 그 곁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굵고 긴 투창을 화살 삼아 쏘고 있었다.
분주하게 많은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성벽 너머로 하늘과 땅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넓고 높이 펼쳐진 그 풍경 속으로 몬스터 떼가 잔뜩 뛰고 나는 모습이 수놓아져 있었다.
“야, 내려 줘!”
산돌프가 투란의 어깨를 치면서 보챘다.
투란이 내려놓으니 산돌프는 바로 고개만 내밀면 성벽 아래가 보일 듯한 돌로 된 방책에 달라붙었다. 털썩 앉아 등을 기댄 채로 숨을 고르면서 겨우 쉴 수 있어 다행이란 표정까지 짓는 꼴을 보니, 뭐가 넘어오면 바로 머리 위를 스쳐 가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마력 회복을 할 모양이었다.
그런 산돌프 곁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검갑을 풀어놓으면서 투란은 화이트 레이크를 등지고 하이랜드의 광활한 풍경을 둘러봤다. 온갖 소란 속에서도 꿋꿋한 하늘과 땅의 사이를 바라보며 투란의 생각은 조금 전을 더듬는데…….
‘마스터 케이라, 나 알아본 것 같지?’
―알아봤으니까 마법사의 가드를 맡겼겠지. 쟈카라 산림에서 네가 홀시딘의 가드를 한 척했잖아.
‘음…… 그러네. 그럼 이제 뭘 하지?’
슬쩍 투란은 성벽 위에서 바쁜 이들을 둘러봤다.
길게 이어진 저 너머로는 아주 바쁜 모양인데, 이쪽은 조금 한산했다.
멀리 쏘아 대는 투석기 말고는 다들 뭐가 이쪽으로 오는가를 지켜보면서 잔뜩 긴장한 채이기는 했지만…… 아직 저 너머처럼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뭔가가 없으니 대기만 하는 셈이었다. 물론 뭔가 수상한 것이 날고 있으면 일단 활이나 쇠뇌로 겨냥하며 투석기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는 있지만 웬만해서는 쏘기보다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괜히 자극해서 이리로 끌어오는 짓은 피하려는 듯…….
산돌프도 마력 회복하느라 집중하는 탓에 투란은 정말 자신이 멀뚱거리면서 이쪽저쪽 구경만 하는 처지가 되었나 해서 어이없어 실소(失笑)하는데…….
―너무 마음 놓지 마라. 인기척이 적고 자극하지 않아서 바로 이쪽으로 붙는 것이 적다는 거지, 없는 거 아냐. 눈치 보면서 슬슬 움직이는 녀석들은 잔뜩 있다. 저쪽이 소란스러워서 저리로 많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이 벽 너머로 와글거리는 인간의 자취를 느끼면…… 빈 곳을 뚫기 위해 움직일 거야.
‘그래? 흐흠, 그래서 산돌프를 이리로 보낸 건가? 마력 회복을 마치면 적당히 한 방 날려 줘야 할 녀석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그렇게 생각되는군. 그러면 투란, 정말 어쩔 거냐?
‘뭐? 어쩌냐니?’
투란이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투란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다.
이쪽저쪽으로 바쁜 탓에 마법사가 한쪽에 늘어져 있어도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는 뭐가 튀어나와도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죽게 둘 듯한 낌새도 슬그머니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가?
새삼 투란에게는 갈피를 잡기 힘든 이야기였다.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다시 하나씩 짚듯이 말한다.
―뭐가 튀어올라 올지 모르잖아.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계속 헌터스 배너에 기대는 오러 윌더 흉내를 낼 거냐? 상황이 적당하면 상관없지만 그렇게 적당히 대응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어쩔 거야? 네 주변에서 누가 죽어 나가든 상관없이 숨기고만 있을 작정이냐고.
‘흐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다시 슬그머니 성벽 위, 성벽 너머를 둘러봤고 하얀 안개가 맴도는 호수 쪽까지 돌아봤다. 그 간격을 가득 채운 알드바인의 풍경, 도시라 일컬어지는 수만, 아니 이십만 가까이 된다는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을 주욱 둘러봤다.
쉽게 쓰러질 리는 없어 보이는, 강인한 도시이기는 했다.
과연 여기서 어찌해야 하는가?
“산돌프 마법사님,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요.”
투란이 불쑥 말했다.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눈까지 감고 쳐져 있던 산돌프가 슬쩍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 묻는다.
“큰 거, 작은 거? 작은 거면 그냥 성벽 위에서 싸지?”
“아주 큰 거 싸러 가요.”
투란은 툭 대답했고, 산돌프가 피식 웃고 가볍게 손짓하며 말한다.
“올라오던 계단 중간에 있던 문, 거기가 큰 볼일 보는 데야. 후딱 갔다 와라.”
툴툴거리는 표정으로 투란이 움직였고, 드라고니아는 소리 없이 묻는다.
―뭘 하려고? 네 내장 상태는 깨끗하게 비어 있는데 왜?
‘내 배 속 들여다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