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5)
도수관이 벽에서 빠져나와 연결된 물통, 그 앞에 놓인 의자는 돌을 깎은 것이나 엉덩이 자리가 뻥 뚫린 물통이었다. 이것이 알드바인의 넉넉한 수원(水源)을 이용한 수세척(水洗滌) 대형 요강!
“음…….”
빼꼼 고개를 움직여 그 안에 맑은 물만 잔잔히 고여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도시에도 간혹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없다고 하는 상아탑의 청결한 도시 관리를 기반으로 했다는 하수 처리 방법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아직도 투란에게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배 속에서 몬스터로 싹 발라 처리하니까 그렇지. 그러게 가끔 들러서 사용하는 연습을 해 두라 했잖아.
드라고니아가 미묘한 낌새로 구박했다.
배설은 인간뿐 아니라 짐승에게도 당연한 일이지만, 헌터라든가 포식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추적의 단서였다. 때문에 투란은 뭐든 가능한 한 흘리지 않는 버릇을 열심히 키워 왔는데, 막상 도시 안에서 오락가락하다 보니 청결하게 관리되는 변기가 낯설어진 셈이었다.
대체 어느 쪽에 익숙해져야 하는가?
어느 쪽이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헌터로서의 숙련인가, 아니면 도시에 적응한 인간인가.
한숨을 쉬며 투란은 일단 문을 닫았다.
단단한 나무로 된 문을 닫고 나면 웬만한 소음은 모두 차단되어 고요하게, 그야말로 혼자만의 볼일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변기로 쏟아 내는 사적인 소음을 밖에서 듣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라 꽤 세심하게 문짝을 달아 놓은 셈이었다. 그 덕분에 투란이 바로 로열가든의 징표를 이용해 홀시딘을 불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금빛의 반지가 투란의 손가락 사이에서 반짝였고, 낮게 토한 목소리는 오직 금빛 속으로만 스며들었다.
“홀시딘, 투란이에요.”
알드바인의 벽은 상아탑의 마법에 바로 반응했다.
증폭하고 강화된 마법의 신호가 순식간에 멀리 뻗어 가는 것을 투란은 일렁이는 금빛을 통해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신호를 받은 홀시딘의 반응이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뭔가 저편에서 꾸물거리고 머뭇거리는 낌새…… 착각일 수도 있지만 투란은 한마디 살짝 덧붙여 본다.
“보상금 얘기 아니고, 알드바인에 몬스터가 몰려와서 물어보려는 거예요.”
잠시 후, 그야말로 잠깐이 지난 다음에 투란은 바로 금빛 안개로 엉긴 홀시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흠! 어, 투란. 무슨 급한 일인가? 여기 좀 바빠서…….”
투란은 한숨부터 쥐면서 말한다.
“여기도 바빠요. 알드바인인데…… 몬스터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응? 알드바인에 몬스터라고?”
바빠서 딴 데 보는 시늉하던 홀시딘의 눈길이 투란에게 바로 꽂혀 들었다.
다시 노골적으로 한숨 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투덜투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잔뜩 몰려오고 있다고요, 잔뜩! 그래서 지금 나도 성벽 위에서 산돌프라는 마법사를 지켜 줘야 하는데…… 아, 그거 마스터 케이라가 시킨 일이에요. 그러니까 엘데인에서 막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산돌프 마법사가 낀 다른 파티를 만나서…….”
“잠깐! 잠깐 기다려 봐! 내 잠시 알아보고 나서 얘기하자!”
툴툴거리는 와중에 두서없이 흩어지는 이야기를 듣다가 홀시딘이 기겁하고 손짓하더니, 사라졌다. 금빛의 안개가 자취를 흘리는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잠시 맹한 얼굴로 눈만 깜박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 이야기하는데 대체 어딜 가는가! 아무리 물로 깨끗하게 쓸어내리는 깨끗한 변기 앞이라 해도 오래 있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정신 나간 소리를 마구 늘어놓으니까 그렇지! 차분하게 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드라고니아가 왜 홀시딘이 훌렁 사라졌는가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맹하니 눈을 깜박이면서 입 다물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내 탓이라고?’
―이젠 제대로 차분히 정리해서 말할 수 있잖아! 왜 갑자기 어리광 부리는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떠드냐고!
‘어? 내가 그랬어?’
―야!
‘흐흠…….’
투란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뭔가 쌓여서 툭 터뜨린 것 같은데 그게 그리될 줄은 생각 못 했던 것이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서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살짝 자책하는 투란의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지났다 싶은 사이에 아롱거리던 금빛 안개가 다시 뭉치며 홀시딘의 형상을 이뤘고…….
“대강 들었다. 케이라가 성벽 지휘를 하고 있군. 적당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야. 그런데, 왜?”
갸웃하며 묻는 말이었다.
딱히 알드바인이 엄청난 위기도 아닌데 왜 바쁜 사람을 불러서 징징거렸냐고 따지고 싶은 듯한 낌새도 살짝 엿보였지만 홀시딘은 그래도 투란이 뭔가 분명히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것이라 믿고 싶다는 표정을 잔뜩 띤 채였다.
그래서 투란도 조금 전의 징징거림은 그냥 오랜만이라 그래 본 것이란 듯, 차분하고 침착한 표정을 꾸미면서 대답을 한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잖아요. 엘데인이랑은 다르다고 해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럴 경우에…… 아니, 내가 서 있는 성벽 근처에서 누가 죽을 것 같은 경우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요. 헌터스 배너의 한계를 넘지 않고 구해 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에…… 내가 몬스터 로드라는 거 들통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굉장히 신경 쓰여서 불렀어요. 어느 정도나 날뛰어도 되는가 애매하니까.”
“날뛰지 마!”
가만히 듣던 홀시딘이 ‘날뛴다’는 한마디에 흠칫하면서 버럭 외쳤다.
금빛 안개가 파문을 일으키면서도 그 소리는 전혀 안개의 영역을 넘어서 새어 나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투란은 ‘엥?’ 하며 홀시딘을 바라봤고, 홀시딘은 울컥한 기분을 가라앉히고 달래는 모습으로 내뱉은 한마디를 이어 말한다.
“지금 상황은 딱히 네 기량을 보일 필요가 없어. 그러니까 얌전하게, 딱 헌터스 배너의 한계 안에서만 마음껏 움직이란 말이야. 누가 다치는 정도로 나설 필요 없어. 죽지만 않으면 웬만한 상처는 전부 상아탑에서 치유해 줄 수 있으니까. 성벽 방어는 알드바인의 오랜 경험이 있으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았어? 그러니까…….”
“혹시 로드 오브 몬스터 같은 녀석이 또 나타나거나 하면요? 여태 없던 것이 툭툭 튀어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쩌냐는 말이에요. 죽을 것 같은 꼴을 보고서 내 정체를 드러낼 수 없어, 하며 구경하는 짓은 좀 거슬리잖아요.”
투란은 툴툴거리면서, 대충 징징거리는 말투로 떠들었다.
홀시딘이 말을 자르며 떠드는 투란을 잠시 보더니, 피식 웃었다.
“투란, 알드바인을 얕보지 마라. 백여 년간, 전설적으로 강한 누가 없어도 버티고 지켜 온 상아탑의 도시라고. 그래, 알아! 로드 오브 몬스터라든가 그보다 더한 엉뚱한 놈이 나올 수도 있지. 그럴 때에는 네가 뭐라 하기 전에 내가 연락할 테니까, 괜히 먼저 날뛰지 말라고. 알았지?”
“너무 오래 자리 비우는 거 아니에요? 알드바인의 마스터잖아요, 홀시딘은…… 그쪽 일은 얼른얼른 팍팍 끝내고 돌아올 수 없는 거예요?”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투덜투덜 물었다.
이 물음에는 홀시딘이 움찔하면서 눈길을 딴 데 돌리면서 대답한다.
“나도 팍팍 빨리빨리 끝내려고 하고 있어. 여기 상황이 꽤 꼬여서 시간이 좀 필요한 것뿐이라고. 암튼, 알드바인의 상황은 나도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네 힘이 필요하면 바로 연락할 테니까, 투란 나서지 말고…… 적당히 티 나지 않게 성벽 방어에 딱 한 사람 몫만 하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요.”
투란은 한숨처럼 대답을 했고, 금빛의 홀시딘은 한번 더 ‘날뛰면 안 돼!’란 말을 하고서는 사라져 갔다.
잠시 맑은 물이 채워진 변기를 바라보다가 투란은 돌아섰다.
―야, 물 내리고 가야지. 볼일 본 시늉은 해야 할 것 아냐?
‘응? 아…….’
투란은 다시 돌아서 변기 옆의 손잡이를 눌렀다.
콰르르, 물 흐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투란은 가볍고 빠르게 걸었다.
다시 성벽 위로, 산돌프의 곁을 향해…….
“오래도 쌌구먼.”
산돌프가 투덜거렸다.
올라서서 얼굴 보자마자 하는 소리에 투란은 헛웃음부터 흘리다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나오는 대로 대꾸한다.
“신기하네요, 성벽 위에 또 담장을 세우다니…….”
“응? 뭐야, 성가퀴 처음 보는 녀석처럼…….”
산돌프가 기대고 있던 담장, 투란의 말처럼 성벽 위에 새워진 방벽에 머리를 기대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이 낯선 한마디라는 듯이 바로 대꾸한다.
“성가퀴?”
―흉벽(胸壁)을 뜻하는 말이잖아, 몰라?
투란이 정말로 낯설어하는 것을 느낀 드라고니아도 어리둥절한 듯이 물었다.
산돌프가 툭툭, 뒷머리로 기댄 방벽을 건드리면서 말한다.
“이거잖아, 이거. 애들이 방벽이니 흉벽이니 하는 이거…… 젠장, 섀터드 세븐에서는 잘 안 쓰던가…… 기가둠에서는 많이 쓰는 말인데…….”
“기가둠? 거기도 가 봤어요? 거기 이런 성벽이 많다고는 하던데…….”
오랜만에 듣는 갑작스러운 왕국의 이름에 투란이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로 물었다.
산돌프는 그런 투란을 보며 실실 새는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후훗, 이 산돌프 마법사님은 이런 도시 정도는 작다고 여길 정도로 큰 도시, 여러 나라를 잔뜩 여행하셨단 말이지! 가는 곳이 많다 보니 가끔 지역마다 사물에 조금씩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잊기도 해서, 여기서는 성가퀴보다…… 잠깐! 야, 여기서도 성가퀴란 말 잘 썼잖아! 이 알드바인의 성벽은 기가둠에서 초빙한 장인이 만드는 바람에 섀터드 세븐의 유행이 아니고 기가둠 쪽을 따르는데! 이게, 진짜!”
장황하게 떠들다가 발끈하는 마법사였다.
투란이 그 모습에 풋 하는 웃음과 함께 달래듯이 말한다.
“몰라요! 난 성이 없는 곳에서 살다 와서 말이죠. 성벽 위 담장에 이름 따위가 있다니, 처음 알았어요. 하핫! 아, 그러면 저기 울퉁불퉁, 오목하게 패 놓은 자리에도 이름이 있는 거예요? 일부러 만들어 둔 것 같은데…….”
흉벽은 고르게 이어진 담장이 아니었고, 투란의 말처럼 가슴과 배꼽 언저리까지 파 놓은 홈 같은 자리가 간격을 두고 여럿 있었다.
산돌프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툴툴거리는 채로 대답을 해 준다.
“사수대(射手臺)잖아. 거기 걸치고 성벽을 기어올라 오는 애들 활로 내리쏘는 자리로 만든 거니까. 여기 바닥에 모서리의 틈새는 창이나 막대로 기어올라 오는 녀석들 밀어내기 위해 뚫어 놓은 자리고…… 읏차.”
말을 하다가 산돌프가 일어섰다.
흉벽 너머의 풍경을 보기 위한 듯한 태도에 투란은 그 곁으로 가서, 사수대를 손으로 두드려 보면서 함께 하이랜드의 풍경을 둘러봤다.
저쪽에서는 소란스럽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십이 구역은 왠지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것처럼 한산한 느낌이 맴돌고 있었다. 한구석에서 불붙은 바위를 뿜어내는 투석기가 덜컹거리면서 바쁜 듯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저편처럼 성벽 가까이 붙는 경우가 없어서 칼이나 활을 써야 하는 처지에서는 한가해진 듯했다.
그래서 투란은 사수대에 배꼽을 걸치고 성벽 아래를 훌훌 내려다보고 별것 없는 것을 확인했고, 멀리 남쪽의 울창한 숲이 안개를 머금은 채로 벌레같이 꼬불거리는 뭔가를 잔뜩 토해 내는 듯한 광경도 바라보며 한가하게 중얼거릴 수 있었다.
“와, 뭔 벌레야…… 멀어서 벌레로 보이는 건가?”
산돌프가 ‘뭐?’ 하더니 투란이 보는 쪽으로, 손가락 고리를 만든 채로 눈길을 줬다. 그러고 나서 바로 산돌프는 칼, 창, 활이 걸린 무기대에서 두툼한 쇠뭉치처럼 보이는 종을 들어 담장을 치며 외친다.
“카빈! 카빈앨리게이터다아아!”
뎅뎅거리는 크고 넓은 종소리와 함께 터진 말이라 저쪽에서 제대로 듣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저쪽에서 한 명이 빠르게 다가오며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뭐라고요오?”
“저기! 카빈앨리게이터!”
산돌프는 종을 다시 내려놓으며, 다가온 이에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채로 대답했다. 다가온 이가 그쪽을 보기는 했지만…….
“어디요? 딱히 보이는 거는 없는데…….”
아무래도 투란이 보는 벌레 같은 모양도 제대로 못 보는 듯했다.
산돌프가 불끈해서 바로 손짓하며 다시 말한다.
“나 마법사야! 내 눈깔 의심하지 말고, 가서 보고나 해! 지금은 티끌처럼 보이지만 저것들 성벽에 달라붙는 거 금방이거든? 미리 대책 세우지 않으면 여기서 통나무 같은 네발 휘두르는 악어 떼랑 칼부림할 테니까!”
손짓 사이로 희미하게 퍼릇한 불꽃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서 다가온 이가 주춤하더니 냉큼 돌아서서 저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바로 우렁찬 외침도 함께 터뜨리니…….
“카비이이인! 앨리게이터 포차아악! 마법사가 멀리 보기로 봤단다아아!”
투란은 멀뚱거리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카빈앨리……? 악어 떼? 뭐예요, 그게?”
산돌프가 그런 투란에게 찌푸린 눈길을 보냈다.